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과 이몽룡의 러브스토리가 얽혀 있는 전라북도 남원의 광한루. 이 누각의 이름 앞 '광한'은 넓어서 추운 곳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달을 가리켰던 한자다. 월계역에서 달의 한자 호칭을 알아본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이곳에는 외곽을 흐르는 두 하천이 있다. 중랑천과 우이천이다. 월계동은 그 둘로 바깥을 형성하고 있는데, 두 하천 사이에 있는 모습이 멀리서 바라볼 때 꼭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선은 동네 이름이고, 다음은 월계(月溪)라는 역명이다.

우리가 이 역에서 주목할 한자는 달을 가리키는 月(월)이다. 이 글자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다. 1월에서 12월까지, 한 해를 이루는 달의 단위에 들어가 있는 글자여서 우선 그렇다. 그리고 밤의 허공에 떠서 때로는 지구를 휘영청 밝은 빛으로 비추는 그 달을 모를 사람은 당연히 없다.

밤에 빛을 내려주는 존재였다. 전기가 없어 밤에 불을 밝히기 어려웠던 옛 시절, 은은하게 빛을 내려주는 달은 고마움 그 자체였으리라. 그러니 낮의 소란스러움을 가라앉히고 사위(四圍)가 조용해진 밤에는 사람들이 여러 상념을 키웠을 것이다. 그런 밤에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마주치는 존재가 바로 하늘의 달이다. 그러니 옛 사람들이 밤에 품었던 정서의 상당 부분은 이 달과 함께 고였다가 또 흘렀을 법하다.

따라서 달을 지칭하는 이름은 아주 많다. 여기에서 그 모두를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 한자에는 그런 달의 별칭이 아주 많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 경우를 부지기수(不知其數)라고 한다. 그(其) 수(數)를 알지(知) 못한다(不)고 할 정도라는 뜻이다.

혹시 춘향이가 이몽룡을 만나 사랑을 속삭였던 곳이 어딘지를 기억하시는지? 바로 광한루(廣寒樓)다. 남원에 있는 이 누각이 조선의 세종 때 처음 지어지면서 얻은 이름은 광통루(廣通樓)였으나, 얼마 있다가 지금의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광한(廣寒)은 처음 그 이름을 개명한 정인지(鄭麟趾)가 현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전설 속에 나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는 명칭에서 힌트를 얻어 지었다고 한다.

전설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에는 상아(嫦娥)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상아는 역시 전설 속 활쏘기의 명수라고 알려졌던 예(羿)라는 사람의 아내다. 그녀가 나중에는 남편이 서왕모(西王母)로부터 선물로 받아 지니고 있던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영약(靈藥)을 훔쳐 달로 달아났다는 게 스토리의 핵심이다. 상아는 항아(姮娥) 또는 상희(嫦羲)라고도 적는다.

과거의 우리는 달에서 두 그림자를 우선 봤다. 토끼와 계수나무다. 토끼는 달의 지형적 특성에서 나오는 그림자의 모습에서 나왔다. 지형의 굴곡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를 토끼의 모습이라고 간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계수나무가 있다고 봤다. 토끼는 달빛이 영롱해서 옥토(玉免)라고 했고, 계수나무와 병렬하면서는 옥계(玉桂)라고 했다. 이 모두가 달의 별칭이다.

밤에 빛을 내린다고 해서 아예 때로는 달을 야광(夜光)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달의 전체적인 모습이 두꺼비를 닮았다고 느낀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두꺼비를 뜻하는 한자 蟾(섬)을 이용해 옥섬(玉蟾)이라고도 불렀다. 옥으로 만든 두꺼비라는 얘기다. 거울을 연상시켜 옥경(玉鏡)이라는 말도 따랐다. 옥으로 만든 쟁반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은 옥반(玉盤)이다.

달은 푸근한 듯하지만, 어찌 보면 푸르다. 또한 푸르다 못해 시리다. 급기야 시려서 차갑다는 인상도 준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달에 실어보려는 사람도 많았으나, 해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달의 빛은 때로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그래서 달에는 얼음의 이미지도 따른다. 달을 얼음 수레바퀴라는 뜻의 빙륜(氷輪), 얼음거울이라는 뜻의 빙경(氷鏡)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춘향과 몽룡이 사랑을 속삭였던 곳이 왜 휑뎅그렁(廣)해서 차가움(寒)을 느끼게 해준다는 광한(廣寒)의 이름으로 불렸는지 이해할 만하다.

달을 그린 중국의 시사(詩詞)는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 압권(壓卷)으로 꼽는 게 소동파(蘇東坡)의 작품이다. ‘수조가두(水調歌頭)’라는 사패(詞牌), 즉 곡(曲)에다 실은 노랫말이 아주 아름답다. 내용이 길어 다 적을 수는 없어 그 일부만 아래에 적는다.

 

사람에게는 슬픔과 기쁨, 헤어짐과 만남이 있죠 人有悲歡離合

달에게도 흐림, 맑음, 가득 참, 이지러짐 있어요 月有陰晴圓缺

예로부터 어쩔 수 없었죠 此事古難全

그러니 인생이 길기만을 바랄 뿐 但願人長久

아득히 먼 곳에서 달로써 함께 하리니 千里共嬋娟

 

소동파가 지은 노랫말의 마지막 부분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마주치는 슬픔과 기쁨(悲歡), 떠남과 만남(離合)을 달이 드러내는 어둠(陰)과 맑음(晴), 참(圓)과 기움(缺)으로 관찰했다.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고, 가득 찼다가는 곧 기우는 이(此) 일(事)은 예로부터(古) 온전키(全) 어렵다(難)는 탄식이 이어졌다. 그러고선 먼 곳에 떨어진(千里) 사람(여기서는 소동파 동생 蘇轍을 가리킴)과 달(嬋娟)로써 함께(共) 할 뿐이라는 내용이다.

달을 가리키는 별칭이 여기에 또 나와 있다. 嬋娟(선연)은 예쁘고 고운 여인을 말한다. 달의 이미지가 그런 고움과 예쁨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두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흘러갈 뿐이다. 인생사의 애환(哀歡)이 마치 달이 차고 기우는 현상과 다를 게 없다. 이 대목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그 뒤에 조용히 내 뒤를 따라오는 달을 가끔 올려다보자. 수줍어 보이는 달에 그런 느낌은 늘 있다. 차가움, 시림…. 달은 그로써 결국은 흘러가고 마는 삶의 많은 것을 일깨운다.

 

*이 글은 뉴스웍스와 유광종 기자의 허락을 받아 개제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