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09)민주주의와 그 적들(1)
[민주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09)민주주의와 그 적들(1)
  •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4.02 22:1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굴"의 독선자와 "광야"의 독선자

민주주의와 그 적들(1): 동굴의 독선자와 광야의 독선자

 

****************

나치의 선전가인 괴벨스(Joseph Goebbels)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하나의 농담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는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을 악질적인 적에게 쉽게 넘겨주기도 한다. 반민주적 집단이 민주적 체제를 작동시키지 않거나 이를 장악하면, 그들은 분명히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Gregory H. Fox and Georg Nolte, “Intolerant democracies”, Harvard International Law Journal, 36 (1995), 170")

커쉬너(A.S. Kirshner)는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수호여부는 오직 민주주의자들이 그들의 정치체제를 지키려는 자발적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가에 달려 있다. 괴벨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민주주의는 절차를 지키지 않거나 무시하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는 반민주적 도전을 쉽게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Proceduralism and Popular Threats to Democracy." The Journal of Political Philosophy: Volume 18, Number 4, 2010, pp. 405424.)

******************

원적 민주사회에 잠복된 갈등요인

 

어떤 의미에서, 약하게 표현해서 민주적이지 못하다거나 강하게 표현해서 반민주적이다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의 하나는 다원주의를 수용하지 못하거나 거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통치구조로 볼 때 개인 혹은 소수가 아닌 다수, 즉 조직의 모든 구성원(민중)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참여하여 조직을 운영하는 체제를 뜻한다. ,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 신념, 가치관 등을 통치의 규칙과 절차를 결정하고 실천하는 데 반영하는 원리가 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다원주의는 민주주의의 논리적 요청이다. 달리 표현하면, 민주주의는 다원주의를 내포하며 그 조직에는 의미상 복수의 가치지향성이 공존한다.

 

그러나 민주적 조직에서 다원적 요소들은 항상 질서 있게 서로 평화로운 공존상태에 있지는 않다. 신념, 가치관, 이해관계, 생존방식 등에 있어서 구성원들은 공동의 이익과 목표를 추구하는 협조적인 관계만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의 형태로 갈등하고, 경쟁하고, 견제하고, 대결하는 양상을 취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만인 대 만인의 전쟁상태에 있을 수 있다. 사실상 조직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원칙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구성원 간에 서로의 갈등적 관계가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그러한 잠재적-실제적 갈등의 원인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적극적 혹은 소극적 가치요인이라고 한다면, 그 요인들의 관계는 서로 우연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유형을 보일 수가 있다.

 

복수의 가치요인들이,

(1) 평화적 공존: 평화롭게 독립적으로 공존하는 관계에 있기도 한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마치 여러 상점들이, 일시적으로나 항시적으로 한 시장 지역에서 서로 다른 상품을 팔면서 영업하는 경우와 같이 서로 이해관계의 충돌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관계와 같다.

(2) 경쟁적 관계: 약한 혹은 강한 경쟁적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마치 어떤 시장에서는 같은 상품으로 영업하는 상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서 다소 경쟁적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와 같이 비유할 수 있다.

(3) 상호의존 관계: 서로 협조적이며 보완적으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기도 한다. 좋은 비유는, 마치 병원과 약국이 이웃하고 있으면서 각기 고객에 봉사하는 역할을 나누어 가지는 경우와 같다.

(4) 선택적 대응: 자조적-공격적으로 존재하며 여타의 요인에 대하여 선택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비유컨대, 프로야구 혹은 프로축구의 단원들은 팀 감독의 지휘하에 조직과 경기를 일사불란하게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과 유사하다. 성격상 우리만의방식을 취하는, 즉 일종의 독재체제이다. 팀 자체는 엄격한 지휘체제를 유지하며 외부에 대하여 공격적 대비를 한다. 이 유형이 취하는 관계는 특징상 배타적-공격적 독선주의를 지향한다.

(5) 전체적 대응: 자조적-방어적으로 존재하며 여타의 요인에 대하여 무대응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종교단체 간의 관계가 보이는 일반적 특징은 대체적으로 이교도적 세력이나 영향을 차단하기만 하고 공격적 대응은 하지 않는다. 자체의 융성을 기하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경쟁이나 투쟁의 태세는 취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유형은 대체적으로 사회적 환경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독특한 소극적-방어적 독선주의를 지향한다.

 

위에 열거한 방식 이외에도 가치요인들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의 양상은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가치요인의 주체인 특정의 인물이 항상 어느 특정한 방식으로 다른 가치의 요인들과 일정하게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평화로운 관계에 있다가 어떤 전략적 목적에 따라서 갑자기 갈등적 관계에 있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관계에 있기도 한다. 한 개인은 위의 여러 유형들 중의 어느 하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한 개인은 여러 유형 중에서 거의 무한한 가치요인을 내면화했거나 새롭게 생성한다.

 

갑돌이라는 사람은 그가 추구하는 가치요인의 수만큼 많은 사회적 조직에 속해 있고, 각각의 조직에서 그는 가치요인이 지닌 특성에 따라서 갈등적 관계에 잠재적으로 혹은 실제적으로 놓이게 된다. 갑돌은 한 가정의 구성원이고, 직장의 조직원이며, 취미 단체의 회원이고, 종교단체의 신도이며, 주거하는 지역사회의 주민이며, 졸업한 학교의 동문이고, 정치조직의 당원이며, 거래처의 고객이고, 때로는 한 병원 혹은 의사의 환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적 조직이 특징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거나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이미 갑돌은 그 가치요인들을 내면화한 상태에 있고, 상당한 정도로 그 가치요인들은 자신의 인격적-개성적 특징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저런 경우에 그 요인들의 작용으로 때로는 갈등, 때로는 투쟁, 때로는 협력 등의 문제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보아 위의 (1)에서 (3)까지 양상에서 발생하는 갈등적 상황은 대부분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 전에 다소 쌍방의 자발적 조정에 의해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4)(5)의 경우에는 갈등적 상황이 발생하면 오래 지속하거나 영원히 해결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특징적으로 독선주의를 나타내며, 후자의 경우는 방관주의의 상태에 있는 셈이다. 어떤 가치요인을 두고 한 개인이나 집단 혹은 조직이 (4)의 경우, 즉 배타적-공격적 독선주의를 지향하는 상황에 있을 때, 여기서 이를 광야의 독선주의자라고 해 둔다. 그리고 (5)의 경우, 즉 소극적-방어적 독선주의를 지향하는 상황에 있을 때, 이를 동굴의 독선주의자라고 칭하기로 한다.

 

동굴의 상황과 광야의 상황

어떤 특정한 가치 혹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단체가 불의의 공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동굴에 피신하는 경우가 있다. 옛날 기독교의 초대 교회 교도들이 로마군의 공격을 피하여 동굴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신앙과 조직을 유지하는 생활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 중에 베트콩이라고 일컫던 게릴라 단체도 땅굴을 이용하여 적과 싸우면서 전력을 유지한 적이 있다. 동굴 속에 머물고 있는 동안은 외부의 침략이나 간섭으로부터 해방된 상태에 있다. 외부로부터 차단된 피신의 상태이기 때문에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 동굴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필요에 따른 선택의 다양성이 없으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도 단조롭고, 비록 여러 선택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상황의 제약으로 인하여 대책은 일원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다소 의견들이 제시되어도, 외부로부터의 위협의 상황에 있으므로 결국 하나의 대책으로 정리되고, 그것을 종결시키는 권위자가 선택을 좌우하고 만다. 그 속에서는 독재체제가 정당화되고 그 체제는 생활의 원칙을 폐쇄적으로 관리하는 독선주의가 지배한다.

 

대부분의 독재주의는 동굴의 독선주의로 성립하고 폐쇄사회의 생활과 행동을 유지한다. 의견이나 발상의 다원성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므로 개방적인 민주주의가 별로 의미를 지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럴 여지를 두고 있지도 않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권력의 독점과 독재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하는 나치즘,” “공산주의,” “인민 민주주의등이 표방하는 가치체제 그 자체를 우리는 민주주의의 다원주의적 틀에 포함하여 수용할 수는 없다.

 

동굴과는 달리 광야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주어져 있다. 행동이나 생활을 동굴의 상태와 같이 다스리지 않으면,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주어진 온갖 것에 대한 폭넓은 선택이 가능하고, 안위를 취하거나 도전하고 성취하는 삶을 향유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생명, 재산, 복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식량, 의복, 교통수단 등 어떤 가치의 경우에 희소성의 현상이 나타나면 분배적 정의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전쟁상태, 천재지변, 사회혼란 등으로 인하여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일시적으로 유보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전 혹은 사후에 개방적인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정당화나 평가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대체적으로 말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서와 같이 특히 종교나 인종이나 계층 간에 다원주의가 특별히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사회적-정치적 문제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단지 지역, 성별, 계층, 노사 간에 다소 잠재적 수준에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문화권이나 국가에 비하여 심각한 상태에 있지 는 않다. 그렇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다원주의가 유의미하게 검토되어야 하는 문제의 영역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부문이다. 보수니 진보니, 우파니 좌파니 하는 진영 간의 갈등적 관계가 현실적으로 우리의 정치적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극심한 갈등적 상황, 특히 외부의 침공이나 재해 등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때가 아니라도, 인간의 욕구체제를 합리적 사고의 능력이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사회적 광야의 자연은 인간을 위한 가나안의 복지와 같은 축복의 땅이 될 수가 없다. 여기에 민주주의가 삶의 중심적 원리로서 주도할 때, 그 자체의 다원주의는 매우 심각하게 위태로운 상황을 스스로 불러 오기도 한다. 다원주의의 원칙 하에서 허용된 가치요소들 중에는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는 요소가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 개방적 다원성의 이름으로 보호를 받아 은폐된 체제 속에서 기존 체제 자체의 전복을 겨냥하는 사고의 노선, 광야의 독선주의도 다원주의적 관용과 포용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독재체제에서는 자유주의(민주주의)가 허용될 수 없으나, 민주체제(자유주의)에서는 독선주의적 사고와 노선에 의한 독재주의도 체제에 기식할 수가 있다. 오히려 자유주의적 민주체제는 광야의 독선주의가 암약하거나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토양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로 인하여 민주주의도 다원주의 자체도 붕괴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가능성의 상황을 다원주의의 패러독스라고 일컫고자 한다.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dhl928@gmail.com

<저작권자 © 에듀인뉴스(Eduin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명희 2021-04-05 16:41:46
발행인님의 칼럼으로 에듀인뉴스의 품격이 한층 높아질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이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때여서 많은 시사와 생각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