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한자 여행] 지하철 1호선-신이문(新里門)
[유광종의 한자 여행] 지하철 1호선-신이문(新里門)
  • 지성배 기자
  • 승인 2016.06.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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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남대문을 원경으로 찍은 서울 민가 모습. 궁성 안은 각 작은 구역으로 구분했고, 그 작은 구역의 앞뒤를 통과하는 문은 여염(閭閻)으로 적었다. 그 문을 때로는 이문(里門)이라고도 했다.>

관련 사전에 따르면 조선 때 도둑을 막기 위해 각 마을마다 설치한 게 이문(里門)이라고 한다. 조선 세조(世祖) 때에 지금 서울의 각 마을에 설치했다는데, 그 기능은 야간에 통행하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런 이문(里門)이 있던 장소가 지명으로 변한 곳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지금의 서울 이문동(里門洞)이다. 신이문(新里門)이라는 역명은 지하철 개통 때 동네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서울의 종로구 인사동, 중구 남대문로 조선호텔 입구, 태평로, 성동구 상왕십리, 마포구 염리동 등에도 이문(里門)의 터가 있었다고 한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일대에는 아직 이문리(里門里)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니까 서울 말고도 전국 여러 곳의 마을에 이런 옛 이문(里門)이 고루 들어섰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조선에만 국한해서 볼 일이 아니겠다. 중국 고대 도시 건설의 기록을 보면 이와 관련 있는 글자와 단어들이 제법 많이 등장한다. 우선은 우리가 자주 쓰는 여염(閭閻)이다. 사전적인 정의로는 ‘백성들이 많이 몰려 사는 곳’이라는 설명 말고는 달리 없다.

그러나 이 여염(閭閻)은 이문(里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고대 도시 건설에서는 우선 성 안에 사는 민가 다섯을 린(隣 또는 鄰)으로 규정했고, 다섯의 隣(린)이 하나의 里(리)를 이루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에 따른다면 하나의 里(리) 안에는 모두 25채의 민가가 있었다는 얘기다.

항(巷)은 우리가 ‘골목’ 또는 ‘거리’ 정도로 풀 수 있는 글자다. 이항(里巷)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작은 단위의 마을 또는 구역을 일컫는 경우다. 여기서 里(리)는 도시나 마을 구획상 일정한 규모의 민가가 몰려 있는 곳을 가리키고, 巷(항)은 그 안에 생긴 작은 길이나 거리 또는 골목 등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가항(街巷)이라는 단어도 있다. 모두 길을 나타내는 한자다.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곧게 펼쳐져 있는 길을 街(가), 굽은 길을 巷(항)이라고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큰 길을 街(가), 작은 길을 巷(항)이라고 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어쨌든 그런 점에서 볼 때 巷(항)은 좁거나 굽은 골목길에 해당하는 한자다.

앞에서 먼저 언급한 여염(閭閻)은 이 이항(里巷)과 함께 있는 안팎의 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閭閻(여염)이라는 두 한자가 문(門)이라는 부수(部首)를 달고 있으니, 처음의 閭閻(여염) 자체는 도시나 마을 구획상의 작은 단위 구역에 있던 門(문)이라고 해야 옳겠다. 일부 사전에는 閭(여)가 里(리)와 같이 25채의 민가가 들어 있는 구역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이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사용했다. 여기서 방(坊)과 곡(曲)도 일반인들이 모여 사는 구역의 단위에 해당한다. 앞의 坊(방)은 주로 도시 형태를 이루는 큰 성 안에 있는 구역으로 보인다. 뒤의 曲(곡)은 옛 농촌 지역의 군락(群落) 단위인데, 향곡(鄕曲)과 부곡(部曲) 등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일반적인 형태의 마을이거나 준(準) 군사조직을 갖춘 마을을 가리킨다. 어쨌거나 방방곡곡(坊坊曲曲)이면 ‘사람 사는 모든 곳’의 의미다.

옛 도시를 이루는 명칭으로는 방시(坊市)라는 게 있다. 坊(방)은 앞에서 설명한 그대로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에 비해 市(시)는 물건을 서로 교역하는 곳, 즉 시장(市場)이다. 따라서 坊市(방시)라고 적을 경우 도시 형태인 성 안의 구획을 가리킨다. 사는 곳과 물건 사고파는 곳인 坊市(방시)가 있고, 임금이 머무르는 궁(宮)과 정사를 논의하는 조정(朝廷)이 있으면 그곳이 바로 옛 도시다.

도시와 시골을 자꾸 거론하다 보니 ‘시골 쥐, 서울 쥐’ 생각도 난다. 그와 관련해 떠올려보는 단어가 파인(巴人)이다. 사전에는 그저 ‘시골에 사는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풀이만 나온다. 그 원전은 성어 형태다. ‘하리파인(下里巴人)’에서 앞의 한 묶음인 下里(하리)를 뺐기 때문이다. 여기서 下里(하리)는 향리(鄕里)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시골’이다. 다음 글자 巴(파)는 지금의 중국 쓰촨(四川)의 동부지역을 지칭하는 글자다. 따라서 巴人(파인)이라고 적으면 곧 시골 사람을 가리킨다.

하리파인(下里巴人)이라는 성어는 중국 전국시대(BC 403~BC 221년) 당시 남부에 있던 초(楚)나라에서 유행했던 통속적인 가요를 지칭했던 데서 유래했다.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쓰촨 지역의 사람들이 제법 ‘야한’ 노래를 만들어 불렀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어쨌거나 이 성어는 통속적이면서 수준 낮은 것에 대한 지칭이다.

그 반대가 ‘양춘백설(陽春白雪)’이다. 때는 같았던 모양이다. 전국시대 초나라에서 이름이 높았던 노래 ‘陽春(양춘)’과 ‘白雪(백설)’을 가리킨다. 누군가 초나라에서 ‘下里巴人(하리파인)’이라는 노래를 불렀더니 그를 따라 하는 사람이 수천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陽春(양춘)과 白雪(백설)을 불렀더니 그를 따라 할 줄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는 스토리에서 비롯한 성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下里巴人(하리파인)은 신나는 대중가요, 陽春白雪(양춘백설)은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누가 우세를 점하고 있는지는 유치원생도 알 정도다. 전국시대 초나라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 대중가요가 훨씬 압도적이다. 그러나 고루 커야 마땅하다. 하나만 기세등등하고 하나는 풀이 죽는다면 그 사회의 문화는 심한 불균형을 드러낸다.

*이 글은 뉴스웍스와 유광종 기자의 허락을 받아 개제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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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배 기자  edupaper@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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