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대한민국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초국가적 가치중립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교육과 정치는 물과 불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국가와 사회의 실제 작동 모습과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과 정치, 정치와 교육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에, 에듀인뉴스는 '교육을 생각하는 정치, 정치를 생각하는 교육'을 주제로 담론을 형성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김봉석 한국교원대학교 교수가 에듀인뉴스에 보내온 원고를 싣는다. 교육과 정치, 정치와 교육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편집자 주>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불편한(?) 초등학교 선거문화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다가오는 4.13선거를 맞이하여 온 나라와 정치권의 관심이 뜨겁다. 온 국민의 뜨거운 관심 못지않게 학교에서도 이 시기쯤 되면 관심이 되는 활동이 있다. 초등학교 임원선거이다. 3월이 되면 학교와 학급 임원선거를 항상 치른다. 매년 3월이 되면 또 하나의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는 셈이다. 3월 새 학년이 시작되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 임원 선거는 초미의 관심사다. 사실상 학생들에게 이 시기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마도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누가 임원이 될 것인지가 아닐까 한다.

기성세대들은 저마다 초등학교 반장에 대하여 애틋한 향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주로 공부를 잘하던 아이들이 반장 표찰을 차고, 선생님을 대신해서 떠든 아이들과 청소를 감시하던 선생님의 대리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뜻하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당시 학급 임원 자리는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면서도 자기가 인정받을 수 있는 명예로운 자리였다. 물론 요즘은 초등학교 임원이 예전처럼 전적으로 선생님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학교에서의 임원이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며, 대단히 명예로운 자리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민주시민 양성이 교육의 중요한 목적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학교에서 치러지는 임원 선거는 학생 자치를 목표로 하는 일상화된 학교 행사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의 임원 선거를 통해 배우는 자치활동은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목표를 도달하기 위한 교육활동이다. 사실상 임원 선거와 학생 자치활동이 가장 비중 있는 학생들의 정치활동인 셈이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펼쳐지는 선거와 자치활동의 모습이 과연 이러한 목적과 의도에 부합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기 어려워진다. 현재의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선거는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불편함을 가지게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벤트성 선거 문화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 불린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임원 선거는 축제이자 꽃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 않다. 어느 순간엔가 학생들에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벤트성 행사로 변질되기도 한다. 오히려 형식적인 선거와 자치활동으로 인해 미래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염증을 미리 경험해보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최근 기사를 보면 비록 일부이기는 하나 초등학교 임원 선거를 위해 이벤트 업체에 의뢰하여 선거 연설이나 벽보, 홍보 등에 대한 컨설팅을 받는다고 한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회장 선거용 벽보나 연설문 등을 작성하는 단기 강좌도 있었다고 한다. 부모들의 과욕으로 빚어지는 이러한 모습들이 학교의 아름다워야 할 선거 문화를 멍들게 하고 있다. 실제로도 필자가 겪은 바로는 교육 현장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심심치 않게 있었다. 학생들의 임원 선거 벽보에 붙이는 사진은 꽤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사진관에서 멋지게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이벤트 업체의 연설 광고 대행서비스나 컨설팅에 비하면 이런 행동은 오히려 소박한 수준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학교에서는 선거 벽보도 일정정도로 규격화하는 고육지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문제는 어릴 때부터 이러한 방법을 배운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학습효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또한 주로 이미지 정치로 대변되는 치장만 위주로 하는 우리의 선거 문화의 고질적 병폐도 학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인기투표식의 선거 문화

어찌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야기되는 비정상적인 선거와 투표 형태의 문제점도 학교에서의 선거문화가 일조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의 의사를 대변할 대표를 뽑는 중요한 절차가 선거이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진행되는 학교나 학급 임원선거가 지나치게 인기투표의 형태로 흐른다는 점에서 아쉽기만 하다. 사회과에서는 민주 선거의 필요성과 원칙, 투표의 중요성 등을 학습한다. 마찬가지로 국어과에서도 올바른 공약과 실천 가능성 있는 공약을 보고 후보를 선택하는 방법에 대하여 학습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제 학생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선거의 모습은 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물론 초등학생은 아직까지 인식 능력이 성인과는 다르게 미숙성숙하다는 조건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시민 양성이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이를 기르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임원 선거의 문제점을 그냥 간과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제가 회장이 된다면 왕따 없는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아마도 요즘 가장 많이 나오는 학생들의 임원 선거에 나오는 출마의 변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학생들이 왕따와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만큼 학생들이 공약(公約)으로 내세울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초등 국어과에서는 임원 선거 과정에서 허황된 공약을 한 학생이 당선되고, 그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때를 가정하여 학습하는 내용이 있다. 학생들에게 공약으로서의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 후보자의 신뢰성 등을 토대로 투표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목적이다. 그런데 현실은 국어과 선거 공약의 판단에 대한 학습 내용이 무색할 정도의 결과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초등학생들의 임원 선거의 중요한 요인으로 공약, 소견발표, 학생간의 인기, 선거운동이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공약보다는 학생들 간의 인기가 더욱 중요시된다는 결과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학생들은 임원 선거에서 각종 공약들을 말하고 있는데 거의 모두 현실성보다는 선언적인 공약(空約)만을 난발하는 곳이 현실이다. 앞서 말한 국어과에서 학습한 이론과 현실의 극명한 간극을 보여준다.

형식적인 자치활동

학생들의 선거가 형식적이고 이벤트성 행사로 전락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생활세계와 유리된 자치활동에서 상당부분 기인한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급이나 전교 어린이 회의를 살펴보면 학생들의 실질적인 생활세계의 문제이기보다는 형식적인 논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관성적으로 거의 모든 학교는 월요일에 시작되는 아침 방송을 통해 전교회의 결과를 발표한다. 이 내용을 보면 ‘학습 태도를 바르게 하자’, ‘건강한 생활을 하자’와 같은 선언적인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이와 같은 내용에서 크게 의미를 찾지 못하고 식상하게 느끼게 된다. 마치 정치인들의 선거 구호가 그들이 당선되기 위한 구호에 그치고 만다는 일반인들의 인식과 비슷한 이치이다.

형식적인 임원 선거 문제는 막상 임원이 되면 실질적으로 할 일이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에서 파생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민주주의에서 대표가 갖는 의미를 크게 체감하지 못한 채 학급이나 전교 임원 선거가 형식적인 절차로만 치러지고 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의사결정의 대부분이 사실상 학생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초중고를 불문하고 학교에서는 ‘안 된다, 예산이 없다, 학생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는 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 결국에는 학생들에게 좌점감과 무력감을 학습하게 한다. 이러다보면 임원들에게는 실질적인 권한과 역할이 거의 없어지게 되고, 그저 교사의 심부름이나 하는 역할보조에 머무르게 된다. 당연히 이러한 구조에서는 임원들이 대표로서 하는 일이 별로 없는 명예만 따라오는 역할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이들을 뽑는 선거 역시 형식에 치우친 나머지 일회성 행사로 이어지게 된다. 과감하게 눈높이에 맞는 권한을 주어야 지금까지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임원 선거와 자치활동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해보았다. 인정하기 싶지는 않지만 사실상 학교에서 학생들의 선거나 자치활동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도 무리는 아닌듯하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학교의 자치활동이 민주시민교육의 출발지가 아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양산시키는 출발지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권위적인 우리의 학교문화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의사결정의 사안과 권한을 분석하여 좀 더 과감하게 학생들에게 권한을 이임해야 한다. 비록 작은 수준일지라도 학생들이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들은 과감히 교사나 학교로부터 학생들에게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학생들이 뽑은 대표가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한다면 임원 선거의 중요성도 더욱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기사에 의하면 초등학생들이 자치활동을 통해 학교 앞 교통 문제를 인식하면서 자전거 길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하여 주변 관련 단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해나갔다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을 모든 학교에서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안 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체념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제는 학교에서의 임원 선거 문화와 관성적인 자치활동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어떤 조그만 실천과 아이디어라도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