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위치한 보라매공원의 야경>

‘높은 절’, ‘번댕이’라는 두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왕조 말까지 이런 명칭의 두 말이 합쳐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생긴 이름이 번대방리(番大方里). 이어 동(洞)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현재의 대방(大方)이라는 명칭이 나왔다고 한다.

번댕이는 순우리말로 보이지만, 일부 조사에 따르면 이 역시 한자어에서 나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대방동 옛 공군사관학교 자리에 있던 연못이 번당(樊塘)이었는데, 이를 우리 식으로 발음하다 번댕이라는 명칭으로 불렸고, 결국 글자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번대방리’, 그마저 후에는 글자를 줄여 결국 ‘대방’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아무튼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치다가 결국에는 한자 이름을 얻은 셈이다. 원래의 우리말이 계속 힘을 얻었다면 좋은 일이겠으나, 어쨌든 문자를 향유하는 많은 지식인의 습성과 주장에 따라 우리말이 한자로 탈바꿈하는 경우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것이다.

‘대방’은 뜻이 좋은 한자다. 클 대(大)에다, 모 방(方)이라는 두 글자의 합성어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天圓地方(천원지방)’을 우주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 뜻은 ‘하늘(天)은 둥글고(圓), 땅(地)은 네모반듯하다(方)’는 내용이다. 우주자연의 질서를 주재하는 하늘은 모든 것을 품을 정도로 원만(圓滿)하며, 땅은 반듯한 모양을 갖춰야 좋다는 얘기다. 그래서 大圓(대원)은 하늘, 大方(대방)은 땅을 가리키는 한자 단어다.

인격의 수양에도 이 말은 쓰인다. 겉은 둥글어 원만한 모습이며, 속은 반듯하게 자리를 갖춰야 한다는 식이다. 대인 관계에서는 원만하되, 속으로는 자신을 수양해 엄격함으로 채워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반듯함(方) 앞에 큰 대(大)라는 글자를 붙였으니 그 뜻이 좋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학식이 풍부하고 문장이 뛰어난 사람에게 이 大方(대방)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조가 대신들을 야단치면서 “이런 식으로 식견이 좁으면 대방가(大方家)가 비웃을 일”이라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의 ‘대방가’는 학식이 뛰어나 식견 등이 매우 넓고 큰 사람을 가리킨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새김은 ‘도리(道理)’다. 다른 말로 풀자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계속 따지고 새겨야 하는 ‘이치’다. 둥근 하늘과 함께 반듯한 모습을 갖춰 만물의 삶터를 제공해야 하는 땅, 그를 가리키면서 바로 ‘세상의 도리이자 이치’라는 뜻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어디에 얽매여 좁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는 ‘쩨쩨하다’라고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 즉 일을 처리할 때 조그만 조항 등에 얽매이지 않고 시원시원한 태도를 보일 경우 중국에서는 이 단어 大方(대방)을 사용한다.

사람의 됨됨이를 이야기할 때 주로 등장하는 단어가 ‘방정(方正)’이다. 요즘은 이 말을 잘 쓰지는 않지만, 1980년대 이전에는 자주 사용했다. 쉽게 말하자면, 네모반듯한 사람이다. 용모가 단정(端正)하고 품행(品行)이 바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시 사용했던 말 중에서는 일반적으로 대상을 칭찬할 때 쓰임새가 가장 많았던 말이기도 하다.

그 ‘네모반듯’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귀가 따갑다 싶을 정도로 들려주던 훈계다. “사람은 자고로 품행이 방정해야 한다”며 시작하는 집안이나 마을 어른들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자라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1970년대의 학교에서 상장을 받았던 사람은 다 기억하는 말이 있다.

“상기(上記) 학생은 품행이 방정(方正)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해…”라고 시작하는 상장(賞狀)의 문구 말이다. 선생님은 참 재미없는 어조로 이 딱딱한 글을 읽어내려 가다 마침내 맨 밑의 날짜까지 다 밝힌 다음 상장을 학생에게 건넸다.

그러나 땅이 반듯한 데 비해 하늘은 둥글어야 한다. 네모가 있으면 동그라미도 있어야 기하학적인 구도도 훨씬 풍요롭다. 땅이 네모진데 하늘까지 네모지면 그 세상은 딱딱하고 무료할 것이다. 그래서 네모에 동그라미가 합쳐져야 사람의 인성도 단조롭지 않다.

그러니 안 모습은 네모지더라도, 겉모습은 주변에 두루 원만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생겨난 말이 ‘外圓內方(외원내방)’이다. 우리보다는 중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한국에 비해 중국은 이원적(二元的)이며 상대적인 관점을 풍부하게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빛이 있을 경우 그늘이 그 뒤를 따른다는 식이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는 식의 논리는 결국 ‘음양(陰陽)’의 세계관으로 발전했다. 길고 짧음은 장단(長短)이요, 큼과 작음은 대소(大小)요, 노인네와 젊은이는 장유(長幼), 남정네와 여인네는 남녀(男女)로 표현하며 성질이 다른 두 대상을 병렬하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결국 네모와 동그라미다. 네모는 규격에 맞춰 움직이는 ‘공무원’ 스타일, 동그라미는 자유분방하면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가’ 스타일이다. 그래서 네모와 동그라미, 방원(方圓)에 관한 사고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 품성과 성정(性情)을 따질 때마다 늘 등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대방역 지나치면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네모에 속할까, 아니면 동그라미에 속할까. 그도 저도 아니면 나는 세모꼴일까. 주사위 모습의 육면 입체는 어떨까. 각 모서리를 살짝 깎는다면 그 주사위는 네모일까 동그라미일까…. 이런 생각들 말이다.

*이 글은 뉴스웍스와 유광종 기자의 허락을 받아 개제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