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마르셀 뒤샹의 변기작품 ‘샘’은, ‘현대미술(예술)의 기념비적 작품’이란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얘기가 아니고 이미 검증 완료된 학설입니다. 미술학교에서 대개 그렇게들 가르칩니다. 우리나라만 그러는 게 아니고 전 세계에서 다 그럽니다. (자존심 센 중국조차 시각은 조금 달라도 일단은 인정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지요.)

“냄새나는 남자소변기를 뚝 떼다가 전시한 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하실 걸로 봅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반응은 반응이고 평가는 또 평가라, 별도리 없이 그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콜럼버스의 달걀’과 비슷합니다. “알고 나면 쉽다”는 그 유명한 깨우침 말이지요.

저도 예전에 미술학교에 들어가 ‘변기’를 처음 만났을 때 그랬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공식예술품’이 되었든지 간에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방통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변기를 예술품이라고 우기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걸 또 예술품으로 인증해 주는 분위기도 신기합니다. 비슷한 요즘사례를 하나 소개할까요.

데미안 허스트라고, 영국작가가 있습니다. 1965년생으로,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스타입니다. 물 대신 포름알데히드를 가득 채운 수족관 속의 상어사체를 모터로 움직이는 작품인데요. 제목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년 첫 개인전 때 보시다시피 죽은 상어를 내걸었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한마디로 ‘모던아트세계에 새 영웅탄생!’ 축구로 치면 펠레와 마라도나의 재림이었습니다. 메시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그랬지요. 미술학교를 갓 졸업한 26살 청년이 하루아침에 ‘완전’ 떴습니다.

이후 영국의 예술잡지 ‘아트리뷰’가 뽑은 ‘세계미술계 파워맨 100’에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 1위. 고흐나 피카소처럼 명실상부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요. 데뷔10년 만에 ‘강호평정’을 완료한 셈입니다.

워낙 단기간에 초고속 성공을 이루자 좀 이상했던지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 동물사체를 작품이랍시고 노상 발표하는데 그런 거라면 나도 하겠다. 대체 무슨 속셈이냐?” 이렇게요. 이 능글맞은 친구는 눈도 하나 깜짝 안하고 태연히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런 거, 물론 기자양반뿐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여러분과 나의 차이가 뭔지 아시냐? 이거다. 나는 했고 여러분은 안 했고. 끝.”

‘싸가지’는 좀 없어 보이지만 말만은 맞습니다. ‘콜럼버스의 달걀’과 무척 비슷하지요? (말은 맞는데 듣고 나면 허탈한, 그래서 한대 콱! 쥐어박고 싶은.^^) 한 말씀만 더 드릴까요. 허스트의 저 작품은 과대평가된 측면이 많습니다. (이건 뒤샹이 제기한 질문 중에 “예술품을 공인하는 건 누구인가?”에 해당하는데요. 재미난 이야기가 많지만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저 작품은 우선 번역이 잘못됐습니다. 영어를 그대로 옮겨서 그렇습니다. 나름 정확하게 하느라 그랬을 텐데, 영어와 우리말은 1 : 1로 대응하지는 않지요. 실은 모든 언어가 다 그렇습니다만.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은, 뜻이 얼른 머리에 안 들어옵니다. 원인은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이 부분 때문입니다. ‘죽은 몸이라 더 이상 안 움직인다’는 뜻이니까 그냥 이렇게 번역하면 쉽습니다. “주검을 볼 때 드는 생각.”

더 줄여 그냥 ‘시체’라고 해도 아무 하자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어쩌고 하는 바람에 괜히 어려워졌습니다. 이처럼 현대미술은 좀 잘난 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밉상이긴 한데 그건 일부러 그러는 거랍니다. 선가(禪家)에서 스승이 제자한테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툭, 던지듯이 그렇지요.

비록 응가가 묻은 막대기로 가리켜도 진짜로 봐야 될 것은 달입니다. 손가락이든 막대기든, 가리키는 도구는 하나도 안 중요하니까요.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명확한 도구를 써야 된다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자, 이쯤하고 정리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펴볼 미술계흐름에서 ‘뒤샹부터 허스트까지’라는 구획이 하나 생겼습니다. 사실은 ‘뒤샹부터 백남준까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렇게 해도 됩니다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국력이 조금 모자라는 탓입니다. 조금만 더 세월이 지나면 그렇게 되리라 봅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예술분야에서 등수놀음은 무의미하지요. ‘한국이 낳은 독보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은 워낙 독특해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번쩍번쩍 빛나는데도 막상 올라가려면 막연한, 히말라야산맥의 신비한 만년설 봉우리 같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셔서 더 그렇습니다.

아쉬운 대로 아직 시퍼렇게 살아 맹활약 중인 허스트까지로 금을 긋겠습니다. 뒤샹부터 허스트사이, 수많은 아티스트와 그들의 작품들을 떠올려봅니다. 모두 밤하늘별처럼 반짝반짝 참 아름답습니다. 다들 웃으며 한마디씩 하는군요. .....들리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