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쓸 때 사용하는 뇌는 좌뇌일까, 우뇌일까.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시는 감성적인 글이라 감성의 뇌 혹은 이미지의 뇌라고 불리는 우뇌를 많이 쓸 것 같지만 사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감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좌뇌를 함께 써야 감성을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이 당연한 이치를 시 쓰기에 적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습작기에 있는 시인 지망생들이 쓴 글을 보면 '바람이 불어 쓸쓸한 날, 내 마음은 갈 곳 없고 동그란 햇살만이 벤치에 앉아있네' 식의 감성만 나열하는 것이 눈에 띈다. 아무리 기뻐서 시를 쓰는 사람이 없다지만 쓸쓸한 감정에도 인과관계는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다.

그냥 쓸쓸하고 그냥 슬프면 우울증 환자다. 사실 엄연히 따지면 우울증에도 원인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처음 시를 쓰는 사람들은 그러한 감정의 뿌리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현상'만 말한다. 시의 기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예컨대, '바람이 불어 쓸쓸한 날, 내 마음은 갈 곳 없고'라는 감정이 들었다면 그 감정의 출처를 먼저 찾아내는 것이 시를 쓰기 위한 첫 번째 숙제이다. 바람이 부는데 왜 쓸쓸한가, 내 마음은 어째서 갈 곳이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해답을 얻을 때까지 끈질기게 파고들어야 시의 첫 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리와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하는데 이 때 좌뇌를 풀가동해야 한다.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면 독자들은 더 납득하지 못한다. 그런 시가 좋은 시가 될 리 없다. 바람이 불어 쓸쓸한 날- 이 문장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바람과 쓸쓸함에 대한 세분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바람이 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바람은 형상이 없다. 가끔 소리는 들린다. 하지만 그것도 다른 사물과 부딪혔을 때의 마찰음일 뿐 바람 스스로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것과 닮은 또 다른 이미지를 유추해내는 과정에서 닮은 듯 닮지 않은 '상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바람은 '엄마의 치마'가 될 수도 있다. 빨랫줄에 걸린 엄마의 치마가 바람에 흔들리는 현상은 생동감을 주는 동시에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쓸쓸함도 줄 수 있다. '바람이 불어 쓸쓸한 날'이라는 표현을 바꿔보면 '빨랫줄에 걸린 엄마의 치마가 흔들리는 날' 이라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단순히 바람이 분다고 했을 때보다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하면 다음 문장이 저절로 따라온다.

빨랫줄에 걸린 엄마의 치마가 흔들리는 날

입지도 않는 치마를 고집스럽게 세탁하는

엄마의 다리를 생각한다 미끈하게 치마를 통과했을

또각또각 명동을 활보했을 두 다리가

빨랫줄에 매달린 채 햇살에 데워지고 있다

자다 말고 얼음물을 찾는 엄마의 다리

화난 사람처럼 벌개진 얼굴로 어디 가니,

현관문 앞에서 나를 배웅할 때면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져 응, 짧은 대답만 하고

돌아서는 날들이 많아졌다 명동 역에 내리자

성냥개비처럼 가지런한 다리들이 목적어가 필요 없는

동사의 문장으로 거리를 메우고 있다

꽃무늬 치마를 펄럭이며 약속 장소로 가는 길,

그녀의 다리를 비집고 나온 나의 다리가

미끈하게 오늘을 통과하고 있다.

-제미정 즉흥시 <그녀를 입다> 전문

위의 졸시는 '바람'에서 출발하여 쓸쓸함과 쓸쓸한 감정의 원인을 유추하여 엄마의 잃어버린 청춘-> 갱년기-> 타인의 다리->현재의 내 모습-> 엄마에 대한 감사 순으로 이어졌다. 빨랫줄에 걸린 엄마의 치마를 처음 보았을 때는 쓸쓸하다는 감정보다는 청승맞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엄마가 어째서 입지도 않을 치마를 '고집스럽게' 세탁하는 지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럽게 '엄마의 청춘'을 떠올리게 한다. '나'를 낳기 전엔 분명 엄마도 생기 있는 젊은 날을 보냈을 테다. 보란 듯이 짧은 치마를 입고 명동을 활보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나이가 든 엄마는 이제 갱년기를 맞이해 한 밤중에도 몸이 뜨거워 얼음물을 찾거나,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무뚝뚝한 엄마라고만 여겼지만 '나'는 모든 게 갱년기의 증상이라는 걸 점차 이해하게 되어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날이 많아진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는 엄마가 하이힐을 신고 활보했을 바로 그곳이다. 꽃무늬 치마를 펄럭이며 기분 좋게 걸어가고 있던 중 '나'는 문득 가지런히 걷고 있는 내 다리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의 다리와 자신의 다리의 연관성 혹은 차이점을 떠올리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결코 '미끈하게' 통과하지 못했을 오늘이 고맙기만 하다.

이처럼 '바람'이라는 단어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과 관련된 상징 혹은 메타포를 찾아 점차적으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나가는 방식이 시 쓰기의 기본이다. 물론 모든 시가 서사로 쓰이진 않는다. 한 가지 현상과 원인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 또한 시 쓰기의 방식이다. 그러나 처음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한 가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신선함을 유지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좋은 시는 환기성이 우수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주제 안에서 시선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시선이 이동하면 바라보는 사물에 따라 다른 생각들이 꼬리를 물게 되므로, 소설의 구성 요소인 플롯(plot)이 만들어진다.

보통 시를 쓴다고 하면 생각나는 대로 자신의 감정을 서술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습관이다. 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스토리를 중요시 하는 소설에 비해 시는 은유와 상징, 비유가 빚어낸 언어 예술인 만큼 단어 선택과 문장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감성이나 논리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시, 스스로 납득이 될 때까지 쓰는 습관, 자유로운 상상력, 연상법 훈련을 통해 낙서에 불과한 끄적거림이 아닌 '작품'이라 말해도 좋을 시를 쓰는 것을 우리 모두 목표로 삼았으면 한다.

글. 제리안

*위 글은 제리안 작가가 위키트리에 연재한 칼럼으로 작가의 동의를 얻어 재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