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중년 세대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소리를 우스개로 들은 기억이 있다. 고래로 세대 차이는 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대차이란 무엇인가? 이는 기성세대 입장에서 세상 풍파를 겪고 나면 ‘해도 되고 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한 의식과 기준들이 생겨 개구리 올챙이 시절의 기억을 대체하는 것일 수도 있고,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과거 그 나이의 나로선 도대체 생각지도 못할 언행을 하는 것에 오히려 적응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교육과 정신문화가 물질적 성장과 풍요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할 때 오히려 기성세대의 혼란과 스트레스는 극에 달할 수 있다.

요즘 중년 세대들은 위기다. 지금의 중년 세대들이 부모의 보호와 지원에서 벗어날 때 즈음 세상은 산업화에서 정보화의 시대로 급변했다. 변화에 정신없이 적응했던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는 IMF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든 취업을 했고, 2008년 금융위기의 파고도 간신히 넘어 여기까지 잘 왔다. 그런데 이젠 저성장의 ‘뉴 노멀’ 시대라나. 명퇴가 언제 나의 일이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에, 직장에서는 ‘디지털 세대’의 위협을 끊임없이 받으며 불안감에 가슴을 졸이고, 집에서는 스마트 폰이 없으면 통곡을 한다는 ‘K세대’ 자식의 ‘노모 포비아(no-mobile-phone phobia)’같은 행태들 때문에 처음에는 황당함이 격노의 파고를 타다가 이제는 당혹감이 밀려들며 우울증에 빠질 지경이다.

위기의 워킹 맘

그러니 워킹 맘은 얼마나 미칠 지경이겠는가. 그까짓 ‘유리천정(Glass Ceiling)’은 안 뚫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직장에 급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아이가 아프다거나 긴급 S.0.S를 치는 전화가 올 때면 정말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너 알아서 병원 가!” 하고, 급히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워킹 맘의 눈엔 눈물이 핑 돈다. 특히 신년 초, 신규 사업들이 정신없이 기획되는 2월이면 “누구 네는 봄방학에 아이를 데리고 체험학습 여행을 간다, 집중 캠프를 보낸다”는 소리가 찬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그러나 워킹 맘은 하루 이틀 휴가는 고사하고, 도대체 그런 정보들을 어디서 알아봐야 할지 막막해서 그 마음은 급속도로 불안해진다.

3월 새 학기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의 새 담임 선생님과 첫 상담은 꼭 해야지 결심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누가 잘도 알고 만들어 놓았는지 아이 반 학부모 ‘단톡방’에서는 무슨 당번에 봉사활동을 정하자는 ‘까똑’부터 학급 현안과 아이들 체험학습을 상의하자는 알림 ‘까똑’까지 시시때때로 울리고, 그때마다 노이로제에 걸릴 만큼 신경이 쓰이지만 워킹 맘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기에 아예 알림을 끄고 애써 무시한다.

그것까지는 견딜 만하다. 그런데 매일 전화를 해대서 살짝 귀찮기까지 했던 그 품안의 자식이 언제부터인가 매일 방문 뒤로 숨어버리고, 빼꼼 문을 열고 무언가 말할라 치면 그저 나가라는 손짓에 짜증 섞인 말투만 되돌아온다. 피곤을 무릅쓰고 애써 묻는 엄마의 말은 핸드폰에 여념 없는 아이의 귀 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럴 때면 앞서 초연했던 그 마음은 서운함과 걱정, 당혹스러움 등이 한데 어우러져 분노의 고함으로 터져 나온다. 그러나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바쁘기만 했던 엄마가 ‘웬 잔소리냐’는 듯 문을 쾅 닫는다. 사춘기 아이의 뒷모습에 냉정한 이성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새 삐딱하고 이상해진 아이가 되어버린 자식은 반드시 굴복시켜야만 할 전투의 대상이 되고 만다.

새삼스럽게 당연한 것을?

사실 아이는 비정상이 아니다. 호르몬으로 몸과 마음에 엄청난 변화를 겪는 아이는 불안정한 상태일 뿐 지극히 정상이며, 여기에 대처하는 부모의 더 큰 관심과 지혜로운 대화의 기술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 대한민국 부모들은 나름 열심히 잘 살았다. 변화에 잘 적응하고, 위기가 닥치면 이것저것 찾아보며 열심히 궁리했다. 갈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가족의 행복을 생각하며 불편함을 참고 합리적으로 선택(good choice)하고, 발전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막상 그 변화와 도전이 바로 내 아이가 되면 이리저리 연구하고 고려하며 합리적 선택을 하던 그 사람은 없고 딴 사람이 되고 만다. ‘도대체 뭐가 되려고…’, ‘우리 때는…안 그랬는데’, ‘어디 누가 한번 이기나 보
자’하는 원초적 감정이 우선 앞선다. 그러고 보니 유능한 프로가 되겠다고 주중이면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주말이면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찾아 읽기는 했었어도, ‘저 아이가 왜 그러는지’, ‘우리 아이만 그런 것인지’, ‘이런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등 아이 문제를 열심히 연구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게 된다.

그래서 오랜만에 일이 아닌, 아이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으로 구글링(googling)을 해보고 여러 자료들을 읽어 본다. ‘우리 때’는 성공적으로 아이를 기르는 데는 어머니들의 ‘정성’과 ‘몇 가지 비법’이 있었을 뿐이었던 것 같았는데, 서핑을 하다 보니 한 부모 전문 잡지에 ‘아이를 잘 키우는 50가지 방법’이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열심히 읽어보니 모든 내용들이 모두 나 보라고 하는 듯 새삼스럽다. 내가 이미 겪은 체험들이라 그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리라.

•‘아이들이 자신의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줘라.’
•‘훈련은 벌이 아님을 기억하라.’
•‘하루에 10분이나 15분 동안의 특별한 시간을 계획해라.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나고도 훗날 기억날 의례와 같은 매일의 따뜻한 기억을 만들어라.’
•‘당신이 실수했을 때는 자백을 해라. 아이가 사과해야 할 때 어떻게 하는지 보여 줄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신의 배우자와 부모 노릇에 대한 견해 차이를 존중하고 상호 지지하라.’
•‘적절한 칭찬을 하라.’
•‘당신이 아이에 대해 할머니나 친지, 심지어 남자친구에게조차 칭찬했음을 아이가 간접적으로 알게 하라.’
•‘사무실에서 추가적 과업을 맡으라고 할 때 No!하고, 아이 학교에 자원봉사자로 지원해라. 당신은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쓴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 아이의 인생에 다른 보살핌을 주는 사람들을 동원해라.’
•‘모든 아이는 보석이고, 어떤 아이도 그 아이만 세계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라.’
•‘식탁 주위에 둘러앉아 그날 서로에게 친절하고 감사했던 사람들에 대해 차례로 얘기하라.’
•‘아이가 새로운 음식을 거부한다면, 포기하지 말고, 여섯 번이고 일곱 번이고 줘라. 10번 만에 그것을 먹고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은 당신의 아이들이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요리할지를 정하도록 하라.’
•‘할머니가 늘 하신 말을 깊이 새겨라. 아이는 당신의 소유가 아니라 잠시 당신에게 빌려줬을 뿐이다.’
•‘순간을 즐겨라. 부모노릇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치는 일이지만, 너무도 빠르게 가버릴 것이다.’

메시지 하나하나가 스스로 반성을 하게 하는 충고들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열성 부모 중에는 당연한 이야기를 참 새삼스럽게 한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억척스럽게 사느라 바쁜 워킹 맘들은 이 당연한 것들을 미처 생각할 엄두조차 못 하는 사람이 많다.

‘워킹 맘 도우미’가 필요하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 급변한 세상 적응에 필요한 기술과 역량을 습득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첨단 사회가 되다보니 디지털 리터러시가 필요하고, 소프트웨어 교육이 필수이다. 복잡해진 세상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늘고, 아이와의 정서적, 문화적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이 시대에 딱 한 자녀를 기르고 마는 가정이 다수인 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세대에는 그저 공부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리 되었던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창의적이고 인성도 좋아야 하는 시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많은 체험도 시켜야 하고, 소통도 잘 하도록 신경 써야 하고, 폭력이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도 기울여야 한다. 수많은 게임과 영상물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감성적으로도 풍부한 아이로 키우려면 변화무쌍한 사춘기 시절 부모와 어떤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서
로 익혀야 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탁월한 양육의 전문가, ‘프로 부모’들에게 자격증까지 주면서 서투른 부모나 위기 가정을 지원한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나설 수 있도록’ 학교 교실 수업만이 아니라, ‘멘토 부모’든 ‘교육 협동조합’이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서비스이든 필요할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지원이 간절하다.

물론 일하는 엄마 스스로도 직장에서 하는 만큼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 부모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