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그린다는 의미

지난 시간에 이어, 희한한 작품이 예술로 대우받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입니다. 관련기사를 먼저 보시겠습니다.

“-책속의 이 한줄. ‘시끌벅적 맨해튼 남부에 ‘미니멀리즘 화랑’ 몰린 까닭’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이 결여돼 있기에 저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하고 물어야 한다. 그들의 선택에 열광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들의 박탈감은 이해 할 수 있다.” ―행복의 건축(알랭 드 보통, 이레, 2007년)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감정이 영원할 거라 생각한다. 배우 김태희는 세대를 거듭해도 미인의 표상일 것이라고 여기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세계적 작가인 저자는 디자인과 건축의 역사를 보면 우리의 취향이 그렇게 지조를 잘 지키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금박을 입힌 찬장은 한때 사랑받았을지언정 지금은 ‘미학적 범죄’라며 조롱받기 십상이다.

미(美)를 향한 마음은 왜 바뀔까. 저자는 독일의 미술사가 빌헬름 보링거의 견해를 빌려 설명한다. 사회는 내부에 모자란 점을 예술에서 찾아 사랑하고, 이는 시기마다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빠르게 변하고, 소란스러운 사회에서는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는 스타일을 찾는다.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에 미니멀리즘 화랑들이 몰려 있는 이유다.

예는 더 있다. 1923년 프랑스의 한 기업가는 건축가에게 공장 노동자를 위한 집을 의뢰했다. 건축가는 아무 장식도 없는 상자 모양의 모던한 주택단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콘크리트 격납고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떠나온 시골 마을이 그리웠다. 그들은 얼마 못 가 집에 지붕을 씌우고 덧문을 달고 꽃무늬 벽지를 발랐다.

결국 우리는 자신에게 없는 미덕을 적절하게 지니고 있는 무언가를 봤을 때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사람이 어떤 스타일에 끌리는가는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사람의 취향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현재 목말라 하는 부분에 관해서도 드러낸다는 것이다.

최근 인테리어 트렌드는 ‘인더스트리얼(industrial)’이다. 배관을 노출한 천장, 콘크리트로 연출한 벽면, 벽돌과 금속 소품 등이 특징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솔직함과 오래전부터 살았던 것 같은 친근함이 그립다는 방증일 테다. (동아일보.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입력 2014-11-03 03:00:00)”

조금은 어렵지만 독특한 시각으로 쓴 글입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결핍이 아름다움의 새 기준이다.” 동의하시는지요? 그 전에 ‘미니멀리즘’이란 생소한 용어부터 살펴봐야겠습니다.

“미니멀리즘. 최소주의(minimalism)는 최소한의 표현을 추구하는 예술 및 문화 사조다. 1960-70년대 미국의 시각예술과 음악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모든 기교를 지양하고 근본적인 것을 표현한다. 이후 연극, 영화, 디자인, 문학 등의 분야에서 활발히 적용되었다. (위키백과)”

‘최소한의 표현을 추구하는 예술’이란 건, 쉽게 말해 ‘가능하면 적게 드러내는 기술’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1965년 어느 영국 철학자가 자기논문에다 처음으로 썼습니다. 원래는 뒤샹의 변기 같은 작품을 ‘미니멀아트’라 불렀습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성품을 뚝딱 작품으로 둔갑시킨 것은 “미적 가치를 고의적으로 떨어뜨린 행위”라 보았지요. (‘일부러 평가절하를 시켰다’는 부분은 사정이 좀 복잡합니다. 다음에 다루도록 하고 일단은 넘어갑시다.)

그러다 조금씩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자기표현을 최소한도로 억제한 채 색채, 모양 따위를 매우 단순한 방식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이 그 넓어진 범위 안에 쑥, 들어옵니다.

이 계통에서 대표선수격인 도날드 저드의 작품입니다. 정확한 원인을 알기 어려운 어떤 단호한 결심처럼 사각형들이 벽에 나란히 붙어있습니다. 뭐가 뭔지 감이 얼른 잡히지는 않네요. 이 작가가 만든 책상을 한번 보겠습니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원체 여러 가지니까 딱 꼬집어 좋다, 나쁘다 말하긴 뭣합니다. 매사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분이라면 꽤 좋아할 듯이 보입니다만.

‘부족함이 아름다움의 새로운 기준’이라는 말을 되새겨 봅니다. 만약에 이게 맞는 말이라면, 이 사각형태의 작품들은 어떤 종류의 부족함을 나타내고(또는 드러내고) 있는 건지 살짝 궁금해지는군요. 볼만한 ‘스펙터클’이 너무 많아진 시대라, 정작 봐야 될 건 오히려 줄었다는 뜻인지, 혹은 좀 더 다채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려는 시도인지..... 극히 간단하고 분명한 모습(이미지)을 통해서 말이지요.

아, 물론 정답 같은 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