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사회적 경제란 무엇인가?

유승민 의원이 발의한 사회적 경제기본법안에 따르면 사회적 경제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사회적경제”란 구성원 상호간의 협력과 연대, 적극적인 자기혁신과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사회서비스 확충, 복지의 증진, 일자리 창출, 지역공동체의 발전, 기타 공익에 대한 기여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말한다.“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은 추상적이지만,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같은 조직들이 사회적 경제의 구체적 모습들이다.

사회적 경제, 한국의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에 대한 지원은 정치적 컨센서스를 얻어가고 있다. 좀처럼 합의를 하기 어려운 여당과 야당이 <사회적 경제 기본법>의 통과에 대해서 합의를 이루었다. 아직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머지 않아 가결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더불어 민주당은 벌써 <사회적 경제 기본법>의 통과를 총선 공약 중의 하나로 발표했다.

기본법은 통과를 앞두고 있지만 개별법들은 이미 제정되고 시행중이다. 사회적 경제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사회적기업에 대해서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어 있고,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협동조합기본법이 마련되어 시행 중이다. 지자체 수준에서는 이미 88개의 지자체들이 사회적경제 지원에 관한 조례들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사회적 경제는 한국 경제 정책에 있어서 대세로 자리를 잡아갈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경제와 시장경제, 공통점과 차이점

사회적 경제는 예전부터 존재해왔던 시장경제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먼저 같은 점부터 생각해 보자. 사회적 경제든, 시장경제든, 뭔가를 생산해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분배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어떤 것이든 기업이라는 점에서 삼성전자와 같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팔아서 수익을 내야 하듯이 폐품을 수집해서 파는 사회적 기업도 폐품 수집과 판매로 돈을 벌고 수익을 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 팔릴만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야 하고 직원들끼리 협동을 해야 하며 만든 물건을 팔기 위해 영업활동을 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마을기업이든 돈을 벌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에서의 조직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점은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의 관계, 또 생산한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시장경제는 익명성이 강하다. 즉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의 거래나 협동이 중심을 이룰 때가 많다. 아이폰의 생산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폰을 설계한 미국 애플사의 디자이너는, 그 설계도에 기초해서 아이폰을 제조하는 중국 팍스콘 공장 노동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또 한국 아이폰 사용자들은 그 아이폰을 제조한 팍스콘 중국 공장의 노동자가 누군지, 미국의 설계자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아니 알 필요도 없다. 그저 휴대폰 대리점에서 원하는 제품의 품질과 가격만 보고 선택을 하면 된다. 또 공장의 노동자들도 자기가 만든 제품을 누가 쓰든 관계없이 그저 월급만 받으면 그만이다. 그처럼 시장경제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협동과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거래를 통해서 형성된다. 그렇게 해서 시장경제는 전 지구적인 협력관계와 거래관계를 만들어낸다.

반면 사회적 경제는 익명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익명의 사람들 사이의 협동과 거래 대신 아는 사람들끼리의 협동과 거래를 추구한다. 서울시 협동조합 정책의 구호가 ‘마음에 맞는 사람 5명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을 협동조합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을기업은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서 생산을 한다. 생협(생활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소비자와 생산자가 같은 생협의 조합원이 된다. 그러니까 같은 조합에 속한 조합원이 생산한 것을 또 다른 조합원이 소비를 하게 되는 구조이다. 시장경제가 익명의 협동과 익명의 거래로 구성되는 반면 사회적 경제는 서로 아는 사이끼리의 협동과 거래를 추구한다. 사회적 경제 운동가들은 이같은 특성을 소위 ‘인격 경제’라고 부르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장·단점

사회적 경제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의 본성에 맞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 아는 사람끼리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불편하고 공격성까지 드러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등 사회적 경제의 조직들은 서로 아는 사람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일을 하기 때문에 참가자들의 마음이 따듯해질 수 있다.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다.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루는 경제, 소위 ‘인격경제’라는 것은 사회적 경제의 장점이지만 치명적 약점이 되기도 한다.

첫째의 단점은 생산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뭐를 만들어봐야 생산성이 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모일 수 있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분업을 하기도 쉽지 않고 동원 가능한 능력의 풀도 좁기 마련이다. 그런 문제점은 제품의 특성에 묻어난다. 품질은 조악하고 원가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자기들끼리 서로 사주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제품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사회적 경제의 조직들이 자꾸 정부에게 구매해달라는 요구를 멈추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그러한 약점 때문이다. 결국 사회적 경제는 세금으로 지탱하는 경제, 위장된 정부경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의 또 다른 단점은 배타성과 폐쇄성이다. 마음 맞는 사람들,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만 일을 하자는 말은 모르는 남들은 끼워주지 말자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도시 사람이 시골 마을에 갔을 때 느끼는 소외감을 떠올려 보면 된다. 사회적 경제가 표방하는 ‘인격경제’라는 것이 시골 마을의 배타성에 비유할 수 있다면 시장경제는 국제적 대도시의 개방성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이나 런던, 홍콩 같은 익명의 대도시에서는 처음 간 사람도 묘한 해방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안 그래도 한국은 배타성, 폐쇄성이 강한 사회여서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적극적 이민정책을 포함한 파격적 개방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경제를 한다며 마을공동체, 마을 기업 같은 것에 힘이 실릴수록 한국 사회의 폐쇄성은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자발적 선택과 사회적 경제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경제대로, 시장경제는 시장경제대로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지, 어떤 경제가 생성되고 번창하게 만들지는 각각의 노동자와 소비자들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좋다. 마을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원하는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면 된다. 사회적 경제의 조직에서 사이 좋게 만든 제품들을 소비자들이 구입해준다면 그런 조직들은 번창할 수 있다. 시장경제의 익명성이나 상품경제적 속성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사회적 경제는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마음 따듯해지는 인격 경제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자유를 주면 된다. 그 대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반면 높은 생산성, 좋은 제품을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익명의 시장경제적 조직에 속해서 생산을 하면 된다.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다면 시장경제이든 사회적 경제이든 각자의 취향에 맞는 경제가 만들어져 갈 것이다.

사회적 경제에 세금을 써야 하는가

문제는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일이다. 정상적으로 소비자들이 구입하지 않을 제품들을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서 구입해주는 일이다. 그 세금은 대부분 시장경제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세금으로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것은 사회적 경제를 위해 시장경제를 줄이는 것이다. 생산성 낮고 폐쇄적인 경제를 확대하기 위해 생산성 높고 개방적인 경제를 억누르는 것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함이라면 사회적 경제 활동에 나라 돈을 쓰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돕는 복지정책으로 돈을 쓰는 것이 더 낫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재정 지원은 사회적 경제 활동가들만 좋은 일 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경제는 ‘착한 경제’를 표방한다. 그렇다면 납세자의 세금을 넘보지 말아야 한다. 남의 돈을 빼앗아서 하는 착한 일은 더 이상 착한 일이 아니다. 착한 일은 자기 돈으로 할 때에야 비로소 착한 일이 된다.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돈으로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시킬 도덕적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