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불구 獨立不懼

남에게 기대지 말고 혼자 힘으로 헤쳐가라

오래전 일이다. 어떤 작가 지망생 하나가 나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이었다. 심상치 않아 보였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그런 메일을 보냈을까 싶어 꼼꼼하게 편지를 읽어보았다.

처음 몇 문장은 자기소개로 채워져 있었다. 스물일곱의 여성이고, 독서 모임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뭐가 문제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곧 그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요지는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해서 독서 모임 활동을 시작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 붓다 보니 정작 글 쓸 시간이 없다는 것. 그 정도로 심각한 고민이라면 독서 모임을 안 나가면 그만일 텐데. 모르긴 해도 진짜 고민은 따로 있는 듯했다.

"갑자기 활동을 그만두자니 지금껏 해왔던 게 아깝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색해질까 봐 걱정이에요."

성공한 사람들은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다.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선택했다면 나머지 할 일은 오로지 집중하는 것뿐이다. 이것저것 다 잘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잘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청년은 선택도 집중도 아닌 '관계'에 집착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쓴 소리를 하자면, 주로 목표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관계 속으로 숨는 경향이 있다. 자기 확신이 없어서다.

자기 확신이 없다 보니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자신의 아이디어가 쓸 만한지, 재능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타인으로부터 확인하려고 든다. 지망생 시절 합평을 많이 하는 이유다. 처음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주고, 다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일정 수준에 도달한 상태에서의 합평은 더 이상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나 역시 합평을 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한 작품을 두고도 수많은 의견이 오고 간다. 한 마디로 '개인의 취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과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뉠 뿐. 짬뽕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 짬뽕이 맛이 없다는 의미가 될 순 없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견해차 때문에 결국 오해와 상처만 남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차라리 실력을 키우고 싶을 땐 학원을 다니는 게 낫다. 나보다 더 실력 있는 사람의 경험에서 배우는 작법은 제법 글쓰기에 적용할 만하다. 이미 성공한 현역 작가의 경험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글쓰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다. 여러 사람이 한 문단씩 돌아가며 쓰는 일은 없다. 오롯이 혼자서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는 지적 노동이 바로 글쓰기인 것이다. 꼭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위대한 창조물은 '혼자 있는 시간'에 탄생했다. <생각 버리기 연습>의 저자 코이케 류노스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맥락에서 창작을 하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독립불구'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어떤 위험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맞선다는 뜻이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상 혼자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는 좋은 작품, 더 나은 작품이지 '친목 도모'가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 자신과의 교제가 우선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영혼을 탐구하는 시간인 동시에 자신의 강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야 길이 보인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독을 즐기는 일, 그 고독을 즐거움이라 부를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작가가 된다 하지 않던가. 내가 쓰는 글에 대해 누군가 조언은 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선택한 길은 누구도 대신 가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당신의 여정에 다른 이들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 다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그대 혼자의 힘으로 끝까지 가라.

글. 제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