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한국과학창의재단 창조경제문화본부장

꽃들아, 4월의 아름다운 꽃들아. / 지거라, 한 잎 남김없이 다 지거라. /

가슴에 만발했던 시름들 / 너와 함께 다 떠나버리게 //

지다보면 / 

다시 피어날 날이 가까이 오고 / 피다보면 질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 /

새순돋아 무성해질 푸르름 /

네가 간다 한들 설움뿐이겠느냐 //

4월이 그렇게 떠나고 나면 /

눈부신 5월이 아카시아 향기로 다가오고 //

바람에 스러진 네 모습 /

이른 아침, 맑은 이슬로 피어날 것을//

목필균의 ‘4월이 떠나고 나면’은 매년 봄 우울증을 앓는 중년 여성의 한숨어린 심정을 잘 표현한 시다. 만발했던 봄꽃들이 스러질 때마다 까닭모를 설움과 도대체 사춘기를 겪기는 해 보았나 싶은 우울감이 몸과 마음을 침잠시킨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우울하고 불안하다.

내 망각인 탓인지 정말 나와는 다른지 비교할 수 없이 제멋대로인 사춘기 아이는 매번 기대를 저버리다 못해 아예 부모를 소외시키고, 어느 새 세월이 야속할 만큼 늙어버린 부모의 작아진 모습은 서럽다 못해 무서운 느낌마저 들게한다. 뛰는 생선처럼 팔팔했던 내 모습은 추억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한데 이젠 더는 젊지 않은 중년이 돼 버렸고,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특히 40대 여성들이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더 많다는 통계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여성이 호르몬의 변화에 쉽게 영향 받기 쉬운 특징도 있겠지만, 어느 모로 보든 관계의 한 중간에 있는 삶의 복잡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울증 관련 의학기사 끝부분에는 햇볕을 많이 쬐고,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는 음식들을 먹고, 명상을 하라는 충고가 늘 덧붙여지지만, 삶의 무게는 그 간단한 처방을 훌쩍 뛰어넘는다.

최근 부쩍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더 많아졌다. 특히 우리 바로 눈앞에서 얼굴도 없는 무감정의 기계에게 인간의 복잡한 사고력이 어이없이 무릎을 꿇은 ‘알파고 쇼크’를 겪고 나니 앞날은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기계들이 5년 내 500만 개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니, 나는 무엇을 준비할 것이며, 내 아이는 어떻게 키울 것인가.

게다가 기술과 의학의 발전 덕분에 기대 수명이 이미 80세를 넘고 있지만, 저성장과 경기 침체의 늪에서 서울시민의 경우 남성은 53세에, 여성은 48세에 1차 퇴직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남은 반평생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낼 것인가. 무위고의 걱정에 우울증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무언가 근본적인, 좀 더 지속적인 것이 필요해"

그래도 인간에겐 희망이란 것이 있어 위대하다. 위기의 때마다 기회를 만들고 절망의 순간에도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현대인은 물질의 풍요와 즉자적인 쾌락, 자극이 넘치는 환경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영혼의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따뜻하지만 강인한 어머니의 보살핌과 같이 오래도록 변치 않는 그 무언가 근본적인 행복을 찾고 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의 5단계 욕구이론에 따르면, 인간에게 있어 안전하고 건강하며 사랑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상의 욕구이자 행복은 결국 ‘자아실현’이다. 여성들의 까닭 없는 우울감은 호르몬의 불균형이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자식을 비롯한 가족에게 지나치게 의존함에 따라 발생하는 자아실현의 불만족 탓이다.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이 우울증은 심리적 불안과 삶의 허무로 언제든 들고 일어날 마음 속 반란군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이제 아이 교육뿐 아니라 나 자신의 발전을 함께 도모할 때이다. 아이들 교육만도 여간 신경 쓰이지가 않고, 사교육비의 가계 부담도 솔직히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나의 발전까지 고민할 여유가 어디 있겠냐고 미뤄버리는 어머니들이여! 지속가능한 행복은 그 누군가 대표 선수가 대신 따내서 안겨줄 우승컵이 아니며, 결핍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역경 속에서도 집요하게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주목하자.

다행히 내 인생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 아이의 유전자(DNA)는 나의 반쪽에 기인하고 있다. 아무리 내 속에서 난 아이가 아닌 듯 행동해도 함께 나누고 키울 수 있는 관심사들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세상이 변하여 이제는 선생님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기에는 너무도 빈약할 만큼 정보와 지식이 인터넷에 홍수처럼 넘쳐나고, 교사의 역할은 가이드이자 멘토로 변하고 있다. 결국 모두가 서로의 안내자이자 동반자가 되어 함께 경험하고 배우며 서로의 깨달음을 나누는 시대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세대차가 크다고 한들 어쨌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부모의 경험이 더 원숙하고 그 판단과 지혜가 보다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겠으나, 시대 변화를 쫓아가는 트렌디한 학습은 아이의 무서운 적응력과 응용력이 부모의 혀를 차게 하지 않는가. 아이와 함께 배움을 도모한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커질 것이며 함께 하는 학습과 가치 있는 일 속에서 서로의 자아가 함께 실현되는 기쁨을 맛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이러한 확신을 주는 두어 가지 신선한 사례들을 접하게 되어 소개해 본다.

부모의 경험을 새로운 방법으로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가치 실현 활동

《뉴욕타임즈》나 《월 스트리트 저널》등 전통 미디어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전 세계인이 애독하는 뉴스 사이트인 《허핑턴포스트》는 공급자 중심의 판에 박힌 듯 똑같은 기사가 아닌 블로거 수만 명이 집필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제공해 필자도 무척 좋아하는 SNS 기반의 뉴스저널이다. 물론 그 창립자인 아리아나 허핑턴이 남성들의 보수적 세계를 혁신시킨 여성이며 마음을 열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실천가이기 때문에 더 열광하는 면이 있기도 하다.

최근 아리아나는 그녀의 딸 크리스티나와의 대화에서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얻어 열성적으로 실현시키고 있는 바, 그들은 전세계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나눈 대화를 게재한 ‘Talk To Me’를 최근 개시하였다.

‘내가 25세 때 알았으면 좋았을 25가지’나 ‘50살이 된 지금 깨달은 것’ 같은 기사가 널리 공유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자녀들이 그러한 지식과 지혜를 찾을 수 있도록 독려하는 영상 모음을 시작한 것이다.

딸 크리스티나가 아리아나 허핑턴을 인터뷰한 내용을 시작으로, 아들 샘 브랜슨이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을 인터뷰한 내용, 세 딸들이 산타 바바라의 집에서 오프라 윈프리를 인터뷰한 내용들이 게재됐다.

물론 유명인의 아이들이 진행한 부모 인터뷰인지라 거리감이 있긴 하나, 이러한 참신한 시도가 인생의 선배인 부모와자녀가 서로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보다 진지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이자 더 큰 발전의 계기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모두의 인생은 관심 받고 존중받음에 따라 그 가치와 행복이 배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도 아이와 삶에 대한 경험담을 영상으로 담아 공유해 보는 것은 어떨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캘리포니아의 산호세는 세계 첨단기업들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지만, 산호세 성인들의 40%가 외국 태생일 만큼 최근 이주민들이 많이 증가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혁신과 발전의 화려한 이면에는 이민자들의 빈곤함과부적응의 어두운 생활상이 있다.

이곳에 위치한 NGO단체 선데이 프렌즈(Sunday Friends)는 1997년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이자 세 아이의 엄마였던 제니스 배런(Janis Baron)이 세 자녀함께 다른 문화를 가진 고등학생들과 그 가족들에게 서로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보건교육과 다양한 생활 기술을 가르쳐 주는 주말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그 활동이 시작됐다. 최근에는 수많은 동조자들이 생겨 이주민이나 가난한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이 주말에 함께 와서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대규모의 활동으로 확대되었다.

여기를 찾는 부모와 아이들은 컴퓨터 코딩을 배우거나 영양과 건강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금융 지식, STEM 교육, 영어 사용이나 글쓰기 등 삶에 유용한 지식과 기술들을 배우고 나눈다. 물론 이러한 활동들은 기꺼이 참여한 200여명의 자원봉사 부모와 그들 자녀들이 있어 가능하다. 여러 그룹에서기부한 랩탑 컴퓨터나 영양식, 데이터 기반의 분석 프로그램들은 수많은 가정을 변화시키며 공교육과 복지 프로그램 마저 무색하게 한다.

배런의 과감한 교육적 의지와 실천의 용기는 세 아이의 교육이나 엔지니어의 삶 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고 무거울 만도했을 일상을 가뿐히 뛰어넘어, 아이들과 함께 보다 큰 가치를 구현하고 수많은 행복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와 함께 하는 활동 통해 인생의 2막 '닻' 올리자

위의 두 사례들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내 옆에서 바로 일어날 수 있는, 쉬운 일들은 아니다. 내게 일어난 어떤 일을 떠올려보면, 문득 이십여 년 전 본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평범하고 성실한 직장인 중년 남성이 귀가길 문득 눈에 들어온 사교댄스 학원의 여성에 끌려 우연히 자신의 춤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어가는 모습을 그렸던 영화, <쉘 위 댄스>는 일본 220만 관객을 감동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2004년 리차드 기어가 주연을 맡아 같은 제목의 영화로 리메이크될 만큼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의 청년 시절 감수성에는 다소 촌스럽게 느껴졌던 영화였다.

그땐 몰랐다. 삶에 찌든 중년의 일상에도 잠재된 열정과 행복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강하고 모두가 공감하리란 것을. 어느 새 이십년이 지난 지금 영화가 아닌 일상에서 나는 매일 댄스라이브 공연을 본다.

우리 딸은 눈만 뜨면 춤을 춘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서도 밥을 먹다가도,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도, 핸드폰 음악에 맞춰, 가끔은 핸드폰 카메라로 셀프 동영상을 찍으며 그 정신없는 춤을 매일 춘다.

이십년 전에는 청년이라 중년의 숨겨진 열정을 이해못했다면, 지금은 보수적인 중년이라 아이의 파닥거리는 감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문득, 한 때 나도 미친 듯 음악 공간을 만들고, 벽에 계란판을 붙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음악 속에 녹이지 못한 글들에 아쉬워하고 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아이와 함께 나누고 공감할 활동이 정말로 없는 것인지 자문한다. 그리고 내 인생의 2막을 얽히고 설킨 일과 사람, 삶의 책무 속에서 어떻게 만들고 되살려가면 좋을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