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쓰기의 프로세스는 엄연히 다르다

"작가가 되려면 책을 얼마나 읽어야 하나요?"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질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가 아닌, '얼마나' 즉 양에 대해 묻고 있다.

아마도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문 다독 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을 실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질문이 아닌가 싶다. 지당한 말이고 이미 많은 작가들이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다독'이 글쓰기에 직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적다. 'read' 자체가 글쓰기를 lead 하진 않는 까닭이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진땀을 뺀다. 책으로 읽을 땐 술술 읽혀서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 싶지만 실제로 글쓰기를 해보면 몇 문장을 쓰다가 막혀버리기 일쑤다. 어째서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건 읽기와 쓰기의 프로세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 구조를 살펴보면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뇌는 측두엽으로 주로 시각, 청각, 통찰력과 직관력을 담당한다. 사고, 계획 세우기, 주의 집중, 자기반성, 작업 기억, 의사결정, 문제 해결, 정서 조절 같은 고차원적인 정신활동이 이루어지는 부분은 전두엽이다. 다시 말해, 읽기는 '이미지'에 해당하는 시각에 해당하므로 측두엽과 관련이 있고, 쓰기는 전두엽의 소관인 것이다. 읽기와 쓰기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읽기와 쓰기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와 쓰기는 떼어놓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연관이 있으며 상호 간 작용을 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사고력을 높이고 풍부한 어휘를 구사하기 위함인데, 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폭넓은 세계관이 형성되고 글쓰기의 토대가 만들어진다. '읽기'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

사실 읽기는 쓰기를 위한 준비운동에 불과하다. 읽기는 이해의 과정, 쓰기는 표현의 과정이라고 할 때 읽었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는 인과관계이므로 필연적으로 병행되어야 하지만 어떻게 분배를 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일반 독자라면 몰라도 작가는 '쓰는 사람'이니 만큼 글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나의 경우는 읽기 20% 쓰기 80%의 비율로 나눈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요? 작가라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지만, 작가가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선입견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읽기와 쓰기의 프로세스가 다르며, 작가라면 쓰기의 뇌인 전두엽이 할 일을 늘려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일 테니까 말이다.

습작기에 필사를 해야만 하는 이유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건 '숙독'이다. 글의 뜻을 깊이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한 글자씩 읽는 한 권의 책이 습관적으로 문자만을 읽어내려간 백 권의 책보다 낫다. 필사를 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필사라고 하면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베껴 쓰는' 일로만 여겨 우습게 아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옮겨 적는 일만 하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다. 필사는 읽기, 생각하기, 쓰기와 유사한 행위를 하는 동시에 작가의 '쓰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과정이다.

물론 필사 자체가 글쓰기 실력을 저절로 향상시켜주진 않는다. 그 또한 '읽기'에 해당하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조심스럽게 읽기'가 가능하다는 것. 단언컨대 필사만큼 숙독에 도움이 되는 방법도 없다. 작가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모두 내 것으로 흡수하는 일, 나의 고질적인 문장 습관이나 문법의 오류를 바로잡아주는 일도 필사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된다.

또 습작기에 필사는 기성 작가의 문체, 구성 스타일을 가장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말했듯이 읽기는 쓰기를 위한 준비 운동이므로, 필사만 하는 건 본 경기는 안 하고 준비운동만 계속하는 꼴이 되고 만다.

글쓰기의 과정을 이해하라

읽기의 과정 다음에 할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쓰기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기획하기-내용 생성하기-내용 조직하기-초고 쓰기-고쳐쓰기 순으로 진행되는데 글쓰기의 전 과정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 단계로 돌아가기도 하고 반복하기도 하는 매우 복합적인 작업이다.

글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뭐니 해도 '기획하기'일 터. 영화도 소설도 기획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기획이 명확하지 않으면 내용은 보나 마나 산으로 갈 테니까. 기획은 목적을 의미한다.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이 글을 왜 쓰려고 하는가?"이며 글을 써서 무엇을 성취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획 단계에서 '독자 분석하기 전략'을 세우면 글쓰기가 용이해진다. 예를 들면 글을 읽는 독자의 연령, 직업, 흥미, 어떻게 관심을 유도할 것인가, 독자가 내 생각에 동의하게 하려면 어떤 내용을 생성해야 하고 조직해야 하는가 등의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일단 초고가 완성된다.

고쳐쓰기의 다른 말, 저항적으로 읽기

이제 고쳐 쓰는 일만 남았다. 그전에 또 한 번의 '읽기'를 거듭해야 한다. 측두엽이 나설 차례다. 맞춤법, 문장의 구조, 직관, 통찰력 이 모두를 활용하여 자신이 쓴 초고를 읽어보자. 쓸 때는 미처 못 느끼거나 지나쳤던 부분이 속속 눈에 띌 것이다. 더 잘 읽기 위해선 원고를 프린트할 것을 권한다.

모니터로 보는 것과 종이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기왕이면 빨간 펜을 준비하고 읽을 것. 이때는 독자로서의 읽기가 아니라, 편집자의 눈으로 읽고 틀린 표현이나 오타, 오문을 수정하고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 개연성, 문장력, 구조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작가는 다른 사람보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토마스 만

작가는 자신이 쓴 글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저항적으로 읽고 고쳐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글을 '글답게' 만들려면 읽고 쓰기의 단순한 반복을 뛰어넘어 더 좋은 문장으로 바꾸어 보거나, 익숙한 표현을 낯설게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글을 읽고 또 읽은 다음 고칠 수 있는 데까지 고쳐보라. '

다문 다독 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은 오히려 퇴고 단계에서다. 여러 각도로 써보고, 쓴 글을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고, 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잘 읽어야 잘 쓴다. 작가가 '읽기의 고수'가 되어야하는 명백한 이유다.

-제리안 작가-

*위 글은 제리안 작가가 위키트리에 연재한 칼럼으로 작가의 동의를 얻어 재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