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지붕
에티오피아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차를 타고 보는 풍경보단 걷다 만난 풍경이 쉽게 마음을 흔든다. 천천히 느리게 걸어야 볼 수 있는 사무치는 풍경을 만날 때의 기분은 어느 것과 맞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거기다 현지인들의 따뜻한 미소가 더해진다면 평소 잊고 지내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가치가 새삼 다가온다. 이렇듯 여행은 관점이 바뀔 때 비로써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고, 자연에 대한 이미지가 단박에 무너지는 파키스탄의 주옥같은 걷기 코스를 소개해본다. 

김동우 여행·사진작가

커피 종주국에서 맛보는 ‘에스프레소 마키아또’

에티오피아 여행 전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황량한 모래바람 그리고 기아에 허덕이는 가슴 아픈 이미지뿐. 그런데 아디스아바바(수도)에 도착해 처음 들은 이야기는 놀랍게도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군인을 파병한 참전국이란 사실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낯선 검은 피부의 이 나라 사람들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건 어쩜 당연했다.

특히 이 나라는 커피의 본고장 아닌가. 커피하면 보통 콜롬비아나 브라질 등을 떠올리지만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퍼져 나갔다. 커피란 이름은 에티오피아의 도시 카파(Kaffa)에서 유래됐으며 에티오피아의 많은 커피 생산지 중에서 예가체프 산 커피를 최고로 꼽는다. 에티오피아에 가면 ‘커피 세리모니(Ceremony)’란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커피를 볶고 끓이는 과정을 의식의 일부로 생각해 생긴 말이다. 커피의 종주국에서 맛보는 ‘에스프레소 마키아또’의 맛은 정말 일품이다.

하지만 내가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건 본고장 커피를 맛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이 나라는 과거부터 유럽인들 사이에서 상상 이상의 멋들어진 트레일을 즐길 수 있는 나라로 알려져 왔다. 많은 서양인 여행자들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해 꼭 시미엔 산을 찾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색 트레킹

이 산은 최고봉이 4,620m(라스다샨봉)며 1만9000ha의 면적을 갖고 있다. 에티오피아 북부 암하라주에 있는데 아디스아바바(수도)에서 850km, 곤다르에서 100km 떨어져 있다.

시미엔 산을 즐기는 방법은 하루짜리 1일 투어에서부터 2박 3일, 3박 4일 코스 등이 일반적이다. 또 일주일 이상 여유롭게 시미엔 산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장거리 코스도 있다. 이처럼 일정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코스가 무척 다양해진다. 트레킹 투어는 팀원이 많을수록 가격이 내려가고, 성수기보다 비수기 가격이 비싸다(오타가 아니다. 어찌된 일인지 비수기 가격이 더 높다). 투어는 아디스아바바보다 곤다르에서 알아보는 게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시미엔 산 트레킹은 기본적으로 임도(forest road, 산림 관리와 임산물 운반 등을 위해 낸 길)와 초원지대 그리고 마을 등을 지나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등산 형태와는 좀 다른 완만한 경사와 능선이 많은 게 특징이다. 트레킹 최적 시기는 건기인 12월~3월까지다. 우기인 6월~9월
은 가급적 피하길 바란다.

재미있는 건 기본적으로 포터와 가이드, 요리사가 동행하며 총을 든 스카우트와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다보면 어느새 날이 저물고 요리사는 따끈한 저녁을 내온다.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를 야생동물 등의 공격으로부터 스카우트는 트레커들을 안전하게 지킨다. 국내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런 이색 트레킹은 분명 평생 잊지 못한 추억을 만들어 줄 거다.

시미엔 산은 아직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 등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아름다운 절경으로 트레커들을 불러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에 대한 고정관념을 단박에 산산조각 낼만큼 아름다운 풍경과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장대한 스케일은 숨을 멎게 만들만큼 압도적이다.

여기다 4,000m급 봉우리들이 기이한 모양으로 펼쳐지는 시미엔 산에선 바분원숭이 외에도 왈리아아이벡스(Walia ibex, 염소의 한 종류) 등의 희귀종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아이벡스를 보호하기 위해 1969년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데 이어 1978년에는 시미엔 산 일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트레킹이 시작되면 푸른 외투를 걸치고 있는 능선의 향연이 자꾸만 발걸음을 잡아 세운다. 그 속에 미니어처처럼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신들이 내려와 체스 두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모습이다.

길을 가다 마을을 만났다. 산골처녀는 트레커들을 자신의 집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커피를 볶아 분쇄한다. 그윽한 커피향이 금세 온몸을 휘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