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규 자유기고가

한때 학부모들이 유행처럼 너도나도 초중고생 자녀들을 해외로 보냈던 조기유학의 붐이 식어가고 있다. 국정통계정보를 제공하는 e나라지표(www.index.go.kr)에 따르면 2000년 4397명이었던 우리나라 조기유학생수는 이후 급속히 증가하여 2006년 2만 9511명으로 6년 만에 7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하지만 2006년을 정점으로 조기유학생수는 해마다 급감하기 시작하여 2014년에는 1만 897명으로 2006년 대비 6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생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2006년 1만 3814명에서 2014년 4455명으로 무려 68%나 줄어들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5년 조기유학생 수는 1만명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급감하는 조기유학의 실태를 파헤쳐 보았다.

2006년을 정점으로 급감하는 조기유학

조기유학생이 감소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경제 불황으로 가계가 어려워지면서 조기유학에 대한 학부모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크게 늘어난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난 이후인 2009년 조기유학생수가 1만 8000명 수준으로 전년 대비 34% 급감한 것을 보아도 경제적 이유가 큼을 알 수 있다.

또한 조기 유학의 성과가 드는 비용에 비해 높지 않고 국내에 들어왔을 때 취업이나 사회적응 면에서 효과가 낮고,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기러기 생활로 인한 가정 파탄 등의 사회적 문제로 학부모들이 조기유학을 주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국내에 외국어학교, 국제학교, 대안학교들이 늘어나면서 굳이 해외로 보내지 않더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등으로 대안이 늘어나면서 조기유학생이 감소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2015년 6월 광복 70주년을 맞아 사회와 가족 가치 분야에 대해 국민 의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낼 마음이 있다’는 국민이 2005년 69.8%, 2006년 55.6%, 2015년 50.9%로 꾸준히 감소 추세에 있는데 이러한 의식 변화에 따라 앞으로도 조기유학생 수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조기유학생수가 급감 추세에 있는 반면에 대학 유학생은 2009년 15만 명을 넘어선 이래 14~16만 명 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것이냐, 사회적 부적응자가 될 것이냐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조기유학을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입시지옥의 국내 교육현실을 볼 때 보다 나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외국어를 어린 나이에 가깝게 접하면서 남들보다 빠르게 어학실력이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어릴 적부터 선진국의 보다 앞선 교육 현장에서 학생 개개인에 맞는 적성과 소질을 더 잘 계발할 수 있고, 더 인간답고 건강한 생활환경을 통하여 원만한 인격을 확립할 수 있으며, 글로벌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국제적인 문화 경험을 갖게 되어 장래 글로벌 인재로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는 조기 유학을 권장할 만하다. 그리고 이민, 취업 등으로 세계로 생활 범위를 넓혀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조기유학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다. 우선 뚜렷한 목표나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학생 스스로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너무 이른 나이에 타지에서 생활하게 됨으로써 정서적인 불안감과 우울증을 겪을 수도 있다. 부모와 떨어져 유학하는 경우 청소년 시기에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 사회적 일탈행동에 쉽게 빠지면서 사회적인 부적응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과다한 학비와 생활비 소요로 이를 장기적으로 조달하는데 가계에 막대한 부담이 든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유학을 통해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 돌아와 직장과 사회생활면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부족해지고, 고급 한국어 구사 능력이 떨어져서 한국에서의 직장과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명과 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조기유학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A군. 암기 위주의 국내 교육이 재미가 없어 공부를 등한시했기에 학교 성적은 중하위권이었다. 이대로는 국내 유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안으로 해외로 눈을 돌려 교환학생으로 미국 아이오와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다. 사교성도 있고 스포츠에 재질이 있었던 그는 미식축구를 하면서 그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었고 학교와 선생님, 친구들의 주목과 인정을 받았다.

미국 학교는 스포츠나 예능 부분의 재능있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우대하는 편이다. 자신감을 회복한 A군은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였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A군은 미시간대 입학에 성공했고 향후 독일 대학원으로 유학 가서 독일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꿈꾸고 있다. 한국에 있었으면 지방대 정도 갈 수밖에 없었던 그는 조기 유학으로 그의 꿈을 이루어나가는 인생 성공 스토리를 만들 수 있었다.

두 딸을 둔 B씨, 두 딸 모두 중3 때에 조기 유학을 보냈다. 한국에서도 공부를 잘 해서 미국의 Top 5 고등학교에 들어간 큰 딸은 여느 유학생과 마찬가지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큰 딸은 어려운 형편에 유학을 보내준 부모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여 미국 스탠포드대와 스탠포드 대학원(바이오 전공)을 졸업했고, 미국에서는 시민권자만 의사가 될 수 있기에 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국내로 들어와 서울대 의대로 진학을 했다.

언니보다 공부를 못했던 둘째 딸은 고등학교 졸업 후 캘리포니아 아트스쿨 등 미국에 있는 여러 대학에 합격했다. 하지만 미국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고 해외고등학생 전형으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부잣집 아들이었던 C군은 중3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문제는 엄마의 지나친 욕심이었다. 아이보다 수준이 너무 높은 학교로 기부 입학을 시켰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던 아이는 공부에 관심과 열의를 보일 수 없었고, 과제가 나오면 인터넷에서 모두 베껴서 냈다. 결국 고등학교 때 퇴학을 당하고 국내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역시 돈이 많은 D부모는 아들을 미국에 보냈다. 해외유학에 무지했던 부모는 아이를 홈스테이와 학원에만 맡겨놓고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홈스테이와 학원을 전전한 아이는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못했고 성적은 바닥에서 헤맸다. 부모는 아이가 머리가 나빠서라고 자조했고 돈을 들여 비싼 유학원의 컨설팅과 도움을 여러 번 받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 아이는 유급을 거듭했고 아직도 졸업을 하지 못했다.

아이의 의지와 노력, 성향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조기유학이 성공하려면 어떤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는 뚜렷한 목적과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하고, 학생의 자발적인 의사와 결정으로 조기 유학을 가야 한다. 아이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학생의 성향도 중요하다. 부모에 대한 의존도나 자립심, 책임감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활동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규범과 질서를 잘 지키는 학생, 독립성이 있고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는 학생이 현지에 가서 잘 적응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기초 학력이 튼튼해야 한다. 특히 영어와 수학 능력이 튼튼해야 한다. 스포츠, 예술 등에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이라면 더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그 다음은 부모입장에서 자녀의 진학을 위한 정보 수집 노력이 필요하다. 외국의 입학시스템은 매우 다양하다. 들어 가고자 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사전에 무엇이 필요한 지를 파악해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많은 유학 컨설팅 회사들이 있으니 그들의 조언과 도움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학교 선택, 입학 수속, 학교생활, 방과후 활동, 대학 입학 준비 등에 있어 이들의 정보와 도움은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아이를 조기유학 보냈다면, 자녀에게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 요즘에는 온라인으로 자녀의 성적과 출결상황을 알 수 있고, 선생님과 이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학생 상황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자녀가 부족한 부분들이 있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 이를 잘 채워주거나 도와주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자녀의 학교 선생님과도 꾸준히 교류해야 한다. 이메일, 전화 등으로 자녀의 부족한 부분들을 파악하고 조언을 구해야 한다. 기회가 되는 대로 자주 학교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최소 1년 1회 이상 학부모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전히 남아있는 조기유학에 대한 목마름

그러나 확고한 목표가 없이 떠나는 조기유학, 최소한 외국어라도 배우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은 자녀를 망친다. 국내에서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사고만 치니 유학이나 보내자는 도피성 유학은 금물이다.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방식은 절대 안 된다. 아이들이 빗나가는 첩경이 된다.

또한 외국에 보내놓고 방임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외국에 있는 친지나, 홈스테이의 호스트, 현지 학원에 일임해 버리면 자녀의 성적이나 생활에 결코 좋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너무 이른 나이에 유학을 가면 현지에서 적응하기에 어려움이 크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초중고등 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역사·문화 등의 시민교육을 받지 못해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조기유학생 수가 급감하고는 있지만 자녀들을 조기유학 보내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열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근본적인 원인이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획일성과 낮은 경쟁력에 있기 때문이다. 영어 구사능력 제고, 인성 중시, 학생 개개인의 적성 맞춤 등 대안을 희망하는 학부모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학교가 국내에 여전히 부족하다.

자녀가 한국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의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데 적합한 학교가 국내에 없을 때 해외에서 대안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자녀들이 미래로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맞는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들이 국내에 늘어나지 않는 한 조기유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