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한 객원기자

대한민국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초국가적 가치중립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교육과 정치는 물과 불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국가와 사회의 실제 작동 모습과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과 정치, 정치와 교육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에, 에듀인뉴스는 '교육을 생각하는 정치, 정치를 생각하는 교육'을 주제로 담론을 형성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조영한 객원기자가 보내온 학교선거문화에 관한 글을 싣는다. 교육과 정치, 정치와 교육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편집자 주> 

민주시민교육은 얼마나 잘 실천되고 있나?

우리 사회는 지식정보화시대와 평생학습사회를 맞이했지만 성숙된 민주사회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민주사회를 갈망하지만 실제적으로 이를 뒷받침할만한 민주시민교육은 미미한 현실이다. 제1차 한·독 국제학술회의 참석차 방한한 독일 기센대학의 볼프강 잔더(Wolfgang Sander)교수는 ‘한국·독일의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가진 자리에서 “민주시민교육이 독일을 민주화시켰고, 그 같은 움직임이 통일을 이뤄내는 힘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경향신문, 2004.9). 이는 민주사회를 갈망하며 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이 되고(국민의), 국민에 의해(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해(국민을 위한) 이루어지는 정치를 말한다. 그러나 사회적 전문성과 복잡성 때문에 모든 이가 정치할 수 없기에 대의적인 대표를 선출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결정을 통해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간다. 여기서 대의적인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는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즉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제도이다. 민주주의를 잘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잘해야 하고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선거를 잘해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 꽃을 잘 피워야 정치가 바로서고 정치가 바로서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때문이다.

흔히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선거라는 민주주의 꽃이 시들거나 썩게 되면 민주주의의 열매도 썩게 되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주의 정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각급의 학교에서 치러지는 학생회장 선거는 민주시민교육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절차이자 정치교육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체험교육

정치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견이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이나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런 과정에 내가 직접 나설 수 없기에 선거에 참여해서 내 손으로 ‘대의적인 대표’를 선출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란 나와는 상관없고 특별한 사람들의 일로 간주한다. 오히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다. 정치행위는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썩었고 문제투성이’라는 방관자적 비판만 일삼는다. 이와 같은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은 투표율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날 각급의 학교에서 치러지는 학생회장 선거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시민교육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절차이자 정치교육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학생회장 선거가 본래의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

초·중·고·대학을 거치는 동안 학교에서 수십 차례의 선거를 통해 정치를 학습함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민주시민이 길러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첫째로 교과 문제를 들 수 있다. 오늘날 정치·경제 관련 교과서를 보면 이념 이상의 것에 대한 기술이 미미하다. 이런 결과는 정치에 대한 교육이 단순한 지식전달 교육에 그치고 제도를 개선하고 바른 정치과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문제해결역량을 함양하는 부분이 미흡하게 된다. 또한 사회현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사회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는 능력을 함양한다는 목표와도 거리가 먼 교과구성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정치체제의 이해를 통한 합리적 비판의식과 사고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대부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소개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교육내용이 현실정치의 문제점이나 갈등을 회피하고 단순히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념만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입시위주 교육으로 학생, 선생님 , 학교 모두 시민적 자질 함양문제가 관심 밖이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의 자질이 중요하며 이런 자질에는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기본질서, 자유(민주)사회의 절차, 합리적 의사 결정능력 등이 주요요소이다.(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연구, 한국교육개발원 편, 1994)

셋째로 교육환경이다. 선거를 해도 타율적이거나 학교경영 및 풍토가 민주적이지 못함으로 자치적이고 민주적인 선거 시스템이라는 꽃을 피워 낼 수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과거의 잘못된 선거 문화를 청산하고 새로운 선거 문화를 형성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제대로 된 정치를 배우고 익혀서 실제 정치를 성숙하게 행해 나갈 수 있는 민주시민의 역량을 만들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또 꽃피운 민주주의를 지켜 나가기도 힘든 법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독재와 잘못된 정치세력을 내쫓았음에도 다시 정치적 혼란기에 빠져서 더 깊은 악순환으로 가는 사례들을 보면서 바른 민주주의와 바른 정치를 기대하는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바로 정치 혐오와 비관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체험교육을 통해서 민주적인 시민역량을 키워나가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교 학생 선거가 그 학습의 장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