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희의 인성교육] 제4강 입법의 능력과 준법의 습관
[이돈희의 인성교육] 제4강 입법의 능력과 준법의 습관
  • 서혜정 기자
  • 승인 2016.07.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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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의 과정에서 인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사회적 삶, 즉 사회적 관계 속에서 타인들과 더불어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 혼자서 오래토록 무인도에 살고 있다면, 인성을 문제로 삼을 이유는 없다.

다만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스스로 지닌 성격상의 문제로 인하여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의미의 인성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으나,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인성의 개념과는 무관하다. 인성의 문제는 사회적 삶 속에서 생기는 것이다.

‘게임(혹은 놀이)’의 비유

사회적 관계나, 사회적 과정, 혹은 사회적 공동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나 사업의 규범적 성격을 논할 때, ‘게임의 규칙(Rules of The Game)’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정치적 활동에서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갈등적 문제를 해결할 때, 경쟁과 타협 혹은 협상의 방법을 두고 겨룰 때 이 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과학자들이 까다로운 가설의 검증이나 체계적인 탐구의 기법을 원론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 말이 가끔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정치적 혹은 과학적 문제를 반성적으로 검토하고 체계적으로 풀어가고자 할 때, 그 과정에서 엄격하게 재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세계나 과학세계 자체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규칙의 체제를 마치 게임 혹은 게임의 규칙들을 검토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려는 것
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적 삶을 ‘게임’으로 비유해서 이해해 보자. 게임에는 여러 가지의 종류가 있지만, 어느 것이나 그것이 제대로 게임이 되게 하는 ‘규칙들’이 있다. 예를 들어 병정놀이의 경우에, 우리는 두 군대가 서로 적대관계에 있다고 가상한다. 군대에는 대장이 있고 부하가 있다. 대장이 하는 일과 부하가 하는 일은 같지가 않다.

또한, 싸움을 시작하는 방식과 끝내는 방식이 서로 합의되어 있다. 그들은 포로를 다스리는 규칙을 지켜야 하고, 싸움이 끝난 후에 이긴 편에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패한 편에서 지켜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약속되어 있다. 이러한 규칙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게임은 성립되지 않는다. 병정놀이의 경우에만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온갖 경기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성립된다. 규칙들 중에는 ‘필수적 규칙’과 ‘전략적 규칙’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 필수적 규칙은 그 게임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규정된 것으로 꼭 지켜야 할 규칙이다.

야구경기를 설명하자면, 두 팀이 나누어서 싸우고, 한 편이 공격을 할 때 다른 편이 수비를 하며, 공격팀에서 세 선수가 아웃판정을 받았을 때 수비와 공격이 교대하고, 정규의 공격과 수비는 9회에 걸쳐 진행한다는 것 등의 규칙을 밝힌다. 이런 필수적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그 게임은 엄격한 의미의 야구경기가 아니다.

‘전략적 규칙’은 시합에서 이기기 위하여, 1번 타자 혹은 4번 타자는 누가 맡아야 하고 유격수와 중견수는 어떤 능력을 가진 선수가 맡아야 하는 가에 대한 규칙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키는 것도 있고 한 팀이 정한 특유한 것도 있다.

단지 게임이나 경기만이 아니라, 인간 생활의 모든 활동에는 이러한 의미의 규칙들이 있고 그 규칙들 때문에 그 모든 활동들이 그 자체의 특징을 가지고 행해진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회적 활동을 성격상 게임(놀이)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정치 활동, 경제 활동, 가정 활동, 교우 관계, 예술 활동, 그리고 학문탐구 등 어느 것이든지 이들이 각기 그렇게 불리고 그렇게 행하여지는 것은, 바로 그 속에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형식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주어져 있는 규칙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필수적 규칙은 그 게임의 전통이나 관습으로 전해오거나, 공식적인 합의에 의하여 정하거나, 필요한 경우에 새롭게 제정한다. 그 과정에 모든 구성원이 직접 참여할 수도 있고 대표를 보내어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입법’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혹은 의무적으로 정해진 바를 지키는 것이 ‘준법’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많은 사회적 조직에 관련해서 살고 있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교사로서, 학생으로서, 생산자로서 소비자로서, 고용주로서, 근로자로서, 상인으로서, 고객으로서, 순간순간마다, 때로는 동시에 사회적 조직에 관련되어 있고 그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말은 모든 순간순간이 입법과 준법의 상황 속에 있는 셈이다. 사소한 것도 있고 심각한 것도 있고, 많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도 있고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있다.

여기서 게임의 규칙에 해당하는 것은 법이나 준칙, 규정이나 지침, 조직의 규칙, 특정한 무엇을 실행하는 절차적 규칙과 같은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규칙의 개념을 확대하면 우리가 생활에서 지키고 있는 모든 것, 모든 문화적 요소가 넓은 의미의 규칙의 범주에 속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소리에 속하지만 모든 소리가 말은 아니며 소리가 말이기 위해서는 소리가 지키는 규칙이 있다.

그 규칙으로 인하여 소리가 말일 수 있다. 옷을 입는 것이나, 음식을 먹는 것이나, 인사를 하는 것이나, 자녀를 키우는 것이나,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나, 학문을 하고 정치를 하는 것 등 모든 것이 규칙들, 즉 게임의 규칙들을 실천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수많은 게임 속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입법과 준법의 삶을 구성원의 누구든지 제대로 바르게 준수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면 그 조직과 게임은 붕괴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혹은 소수가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소외되거나 배신자가 되거나 범법자가 된다.

사회적 관계의 원초적 기원

‘게임의 규칙들에 비유할 수 있는 사회적 삶, 특히 사회적 관계의 규칙들을 원초적으로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 타인들은 나와 어떤 의미의 관계를 가진 사람들인가?’ 이러한 질문에 관련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관념은 인성의 기본적 바탕을 이루는 핵심에 속한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형성되는 원초적 과정을 미국의 철학자이기도 하고 사회심리 학자로 기억되는 조지 미이드(George H. Mead) 만큼 설득력 있게 설명해 준 이론을 읽기는 힘들다.

미이드는 실험심리학적 방법을 신봉하고 있었다는 있다는 점에서 존 왓트슨(John Watson)과 함께 행동주의 심리학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미이드는 왓트슨의 행동주의에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하나는 심리학을 개체의 행동에 한정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성적(內省的) 사고를 철저히 불신하고 거부함으로써 개인의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해 버리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동은 사회적 과정에서 존재하고 또한 그렇게만 이해될 수 있다.

미이드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은 개인을 초월한 것이며 다른 개인들의 활동에 동시에 참여하는 사회적 상황을 지향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행위에는 내면적인, 사적인 부분이 있고 그만큼 행위는 부분적으로 유기체(有機體)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미이드는 사회적 행동의 가장 단순한 형태이며, 동시에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기본적인 것은 ‘몸짓’(제스처 gesture)의 개념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개체와 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기본적인 원리이다.

몸짓이나 손짓은 단순히 몸이나 손의 움직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인 심리적 과정의 표현이거나 어떤 대상에 대하여 던지는 신호이다. 이 몸짓은 한 유기체가 다른 유기체의 반응을 기대하면서 취하는 일종의 자극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다. 누구를 상대로 하여 몸짓을 하면 어떤 예상되는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은 바로 몸짓의 의미가 성립된 것이고 돌아올 반응에 대한 의식이 발생한 것이 된다.

열려진 창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몸짓으로 나타내었을 때 창가에 앉은 사람이 그 뜻을 알고 창문을 닫는 경우를 보자. 몸짓에서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그 반응의 의미를 의식하게 되는 것, 그것은 바로 마음의 본질적 특성이다. 미이드는 몸짓과 그것이 상징적 표현으로서 지니는 유의미성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몸짓을 보낸 상대방에게서 기대되는 반응과 똑같은 반응을 본인의 편에서도 묵시적으로 유발하게 될 때, 그 몸짓은 유의미한 상징적(象徵的) 표현이 된다. 그리고 사회적 과정에서 몸짓으로 하는 모든 대화에 -그것이 대외적인(대인간의) 것이든지 혹은 내면적인(자신과의) 것이든지 간에-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본인이 의식할 수 있으려면, 자신이 취한 몸짓에 대한 상대방의 태도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내가 보낸 몸짓에 대하여 기대했던 반응을 상대방이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 비로소 나의 사고가 시작된다. 사회적 과정에서 타인과 주고받는 몸짓에 의한 대화를 우리의 경험 속에 내면화한 것이 바로 사고의 본질이다. 사고는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몸짓의 작용이며 대화이기도 하다.1)

몸짓은 마음의 근원이며 사회적인 것이다. 모든 몸짓은 그것에 반응하게 될 다른 대상을 상정하고 있다. 몸짓은 단순히 신체적인 어떤 움직임이나표식만이 아니라 소리를 통하여 취해질 수도 있다. 언어는 바로 ‘음성적 몸짓’이며 인간의 마음처럼 매우 발달한 수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음성적 몸짓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음성적 몸짓은 상대편으로 하여금 자신이 취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반응해 줄 것을 기대하는 데에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방식을 취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또 들으면서 상대방이 반응하는 방식으로 반응하려고 한다는 것, 바로 여기에 음성적 몸짓의 중요성이 있다.2)

인간은 음성적 몸짓을 통하여 자신을 타인의 위치에 둘 수 있고 타인의 역할을 가정할 수도 있다. 언어는 바로 음성적 몸짓의 산물이며 유용성과 상징성이 가장 높은 기호이다. 그것은 몸짓의 주체와 그 몸짓이 나타내는 내용과 그 몸짓의 상대방을 연결하는 “삼자의 관계”를 성립시킨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를 관계 짓는 의미의 보편성에 의해서 그 기능을 하며 상징적 힘을 발휘하게 된다.

사회구조는 개인들의 사회적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 것이지만 자아는 역시 개별적인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개별성은 그 자체로서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사회성에 의해서 의미를 지닌다. 개별적 자아는 타자의 존재와 타자와의 관계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적일 뿐이며, 오히려 자아의 본질적 특성은 자아를 타자의 관점에서 보면 객체가 된다는 것이다.

나를 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일 뿐이다. 이 반사적 원리는 내면적 대화 즉 사고에 의하기 때문에, 대화의 주체이며 동시에 객체인 자아는 기본적으로 이지적 능력과 특성을 지닌다. 인간은 사고하고 지식을 생산하고 이론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자아를 타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또한 그 관계에 있는 자신을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은 ‘내면적 대화’, 즉 사고의 진행을 의미한다.

미이드는 인간의 경험을 사회적 경험의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간의 경험은 고립된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더욱 넓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 즉 인간의 전체적인 환경 속에서 발생한 경험이다. 인간의 마음은 단순히 개체들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습과 제도와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인간의 마음이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적탐구행위를 두고 자세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것이 협동적인 사회적 과정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우선 마음은 행위를 통하여 그 특징을 나타낸다. 그것은 사회적 경험과 활동의 과정에서 생성되고 그 과정을 통하여 발달한다. 자아는 그 과정에 총체적으로 관계하고 그 과정에 참여한 다른 개체들과도 관계하며 또한 그 과정을 통하여 발달한다.3)

앞서 논의한 바 있는, 사회적 학습의 내용이 되는 규칙들, 즉 게임의 규칙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참여한 사회적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미이드는 개체의 자아를 사회적 과정의 소산으로 설명하지만, 개체의 자아를 또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유일성의 존재이며 자체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원천으로 이해하고 있다.

개체들은 자신을 초월한 객관적 힘에 의한 사회적 입법을 통하여 주어진 규칙의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있으면서 거기에 주어진 규칙의 세계에서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가지고 자율적 삶을 사는 존재로 이해된다.

개체와 전체의 관계

사회적 규칙들을 입법하고 준법하고자 할 때, 개체와 타인, 개체와 다른 개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점도 중요하지만, 개체와 사회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 것인가도 중요한 질문이 된다. 그 대답에 따라 입법과 준법의 의미가 달라진다.

과거의 수많은 이론들은 불명료한 논리를 동원하거나 신비주의적 사고로 위장하거나, 아니면 둘을 서로 수단-목적의 관계에 놓거나 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러 가지의 이해와 설명이 있지만, 개체와 개체의 관계를 논하는 두 가지의 대립된 방식이 있어 왔다. 하나는 ‘기계적 관계’(혹은 ‘외적 관계’)로 이해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유기적 관계’(혹은 ‘내적 관계’)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기계적 관계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사회를 성립시키는 기본적인 실체는 개인들이며,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때의 개인은 원자적 개체로서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개인주의적 사고에서 나타나는 개념이다. 개인 혹은 개체 사이에 본래적 관계라는 개념이 없다.

그러나 각기의 개체는 고유하며 그 자체로서 목적적 존재이고 도덕적으로는 절대적 존엄성을 지니며 따라서 스스로는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러한 자유롭고 존엄한 ‘개체들의 관계’는 인위적이고 우연적인 것이며 사회적 관계는 계약(契約)에 의하여 성립한다. 계약의 원리는 합리적 존재인 인간이 이성의 능력에 호소하여 합리적 방식으로 계약의 규칙들, 혹은 규칙의 체제를 입법하고 이에 따른 준법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개체와 개체의 관계를 유기적 관계로 이해하면, 사회 속에 있는 개체들은 각기의 본질적 특성 속에 이미 다른 개체, 나아가서는 전체와의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관계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다. 이러한 개인과 다른 개인과의 관계가 필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결국 모든 개체들은 전체 속에서 서로 내재적으로 지닌 관계 속에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회의 개념은 사회유기체설이나 전체주의에서 볼 수 있는 경향이다. 특히 사회를 개인들로 구성된 유기체라고 상정할 경우에 대개 그 설명의 결과는 개인의 가치를 사회의 가치에 비하여 부차적인 것이라고 평가하거나 다소간 희생시켜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위의 두 가지의 생각과는 달리 듀이(John Dewey)는 제3의 주장을 한 바 있다. 듀이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은 미이드의 생각과 거의 일치한다. 전형적인 개인주의자들과는 달리 개인을 사회적 개인으로 보면서도 철저한 유기체설과는 달리 사회를 개인들의 모임(Association)이라고 보았다. 미이드의 생각과 매우 유사하게 ‘사회성’(The Social)의 개념은 듀이에 있어서도 사고의 모든 범주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신념과 관습과 제도와 전통은 사회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성은 본질적인 유기체로서 필연적으로 주어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상호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결과이며 또한 그 개인들을 다시 사회적 맥락 속에 있게 한다는 것이다. 개인과 사회는 모두 그 관계를 통해 특성을 서로 결정한다.

그는 모든 의식적인 산물, 즉 모든 인간의 경험은 사회적 산물이라고 생각하였다. ‘사회성’은 함께 생활하고 함께 활동하는 하나의 통합된 단위로서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의 구조에 관한 설명은 다원주의적이며 국가는 공공의 복리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는 사회는 수많은 조직체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수는 성원들이 함께 추구하는 가치의 수만큼 많다고 하였다.

그러나 듀이의 그러한 모임은 낱낱으로 존재하는 개인들의 조직체가 아니라, 그 모임을 성립시키는 일종의 유기체적 원리가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유기체적 원리는 부분적이고 다원적인 것으로서 하나의 전체만을 의미하는 유기체는 아니다. 전체만을 의미하는 유기체는 그 속에서 흔히 발생하는 개체와 개체, 집단과 집단의 갈등적 관계를 설명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듀이의 유기체에서는 그 전체 속의 개체가 사회적 경험의 기본적인 단위이다.

입법과 준법의 생활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어느 연령대의 사람이든지 간에 사회적으로 성장하고 도덕적으로 세련된다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혹은 세계의 기본적 규칙들 혹은 규범들을 내면화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회적 규칙들을 내면화(內面化)함으로써 인간은 그가 속한 사회에 적응하고 당당한 구성원이 되며, 삶의 과정에서 필요한 규칙의 제정이나 재구성에 참여하게 된다. 규칙들을 내면화하는 것은 규칙을 지키는 것, 즉 흔히 우리가 말하는 ‘준법’이 가장 전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준법의 생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직을 구성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에서도 새로이 요구되는 규칙의 제정 혹은 개정과 같은 것, 즉 ‘입법’의 상황과 경험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인성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크고 작은 사회적 관계 혹은 조직에서 요구되는 입법과 준법에 관한 것이다. 말하자면 사회적 삶의 규칙들을 학습하는 일이며, 입법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준법의 습관을 기르는 일이다. 이러한 능력과 습관은 나와 타인의 관계가 어떻게 이해되고 어떤 규칙들로 매여 있느냐를 두고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에 속한다.

1)George H. Mead, Mind, Self and Society, ed. with an intro. by Charles W. Morri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7), p. 47.

2) 상게서, pp. 69-70.

3) 상게서, p.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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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정 기자  hjkara@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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