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교육과 관련한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 역량강화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된지 오래다. 특히 2015 개정 교육과정 고시에 따라 '역량교육'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에듀인뉴스는 이 같은 궁금증 해소를 위해 '핵심역량' 강화가 진로교육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역량교육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지 등에 관해 다뤄봤다.<편집자 주> 

황규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들어가며 

2015년 9월에 고시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이제까지 연구 및 논의 수준에서만 검토되었던 ‘역량’의 개념을 처음으로 교육과정 총론 문서에 명시적으로 반영하였다(교육부, 2015). 개정 교육과정고시에 따라 ‘역량교육’의 의미나 성격, 또는 긍정적 기대효과와 부정적 우려사항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김경자, 2015; 이원희, 2015; 백남진·온정덕, 2016; 한혜정·김영은·이주연, 2016 등).역량교육의 발전과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필요한 과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의도하였던 역량교육의 방향이나 특징을 명료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글의 목적은 개정 교육과정의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의 한 사람으로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역량의 개념이 어떠한 취지에 따라 도입되었는지, 그리고 제시된 ‘핵심역량’들이 향후 학교 교육 실제의 개선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였는지를 개략적으로 설명하면서 핵심역량에 대해 제기되는 몇 가지 의문점들을 검토하는 데 있다.

한 가지 미리 밝혀둘 것은 이 글에서 제시되는 설명이나 논의는 필자의 개인적 관점에 기초한 것으로서 이 글의 내용이 역량교육에 대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공식적인 관점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교육과정의 개발에는 매우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개인과 집단들이 참여하게 되며 이에 따라 국가교육과정의 비전이나 구체적인 개정 내용의 방향에 대해 매우 다양한 관점들이 경합을 벌이게 된다. 교육과정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참여자들 사이의 활발한 소통과 의견 조율을 위해 노력하지만 모든 안건이나 쟁점들, 또는 용어나 개념들에 대해 참여자들 모두가 통일되고 일관된 관점을 공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필자의 견해는 역량의 개념이나 역량교육의 방향에 대한 더욱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역량교육에 대한 2015개정 교육과정의 공식적인 관점이라는 것이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공식적 견해가 곧 한국에서의 역량교육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최종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량교육의 의미나 방향은 물론 역량교육의 도입 여부 문제까지도 개방적인 논의과제로서 학계와 학교 현장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판단되고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2.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역량 관련 진술의 검토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제시된 역량 관련 진술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교육부, 2015). 먼저, 총론의 제Ⅰ장 ‘교육과정 구성의 방향’ 중 1절 ‘추구하는 인간상’에서는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등 네 가지 인간상을 제시한 이후 다음과 같은 진술을 제시하고 있다.

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교과 교육을 포함한 학교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은 다음과 같다.

가. 자아정체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과 진로에 필요한 기초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기관리 역량

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식정보처리 역량

다.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 사고 역량

라. 인간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향유하는 심미적 감성 역량

마.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존중하는 의사소통 역량

바. 지역·국가·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역량

이어서 2절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교육과정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추구해 온 교육 이념과 인간상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함양하여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교육과정 총론 문서에 진술된 역량 관련 내용에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 6개의 ‘핵심역량’은 인간상의 구현이나 또는 2015 교육과정 개정이 지향한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길러주어야 할 능력들을 조금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 제시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육의 이념이나 인간상 및 인재상 등을 여섯 가지 능력으로 구체화해 주는 것이 학교 현장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제시된 6개의 역량들은 기존의 교육과정이 추구해 온 인간상 등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교육의 목표나 교육의 주안점을 인간상 및 인재상 등과 연계하여 일반적인 능력 수준에서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로, 6개의 핵심역량들이 별도의 부가적인 교육적 활동이 아닌 ‘교과 교육을 포함한 학교 교육 전 과정’을 통해 길러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6개의 역량이 기존의 인간상이 추구하고자 하는 교육목표를 대체하는 새로운 교육목표가 아니라는 점과도 관련된 것으로서, 핵심역량의 함양을 위해서는 기존의 교과교육이나 다양한 비교과 교육활동들을 새로운 교육활동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기존의 교과교육 등을 그 본연의 성격에 부합하도록 충실하게 운영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을 밝혀주는 진술이다.

요컨대 총론 문서에 제시된 역량 관련 진술들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역량의 개념을 통해 국가 교육과정 체제에 근본적인 수준의 변화를 도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기존 교육과정과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가운데 ‘교과교육을 포함한 학교 교육 전 과정’에서 앞으로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초점이 무엇인지를 역량의 목록을 통해 조금이나마 더 구체화하고 명료화하려고 했다는 것이 더 올바른 이해가 될 것이다.

역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역량을 이와 같이 선언적인 수준에서만 언급하는 데 대해 아쉬움이 있을 것이요, 반대로 역량의 개념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결국 역량의 개념은 교육의 실제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질 것이지만, 총론 연구진들은 세부적인 의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량교육이 결코 교과교육을 대체하는 교육이 될 수 없다는데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였다.

이하에서는 이와 같은 대체적인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검토되었던 몇 가지 쟁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3. 역량교육의 의미에 대한 접근방식의 유형

우리나라 교육과정 개발에서 역량 개념이 활발하게 논의된 것은 2009 개정 교육과정을 위한 기초연구 단계에서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경자,2015). OECD의 역량 보고서나 또는 역
량중심 교육과정을 표방한 다양한 외국사례들의 영향을 받아 교육과정평가원을 중심으로 수차례에 걸쳐 역량 연구가 추진되었으나 연구결과를 2009 개정 교육과정에 실제로 반영하지는 못하였다.

문·이과 사이의 과도한 칸막이 문제의 해결에 일차적 관심을 기울였던 2015 개정 교육과정 개발에서는 사실상 역량중심 교육 자체에 대한 요구나 관심이 그렇게 컸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동안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되고 논의되어 온 역량의 개념을 국가 교육과정에 반영할 필요는 없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두고 지속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교육과정의 맥락에서 역량의 개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형들을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역량중심 교육과정 논의를 교육내용 선정 및 그에 대한 정당화 논의로 해석하는 방안으로서,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역량’을 대답으로 제시하는 방안이다.

역량 중심 교육은 기존의 교과지식 교육이 ‘성공적인 삶’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서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 기능, 태도의 총체’로 규정되는 역량들을 교육의 내용으로 (또는 형식상의 교육 목표로)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의 역량중심 교육은 실제적 삶의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나 능력을 중시하는 생활중심 교육의 한 가지 변형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곧 기존의 ‘교과지식’ 중심 교육과정을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예를 들어 미래사회에서의 소프트웨어적 소양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를 근거로 ‘소프트웨어 역량’을 중요한 교육의 과제로 제시하면서 ‘쓸모없는’ 미적분과목을 소프트웨어 과목으로 대체하자고 요구할 수도 있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기반으로 하여 개발된 특성화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의 ‘역량중심 교육과정’의 구체적인 사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역량중심 교육이 교육을 직업훈련교육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거나, 실제적 지식을 강조함으로써 이론적 지식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박민정, 2009)은 역량중심 교육의 논의를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한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이들 비판은 정당한 비판이 된다고 본다.

둘째는 역량중심 교육과정 논의를 교육과정 개발이나 설계에 대한 하나의 원리로 해석하는 방안으로서, “교육과정의 합리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교육의 최종 산출물로서 교육의 결과를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목표를 평가 및 측정 가능한 구체적인 수행능력으로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주장과 같은 성격의 견해로 해석하는 것이다.

제시되는 역량들은 교육의 결과로서의 수행을 요약한 것이요, 교육과정은 곧 이러한 수행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도구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는 역량의 목록에 무엇을 포함시켜야 할 것인지도 중요하겠지만 제시되는 역량의 성취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가급적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역량 형식으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논리의 대표적인 사례는 행동형 목표 진술을 강조하는 타일러의 교육과정 개발 원리의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는바, 비록 역량의 개념화 방식이나 일반화 수준에 따라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역량중심 교육이 행동주의적 접근에 의존한 것이라거나 또는 환원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박민정, 2009; 이원희, 2015)은 역량중심 교육의 의미를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때 타당성을 갖는 비판이 된다.

역량의 개념을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방안으로서 이상의 두 가지 방식에 대해서는 연구진들 사이에서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았다. 두 가지 방안은 2015개정 교육과정의 비전으로 강조되었던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나 ‘학습경험의 질 개선을 통한 행복한 학습의 구현’의 비전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역량의 개념을 반영하되 2015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해석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세 번째 해석방안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역량중심 교육과정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규정하는 방안으로서, ‘창의융합형 인재가 갖추어야 할 능력’이나 또는 ‘학습경험의 질이 개선된 상태의 특징’을 구체화해주는 방안의 하나로 역량의 개념을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인재상의 구체화 방안으로서 역량의 명료화 방식은 현 시점에서 관심을 기울이면서 중점적으로 길러주고자 하는 능력들을 일반적인 수준에서 제시해 주는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역량의 의미를 ‘학습경험의 질 개선’과 관련지어 규정하는 방식은 기존 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무기력한 학습이나 ‘단편적 지식 암기 위주의 교육’과 대비되는 ‘올바른 교과학습’의 상태, 또는 ‘의미 있는 학습경험’의 상태를 역량을 중심으로 명료화·구체화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세 번째 해석 방식은 역량논의를 교과교육을 통해 기대하는 ‘학습자의 능력과 자질의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초점을 명료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해석하는 것이다. 교과교육에서 주목해야 할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의 특징을 명료화하는 방안으로서 2015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핵심 아이디어나 원리의 제시 방안, 탐구활동의 제시 방안, 교육내용 요소의 구조화 방안 등 여러 가지 방안들이 추진되어 왔으나 또 다른 대안의 하나로서 학습자에게 길러줄 능력과 자질을 ‘역량’이라는 용어를 통해 제시해주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역량중심 교육과정 논의’가 앞에서 언급되었던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의미를 이러한 맥락에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 경우의 역량은 교과지식을 대체하기보다는 교과지식의 교수학습 방향에 대한 지침이요 가이드라인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역량중심 교육과정 논의의 성격을 ‘의미 있는 학습경험’의 명료화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해석할 경우, 역량 논의는 교과교육의 목표가 각 교과 분야의 단편적 지식의 기억과 암기에 있는 것이 아니요, 세계에 대한 안목과 사고력, 탐구 능력 등등을 키워주는 데 있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많은 정보나 지식을 기억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그러한 지식을 생성해 갈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길러주어야 함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과제는 결코 새로운 과제나 주장은 아니다. 올바른 교과교육의 상태나 그 방안대해서는 그동안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으며, 역량에 대한 논의에서는 이 점을 존중하여야 한다.

즉, 역량 논의를 이제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기막힌 묘수’, 기존의 교과교육의 문제점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 주요 선진국들이 도입하고 있으며 국제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시급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적 요구나 조류’ 등으로 과대 포장하는 것은 경계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역량의 목록을 작성함에 있어서는 환원주의적 사고의 한계를 유념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환원주의란 복잡한 인간능력의 총체를 몇 개의 기본구성요소로 구분하거나 더 나아가 분리하여 기술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러한 사고는 역량들의 범주화의 임의성과 자의성, 그리고 역량들의 상호관련성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은 서로 구분되거나 분리된 전혀 다른 능력을 지칭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또는 ‘인지적 역량’과 ‘정의적 역량’들 역시 서로 분리된 역량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역량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능력들을 서로 구분되는 요소로 분리하여 모두 망라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요, 또는 인간의 다양한 능력이나 자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나 자질을 엄선하여 제시하는 작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일종의 ‘교육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 즉 교육개혁의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교육개혁의 방향과 주안점을 제시하는 작업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핵심역량의 목록 작성은 교육혁신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나침반 제공에 그 의의가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교육과정 평가원이 여러 차례의 연구를 통해 발전시켜 온 역량들의 목록을 재구조화하여 모두 6개의 역량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들 6개 역량이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중요한 능력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거나 또는 각각의 역량이 서로 엄격하게 구분되는 상호배타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6개로 요약된 역량의 목록은 시대 및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거쳐 얼마든지 조정되고 보완될 수 있는 잠정적인 목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각 역량들의 구체적인 의미나 주요 구성 요소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국가 교육과정에 개략적으로 제시된 설명을 바탕으로 계속적인 연구와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역량 목록의 임의성과 자의성 및 한시성 등을 고려할 때, 역량 목록에 대한 맹목적 신뢰나 역량 목록 이외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배타적 경시 현상은 경계되어야 한다.

4. 역량교육과 교과교육

이상으로 역량교육에 대한 가능한 접근 방식들을 살펴보면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고려된 역량교육의 의미 해석 방식을 논의하였다. 국가 교육과정 고시를 전후로 하여 새 교육과정의 변화 내용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있는 가운데 핵심역량과 관련해서는 특히 총론에 제시된 핵심역량과 교과교육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한혜정·김영은·이주연, 2016 등).

일반역량으로서의 핵심역량과 교과교육의 관계에 대하여 제기될 수 있는 질문들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창의적 사고 역량이나 의사소통 역량 등은 교과 영역을 넘나드는 일반적인 능력인가?(예컨대 과학에서 함양된 창의력은 예술 영역에서도 발휘될 수 있는가? 또는 국어교육을 통해 길러진 의사소통능력은 수학적 의사소통 능력으로 전이되는가?)

2) 교과교육을 통해 길러주어야 할 능력이나 소양 등을 6개의 역량으로 모두 포괄할 수 있는가?(국어교육에 있어서 문학작품의 이해의 가치를 ‘의사소통역량’이나 ‘심미적 감성역량’ 등으로 모두 담아낼 수 있는가?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한 심성함양 등 ‘능력’의 형식으로 표현되기 어려운 교육적 가치들이 역량 중심의 목표 진술에 의해 누락될 가능성은 없는가?)

3) 기존의 교과교육과 역량함양을 강조하는 교과교육의 핵심적인 차이는 무엇인가?(역량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교과교육이 세계에 대한 안목과 사고력, 탐구 능력 등등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 아닌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역량교육의 가능한 실천방안들을 모색하거나 또는 역량교육의 타당성을 검토함에 있어서 중요한 논의 과제를 제시해 준다. 무엇보다 일반능력으로서의 핵심역량과 교과교육의 관련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이해해야 할 것인지가 일차적인 과제가 된다.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각각의 핵심역량들은 교과별로 길러주어야 하는, 서로 유사하지만 또한 교과별로 고유의 특성도 반영하고 있는 능력들을 일반화하여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창의적 사고역량’은 과학, 음악, 미술, 수학, 국어 등등 여러 교과별로 길러주어야 할 창의력을 종합하고 일반화한 역량으로 볼 수 있으며, 각각의 교과별로 길러지는 창의력은 부분적으로는 ‘동일한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 교과 영역의 창의력이 다른 영역의 창의력으로 자동적으로 전이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차별적인 능력이라고 볼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림에서보면 ‘창의적 사고역량’은 결국 각 교과별(및 비교과활동별)로 길러지는 창의적 사고역량의 총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교과를 통해 길러주어야 할 능력들이 모두 6개의 핵심역량으로 수렴된다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체육교과를 통해 길러주는 신체적 건강과 운동능력을 ‘자기관리역량’ 등으로 포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과학 교과 등을 통해 길러주는 여러 능력들이 6개의 핵심역량으로 모두 종합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교과별로 길러주는 능력이나 또는 각 교과가 중시하는 능력들은 서로 다를수 있으며, 따라서 교과별 역량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일반역량으로서의 핵심역량은 ‘여러 교과를 통해서 길러지는 다양한 종류의 역량들 중에서 어느 정도 교과를 넘나드는 공통성을 갖고 있으면서 교육과정 개발자들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능력들을 선별하고 종합·요약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핵심역량은 교과역량들 중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능력들을 선별하여 요약한 것으로서(따라서 교과별로 길러주고자 하는 중요한 능력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 핵심역량은 교과교육과 별개의 활동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 아니요, 교과별 역량을 충실하게 길러줌으로써 길러진다고 말할수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6개의 역량들은 모든 교과와 연계를 맺으며 모든교과들은 6개의 역량 모두와 관련을 맺는다고 볼 수 있으나 교과에 따라 특정 역량이 더욱 강조될 수는 있을 것이다.

예컨대 언어 관련 교과들은 의사소통역량의 함양에서, 그리고 예술 관련 교과들은 심미적 감성역량의 함양에서 타 교과에 비해 더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무엇보다 ‘역량’과 ‘지식’ 사이의 그릇된 이분법(false dichotomy)은 경계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창의적 사고역량이나 의사소통역량 등은 교과 내용지식(정보 수준의 단편적 지식을 포함하여) 요소 없이 탈맥락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각 역량들이 발휘되는 상황에 있어서든 또는 그러한 역량들을 길러주는 맥락에서든 구체적 내용지식 없이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논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량 없는 지식은 무기력하고, 지식 없는 역량은 공허하다!

5. 맺는 말

역량의 개념은 다양한 문제의식과 연계되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역량을 교과교육을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주안점을 제시해 주는 하나의 방안으로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이에 따라 총론 부분에 역량의 목록을 제시해주는 방식으로 역량을 반영하였다.

이는 역량 개념의 도입이 과도하게 큰 변화를 가져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 의한 것이지만 과연 선언적 수준에서 역량의 목록을 제시해 주는 것만으로 교과교육의 실제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제까지의 교과교육에 대해 어떠한 변화를 가져와야 실제로 역량을 충실하게 함양해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역량의 개념은 양날의 칼과 같아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와 여러 문제점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역량 논의가 안고 있는 한계들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그것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분명하게 한다면 교육의 개선에 일정부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