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국가의 동량지재(棟樑之材)에서 글로벌 수준의 ‘대체불가능한 인재’로

[김성근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

과거 197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연구활동이 없지는 않았지만, 연구라는 개념이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 제대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이후 30년 동안눈부신 발전을 보여주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년대만 해도 국제 저널에 나오는 한국논문은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세계 유수의 저널들마다 매호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 발표한 논문들이 실려 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닐수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분야의 발전 속도는 세계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를 것이라고 자부한다.

과거만 해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분야 인재들은 대부분 외국으로 가서 연구 활동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온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의 경우 학과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유학 온 외국 학생 비율이 10% 정도 된다. 우리대학은 선진국 최고의 대학들과 공동학위제 또는 복수학위제와 같은 교류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독일 같은 과학기술 선진국에서 매년 10명씩 유학을 오는 학과도 있을 정도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우리의 경제력이라든지 한류 문화도 기여했지만그만큼 우리의 학문적 위상이 올라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적지 않은 인재들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일방적으로 후진국이었을 때는 어쩔수 없이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야 했지만, 이제는 어느 나라 못지않게 앞서 있고 과학도 세계적인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학문적인 열등감이나 처우 문제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 세계적인 대학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박사까지 되었는데, 국내는 알아보지도 않고 우리의 경쟁 상대인 나라로 일방적으로 떠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아직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선진화가 다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더 이상 잘 할 수가 없다?

필자가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의 부학장직을 맡고 있던 2005년도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해외석학들에 의한 국내 대학의 교육·연구 역량 평가를 우리 대학에 대해 시도한 적이 있다. 미국등 선진국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대학들끼리 서로 평가를 해주는 관행이 있기 때문에 당시 필자는 기왕이면 미국 최고 대학의 교수들을 초청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대학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초청을 묵살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초청장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석학평가가 가능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다. 그러나 다소의 홍보 효과도 기대하며 하버드, MIT, 스탠포드, 버클리 등의 교수들을 초청했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수락하였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한국에 온 것은 그들이 비로소 우리를 경쟁자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해외석학들은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이 세계 30위권 정도에 들어왔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이후 과연 어떤 발전과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지난해에 두 번째로 교육연구·역량평가를 실시했는데 전반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평가가 내려졌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이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질적 성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10년전 첫 평가에서는 양적 지표에 대해 칭찬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질적으로도 세계정상 수준에 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가에 참여한 해외석학들은 “당신들은 더 이상 잘할 수가 없다. 지금의 여건과 체제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뒤집어놓고 보면 “현재의 교수진과 학생, 현재의 연구비와 시설 및 제도로는 더이상 올라갈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얼핏 듣기엔 “잘한다”는 이야기 같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의 가망은 없다”는 얘기였다. 세계 최고가 될 수는없다는 얘기였다.

이어서 그들은 굉장히 뼈아픈 몇 가지 지적을 했다. 그 중 하나가 교수들이 자기 분야를 계속 고집하지 말라는 지적이었다. “교수들은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특정 분야 교수가 은퇴하면 반드시 그 분야에서 새로 교수를 채우는 식은 안 된다.

학문은 계속 진화하고 발전해 가는데 그럴 수 없다. 특정 분야 교수가 은퇴하면 다른 분야 사람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게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의 지적은 “교수들의 정년보장을 더 엄정하게 강화하라”는 주문이었다.

세 번째는 “박사후 연구원이 양과 질에서 획기적으로 확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과학기술 분야의 인력 구조를 보면 마치 모래시계처럼 되어 있다. 위에는 교수들이 있고, 그 아래엔 대학원생들이 있다. 그런데 모래시계처럼 허리가 거의 없다.

그 허리가 바로 ‘박사 후 연구원’이다. 해외 명문 대학들의 경우에도 교수들은 늘 바쁘고 대학원생들은 연구경험이 얕기 때문에 이들 박사후 연구원의 역할이 연구의 성공적 수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이 확충되지 않는 한 서울대가 세계적 명문대학이 되기는 힘들다는 진단이 해외석학들이 낸 보고서의 핵심이었다.

필자는 우리나라 과학기술분야의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대학이 세계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을 주도하는 이유는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박사들을데려다가 박사후 연구원으로 쓰기 때문이다.

박사후 연구원들은 대부분 시기적으로 직장을 갖기 직전 단계에 있다. 박사 과정 때 아무리 잘해도 박사후 연구원 때 연구 실적이 뛰어나지 않으면 좋은 직장 얻기가 힘들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박사후 연구원들은 좋은 업적을 내려고 외국, 특히 미국의 명문대로 간다. 그래서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전 세계의 우수인력을 독점하는 반면 우리 과학기술 분야의 인력구조는 모래시계처럼 허리가 허약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대학들은 박사후 연구원들에게 연간 5~7만 불 정도의 높은 연봉까지 지급한다. 최근 들어 한국의 대학들에는 뛰어난 박사후 연구원들이 와서 일해도 될 만큼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연구실은 많아지고 있는데 정작 이런 인재가 오지 않기 때문에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박사과정이 상당한 시간과 인식 변화를 거쳐 해외에 비해 손색없는 박사 학위자를 배출해 내는 과정을 겪었던 것처럼 박사후 연구원의 경우에도 시간이 흘러야 자연스럽게 연구실의 명성과 인재배출 실적이 맞물리면서 우수 인재를 유인하게 될 것이다.

이에 비해 두 번째 문제, 즉 연봉 문제는 지금 당장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원의 경우, 이제 그것만큼은 국제 수준에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다.

박사후 연구원들 중에서 선발된 우수 인력들은 미국 수준의 대우를 해주고 훌륭한 연구업적을 내게 함으로써 연구경력을 쌓아 외국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밟은 사람에 못지 않는경쟁력을 갖게 해야 우수한 인재가 모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받은 후 국내에서만 머무를 필요는 없다. 해외의 훌륭한 대학에가서 연구를 하고, 실적을 쌓아서 국내에 들어오면 국가 발전에 더욱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와 함께 본인이 원할 경우 우수한 인재가 국내에서도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길을 터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낸 사람들과 당당히 경쟁해서 앞설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이 더 이상 우리의 경쟁국으로 가지 않고 국내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과학기술 경쟁력도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교육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과학기술분야의 인재를 잘 양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지금의 교육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클래스룸 중심의 가르침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교수가 강의노트를 펼치고 칠판에 판서하면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던 방식에서 그나마 개선됐다는게 기껏해야 빔프로젝터와 파워포인트 쓰고 질문을 좀 더 주고받는 정도인데, 이제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우리 대학에 있어서 그 변화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그 첫째가 자연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통합하여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1년간의 준비를 거쳐 지난 겨울학기에 개설된 융합과학이라는 과목은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환경과학 등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들 간의 장벽을 걷어내고 논리적 사고와 자연과학의 일반론적 관점으로 어떻게 자연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할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과목이다.

두 번째는 교수법의 변화이다. 교수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며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배우게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융합과학에서는 교수가 강의 전에 강의안을 인터넷에 올리면 학생들은 수업이 있는날 어떤 내용의 강의가 있을 것인지 다 파악하고 수업에 들어온다. 강의가 시작되면 교수는 처음 한 10~15분 정도 짤막하게 강의 내용을 요약하고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학생들이 질문을 하고,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게 한다.

교수는 그 토론의 좌장 역할을 하면서 경우에 따라 답을 주기도 하지만 가급적이면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이른 바 플립트 러닝(Flipped Learning)이라는 교수법이다. 수업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교수에서 학생들로 바뀐 것이다.

지난 겨울학기부터 이 두 가지 혁신을 했는데, 일부 학생들이 분야 간 통섭을 힘들어 했고, 새로운 교수법에 적응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로부터 굉장히 좋은 평을 받았다.

이제는 '대체불가능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건국 이래 우리나라의 교육목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국가동량지재(國家棟樑之材)’, 즉 ‘나라의 기둥과 대들보가 되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월에 따라 조금씩 입시정책이 변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는 특유의 입시 제도를 통해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왔다.

우수한 인재들이 명문 고교를 거쳐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식의 ‘정점화된 피라미드 구조’로 가는 인재양성 체제는 개발도상국 시대에는 매우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입시라는 방식을 통해서 학업 계층별로 질적으로 균일한(Homogeneous) 교육을 할 수 있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나라를 일군 인재들을 발굴하고 양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이 결코 유효한 모델이 아니다. 이제는 글로벌 수준의 ‘대체불가능한 (Irreplaceable) 인재’를양성해야 한다. 대체불가능한 인재란 어떤 조직에서 한 사람의 공백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으로는 도저히 그 공백을 메꿀 수 없는, 따라서 원래 그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는 대체가 불가능한 독특한 가치를 지닌 인재를 뜻한다.

이전 같으면 IQ가 높고 수능성적이 좋고 시험을 잘 보고 학점을 잘 받는 학생들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다면 이제는 어느 누구를 데려와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가진 인재를 키워야 한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하면 앞서 가는 사람들과 학습방식, 학업목표, 성적 등 모든 면에서 비슷해질까 하는 것이 학생들이 지향하는 바였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그 어느 누구와도 다른 독특한 장점을 발견하고 이를 계발할지가 새로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남들과 같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대기업 취직해서 비슷한 트랙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넓은 바다에 나가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엄을 치고, 거기서 레드오션이 아닌 블루오션, 즉 자기만의 영역을 찾게 하느냐 그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교수가 하나의 모범 답안만을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시험은 좀 못 봤더라도 “이 부분은 네가 잘 깨닫지 못했지만 나름 그래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 보이니 이것을 잘 연구해 봐라”라는 식으로 용기를 주는 그런 교육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균질한 방식의 교육으로 길러진 인재는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고, 자기네들끼리 말이 잘 통해서 단기간의 국가 발전에 효율적으로 활용되었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전 세계 70억 인구를 상대로 경쟁을 해야 하므로 학업계층별 균질성을 지향하는 교육 모델은 한계에 왔다고 보여진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남과 같아져야 하느냐’가 과거의 모델이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남과 달라져야 하느냐’가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학생 스스로가 남과 달라질 수 있도록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