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무의식으로(1)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피하고 싶지만 피하지 못할 대목, 어른이 되기 전에 먼저 사춘기를 겪듯이 현대미술도 그렇다는 소린데요. 까다로운 현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려면 지금부터 나오는 ‘추상과 표현’을 꼭 만나고 가야 됩니다. 싫거나 귀찮다고 그냥 건너뛰지는 못합니다.

13살 어린이가 곧바로 20살 청년으로 점프를 못하듯이, 질풍노도의 무시무시한 ‘중2’를 거쳐야 고삐리도 되고 군바리도 되고 그러는 거지요. 학교 갔다 오자마자 방문을 ‘탁!’ 걸어 잠그던 저희 집 (연년생)애들만 해도, 한 놈은 벌써 제대날짜를 세는 말년병장아저씨고, 나머지 한 녀석은 얼마 전 입대했답니다. (세월 참 빠릅니다!)

옆길로 새면 안 되니 다시 집중을 하겠습니다. 사실 “현대미술은 곧 추상미술이다”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데요. 앞으로 이 ‘추상미술’을 사춘기에 빗대어 얘기를 풀어갈까 합니다. 머슴애든 계집애든 사춘기가 되면 다들 내남없이 까칠해지듯이 추상미술도 똑같습니다. 우선 ‘추상미술=사춘기(중2)’로 설정을 하겠습니다. 일단은 쉽게 가는 쪽으로요. 물론 쉬운 게 능사는 아닙니다만.

미술사전에 나오는 추상미술의 뜻은 이렇습니다.

“추상주의(abstractionism, 抽象主義). 눈에 보이는 현실의 사물을 묘사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 미술. 자연의 구체적 대상을 거의 재현하지 않고 색, 선, 형 등의 추상적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미술을 총칭하는 것으로,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주류의 하나를 이룬다.

과거 신들을 찬미한 인간의 모습이나 사상(事象) 등을 나타내려는 기술적, 묘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거부하고, 모든 미술은 형태, 색채, 질감, 화면의 크기, 테마의 크기 및 넓이 등 추상적인 제요소로 성립되고 그 양식도 주로 이것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자연주의의 전통에 의문을 품고 화가의 주관과 회화 쌍방의 시각적 사실을 접근시키고자 했다. 더 나아가 자연과 실재에 대한 모방과 이상화를 강조했던 고전주의를 부정하고 상상력, 무의식, 그리고 우연성까지도 본질적인 창조의 요인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포털다음 제공, 미술용어의 출전은 이하 같음)”

음... 역시나 만만치가 않군요.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풀어봅시다. 먼저 흥분하면 집니다, 까지는 아니지만, 까딱 잘못하다간 산통 다 깨집니다. 하나씩 볼까요. “눈에 보이는 현실의 사물을 묘사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 미술.....”

첫 문장부터 턱, 막힙니다. 알기 쉽게 다시 바꾸면 “안 보이는 걸 그린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그리나요? 말문이 막히니 그림을 먼저 보겠습니다. (역시나 이럴 땐 말보다는 그림이 최곱니다)

러시아화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의 작품. 제목은 <노랑 빨강 파랑(1925)>. 두 번째 문장에 나오는 대로 “자연의 구체적 대상을 거의 재현하지 않고 색, 선, 형 등의 추상적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없습니다. 제목도 별 뜻이 없고요. 그래서 보통 ‘무제(無題)’라고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에 나오는 저런 모습을 자연에서 실제로 목격하지는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이든, 상상의 산물이든 어쨌든 뭔가를 그리기는 그리는군요.

이번에도 러시아화가인 카지미르 말레비치(1878~1935). 아까 그림보다 좀 더 단순해졌습니다. 이 양반은 상당히 골치 아픈 캐릭터를 지녔습니다. ‘죄질이 좀 나쁘다’고나 할까요. 품행제로, 뭐 이런 쪽입니다. “난 삐뚤어질래!”하고 마구 뻗대는 문제아처럼 말이지요. 

이럴 땐 사실 모른 척하는 게 상책입니다, 하지만 나름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광팬들이 꽤 됩니다. ‘말레비치의 심미조형이론연구...’ 따위로 박사학위를 따시는 분들이 주위에 더러 계십니다. 주는 분이나 받는 분이나 피차 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학위를 줘버리는 건 아니겠지요? 농담입니다.

같은 작가인데 갑자기 확 달라졌습니다. 하얀 정사각형 캔버스에 검정색 사각형 하나만 떨렁. 슬슬 머리가 아파 옵니다.

이번엔 검정색 둥근 원. 화면 한가운데서 약간 위쪽입니다. 하나 더 보실까요.

아까 검은 원과 비슷한 위치에 이번에는 흰 사각형이 놓여있습니다. 사진에는 얼핏 다른 색처럼 보이지만, 흰색 위에 또 흰색을 칠했습니다. 왜 ‘모른 척 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씀드렸는지 이해가 되시지요? (솔직히 저는 울고 싶습니다)

자, 이쯤하고. 머리도 식힐 겸 이번엔 조금 색다른 친구를 하나 살펴봅시다. ‘표현주의’란 녀석인데, 방금 나온 ‘추상’ 이놈보다는 그래도 성격이 좀 나은 편입니다. 학생생활기록부(미술용어사전)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표현주의.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오히려 사물이나 사건에 의해 야기되는 주관적인 감정과 반응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는 예술사조.”

우리랑은 오래전부터 이미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 반 고흐가, 이 바닥에선 완전 ‘왕고참’입니다. 뻑 하면 ‘으악!’하고 절규하는 뭉크도 있고요. 크게 어렵진 않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거니까, 당장은 뭐가 뭔지 몰라도 좀 더 기다려보면 뭔가 알듯한 기분이 슬쩍 듭니다. 흠...

여기까진 그럭저럭 괜찮았는데요. 원조 문제아 ‘추상이’ 요놈이 갑자기 또 다른 문제아 ‘표현이’ 녀석을 떡 하니 만나는 바람에 그만 사단이 나버립니다. 둘이 척, 들러붙어 이렇게 되었습니다.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의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미술동향이다. 미국이 처음으로 세계에 영향을 미친 미술운동. 뉴욕이 파리 대신 예술의 중심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2부로 나눠야겠습니다. 휴~! 짐작대로 쉬운 녀석들이 아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