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연세대 교수

한국 경제의 침몰

주력산업은 침몰 중인데 새로운 산업은 나타나지 않는다. 주력산업이란 조선, 철강, 건설,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산업 등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하는 수출산업들을 말한다. 이 산업들이 가라앉고 있는 중이다. 당장 조선산업은 이미 주력 기업들이 부도 상태에 들어가 있고 철강 기업들도 언제그렇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중국 기업들의 도약으로 인해 전자산업과 자동차 산업도 급속하게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먹거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산업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정부부문도 위기의 원천이 되어가고 있다. 복지지출은 급속히 늘어 가는데 세금 수입은 늘지 않는다. 국민들이 복지를 늘려달라고만 하고 세금 더 낼 생각을 않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국가부채는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정말 큰 문제는 돌파구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거나 복지지출을 줄여야 할 텐데 어느 것 하나 가능한 것이 없다. 복지지출 줄이자는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재선될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세금 늘리자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나라 빚이 쌓이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

기업들도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 제조업의 한계. 세계 일류수준에 달한 제조업. 새로 도약하려면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제품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한국인들이 그리 창의적이질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은 싼 인건비를 무기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인원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솟아날 구멍이라도 찾아볼 텐데 한국의 노동법 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소위 주력 업종이라고 부르는 제조업, 건설업의 기업들은 이미 침몰했거나 침몰중이거나 조만간 침몰하게 될 것이다.

사실 새로운 돌파구는 지금까지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해보지 못한 농업과 서비스업에서 찾는 것이 더 쉽다. 서비스라면 금융, 유통, 의료, 관광, 교육 같은 분야를 말한다. 선진국에는 이 산업이나 분야들에서 앞서 있는 기업이나 조직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벤치마킹하면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다.

지난 50년 간 제조업과 건설업이 선진국의 기업들을 벤치마킹해서 따라잡아 왔듯이 농업과 서비스업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한국의 새로운 도약이 될 것이다. 전체 노동인구 중에서 농업과 서비스업 종사자 비율은 70%가 넘는다. 이들의 생산성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면 한국은 모든 분야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업과 서비스업의 도약은 안타깝게도 고정관념과 정치의 벽에 막혀있다. 농업의 선진화는 도시자본이 침투하면 안 된다는 반대논리를 넘지 못하고 있다. 금융의 발전은 금산분리 논리와 자본의 국적성 논리에, 유통의 발전은 동네 상권 보호 논리에, 의료의 발전은 영리병원 반대 논리에, 교육의 발전은 공교육 논리에 막혀 있다. 정치가 거의 모든 발전 가능성을 막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 문제들은 무책임한 정치로부터 비롯된다. 정치인들이 내놓는 처방은 문제의 근원은 덮어 놓은 채 일시적 안락을 주는 진통제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복지 확대 정책이 그렇고 일자리 대책들도 대부분 그런 성격의 것들이다.

무책임한 정치의 1차적 책임은 물론 직업 정치인들에게 있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유권자들에게로 이른다. 정치인들이 무책임한 정책들, 경제 원리를 무시하는 정책들을 내놓은 이유는 유권자들이 그런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정책들이 난무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달라고만 하고 세금낼 생각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뒷다리를 잡고 있는 것은 정치인데 정치의 그런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유권자들의 사고와 도덕 수준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유권자는 왕이고 정치인은 신하

강력한 권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유권자는 한국 현대정치에 있어서 왕과 같다. 유권자들이 원한다면 정치인들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것이다. 물론 한국은 어느 정도는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다수의 유권자라 하더라도 헌법은 지켜야한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헌법까지도 고칠 수 있는 것이 다수의 유권자들이고 대중이다.

정치인들은 그런 유권자로부터 표를 받아야 한다. 표에 살고 표에 죽는다는 것이 정치인이다. 당연히 정치인들은 유권자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주군인 유권자의 뜻을 알아서 받들어 모셔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유권자는 왕이고 정치인은 신하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간신들이다. 충신과 간신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충신은 왕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도 하지만, 간신은 왕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만 한다. 그러다가 결국 왕은 어두운 미래를 맞이하고 만다.

신하인 정치인들이 왕인 유권자들을 위한 충신이 되려면 유권자가 듣기 싫어하는 소리도 해야 한다. “경제가 살아나려면 유권자인 당신들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복지를 하려면 세금도 같이 낼 생각을 하라”는 말은 충신들의 것이다.

“여러분 힘드시죠. 여러분의 탓이 아닙니다. 저를 뽑아 주시면 제가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저만 뽑아 주십시오” 하는 것은 간신들의 말이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간신화되어 있다. 어떤 정치인도 유권자에게 충신들이 할 만한 쓴 소리를 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대부분 간신이 되어 버린이유는 유권자들이 쓴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 여러분이 변해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정치인은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누구나 안다. 진실을 말하면서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는 사람보다는 달콤한 말과 정책으로 유권자를 기분 좋게, 당장 편하게 해주는 정치인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나라가 망해간다는 것이다. 주력산업은 침몰하고, 빚은 쌓여가고, 새로운 먹을거리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대한민국이 침몰의 위기를 벗어나 다시 일어서려면 정치가 변해야 하고 유권자가 변해야 한다. 왕이 정신을 차려야 신하들도 현명해진 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왕이 된 유권자들은 무엇을 깨달아야할까? 생각을 어떻게 바꿔야 나라를 살릴 수 있을까?

첫째, 경제는 달콤한 말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경제가 살려면세계 시장에서 팔릴만한 물건을 만들어내야 하며, 그러자면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경제는 노동자와 기업가들의 피와 땀과 눈물, 용기와 도전과 인내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아야 값싸게 경제를 살려주겠다는 정치인의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둘째, 유권자도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복지 확대를 요구할 거면 나부터 세금을 더 낼 각오를 해야 한다. 세금 내기 싫다면 복지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누리기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면 빚만 쌓이고, 그 책임은 자식세대들이 지게 된다. 마찬가지 원리로 남을 도와주고 싶다면 내 돈부터 내야 한다. 불쌍한 사람 돕는 일은 선한 일이지만 남의 지갑을 털어 돕는 것은 약탈일 뿐이다.

셋째, 내 물건이 안 팔린다고 국가에 나를 보호해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럴 시간과 노력으로 내 물건 잘 만들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뒷다리를 잡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당신의 물건을 사서 써야 하는 소비자들에게도 염치없는 짓이다.

우리의 개인적인 일상생활에서는 이와 같은 원칙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행동은 못하더라도 생각으로만은 최소한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는 것은 인정한다.

안타깝게도 정치의 영역으로 가면 이와 같은 도덕의식이 마비되어 버린다. 개인 차원에서 옳은 원칙은 정치에서도 옳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되는 것이 정치의 선진화이다. 유권자의 의식 변화를 통해서 한국 정치가 선진화된다면 경제 역시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세 번의 사상혁명, 그리고 네 번···

나는 위에서 제안한 유권자 의식의 근원적 변화를 사상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만큼 커다란 변화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인은 세 번에 걸쳐 혁명적 사상의 변화를 경험했다.

첫째는 반공 혁명, 둘째는 성취감 혁명, 셋째는 민주혁명이다.

첫 번째의 사상 혁명인 반공혁명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완성되었다. 한국인은 원래 사회주의에 우호적이었다. 1946년 8월 미군정청이 한국인 8453명을 상대로 원하는 체제가 무엇인지 조
사를 했다. 그 결과는 공산주의 7%, 사회주의 70%, 자본주의 14%였다. 그렇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우호적이던 한국인들이 6·25 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사상으로 무장하게 되었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한국의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네팔이나 필리핀 같은 나라들의 경험이 말해주듯이 신흥 독립국에서 기업이나 조직들의 생산성의 향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 가운
데 하나는 공산당 조직들이다. 생산성을 올리기보다 투쟁을 통해서 제 몫을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해방 직후에는 직장들이 대부분 그런 상태였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자리잡음으로 인해 기업들과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크게 높아질 수 있었다.

두 번째의 사상혁명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이루어졌다. 그가 내걸었던 ‘잘살아보세, 새마을 운동, 수출입국’ 등의 구호들은 단순한 구호를 넘어 생활의 일부가 되어갔다. 그 결과 급속한 소득성장이 가능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잘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들이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것을 성취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세 번째의 혁명은 1987년 민주화와 더불어 일어났다. 민주화는 거의 모든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시민들이 대통령앞에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시민이 왕의 자리로 격상되었다. 직장에서는 사장들이 파업 시위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학교에서는 전교조의 단결된 힘 앞에 교장과 교감들이 침묵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가져왔던 권위와 위계에 대한 복종의식은 희미해졌다. 그것이 1987년 이후에 나타난 커다란 의식의 변화이다.그렇게해서 시민은 이제 정치의 왕이 되었다.

필자가 제안하는 사상혁명은 네 번째가 되는 셈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임 있는 유권자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자각.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네 번째의 사상혁명을 도덕혁명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네 번째의 사상혁명, 도덕혁명에 성공하면 한국은 진정한 선진국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타락한 정치로 인해 한국은 침몰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도덕혁명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우리들 각자의 자각과 결단과 실천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