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철 배명중학교 교사

대한민국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초국가적 가치중립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교육과 정치는 물과 불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국가와 사회의 실제 작동 모습과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과 정치, 정치와 교육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에, 에듀인뉴스는 '교육을 생각하는 정치, 정치를 생각하는 교육'을 주제로 담론을 형성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조경철 배명중학교 교사가 에듀인뉴스에 보내온 원고를 싣는다. 교육과 정치, 정치와 교육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편집자 주> 

매년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을 대표하는 전교 학생회장 및 부학생회장을 뽑는 선거를 실시한다. 학교와 학생을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하겠다고 나선 학생 후보자들 중에서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야 말로 민주정치 교육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정치 교육의 첫 걸음이 되는 학교의 선거문화가 기성세대의 선거문화를 일부 답습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학생회장도 학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학생회장 선거 운동 기간이 되면 학생들의 등굣길부터,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이르기까지 떠들썩하다. 등굣길에는 학생 후보자,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학생 선거운동원들이 교문에 나와 상대편 후보 진영에 질세라 목이 떠나가도록 후보자의 이름을 연신 외친다. 그러나 이들을 자세히 보면 학부모의 경제적 지원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특정 색깔로 맞춘 단체복을 입고, 인쇄 업체서 돈을 주고 만든 홍보 피켓, 포스터 등을 들고 있는 선거 운동원들도 있다. 업체서 제작한 홍보 피켓, 홍보 포스터를 보면 국회의선 선거 못지않은 제작물도 있다. 물론 들어간 비용에 따라 결과물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등굣길 선거 운동이 끝나면, 학생 후보자 부모가 선거 운동을 하느라 고생을 한 선거 운동원들에게 전해준 김밥과 같은 간식을 들고 각자의 교실로 들어간다. 이만이 아니다. 학생 후보자들은 자신을 위해 일할 선거 운동원들에게 선거가 끝나면 “○○○에서 먹을 것을 쏜다”고 현혹한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이라 학생 후보자가 사준다는 먹을 것을 바라보고, 또는 다른 학생 후보 측에서 제시한 먹을 것과 비교하여 움직이기도 한다.

유명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선거 운동 참여에 수고하였다고 학생 후보자 자신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학생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그리고 학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 되지 않아 단체복도 만들지 못하고, 자신을 홍보하는 내용을 손수 오리고 잘라서 홍보포스터를 만들고, 다른 학생 후보자에 비해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없는 학생 후보자와 이를 바라보든 학생 유권자들은 학생 선거를 통해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가?

선거만 있고 선거 이후는 없는 선거

선거 운동 기간에 학생 후보자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자신이 장차 학생회장이 되면 펼칠 공약을 알리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선거일이 되면 학생 후보자들은 투표에 앞서 학생 유권자 앞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을 뽑아 달라고 호소 아닌 호소를 한다.

학생 후보자 연설문을 보면 다양하다. 학생 수준에 맞는 연설문을 써오는 학생 후보자도 있는가 하면, 평소 수업 태도나 서술형 시험 답안지를 보면 그럴 수준이 아닌데 대필을 의심할만한 연설문을 써오는 학생 후보자도 있다.

어떤 학생 후보자는 어디서 보았는지 학생회장에 대한 자신의 결연함을 보여주기 위해 학생 유권자 앞에서 삭발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학생 유권자를 모시는 마음으로 학생회장을 하겠다고 학생들에게 넙죽 엎드려 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것들이 학생회장에 대한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마음의 발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기성세대의 쇼맨십 정치를 학생들이 이미 보고 배우고 자랐다는 점에서 미안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든다.

한편, 투표에 앞서 학생 후보자가 최종 연설하는 동안 학생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연설, 공약 등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저 수업을 하지 않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거나 잡담을 하는 시간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가끔 자기 반의 학생 후보자가 나왔을 때 호응을 하거나, 쇼맨십을 보이는 학생 후보자가 나왔을 때 잠시 눈길을 주는 정도이다.

학생 유권자들에게 학생 후보자의 연설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다 똑 같다. 공약을 지키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1번을 찍을 것이다. 친한 친구가 많은 학생이 당선 될 것이다. 그냥 인기 투표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들려온다. 자신의 소중한 투표를 행사하기 전에, 학생 후보자의 연설과 공약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학생 후보자에게 투표를 행사하기를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과한 것인가?

어찌됐든 선거는 치러질 것이고, 1위 득표자는 나오게 될 것이며, 그가 학생회장이 될 것이다. 이로서 선거는 끝나는 것이다. 자신들을 대표하는 학생회장이 어떤 공약을 발표하였으며, 이러한 공약이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학생 유권자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다.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일 것이다. 아마도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으며, 더욱 재미난 것들이 내 주변에 많이 있는데 굳이 머리 아프게 학생회장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이유에서이다.

대표자로서의 학생회장? 스펙 쌓기로써의 학생회장?

학생의 대표자로서 학생회장은 학생과 학교를 위하여 자신을 공약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선출직이다. 자신이 학생들 앞에서 약속한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회장도 있을 것이며,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하다가 현실적인 여러 제약 조건으로 공약을 일부 실현하지 못할 학생회장도 있을 것이다. 둘 다 학생을 대표하여 학생과 학교를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학생회장직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한 것이다.

반면에, 학생회장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출마, 당선 되는 학생회장이 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생회장직을 맡아 수행했다는 내용이 들어가면 상급학교 진학 시 유리하게 평가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학생 후보자들은 자신이 학생회장으로 선출되는 것에 노력을 할뿐, 일단 선출이 되었다면 목적을 다한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일단 학생회장으로 선출된 것을 끝으로 보는 학생회장과, 학생회장으로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보는 학생회장의 공약 실현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스펙 쌓기로써의 학생회장은 ‘학생회장으로서 활동을 했다’는 학교생활기록부의 한 줄만이 필요했고,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잠재적 교육과정과 정치교육

앞에서 제시한 학생회장 선거 모습은 현실 전체라기보다는 개선되어야 할 학생회장 선거문화의 일부분이다.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진실을 꺼내는 이유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영향력 때문이다. 잠재적 교육과정이란 학교 또는 교사가 의도하고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학교생활을 통하여 학생들이 은연중에 가지게 되는 경험이다. 특히 이는 학생들의 태도․가치관․신념과 같은 정의적 측면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어떠한 학교도 교사도 학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는 선거, 선거 이후를 돌보지 않는 선거, 상급 학교 진학 시 좋은 스펙을 제공할 수 있는 선거를 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공식적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민주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공식적 교육과정에서 잠시 교과서에서 만나게 되는 바람직한 민주정치에 대한 텍스트와, 이른바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초․중․고등학교 12년 동안 학교에서 경험하게 되는 선거를 통한 정치의 경험, 이 둘 중 어느 것이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을까?

앞서 제시한 학교 선거문화가 학생들이 12년 동안 학교에서 알게 모르게 경험하게 될 내용이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미래의 유권자를 만들어내는 데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며, 지금 먹고 살기 바쁜 나로서는 정치에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선거 때만 잠시 시장에 나와 대다수의 서민들과 악수를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 친서민적이라 생각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그들에게 표를 던지고, 그들을 뽑는 날은 쉬는 날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뽑아준 뒤로 4~5년 동안은 자신을 뽑아달라고 내뱉은 달콤한 말을 망각하고, 앞으로 진정으로 국민들을 대변하고 위할 수 있는 정치인을 자신들의 손으로 선출하지 못하는 유권자. 대한민국 교육은 이러한 유권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비판에서 일부 자유롭지 못하다.

반대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경험하게 되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학습 결과가 항구성을 띤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학생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하고 대표할 수 있는 대표자를 뽑는 과정에서 긍정적 측면의 잠재적 교육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그들을 진정으로 대표하고 일할 수 있는 대표자들 선출하는 유권자가 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부터라도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부터 민주정치를 경험할 수 있는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