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을 위한 토론, 그리고 토론을 위한 학습 (4)

이돈희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토론은 어떤 학습능력을 키우는가?

토론을 제대로 된 규칙에 따라서 열심히 해 보면 주제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문제의 배경에 대한 이해, 그리고 여러 가지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함께 얻게 된다. 물론 학교의 모든 수업을 토론에 의해서만 하게 되면 그 교과에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지식의 내용을 골고루 학습하지 못하고 토론에 관련된 내용에만 협소하게 접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토론이 모든 교육을 위한 왕도(王道)는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교과의 내용을 토론 위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가 토론의 주제를 잘 발굴하고 잘 구성하면 생각한 것보다 학습할 내용은 더욱 풍부해지고 관련된 주제도 많이 개발할 수가 있다. 특히 논쟁식 토론에 의한 학습은 여러 가지의 복합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교사의 도움으로 학생은 적극적 동기와 생생한 경험을 통하여 스스로 탐구하고 스스로 조직하고 스스로 표현하고 스스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학습은 의욕과 사고와 행동이 함께 활동할 수 있게 한다. 몇 가지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연구의 역량을 높인다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준비 없는 즉흥적 토론은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논쟁식 토론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설정된 주제를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토론에 익숙하고 흥미를 느낀 학생들은 새로운 주제가 정해지면, 그 주제에 관련된 사건이나 자료 등의 정보에 관심을 가지고, 토론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토론은 그 자체로서도 흥미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논쟁식 토론은 승패를 가리는 시합의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토론을 준비하기 위하여 연구에 대한 열의와 집중력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관련된 전문서적, 백과사전, 신문, 잡지 등의 인쇄 매체만이 아니라,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문서자료, 사진자료, 방송자료 등의 광범한 매체를 동원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들을 팀의 동료들과 함께 분석하고 검토하고 종합하고 요약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료를 조직하고 표현하는 기법을 또한 익히게 된다.

(2) 매체활용에 익숙하게 된다.

토론에 임하는 학생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수많은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면서 또한 그것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논쟁식 토론의 과정을 통하여 학생들은 정해진 주제를 여러 측면에서 증거를 구하고 논의된 내용을 탐색함으로써 매체 자체에 대한 학습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그들이 획득한 정보와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거기에 나타난 논의의 타당성과 증거의 확실성을 분석하는 습관과 요령도 체득하게 된다.

과거에는 권위적인 서적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온갖 종류의 매체를 통하여 정보와 자료들이 획득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정보들의 타당성과 확실성에 대해서는 엄격한 분석을 거칠 필요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같은 문제를 두고 이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이론이나 주장도 때로는 서로 매우 다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으로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3) 독해능력을 향상시킨다.

독해능력이란 반드시 주어진 시간에 많은 분량의 책이나 자료를 읽어내는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을 잘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필요한 경우에 잘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화해내는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읽는 내용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분석적-비판적 사고의 수준이 높아가고, 더욱 깊은 뜻을 밝혀내는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쟁식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자연히 다른 기회에서는 접해 보지 못한 많은 정보를 대하게 된다. 일상적인 수업이나 공부에서 접할 필요가 없었던 자료들도 광범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수용하는 학습이 아니라, 복잡하고 까다로운 쟁점이나 논의를 분석한다.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종합적 독해의 능력이 요구되므로, 학생들은 이러한 필요에 따라서 스스로 요령을 체득하고 효율적 기법을 익히게 된다. 종합적 독해의 능력은 조사한 자료들을 요약하고 개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수준으로 향상될 수 있다.

(4) 논증능력이 세련된다.

논쟁식 토론에 제대로 참여하자면 토론의 내용 속에 구조화되어 있는 논증의 틀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가, 그것을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주장의 기본전제는 타당한 것인가, 결론으로 주장하는바 그것이 실제로 기본전제와 일관성을 지니는 것인가? 전제가 따로 있고 결론이 그것과 무관하게 도출되어 있다거나, 전제와 결론을 연결하는 논증의 절차에 모순이나 비약이 있다거나 아니면 모호하거나 애매한 표현으로써 얼버무리려고 한다거나, 논증은 질서정연한 것 같지만 따져 보면 논의하는 주제와 빗나가고 있다면 토론을 잘하고 있다고 하기가 어렵다.

적절한 전제를 설정하고 모순과 모호성이 없는 추론을 하고 타당한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은 어떤 주장에 대한 찬성편에서나 반대편에서나 필요한 것이다. 주장을 하는 사람도 비판을 하는 사람도 다 같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이다. 모순이 없는 타당한 논증, 그것만으로 토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논리적 모순을 담고 있는 주장으로 토론에서 승리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논쟁식 토론의 경험은 바로 자신의 논리적 모순 혹은 오류를 점검하고 상대방의 주장 속에 숨어있는 모순과 오류를 찾아내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논리적 사고의 정확성과 엄격성을 충족시키려는 습관과 능력을 향상시키는 학습을 효율적으로 하게 된다.

(5) 증거평가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논쟁식 토론은 학생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종류의 역사적 자료, 문헌적 서술, 경험적 증거 등을 면밀히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배우게 한다. 토론에서 동원되거나 언급되는 증거 혹은 자료들은 질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비록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 서로 상충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므로 토론자는 그러한 증거나 자료들을 언급할 때 먼저 그것들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인가를 먼저 철저히 확인하여야 한다.

권위 있는 문헌, 상식화된 정보, 믿을만한 전문가로부터 획득한 증거라고 해서, 그것을 비판적 검토 없이 활용할 때, 나중에 만회할 수 없는 공격과 비판을 당할 수도 있다. 그 증거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것에 의존한 주장이 또한 확신을 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토론자는 증거의 평가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6) 개요 혹은 보고서의 작성 능력을 향상시킨다.

논쟁식 토론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다. 체계적인 증거와 타당한 논리와 설득력 있는 수사력을 동원한다. 토론자는 상대팀의 모순과 오류를 지적하면서 심판과 관중의 수긍과 지지를 받아내어야 승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구한 바를 요약하고, 개요를 작성하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필요한 경우에 즉시에 활용할 수 있는 순발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토론자들은 준비의 과정에서 연구한 바를 종합하고 정리하고 집약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경험을 하게 된다.

(7) 대중 앞에서 의사표현의 자신감을 키운다.

토론은 말로써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론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자연히 크고 작은 규모의 대중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조리 있게 펴는 훈련을 쌓게 된다. 청중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연설 혹은 발표 상황에서 자신감을 가지게 한다. 또한 지도의 여하에 따라서, 겸손한 마을을 가지고 대중 앞에 서게 하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자신의 통제력에 의해서 다양한 어조와 세련된 제스쳐를 자유자제로 구사하게 한다. 그리고 긴박하게 진행되는 토론의 과정에서 질문이나 비판에 대한 즉시의 대응력과 순발력을 익힘으로써 자기 표현력의 역량을 향상시킨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책이나 의사의 결정은 온갖 종류의 협의, 토의, 논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의 구성원, 적어도 어느 수준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고 조리 있게 표현하고 주장하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며, 또한 정보나 지식을 많이 소유했다고 해서 발휘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또한 아무렇게나 반복해서 시도한다고 해서 저절로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능력은 체계적인 학습에 의해서 길러지는 것이며, 그러한 능력을 종합적으로 훈련하는 구체적 방법이 바로 논쟁식 토론이다.

또한 논쟁식 토론은 폭넓은 지식과 타당한 논리와 정확한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서 지식의 획득과 논리적 사고의 훈련이기도 하며, 또한 언어의 구사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토론은 반드시 모국어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적 토론은 자연히 국제적 언어로써 실시된다. 국제적 언어, 특히 영어에 의한 논쟁식 토론을 활용하는 것은 영어의 정확한 사용과 구사력을 향상시키는 탁월한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