[에듀인뉴스] 오늘날 세계는 ‘도 우트 데스(Do ut Des)’라는 상호주의 원칙이 여기저기서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트럼프가 추구했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결국 강력한 보호무역이란 반시장주의, 반자유화, 폐쇄정책으로 이어지고 자본주의의 근간인 국가 간의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이처럼 상호주의 원칙의 붕괴로 인해 인류가 겪었던 과거 인간의 추악함과 잔인함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그늘이 되어 소환 당한다. 바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와 일본이 저지를 만행은 상호주의 원칙이 깨어짐으로써 벌어진 인류의 가장 추악하고 잔인한 역사였다.

이는 “네가 주기 때문에 나도 준다.”라는 단순한 믿음의 파괴이며 개인과 사회, 국가와 국가가 존립할 수 없는 평범한 진리이다. 

잠시 역사를 2017년으로 돌려 보자. 세계 곳곳에서는 좌충우돌 문제를 일으킨 ‘마초이즘’ 지도자들이 대거 국제 정치에 등장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러시아의 푸틴, 미국의 트럼프,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 일본 총리 아베, 이집트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 터키 대통령 레데프 타이예프 에르도안,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 필리핀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트 등이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그러면서 이들 ‘마초남’들은 안하무인격으로 공통된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 “우리나라(민족)만 아니면 돼”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의식이 무역과 양자협정의 사슬에 얽힌 국제사회에서 불협화음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단적인 예로 2017년 미국의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무슬림계 이민자에게 강경한 정책을 실행하여 나라 안팎으로 비난을 산 바 있다. 또한 그는 최근까지 강력한 한미동맹의 상호주의 원칙을 깨고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5배로 증액하려는 시도로 자국 내에서도 빈축을 산 바 있다. 

미국 하원에서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에 반(反)한다는 선언을 유발했고 당시 정적이었던 현임 대통령 바이든은 “트럼프는 한반도 핵위기 상황에서 동맹국을 갈취하려고(extort) 나서, 방위비 부담금을 대폭 올리려 하고 있다"고 맹비난한 바 있다.

멀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은 일찍부터 상호주의의 원칙에서 널리 이단아의 편에 서 있다. 반성할 줄 모르는 그들은 최근 도쿄발 기사에 의하면 일본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 정치인들이 “한국에 도움도 주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며, 관심도 주지 말자”고 혐한 발언과 막말을 쏟아 내고 있다. 

그들은 일관되게 국제법을 들먹이며 위안부 합의 ‘약속’을 지키라고 시종일관 압박하고 있다. 역대 독일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일관된 반성과 참회의 행동과는 달리 자신들의 끔찍하고 잔악하게 인간존엄성을 말살한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군부대 성노예를 매춘부라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역사적 문서가 증명하는 범죄인데도 불구하고 반성조차 할 줄 모르고 심지어 감추기에 급급한 후안무치한 행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풀리지 않는 원한은 “네가 주었기 때문에 나도 준다.”는 한국인의 감정의 배경이 되었다. 그래서 늘 앙금이 사라지지 않고 양국 간에는 한 시도 편안한 날이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기저에는 피해자를 되돌아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과 매듭을 지은 자가 이를 풀려는 행위(結者解之)적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다시금 배워야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고 한 가르침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반성할 줄 모르는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는 진리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국가와 국가 간에 관계를 맺을 때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를 위해서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갖출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갖추는 것, 그것이 결국은 국가의 힘이 되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의 자아실현만을 위해 매진하기 보다는 타인을 위한 준비 속에서 좀 더 완성될 수 있도록 내면을 가꾸는 것이 필요하다. 

라틴어 ‘도 우트 데스(Do ut Des)’는 개인과 사회, 국가 간의 관용과 대화의 기본 원리로서 ‘상호주의’의 기반이자 강력한 신뢰의 원천적 가치다.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우호적인 국제관계를 유지해 나가되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국제외교의 철칙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