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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 킬리만자로 트레킹5895m 정상, 난 나를 만났다
월간교육 | 승인 2016.06.18 14:34
<키보산장에서 바라본 전경 모습, 사진제공=김동우작가>

킬리만자로 등정의 시작점···마랑구 게이트(1970m) 앞

산행은 울창한 밀림에서 시작됐다. 길도 그리 험하지 않았다. 완만한 경사가 계속되는 손쉬운 길이었다. 속도를 내기 안성맞춤이었다. 킬리만자로는 화산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한라산과 분위기가 여러 모로 닮았다. 전체적인 루트의 구조도 한라산을 빼닮았다. 한라산을5895m로 높여 놓은 느낌이었다.

첫날 가이드는 ‘천천히’란 뜻의 스와힐리어인 “뽈레뽈레”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조금 뒷짐을 지고 ‘산보’하는 마음으로 산을 즐기자 어느새 만다라 산장(2700m)이 눈에 들어왔다.

4명이 함께 쓸 수 있는 산장 한 동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휴식 시간을 갖곤 가이드와 한 시간 정도 마운디 분화구로 고소적응 겸 산책을 나섰다. 마운디 분화구는 만다라 산장근처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다. 분화구에 올라서자 끝없이 이어지는 아프리카의 초원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졌다.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오랜만에 하는 혼숙이 편치가 않아 제일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요리사는 세숫물을 받아왔다. 고양이 세수를 한 뒤 식사를 마치자 가이드는 점심 도시락을 나눠 주었다.

호롬보 산장은 해발 3780m에 자리 잡고 있다. 1080m를 올라야 하는 일정이었다. 산행 시간은 어림잡아 5~6시간 정도다. 오전 8시 ‘뽈레뽈레’란 구령에 맞춰 힘차게 하루를 시작했다. 산행 시작과 함께 울창한 밀림이 사라졌다. 어느덧 발걸음이 구름 위에 올라와 있었다. 다들 즐겁게 산행을 이어갔다.

서서히 킬리만자로 정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찢어진 하얀 도포를 걸쳐 입고있었다. 아직은 충분히 매혹적인 자태였다. 힘차게 달려가면 2~3시간이면 닿을수 있는 지척처럼 느껴졌다. 만다라 산장을 출발한 지 5시간 45분 만에 호롬보 산장에 도착했다. 걱정했던 고산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른 아침 혼자 산장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4703m에 위치한 키보 산장으로 가야 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발걸음을 옮기는 게 점점 힘겨워졌다. 한 시간정도 산을 오르자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풍경이 펼쳐졌다. 척박한 땅의 기운은 트레커들을 두렵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제 슬슬 킬리만자로가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뽈레뽈레’ 발걸음을 늦추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 킬리만자로 정상을 보면서 4시간 40분간의 산행을 마쳤다. 키보 산장에 들어서자마자 고산증으로 트레커 한 명이 급히 실려 가는 모습이 보였다. 본 게임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어느 곳보다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영화 속 느린 화면처럼 보였다. 트레커들은 최대한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정상에 도전할 시간을 기다렸다. 보통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6~7시간 정도 소요된다. 시간상으로는 부담이 없었지만, 문제는 4703m에서 5895m까지 1192m를 단번에 올라야 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고산증을 겪는다.

밤 11시. 따뜻한 침낭에서 몸을 빼냈다. 따뜻한 차와 쿠키로 요기를 한 뒤 미리 두통약 한 알을 삼켰다. 결전의 순간이었다. 어느 트레킹보다 각오는 비장했으나 등정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호롬보 산장에서 바라본 아침 전경, 사진제공=김동우작가>

‘불꽃’ 같은 일출을 선물한 킬리만자로

밤 12시 15분 가이드와 숙소를 나섰다. 가진 옷을 모두 껴입었지만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해발 4703m의 한기는 차디찼다. 정상 공략은 공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우회로는 없다. 키보 산장 뒤편으로 솟은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올라야 한다.

미리 출발한 트레커들의 헤드 랜턴이저 멀리 경사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1192m를 올라야 했다. 해발 0m에서 출발하는 산행이라면 이런 긴장감은 필요가 없다. 다행히 키보 산장에 머물 동안 고산증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 두통이 찾아올지 몰랐다.

“뽈레뽈레.” 출발은 순조로웠다. 어둠속에선 대화도, 야경도 없었다. 천천히 땅을 보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다였다.

한 시간 뒤 밑을 내려다봤다. 희미한 헤드 랜턴 불빛이 길게 줄지어 조금씩 산을 오르고 있었다.

‘저길 올라온 거구나. 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 정도 더 오르자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흠~~~슈으웃~ 흠~~~슈으웃~’

해발고도가 5000m를 넘자 약간만 호흡이 엉켜도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날숨과 들숨이 아니었다.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갈수록 호흡은 엉망이 됐다. 그리고는 두통이 찾아왔다. 키보 산장을 출발한 지 3시간 만이었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가파른 경사를 30분 정도 더 올랐을 때였다. 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속이울렁이는 게 토할 것 같았다. 가이드는 내게 심호흡을 크게 하라고 했다. 다행히도 위장 속 음식물들이 솟구치려던 자세를 고쳐 잡으며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두통은 더욱 심해져 있었다. 나는 서서히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끝도 안 보이는 검은 실루엣을 쫓아한 시간쯤 더 산을 오르자 다시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누군가 날카로운 연필심으로 머릿속에 ‘포기’란 단어를 쉼 없이 써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5분도 못 가 다시 멈춰 섰다. 한발을 떼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검은 실루엣이 조금씩 끝자락을 보이기 시작했다. 좀비처럼 천천히 오른 경사의 끝에는 길만스포인트(5681m)가 기다리고 있었다. 능선의 시작이었다.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런데 가이드는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1시간 30분을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뭐!”

정상까지의 고도차는 214m였다. 도대체 능선이 얼마나 길다는 이야기인가. 사실 능선이 긴 게 아니라 고산증 탓에 속도를 낼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조금만 속도를 올려도 머릿속에 들어간 갈고리가 작동을 시작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짓을 하는지 다 포기하고 싶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는 깨져나갈 것 같았다. 이때 내 옆으로 가이드의 부축을 받으며 중환자처럼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나이 지긋한 서양인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잡념이 사라졌다.

오르락내리락 능선을 따라 1시간 남짓. 뇌는 쪼그라드는 듯했고, 얼음장 같은 바람은 더욱 매섭고 맹렬하게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극심한 추위였다. 손발의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눈꺼풀도 중력의 힘을 못 이기고 점점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저 멀리 ‘우후르피크’가 눈에 들어왔다.

키보 산장을 출발한 지 6시간 만이었다. 먼저 도착한 독일인들의 노래가 정상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곧이어 정상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눈물이 날 것 같이 가슴이 벅차올랐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킬리만자로는 ‘불꽃’ 같은 일출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장엄한 모습이었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또 한 번 이전에 내가 아닌 나를 만들었다.

*이 글은 김동우 여행·사진작가가 월간교육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월간교육  edum@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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