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아이는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연초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며 새해의 결심을 한다. 직장인은 한 해의 목표와 이의 달성을 위한 업무계획을 세우고, 부모들을 아이의 미래를 새삼 걱정하며 새 학기를 점검한다. 직장맘인 필자에게는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어렵다. 얼마 전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라는 주제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공개한 ‘미래 고용 보고서’는 먼 미래도 아닌 5년 내 현재 일자리 700만개가 사라지고 200만개가 새롭게 생겨날 것이라 전망했다. 내 아이의 일자리는 700만개 중 하나가 아니라 200만개 중 하나이어야 할 텐데, 그럼 나와 내 아이는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막연하고 불안한 것이 나와 같은 직장맘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21세기의 풍요와 양극화, 불확실성은 더 커지는 미래, 한 둘밖에 없는 엄청 소중한 자식은 ‘헬리콥터 맘’, ‘타이거 맘’, ‘빗자루 맘’, 심지어 ‘잔디깎기 부모(Lawnmower parents)’와 같은 21세기 극성 부모상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이 망할 엄청난 기술은 아이의 스마트 폰에서 작렬하다 못해 내 아이의 직업까지 빼앗는단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보다 훨씬 빨리 자라는 몸집이지만, 도대체 철은 언제 들지 모를 자식은 눈만 뜨면 기계와 놀고 있다. 17세기 러다이트가 자동화 기계를 부쉈다면, 나는 당장 아이의 스마트 폰을 부숴버리고 싶다.

폰만 문제인가. 학교 가면 왕따를 (당)하지는 않는지, 선생님의 관심과 지도는 제대로 받고 있는지, 학원은 가는지(가야 하는 건 아닌지), 숙제는 잘하고 있는지, 책은 좀 읽는지… 오늘 날 부모들의 이 과도한 불안감은 아이 행동반경을 위성처럼 떠도는 헬리콥터 맘이 되게 하고, 살짝 궤도 이탈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타이거 맘이 되게 하다, 때때로 아이 앞에 나타난 모든 장애물을 직접 밀어버리는 ‘잔디깎기’로 변신하게 한다. 참 만능 변신 로봇이 따로 없다.

그런데, 그 걱정되는 미래에 꼭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냐 하니, 기계가 할 수 없는 통합적 사고력, 창의성, 문제해결력, 소통과 협업 능력, 자율성과 판단력, 도전정신과 책임감 등등이라 하는데, 하나같이 헬리콥터로도, ‘잔디깎기’로도 찾아줄 수 없는 것들이다. 아니, 문제를 겪고 하나라도 스스로 해결해 봐야 문제해결력이 생기고, 갈등 상황에 놓여 스스로 고민을 해 봐야 사고력과 판단력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급변하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온갖 위험을 헤치고 큰 성취란 것을 이루고 싶으면 작은 장애물도 헤쳐보고, 어려움도 극복하며 도전하는 시도를 해봐야 할 것 아닌가 말이다.

말은 당연하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정작 내 아이에게는 ‘다르게 행동’하는 마음 약하고 모순된 ‘헬리콥터 맘’, ‘잔디깎기 아빠’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고난에 대한 면역력도 못 키운 채 부실한 ‘어른이’로 세상에 나가게 하는 것 아닌가.

‘헬리콥터’에서 내려와 ‘잔디깎이’를 과감히 던지고

세상은 늘 변한다.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라 어느 것이 많아졌는가에 따라 과거 주목도 않던 것들이 희소해지며 높은 가치로 매겨진다.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절 가난과 결핍은 지금의 풍요로운 환경만큼 익숙하고 당연했다. 굳이 극기 훈련을 하지 않아도 참을성을 기를 수밖에 없었고, 곳곳에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모두가 어렵고 고달파 서로 품앗이를 하며 도와야만 했고(서로의 집을 제 집처럼 오갔던 ‘응답하라 1988’ 세대까지만 해도 소통과 협력을 굳이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배우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그 시절 우리 앞엔 잘사는 너무도 많은 나라들이 있어서 그저 열심히 익히고 빨리 쫓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 풍요가 환경이 되었다. 가난해도 당시에 비하면 너무도 편하다. 웬만한 문제는 기술이, 그리고 돈이 해결해준다. 그렇다면 지금의 환경에서 애써 갖고자 노력할 가치는 무엇인가. 결핍에서 형성된 용기 같은 덕목은 아닐까.

1960년대 초, 마빈 아이젠슈타트라는 심리학자는 혁신가, 예술가, 기업가와 같은 ‘창조적인 사람들’을 조사하던 중 흥미로운 발견을 하였다. 당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반 페이지 이상을 차지하는 인물들 699명을 추적해보니 573명중 1/4은 열 살이 되기 전 부모 중 1명을 잃고, 34.5%는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45%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적어도 부모 한 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설마 우리 아이의 대성(大成)을 위해 내가 없어져 주어야 하는가?’라고 억측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의 한 부분을 굳이 인용한 이유는 풍요와 편리함의 시대에 극단의 결핍은 없을지라도 적당한 난관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들, 열렬히 갖고 싶은 것을 위해 참고 절제하는 인내심, 빠른 해결을 위한 조급함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해결을 위한 정성, 많은 것보다는 특별한 것을 위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완성의 끝자락에도 고민해보는 마음 씀이 오늘날 애써 일부로라도 조성하고 기다려주어야 하는 가치와 태도가 아닌가싶어서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세세히 통제(micro-control)하고 엄히 구는 ‘타이거 맘’이 되자는 것은 아니다. 호랑이는 사냥감을 잡아만 놓고 죽이지는 않은 채 새끼에게 사냥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한다.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가 생후 1년쯤 지나면 점차 어미와 보내는 시간을 줄여나가 독립하게 한다. 아이의 창의적 성취를 너무도 바라는 그 마음을 용기로 바꾸어 헬리콥터에서 내려와 잔디깎이를 과감히 던지고 진정한 타이거 맘이 되는 것을 고민해봄직도 하다.

도대체 정답이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자녀교육

필자는 아직 절제가 쉽지 않은 13살 딸이 수차례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야간 카톡 삼매경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핸드폰을 중지시키고 집안이 들썩거릴 전쟁을 치렀다. 해달라는 주문만 있을 뿐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기쁨을 전혀 알지 못하는 딸의 생활 태도를 고치기 위해 지리멸렬하게 밀고 당기는 말싸움과도 같은 대화 끝에 그나마 매일의 독서와 직장맘 엄마의 애로사항에 대한 공감, 배려를 약속받기도 했다.

보고 듣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막상 부딪히면 도대체 정답이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의 현실이다. 우린 수많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익혔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마음가짐과 지식은 특별히 배워본 적도 훈련해 본 적도 없다. 그저 현실에서 부딪히며 부모도 끊임없이 배우고 정성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고민한 것을 생각에 그치지 말고 이것저것 해 보아야 한다는 것, 다만 진정 사랑하는 마음은 늘 느끼게 하면서도 단호할 땐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 절제의 용기와 실천의 모범, 평정심을 잃지 않는 대화는 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겪으며 배워가는 학부모로서의 자각이다.

춥고 움츠러들 때면 재작년 딸과 함께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생각나 ‘렛잇고’를 듣는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야(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한계를 시험하고 뛰어 넘겠어(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어떤 규칙도 내겐 없어 난 자유로워(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그냥 두어줘(Let it go)”라고 노래하며 겨울왕국의 진정한 여왕이자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는 엘사를 떠올리며, 부모들이여,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의 왕국을 개척할 수 있도록 지켜만 보자. 그러다 도저히 못 봐주겠으면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