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궁에 있는 용의 조형물이다. 용은 황제와 권세, 영화와 부귀를 일컫기도 하지만 서양에서는 사악함의 화신으로 꼽힌다. 서울의 용산은 그런 용의 상상력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이 용산(龍山)이라는 이름을 단 곳은 매우 많다. 한국에만 해도 서울 용산을 비롯해 경상도와 충청도 등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산이 발달한 곳에는 반드시 이 용(龍)에 관한 관념이 따라 붙기 마련이다. 한반도 50배 면적에 조금 못 미치는 중국에도 사정은 같다.

우선 산의 생김새가 상상의 세계에서나 그리는 용과 매우 닮았다. 구불구불하게 내려오는 산의 흐름, 우리는 이를 흔히 산맥(山脈) 또는 지맥(地脈)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모양새를 용의 생김새와 일치시키는 버릇이 있다. 산이 품고 있는 암석 등 바위의 흐름은 용의 뼈인 용골(龍骨), 산이 담은 흙은 용의 살인 용육(龍肉), 산이 키워낸 빽빽한 나무와 잡풀 등은 용의 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의 용산도 이 점에서는 결코 예외일 수 없다. 지금의 청와대 서쪽에 있는 인왕산(仁王山)의 지맥이 흐름을 타고 남쪽으로 이어져 마포구와 용산구에 이르러서도 산의 모습을 유지했는데, 사람들은 그 봉우리에 ‘용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높이는 약 90m다. 현재의 위치로 따지면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과 용산구 효창동에 남북으로 걸친 작은 구릉이다.

작고 낮지만 어쨌든 이 구릉이 인왕산에서 시작해 이리저리 흐르다 한강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지점에서 작으나마 봉우리를 형성하자 그런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이 이름은 제법 일찍 등장하는 모양이다. 지금의 서울 동남쪽에 처음 터전을 잡았던 백제 시대에도 용산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땅의 기운을 살피는 풍수(風水)에서 이 용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가장 큰 땅 기운을 이 용으로 형상화해서 그를 용맥(龍脈)이라고 부르는데, 전통 왕조의 수도가 들어선 곳에는 반드시 제왕(帝王)의 기운이 흐른다고 해서 그를 축으로 궁전을 짓는 게 보통이었다. 특히 중국은 이 관념이 매우 강해 황제가 머무는 곳을 이 용맥이 흐르는 곳과 일치시켜 궁전이나 누각을 지었다고 한다.

용은 실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그 생김새와 관련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지만, 우선 말이나 소의 머리에 사슴의 뿔, 뱀의 몸체, 물고기의 비늘 등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동양에서는 흰 호랑이를 가리키는 백호(白虎)와 붉은 공작인 주작(朱雀), 검은 뱀의 모습을 한 현무(玄武)와 함께 푸른색의 청룡(靑龍)을 네 마리 상서로운 짐승이라는 뜻의 사서수(四瑞獸)라 불렀다.

고구려 고분에 등장하는 벽화에서도 청룡은 동(東), 백호는 서(西), 주작은 남(南), 현무는 북(北) 등 각각이 네 방위(方位)를 가리키고 있다. 색깔도 동쪽이 푸를 청(靑), 서쪽이 흰 백(白), 남쪽이 붉을 주(朱), 북쪽이 검을 현(玄)이라는 식이다. 물론 이는 중국에서 발전한 방위와 색깔의 개념이다.

용이 중국의 독자적인 발명품이냐에 관한 논의도 있다. 옛 중국이야 그 개념이 매우 모호하다. 지금의 중국 판도로 옛 중국을 모두 가늠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용도 중국에서 자라나 크게 발전한 개념 속의 동물이기는 하지만, 오로지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하기는 힘들다.

동남아의 몇 나라 사람들 또한 지금의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용을 자신의 뿌리에 해당하는 동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인도와 옛 수메르 지역, 더 나아가 서구에서도 이 용은 줄기차게 등장한다. 서구에서는 특히 이 용을 dragon이라 부르면서 사악한 동물의 전형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중국과 정반대다.

중국에서 용은 가장 신성한 그 무엇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절대 권력자인 황제를 상징하는 때가 많았다. 발톱이 5개 달린 용은 곧 황제의 권력을 상징해 이와 같은 그림의 용을 그려 사용할 경우 황제에 반역하는 사람으로 간주해 대역죄에 처하기도 했을 정도다.

용은 12지지의 다섯째를 차지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용띠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하다”라는 식의 풀이가 유행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식으로는 용이 괜찮은 편이다. 우선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는 말이 있다. 별 볼일 없는 집안이나 고장에서 태어나 매우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홍콩 출신으로 세계적인 영화배우의 반열에 오른 청룽(재키 찬)의 한자 이름은 ‘成龍(성룡)’이다. 예명(藝名)인 이 ‘成龍(성룡)’이라는 말은 중국인들이 흔히 쓰는 단어다. 자식이 자라나 용처럼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뜻의 성어가 ‘망자성룡(望子成龍)’이다. 아들(子)이 용(龍)이 되기를(成) 바란다(望)는 구성이다.

용의 이미지는 ‘강함’이다. 지상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는 황제의 상징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용이 육상의 최강 맹수인 호랑이와 싸운다는 뜻의 성어가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다. 좀체 승부를 가릴 수 없는 맹렬한 싸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1970년대 세계 최고의 쿵푸 스타 리샤오룽(李小龍)의 이름에도 역시 ‘龍’이 들어 있는데, 그가 주연해 크게 흥행시킨 영화의 하나가 용쟁호투(龍爭虎鬪)다. 위의 용호상박이라는 성어와 비슷한 의미다.

우리에게도 이 용은 친숙한 글자다. 중국을 중심으로 할 때의 방위 개념으로는 우리가 동쪽의 푸른색을 대표한다고 해서 자주 썼던 말이 ‘청룡(靑龍)’인데, 한때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명칭이기도 했다. 날아오르는 용이라는 뜻의 비룡(飛龍)도 우리 공군의 미사일 명명식에 자주 등장했던 단어다.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기 훨씬 전에 이 땅을 주름잡았던 동물을 공룡(恐龍)이라고 하는데, 생김새가 상상 속의 용과 닮아서 그런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역경(易經)>에는 이런 용이 등장한다. 잠룡(潛龍)과 항룡(亢龍)이다. 잠룡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용이다. 발전의 잠재력은 있으되 아직 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의 용이다. 뒤의 항룡은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이다. 앞의 글자 ‘亢(항)’이 여기서는 ‘높다’의 의미다. 잠룡은 아직 갖추지 못한 실력임에도 앞으로 나섰다가, 그리고 항룡은 너무 높이 오른 나머지 자만과 성찰의 부족에 빠져서 각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나온 성어가 ‘잠룡물용(潛龍勿用)’이고, ‘항룡유회(亢龍有悔)’다. 때를 기다려야 하는 용(潛龍)을 함부로 쓰지 말며, 하늘 높이 오른 용은 내려가는 길밖에 없음을 일컫는 성어다. 이런 용은 이도저도 아닌 잡룡(雜龍)으로 변할 운명에 놓일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용의 씨앗으로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부단한 자기 혁신, 피눈물 나는 수련, 거듭 이어지는 성찰 등이 뒤따르지 않으면 모두 ‘도로아미타불’ 아니겠는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남을 괄시하는 사람, 잠시 사회의 높은 지위를 얻었다고 우쭐대는 사람 모두 귀담아 들을 말이겠다.

*이 글은 뉴스웍스와 유광종 기자의 허락을 받아 개제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