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을 위한 토론, 그리고 토론을 위한 학습 (5)

이돈희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토론수업의 특징과 유형

수업상황과 토론학습

학교의 수업에서 진행되는 토론은 토론대회의 경우와는 그 운영방식에 있어서 다르다. 토론대회애서는 주최 측의 방침으로 토론의 형식과 규칙을 미리 공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수업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토론을 할 수 있는 시간에 제약을 받기도 하고, 가능하면 많은 학생들이 토론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몇몇의 선수들이 주어진 시간에 시합의 목적으로 하는 토론대회와 같이 정해진 일정한 규칙으로 진행할 수가 없다.

토론대회를 위하여 개발된 모형이나 규칙을 그대로 수업에 적용하는 것은 가끔 필요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수업상황에는 일반화해서 적용하기는 어렵다. 우선, 수업상황에서 한 사람 혹은 한 팀을 선수로서 제한된 수의 사람으로만 구성하면, 그 이외의 학생들은 구경꾼으로만 남게 된다. 물론 단순한 구경꾼만은 아니겠지만 학습활동의 중심에 있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수업에서의 토론은 시합에서의 토론과는 달리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수업에서의 토론은 개인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능하면 구성원의 모두가 토론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할 필요가 있다.

흔히 토론대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토론의 모형을 응용하고자 한다면 융통성 있게 변용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시간 배분은 발언 기회의 공정한 관리상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수업의 진행과정에서는 허용되는 시간에 따라서 단축하거나 연장할 수도 있고, 필요한 경우에 발제, 논박, 질의의 횟수를 늘이거나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사 혹은 교사가 지명하는 학생들로써 심판진을 구성할 수 있고, 토론 후에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종합적 혹은 개별적 평가를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발제나 논박이나 질의를 담당하는 학생은 몇몇에 한정된다고 하더라도 한 학급의 학생들은 모두 어느 한 팀에 속하여 토론에 관련된 자료를 함께 조사하고, 분석하고, 또한 토론의 전략을 세우는 데 참여하게 하면 수업은 그만큼 생산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소수만이 토론에 임무를 지우면 수업상황에서 특별한 역할이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학생들은 토론수업에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 말하자면 무임승차한승객처럼 아무런 부담 없이 앉아서 구경만 하게 됨으로써, 학습동기가 제대로 유발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토론대회를 위하여 개발된 모형의 어느 것을 선호하거나 어느 것에 고정시켜 철칙으로 삼고 그것으로만 집착하는 것은 토론의 본래 의미와 목적에서 동떨어진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토론의 필요성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혹은 수업의 상황에서 수시로 만나게 되거나 반드시 어떤 형식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수업안을 구상할 때 학습 진도의 어느 부분에서 토론수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되면, 우선 논제를 명확하게 다듬고 그 논제 하에서 토론의 진행구조를 결정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토론에 할애할 것인가, 어떤 모형 혹은 형식으로 진행할 것인가, 토론팀과 진행자를 몇 명으로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토론팀에 속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진행, 심판, 배심원, 청중 등의 어떤 임무를 수행토록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토론은 여러 가지 방식의 구상이 있을 수 있다. 몇 가지의 가능한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형식적 토론과 임의적 토론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형식적 토론은 엄격한 공식적 규칙에 의하여 진행하는 토론을 말한다. 비형식적(혹은 임의적) 토론은 팀의 구성, 진행자의 임무, 승자와 패자의 판별 등의 계획을 다소 느슨하게 정해 두거나, 아니면 그냥 상식적(암묵적) 규칙에 따라서 진행하는 토론을 말한다. 수업에서 행하는 토론이 반드시 엄격한 형식적 토론일 필요는 없다. 그냥 가볍게 분위기를 조성하여 토론을 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적인 형식적 토론을 진행하고자 한다면 다소간의 형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의제의 성격이나 시간의 할당이나 학습동기의 수준 등에 비추어 형식적 토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되면, 엄격한 규칙을 정하여 절도 있는 토론을 해 보는 것이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계획적 토론과 우발적 토론

수업의 진행 도중에 교사의 즉흥적 발상이나 학생들의 우발적 요구에 의해서 토론을 시작해 볼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대개는 규칙을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을 바칠 수 없으므로 다소 느슨한 규칙을 세워서 잠간 동안 학생들이 토론 학습을 경험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관련 자료의 사전 조사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현재 지니고 있는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동원하여 토론을 진행하게 된다. 의도적-형식적 토론보다는 체계적이고 공정한 토론을 하기는 어렵지만, 수업의 현장에서 대두된 즉흥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개방적 토론과 유도적 토론

개방적 토론이란 어느 팀이 승리할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없을 정도로 결론이 개방되어 있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유도적 토론이란 주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진행될 수 있는 것으로서, 교사는 미리 결론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고 토론의 결과는 그 결론에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식의 토론이다. 플라톤(Platon)의 대화편에 나오는 소크라테스(Socrates)가 아테네의 젊은이들과 진행한 토론은 대개 이런 것이다. 어떤 지식을 그냥 주입하는 것보다는 유도적 토론의 과정을 통하여 분석적으로 검토한 연후에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면, 학습된 지식은 더욱 깊고 더욱 확실한 것이 될 것이다.

논쟁식 토론과 난상토론(爛商討論)

논쟁식 토론에는 어떤 문제나 의제에 대하여 찬성론과 반대론이 있다. 양론이 서로 상대편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공격하면서 자기 측 주장의 타당성 혹은 정당성을 명확한 증거와 엄격한 논리로써 입증하고 상대를 승복케 하려는 전략과 기술을 동원한다. 그러나 엄격히 규격화된 규칙이 없이 한 주제를 두고 여러 사람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서 진행하는 난상토론도 때로는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가 있다. 수업의 진행 중에 교사는 의도적으로나 우연적으로나 난상토론을 도입하게 된다. 소극적인 학생은 시종 침묵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는 하지만, 토론의 과정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물론 소극적인 학생은 참여의 발언을 하는 데 주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런 학생도 관심과 흥미의 여하에 따라서 혼자서라도 토론의 흐름에 따라서 생각하는 학습을 하게 된다. 반드시 어떤 결론을 내리고자 하지 않지만 대체적인 의견의 경향을 확인하고자 한다든가, 어떤 문제에 관해서 학생들의 이해 수준을 파악하고자 할 때 유용한 방법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