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식 충남 삼성고등학교 교장

국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교육의 중심적 기능의 하나다.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를 찾아서 잘 길러야 한다. 그러한 인재의 육성은 국가를 위해서만 아니라 지구촌의 번영과 평화와 복리의 증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인재의 발굴과 양성을 위한 제도적 구조와 기능은 그 자체로서 교육의 기회를 창출해 분배하기도 한다. 그러한 교육의 기회를 정의롭게 분배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적 구조와 정책적 방향, 사회적 환경은 어떠한지 전문가 의견을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박하식 충남 삼성고등학교 교장의 견해를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외고는 우리나라 고교 교육에서 어떠한 존재였나?

과거 외고는 과학고와 더불어 대한민국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욕구를 풀어주는 통로였다. 거기에 세계화(globalization)의 바람을 타고 글로벌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국가적인 필요성이 더해져 명문고로 발돋움했다.

이렇게 명문고의 자리를 지키던 외고가 평등주의적 교육관을 가진 교육자들의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되고, ‘2009개정 교육과정’, ‘2015개정 교육과정’을 거치며 존재 자체가 흔들리기도 하고 다시 자리 잡기도 하는 혼란의 시기를 보냈다, 고교 평준화 이전 분명하게 존재했던 고교 선택권이 상실되면서 수월성 교육에 대한 욕구는 충족되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학생의 실력이 갑자기 평준화될 수는 없었다. 높은 학습 동기와 영재성을 가진 학생들과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의 교육 욕구가 제도적으로 충분히 충족될 수 없자 사교육이나 조기 유학 등의 방법으로 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런 가운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학고’나 ‘외고’는 우수한 학력을 가진 학생들의 학습 욕구를 제도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학교로 관심을 받게 되었다. 특히 소수를 선발했던 과학고보다 훨씬 많은 인원을 선발하게 된 외고는 우수한 학력을 가진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관심 학교로 크게 부상하게 되었다. 거기에다 세계화 시대가 열리고 글로벌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외고는 갑자기 부상하게 되었고, 평준화 이후 사라진 명문 고등학교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교육의 수월성에 대한 욕구도 해결하고 글로벌 인재의 필수적 역량인 외국어까지를 배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없다는 생각을학부모들이 갖게 된 것이다.

2000년대가 시작되자 외고는 초·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새로운 진학 목표가 되기 시작하였고, 몇 되지 않은 외고에 대한 관심은 점차 국가적으로 다루어야 할 교육의 현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2006년도에는 외고에 대한 지나친 열기를 반영한 《대치동 엄마들의 00외고 합격 전략》이라는 책이 출간되어 외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도 했고, 외고는 ‘외국어 교육’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우수한 학생들이라면 일단 지원해 봐야 하는 학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외고에 대한 관심은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어 많은 언론에서 외고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이런 기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동아’ 2007년 7월호의 기사이다. ‘뜨거운 감자, 外高 - 강력한 수요와 애매한 대처가 낳은, 이 똑똑한 사생아를 어찌할꼬!’ 라는 기사 제목 하나만으로도 외고를 바라보는 당시의 사회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15페이지를 할애하여 외고의 탄생부터 그 당시 외고가 갖고있는 긍정·부정적 측면을 심층적으로 다룬 본격적인 ‘외고’ 특집 기사였다.

그러나 《대치동…》 책에 소개된 것처럼 ‘교육의 파워 엘리트 학부모군’들이 외고에 대한 관심을 갖고 치밀한 전략을 세울 동안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다가 2009년에 결정적으로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된다.

2009년에 접어들어 외고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일반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와 교육 정책 입안자 및 담당자들에게 외고는 비정상적인 학교로 비추어졌고, 평등주의적 교육관을 가진 많은 교육자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절반 이상이 외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급기야 2009년 후반 한 국회의원이 ‘외고 폐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이 법안에 대해서 여야 할 것 없이 과반수 이상의 의원이 찬성의 입장을 표명할 정도로 외고는 ‘마녀’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고교 평준화 교육을 보완하고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인재 육성을 위해 1984년에 탄생한 외고는 한때 그런 이유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당시 외고의 교장들은 학교에서의 학생 교육보다는 외고를 지키는 일에 혼신을 다해 몸으로 뛰어야만 했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2010년 1월 26일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의 ‘외고개편안’ 발표 이후 ‘외고 폐지’ 논란은 일단락되었고, 지금까지 ‘명맥’을 잘 유지하며 우리나라 고교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 오고 있다.

외고는 무엇을 지켜야만 했나?

외고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가에 대한 판단은 두 가지 기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가’와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외고의 정상적 운영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법령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0조이고, 외고가 교육과정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가의 기준은 각 시도 교육청에서 국가의 지침을 받아 고교에 전달하는 ‘고교 교육과정 편성 운영 지침’이다.

외고 폐지 등의 논란이 있기 전 외고의 설립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0조에는 “교육부장관은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학교 중에서 특수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이하 ‘특수목적고등학교’라 한다)를 지정·고시할 수 있다”라고 하는 첫 문장 아래 9개 계열의 학교를 열거하고 있는데 외고는 그중 여섯 번째 항에 ‘어학영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계열의 고등학교’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의 ‘어학 영재’란 합의되거나 영재교육 개념에서도 없는 애매한 말이었다. 어떤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표현이었다. 한편으로는 외고에서 ‘영재 교육’ 즉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는 근거로서도 활용될 수도 있었다. 이런 논란의 여지 때문에 이 법안은 2010년 이후 개정이 된다.

“교육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학교 중에서 특수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이하 ‘특수목적고등학교’라 한다)를 지정·고시할 수 있다”로 첫 문장이 바뀌고 9개 계열의 학교 중 취업과 관련된 계열의 학교 6개가 삭제되었다. 그리고 외고에 대한 규정 중 ‘어학영재 양성’이란 용어를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으로 개정한 것이다.

외국어고등학교의 정상 운영 기준이 되는 또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운영편성 지침’이다. 교육과정 총론에서 밝히고 있는 이 지침은 흔히 비정상적인 교육과정, 교육과정의 파행운영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 이 지침에 의하면 특수목적고등학교는 아래 표와 같이 특수목적에 맞는 교과를 전체에서 일정 부분 이상을 지도하도록 되어 있다.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9개정 교육과정’ 초기까지는 외국어고등학교의 특수목적에 해당하는 과목을 전문 교과로 구분을 했다. 취업을 위한 기능적 전문인 육성을 위한 취업계 고교의 전문 교과와 같은 수준이었다. 일반 고등학교보다 교과적으로 심화된 수준으로 지도해야 하는 특목고의 과목을 기능적 전문인 배출을 위한 과목과 같은 영역으로 분류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분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1년 개정안은 일반계 고교에서도 특목고의 심화된 과목을 배울 수 있도록 특목고의 과목군을 ‘전문 교과 분류군’에서 ‘보통 교과 분류군’으로 이동시킨다. 이 개정은 일반계 고교에서도 얼마든지 특목고의 교과를 지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특수목적을 규정하는 과목군이 다시 전문 교과로 바뀌었다. 진학계 고교로서의 특목고가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은 ‘전문 교과Ⅰ’로 구분하고, 이전 교육과정 중 보통 교과의 심화과목 구분을 없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진로 선택 과목이라는 용어로 다시 재분류를 하였다.

과목명은 그대로 둔 채 외고의 특성과 관련된 교과를 취업계 고교와 한 교과군에 넣음으로써 보통 교과의 심화 과목이 되었다가, 다시 ‘전문 교과Ⅰ’이라는 새로운 교과 분류군에 속하게 된다. 교과면에서 심화된 높은 수준의 과목을 지도하면서도 늘 기능적 전문인 양성을 위한 전문 교과와 혼동을 일으킬 분류 방식을 택해 왔던 것이다.

교과 분류가 어떻게 되든 전체 교과 단위 중 특수목적과 관련된 과목을 40% 이상 이수해야 하는 것은 교육 과정상 준수해야 할 규정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외국어고등학교를 정의한다면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을 위하여 3년간의 교과 교육과정에서 외국어에 관한 전문적인 교과 72단위 이상을 이수하도록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는 고등학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외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다른 고등학교 학생과 달리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베트남어의 9개 외국어 중 한 외국어를 선택하여 타 외국어와 함께 72단위라는 많은 양의 외국어공부를 할 수 있다.

72 단위 중 60%는 자기 전공 언어를 배우고 40%는 또 다른 외국어를 배우게 되므로 영어과가 전공이 아닌 학생은 대부분 40%를 영어로 선택하여 학습하게 된다. 따라서 외국어 고등학교 학생들은 상당 수준의 영어 실력과 또 하나의 외국어 구사능력을 갖춘 인재로 육성되도록 되어 있다. 글로벌 사회에 필요한 외국어 능력과 해당 외국어의 문화적 소양을 갖춘 글로벌 역량을 갖추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외고의 미래는?

교육기관에서는 외국어고등학교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이상 감시와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중등교육의 국제화를 위한 학교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외국어고등학교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소중한 인재 육성 기관이다.

일본 문부성은 2015년 1월부터 세계적인 고교 표준 교육과정인 IBDP를 국가 차원에서 공교육에 도입하는 교육개혁안을 발표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일본은 2013년부터 IBO와 제휴하여 일본어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2016년부터 200개 고교에서 실시하여 교육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IBDP의 공식 교수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국한하고 있어 사고력과 창의력 중심의 탁월한 국제 표준의 교육과정인 것은 알지만, 동양권의 국가에서는 쉽게 도입할 수 없는 장벽이 있는 것이다. 이 교육과정을 일본어로 개발하여 구현하고 있다는 것은 일본 교육의 국제적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고를 감시와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국제적 경쟁력을 견인할 수 있는 학교로 활용하는 방안을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모색해야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국제적 교육과정 또는 대학 연계 교육과정을 바로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외고를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국제화의 첨병으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외고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안을 찾는 데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외고 졸업생들이 어문학계로 대학을 진학하는 것만이 외고 교육의 정상화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외국어 능력이 대학교에서의 학문 수행과 활동에서 어떻게 유용한지에 대한 연구를 자체적으로 해야 하고, 어떤 전공을 택하든지 외국어 실력이 어떻게 발전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며, 대학과 이에 대해서 깊이 있는 연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전체 교과 이수 단위에서 결코 적지 않은 40%나 되는 외국어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대학 진학과 함께 외국어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잉학습이자 엄청난 교육적 낭비이다. 외고 졸업생들의 외국어 실력이 어문학계열의 학과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학과에서 어떻게 유용하며 대학 교육과정과 어떻게 연계될 수 있는지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외고는 우리나라 고교 교육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여 각계각층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외고가 더 이상 우리나라 중등교육에 있어서 서자(庶子)가 아니라 적자(嫡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입안자, 외고 담당자, 대학이 이젠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