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려 들기보다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도와주는 역할과 제도가 필요하다"

<에듀인뉴스가 마련한 정책토론 '대중문화와 학교교육의 과제, K-pop을 중심으로'에 참석한 왼쪽부터 조용환 서울대교수, 이은미 백석대 교수, 박문영 '독도는 우리 땅' 작곡가, 허경철 박사, 최영민 숙명여대 교수, 백재연 서울교대 교수,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이다. 사진=한치원 기자>

우리가 만든 노래와 드라마, 영화 등이 전 세계의 한류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의 대중문화가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 국가의 산업이나 과학, 예술이 발전하려면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이 최우선이다. 대중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류 열풍을 주도한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는 그동안 학교교육에서 다소 소외돼 온 감이 없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대중문화의 적극적 소비자로서 살아가고 있는데, 학교는 대중문화를 학교교육의 경계 바깥 지역에 두고 오히려 학생들을 대중문화로부터 격리시키는 역할을 해온 감도 없지 않다. 국위를 선양하고, 국력의 지표를 높여온 한류열풍의 지속을 위해서는 우리의 대중문화를 더욱 발전시켜야 하고, 이 분야의 인재양성에도 국가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금부터라도 서둘러야 한다. 에듀인뉴스는 '대중문화와 학교교육의 과제, K-pop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이돈희 발행인의 사회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 내용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정리 및 사진 한치원 기자<편집자 주> 

사회 나이 어린 연예인들의 활약에 힘입어 우리의 대중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학교교육의 역할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 같아 평생 교육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감도 없지 않습니다.

최영민 앞으로 교육과 대중문화, 또는 한류가 어떤 형식이든지 연계가 되어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지만, 지금까지는 서로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 교육이 현재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경쟁력을 향상하는 데 기여한 바도 없고, 학교와 대중문화와의 친밀성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저는 한류열풍이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창의적 기조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대중문화 교육을 위해 공교육이 접근하면 할수록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나타날까 염려됩니다.

사회 공교육이 한류를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방해가 된다는 말씀이신지요?

최영민 그런 관점이 아니고요. 대중문화를 창출하는 핵심이 저는 창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 구조가 돼야합니다. 한류스타들이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인 중에서도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있고, 열악한 구조 속에서도 자의적인 학습으로 개성과 예술성을 살려 세계적인 인물이 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현상을 분명히 인식하고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백재연 예전에는 공교육이 경직되어 있었고,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창의성을 계발하기 힘든 구조였지만, 요즘의 교과서를 보면 고등학교 음악과정에서 대중음악 부문도 생기고 ‘서태지와아이들’ 노래나 트로트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대중음악 부문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꿈과 끼를 계발할 수 있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 2015년 교육과정 개정 슬로건입니다. 개정된 고등학교 예술과목에서는 기존의 음악, 미술, 체육 수업 외에 연극 수업도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는 학생들의 문화를 포함시키면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에는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과정이 적었다면 지금은 발전하고 있는 과도기적인 상황입니다.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지만 음악에 관해서는 그렇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는 애니메이션이나 TV에서 나오는 음악도 들어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락(Rock)과 트로트 장르도 시대별로 모아서 가르치기 때문에 현재의 공교육이 대중문화를 전혀 배제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이은미 백석대 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에 참석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한치원 기자>

중고등학교 과정을 통해서라도 기초적 공부는 꼭 필요하다

이은미 제가 여러 논문을 통해서도 보았지만 백 교수님 말씀처럼 중학교 과정에서 10% 정도는 대중음악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음악 교과서의 30%~40%를 차지할 만큼 대중음악의 비중이 높아집니다.

중요한 것은 대중음악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의 문제인데요. 지금 교과서에서 포함하는 것들이 대중가요, 팝, 뮤지컬, 드라마 음악, 서양 쪽은 샹송, 칸초네, 락, 재즈, 뉴에이지 등이 들어가는데 예전보다 음악과 문화가 더욱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교과서에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학교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문화에 대한 다양성과 폭을 넓혀주기보다 틀에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클래식과 공연기획을 전공했지만, 실용음악 쪽으로 와서 느낀 것은 용어의 괴리감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클래식과는 다른 재즈 용어, 대중음악 용어 등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도 ‘버스킹(길거리 공연)’, ‘사비(후렴구)’등의 흔히 쓰는 용어들을 쓰지만 용어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요구하면, 확답을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렇듯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대화할 때 소통 문제가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클래식을 전공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대중음악을 가르칠 때 한계가 있어요, 특히 용어 설명이나, 악기 다루는 것에서 대중음악을 잘 모르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괴리감으로 교육이 힘들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요즈음 실용음악 학과 경쟁률을 보면 가수 즉 보컬이 100대 1의 경쟁률을 보입니다. 이 아이들이 예전에는 보통 고2 때부터 입시준비를 했다고 하는데,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중2 때부터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점점 경쟁률이 높아지는 이유는 방송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고 한류의 영향도 있어 학생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보다 부모님들의 관심도 높아져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도 합니다.

박문영 가수들이 저를 찾아와 건네는 음반을 들어보면 음정도 안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한 가수도 물론이구요. 기본 음악 공부는 반드시 클래식 전공한 분들에게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음악 교육이 힘든 것은 교육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국은 보수적인 도제식 교육의 전통이 아직 내려오고 있습니다. 음악의 생산지인 미국은 대중음악과 고급음악 사이의 벽을 두지 않습니다. 클래식을 배운 사람들이 재즈도 하고 피아노 전공한 사람들이 콘체르트도 하는 식이죠. 클래식 음악을 하는 분들이 훨씬 더 기량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대중음악을 흡수하면 우리 한류음악의 기초가 탄탄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한류 음악은 불안합니다. 여러 음악 중에서 컴퓨터에서 나오는 종류의 음악만 나오고 있습니다. 30여종류의 음악 가운데 한류 음악은 딱 한 장르만 인기가 있습니다. 음악의 바탕이 없이 어느 순간에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한류입니다. 저는 이런 것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어 염려됩니다. 음악에 있어서 음정박자는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런 기초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최근 강원도 교육청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곡을 요청하여 <에듀케이션>이란 곡을 만들어 세계 평화시민교육 페스티벌 무대에서 공연한 실황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초등학교 5~6학년 음악 선생님과 녹음을 했는데, 한류 아이돌 음악처럼 곡에 랩(Rap)이 들어가는 댄스음악으로 편곡한 것을 어린이들이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준비과정이 힘들고 괴롭지만 이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음악 선생님도 덩달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에도 이런 대중음악 교육이 시작돼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은미 그런데 정작 어린이들은 클래식 전공자가 아닌 ‘가수’에게 수업을 받고 싶어 합니다. 유명한 가수가 출강하면 그 가수에게 몰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악순환이 되고 있습니다.

박문영 기초가 없으면 무너지는데 아이들은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이죠.

이은미 악보를 잘 보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정말 심각한 거죠.

박문영 거의 대부분 못 봅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시키고 클래식을 가르쳐야 합니다.그렇게 연결시켜야 나중에 실용음악 부문에서도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조용환 저는 우선 교육 대상 주체를 분명히 했으면 합니다. 학생과 청소년의 구분은 있어야 합니다. 학생 뿐 아니라 학교를 다니지 않는 독특한 연령층이 존재합니다. 청소년의 발달 정체성은 ‘홀로서기’입니다.

청소년의 ‘자립’은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청소년기의 질풍노도는 대개 성인들과의 충돌에서 생깁니다. 성인의 세계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할 때 생기는 현상이죠. 학교교육은 교과학습입니다.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가정이나 사회에서 라디오 또는 방송에서 체험하는 이른바 사회적인 과정의 학습은 문화학습입니다.

어쩌면 모국어 학습과 외국어 학습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모국어는 환경 속에서 살면 습득할 수 있는 것으로 문화학습입니다. 교과학습은 외국어 학습처럼 학교에서 배웁니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보다 원초적으로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학교에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교사는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학교 교과학습으로서의 음악과 대중매체에서 청소년들이 접하는 또래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우는 음악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음정 박자가 맞지 않다, 기초가 안 되어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재즈든 뭐든 다양한 장르에서 “음악다운 것이 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때, 현상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자유변경’을 통한 본질 직관1)을 추구한다고 보면, 클래식뿐 아니라 민속음악, 토속음악, 실용적인 음악 등 다양한 음악의 체험을 통해 음악을 배워야 합니다.

인류학적으로 대중 미술, 대중 수학, 대중 과학, 대중 공학, 대중 의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과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려해 본다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한 음악과 대중으로서의 학생을 위한 음악을 한 잣대로 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어떤 음악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는 ‘음악이 다른 세계와 시장을 접할 때 생기는 산출’과 다른 차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 안에서 한류를 논의할 때 한류문제를 ‘논의의 계기’로 삼을 수는 있지만, 한류문화(대중문화)와 학교교육을 섞어서 논의하기는 불편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1) 현상학(現象學)에서 사물을 비교해 인식하는 것이 아닌 본질을 인식(認識)하는 것.

<최영민 숙명여대 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에 참여해 대중음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치원 기자>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절제할 수 있는 교육 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사회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클래식 노래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가요는 즐기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최영민 아이들이 클래식보다는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기는 성장과정에서 굉장히 감성적이고, 동적인 연령입니다. 클래식이나 미학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은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정적이고,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삶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의 표현을 아이들이 심취하기에는 이성적 성장이 부족한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삶의 의미를 생각하거나 사회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지는 정신적 성장보다는 육체적 성장이먼저 되기 때문에 감각적이고, 동적인 리듬을 타는 활동적인 것에 매력을 느낍니다. 클래식을 대중음악처럼 리듬을 간소화한다든지 율동에 맞춘다든지 하는 시대적인 교육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은 생각을 바탕으로 클래식을 이해하고 매력을 느끼기 까지는 단계적 교육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런 경험이 없이 클래식을 경험하다보면 몸은 성인이지만 청소년과 다를 바 없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피어프레셔(peer pressure) 현상’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100명의 학생들 중 몇 명의 아이들이 클래식에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고 주변의 친구들이 대중음악에 심취해 있기 때문에 공동체 사회에서 자신의 클래식 음악 기호에 대한 표현을 하는 것에 어색해하는 그런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의 밀집된, 견고한 학교 공동체 문화 안에서 타인과 다른 취향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클래식도 대중음악과 같은 동등한 위치에서 향유해야 하는데 학교 선생님들조차도 대중음악과 클래식에 차별성을 두고,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절제할 수 있는 교육 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합니다.

백재연 대중음악은 쉬운 음악입니다. 그래서 ‘대중’이거든요. 그런데 클래식 음악은 어렵습니다. 긴 역사의 산물이고, 처음에는 궁중음악으로 시작이 된 귀족음악입니다. 쉬운 음악이 아닙니다. 문화를 공유하는 세대들에게는 대중음악이 쉽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대중음악을 만드는 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연구를 해서 나오는 산물이기 때문에 훨씬 더 쉽게 와 닿는 것이죠.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중음악은 어릴 때부터 TV나 스마트 폰으로 쉽게 접하는 반면 클래식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회 대중음악이 클래식보다 질이 낮거나 대중음악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의 출발선이 낮은 것인지 아니면 대중음악 자체가 클래식 음악에 비추어서 본질적으로, 또는 미적 수준으로 등급이 조금 낮은 음악이라고 볼 수 있나요?

백재연 바라보는 깊이는 다른 것 같습니다. 현재 유행하는 음악이 클래식의 깊이보다는 역사가 짧기 때문에 그 부분이 보완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육할 때 초점을 클래식과 다른 데 맞추고 있고, 환경이 바뀌는 것이지 질이 낮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사회 클래식이나 대중음악이 인간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 예술적 취향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면 ‘클래식만 공부한 학생’과 ‘대중음악만 계속한 학생’,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음악이 미치는 심성이나 질적 수준, 정서적 순화의 정도가 동일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백재연 심성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차이를 심성이나 수준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영위하는 문화도 언젠가는 과거가 되기 때문에 나중에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릅니다.

학생들의 질이 낮다는 뜻은 클래식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음악을 오래 공부해 왔기 때문에 당연히 음정과 박자가 정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음악을 공부하려고 오는 학생들은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왔기 때문에 이 둘을 절대적인 수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박문영 클래식은 따분하지만 이해를 하고 들으면 재미있습니다. 클래식이건 대중음악이건 질의차이는 없다고 보지만 대중음악은 태어나자마자 듣고 자라기 때문에 커서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대중음악은 템포가 느리고 따분한 클래식 음악보다는 빠르고, 자극적이며 창의적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그러나 대중음악 한 장르만 즐기는 것보다는 학교에서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민속음악에서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해야 되지만 아이들이 싫어해 교육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백재연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세계음악 섹션으로 아프리카 음악 등의 다양한 음악이 실려 있습니다. 또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과목이 있어서 교사 재량으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수업도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다양한 음악을 감상하기도 합니다. 또 체육 교과 과정에는 방송댄스도있습니다. 이렇듯 예전에 비해서 학교가 대중문화와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백재연 서울교대 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에 참여해 대중음악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치원 기자>

한류문화의 교육적 가치, 예술적 가치는?

사회 최근 한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류 행사에 K-pop 가수를 보기 위해 1만 3천여 명의 팬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K-pop의 무엇이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것일까요? 한국의 가수에게 외국인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최영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그들이 접하지 못했던 동양적인 문화 성향이 이국적으로 보이고,또 인간이 일사분란하게 하나의 음률에 맞춰 동작을 표현을 해내는 것을 이전에는 전혀 보지못했던 것이죠. 본인들은 꿈꿀 수 없는 무대를 보고 빠져들게 됩니다. 이러한 한류가 국익의 향상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줬다고 봐야죠.

문제는 K-pop 스타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공교육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립니다. 24시간 기숙하며 3년 동안 연습실에서 기계처럼 훈련받습니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오로지 출세하겠다는 일념으로 원조 한류스타들의 영광을 흠모하면서 스타가 되기를 꿈꿉니다.

이렇듯 끼가 있는 아이들이 몰입하는 현상속에서 경제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적 작품이라고 봅니다. 인간이 표현하는 범위보다도 극렬한, 기계적이며 역동적인 예술로 무장된 스타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수준으로 올인을 해서 교육시키는 과정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똑같은 교육을 프랑스에서 한다면 당장 인권위원회에 고발당하거나 국가의 저지를 받게 될 겁니다.

사회 프랑스, 일본 뿐 아니라 가수 싸이의 춤과 음악에 미국의 아이들도 빠져들고 있는데 한류가 그런 종류의 춤이나 음악을 대량생산하는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우리 사회 문화 풍토가 주는 의미나 정서교육, 교육적 가치, 예술적 가치로 볼 때 한류문화는 어떻게 봐야할까요.

최영민 저는 한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과는 상반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스포트라이트를받고 있는 한류스타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성장과정은 사회 속에서 정상적으로 느끼고 공유하면서 배우지 못하고 마치 기계처럼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한류 관련 보고서를 보면 한류 스타들의 행복지수가 일반인들보다 불행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적 배려 없이 이들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거론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사회 문제는 한류 스타들뿐 아니라 그들의 문화에 휘말리고 있는 대중은 또 어떠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 영국의 비틀스는외화를 벌어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K-pop이나 가수 싸이도 우리 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훈장을 줘야 된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조용환 비틀스는 한류와 다른 차원일 수 있는 것이, 비틀스의 음악은 당시의 시대 환경과 맞물려 있습니다. 음악 또는 음반 시장이 활발했던 1850년에 비틀스는 음악 외적 차원들과 결합됩니다. 비틀스 분위기 자체가 민권 혁명과 히피의 저항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당대의 주류 음악 코드가 춤과 같은 동적인 결합에서 이전의 것들과 달랐습니다.

비틀스가 음악 외적인 것에서 우리 생활 속의 많은 장면들과 결합돼 거리로 나왔습니다. 비틀스의 음악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열어줬습니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사회, 지배적인 음악 예술에 대한 도전이 있었습니다. 비틀스의 음악이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할 때, 음악 자체의 사용가치(음악 들으며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 등의 가치)에 더해져 교환가치나 상징가치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은 시장이 만드는 것으로 음악적 측면으로서만 얘기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K-pop의 특징은 거의 기계적인 훈련으로 만들어집니다. 또 소비만 글로벌한 것이 아니라 음악의 생산과정도 이미 글로벌합니다. 한국 사람만이 한류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해외에서 외국인들과의 교류로 음악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지금 한류 음악의 주류인 댄스뮤직을 이전에는 몸과 노래가 결합되는 것이 천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싸이의 음악도 가사에 리듬을 녹입니다. 음악과 몸과의 결합, 비틀스에게도 K-pop에도 뭔가 있죠. 아이돌이 군무나 싸이의 독창적인 몸짓(이들은 음악 못지않게 몸짓을 연구한다)은 대중도 따라한다거나, 흉내 내고 싶은 열망을 K-pop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죠.

블루오션 시장과 기획사의 마케팅 전략의 결합이 통한 것입니다. 대중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민속음악도 당시에는 대중음악이었습니다. 대중음악이 당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거나, 저항하는 정신에 부합돼야 하는데 클래식은 비교적 영속성을 가지고 생명이 길어지는, 초월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당대 사회를 초월한 깊이가 있고, 음악의 본질을 구현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고급적이라고 하여 귀족들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음악이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깊이를 추구한 것입니다. 민요나 판소리도 수련을 합니다. 클래식도 유럽의 궁중음악이라고 하지만 당대의 대중음악입니다.

문화라는 것은 길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 환경 자체는 클래식보다 지배적인 시장 환경입니다. 인류학적 예로 인디언 보호구역을 설정하기 전에 토속음악, 의례음악을 들으며 조상에 대한 영적인 정신을 느끼고 살았던 아이들이 보호구역에 학교가 들어오면서 점점 토속음악을 들을 기회가 줄어들고, 아이들을 마을에서 분리시키면서 또래들의 압박으로 다양한 음악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어 오히려 음악에 대한 편식이 생기고 자기도 모르게 그 음악에 길들어져버립니다.

근대 산업혁명 속 대중음악과 지금의 정보혁명기 속 대중음악은 그 속성이 다릅니다. 지금 모든 기계 음악을 멈추고 악기만으로 음악을 하라고 하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대중음악은 기계화, 디지털화되고, 이 디지털 음악으로 음악적 변형이 다양해졌습니다. 한류가 1970년대 음악에 비해 온갖 기계적 장치, 음악 외적인 많은 공연 장치, 마케팅 장치들이 들어간 음악만 소비하고 있습니다.

<조용환 서울대 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에 참석해 고급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치원 기자>

학교가 대중문화를 격리시킨 것은 아닐까?

사회 고급문화 의미를 가지는 ‘High Culture’는 옛날에 귀족들이 즐기던 문화이고, 음악을 두고 말한다면 작곡하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대중은 감상만 하고, 소비하는 사람이죠. 그러나 대중문화는 이건 그냥 내가 호흡하는 거란 말이에요. 내 생활 속에서 호흡하고, 생산하는 사람이 별도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안 그런 사람도 있단 말입니다.

학교는 대중문화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중문화는 학교 밖에서 놀고 있고, 학교가 고급적인 것을 뽑아서 가르치고 있으니까 이 두 개가 분리돼 버렸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음악과 생활 속에서 호흡하는 음악이 다릅니다. 두 가지를 교육 제도가 분리시킨 것이죠.

이은미 먼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로 용어를 구분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교육을 하면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을 고급과 저급으로 나누지않습니다.

사회 대중음악이라고 해서 다 퇴폐적이고 저질이 아니라 그중에 아주 질 좋고 좋은 것들은 학교가 골라서 교육해야 대중음악에 대한 평가 기준도 서고, 대중음악 자체가 발전할 수도 있고, 또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도 달라질 것입니다. 대중음악 자체를 내버려 두면 퇴폐적이고, 저질화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용환 클래식도 당대에는 대중문화로서 퇴폐적이라고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사회 우리도 과거엔 서양의 민요와 음악은 고급스럽고, 우리민요는 저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재연 지금은 교과서에 국악이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요. 국악하는 분들이 예전에 비해 교과서 쓰시는 데 참여를 많이 합니다. 제 생각에 대중음악은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이 맞고, 그래서 지금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 학교교육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현재를 반영하고 있는 교과서들이 많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코드나 음계 등의 기본적인 요소가 예전 서양 음악을 기초로 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발전해오면서 어떻게 음악을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수법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것이 서양 음악이기 때문에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서양음악을 많이 사용합니다. 문학작품도 지금 재밌는 소설들 많잖아요. 그런 것이 교과서에 다 실리는 게 아니잖아요.

오랜 기간 동안 셰익스피어라던가 괴테 등 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있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작품들이 교과서에 실립니다. 음악도 그런 의미에서 대중음악 보다 많다는 거지 교과서에서 배제하지는 않고, 특히 지금 추세는 훨씬 더 가까워지려고 하는 단계입니다.

사회 대중음악이 클래식 음악에 비해서 교육효과가 떨어지나요?

박문영 그 점은 딱 정해놓고 얘기할 수는 없겠죠. 많이 알면 더 즐거운 것이거든요. 이집트 여행할 때도 그것을 왕조별로 알면 하나하나 볼 때마다 감동이 배가 되는데, 그것을 모른다고 해서 이집트 여행을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냥 봐도 좋을 수 있어요. 그것은 딱 정해놓고 얘기할 수는 없는 거죠.

백재연 서양음악은 오랫동안 발전해 오면서 나온 산물이기 때문에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교과서에 기본적으로 녹아들어가 있어 음악교육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사회 클래식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것은 귀족사회가 기여한 부분입니다. 귀족사회가 클래식을 좋아하고, 즐기며 교육했던 것이 이어져 내려온 결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박문영 고전음악은 인간문화재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기본으로 교육을 해야 합니다. 코끼리가 멸종되면 다시 만들 수 없듯이 클래식은 기본적으로 가르쳐야 하고, 대중음악은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합니다. 현재 음악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학교에서 풀어서 가르쳐주는 과정이 있어야 청소년들이 현재음악을 이해하고, 분석하여 어떤 것을 즐길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 최근 'K-pop 학교'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인력 양성을 해야 되니까 또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학교를 세워서 가수의 역량을 키우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계적으로 가수를 양산하는 문제도 있지만, 대중의 소비생활도 잘 감시해야 된다고 봅니다. 공교육의 일차적 대상은 문화 생산자가 아니라 문화 소비자입니다. 소비자 교육이 더 잘돼야 비평수준도 높아지고 소비자의 수준도 높아지게 되겠죠.

<박문영 '독도는 우리 땅' 작곡가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에 참석해 한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한치원 기자>

가르치려는 것보다 다양한 체험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 현재 우리 대중문화의 질을 계속 높여갈 필요성은 있다는 말씀인데요. 대중문화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학교교육이 맡아야 할 역할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최영민 냉정하게 보면, 현재 학교교육에서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교육하지 않았던 결과가 현재의 대중문화의 수준이라고 봅니다.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 대중문화의 주류가 학교교육에 의해서 발생된 백 그라운드가 아니란 말이죠.

학교교육에 의해서 ‘대중문화를 선도해야겠다’라든지 ‘대중문화의 또 다른 면을 발굴한다’라든지 하는 노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재고시키기 위해 교육적으로 어떤 변화를 줬을 때, 이 변화가 한류의 근간이 된 대중문화의 파워가 ‘유지될 것인가’, ‘소멸될 것인가’ 고민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결론은 학교가 그 역할을 잘 맡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의 방향성은 분명하지만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문화가 창의적이고 생각하는 힘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예술의 결정체 아니겠습니까. 그런 결정체를 제도 안에서 조절하려고 한다든지 정부가 문화융성을 이유로 문화의 일정부분을 정책이 요구하는 대로 이끌고 가면 그 길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부산영화제’가 최근 여러 가지 문제들을 드러내듯이, 정책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공교육과 대중문화의 연계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문제입니다. 문화는 자의적이고, 자발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창의성을 보존할 수 있는 여건을 국가가 어떻게 만들어 주느냐 그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문화가 교육과 연계를 하면 과연 시너지 효과가 될 수 있는가는 문제는 심사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타협이라는게 있습니다. ‘본드’(클래식 크로스오버 연주 그룹)라는 4인조 여성 클래식 밴드는 본래 고급문화인 클래식에 섹시코드를 입혔습니다. 이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가 믹스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팝과 오페라가 어우러지는 ‘팝페라’라는 것도 있는데 이런 것이 좋은 현상으로 볼 수도 있는가요?

백재연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탄생한 장르지만 클래식은 대중화될 수 없어요. 영유하는 사람을늘릴 수 있지만.

사회 아마도 클래식의 대중화는 질적인 변화보다는 클래식을 즐기는 층이 소수에 한정되지 않고 대중적으로 확산된다는 양적 변화를 말하는 것일 테지요. 클래식 자체의질을 변형시켜서 대중음악의 형태로 조합을 하는 것은 어떤가요?

백재연 문화라는 것 자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대중문화를 가르친다면 언제 효과가 날지 모르기 때문에 기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음대에 다니는 학생들도 그중에 몇 명만 전공을 하고 나머지는 소비층이 됩니다. 소비자의 수준이 높아지면 생산자의 수준도 높아지기 때문에 학교교육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소비자의 수준을 높여주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소비자가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있으면 창작자의 수준도 당연히 높아지는 거죠.이런 다양한 소비층을 생산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다 보여주고 들려주고 기회를 주는 것이 학교교육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조용환 대중문화의 성격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는데, 그중 하나가 대중(大衆)이 아닌 다중(多衆) 즉 멀티 튜브라고 합니다. K-pop이 1만 3천 명 모인 일화에서 양적으로 많아보일지 몰라도 한류는 불안정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다중성의 속성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우리가 대중문화 이야기를 옛날에 하던 방식으로 계속할 것인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초중고학생들이 음악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과학하는 사람들이 과학교육을 하듯이 음악의 본질과 가장 음악다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은 꼭 탐색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정보혁명시대에서는 매스(Mass)적인 양 개념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다중성으로 보아야 합니다. 대중음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대중음악을 교과에 가져올 것인가 하는 논의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 대중음악을 학교로 가져오면 창의성이 죽어버린다는 건가요? 대중음악을 교과에 가져 온다는 것을 ‘노래 부르기, 노래짓기 등의 활동, 흔히 음악시간에 노래 가르치듯이 한다’는 의미보다는 ‘대중음악의 장르를 학습경험의 내용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즉 ‘감상하고 즐기고 비평하고 하는 등 학습경험의 기회를 가진다’는 의미로 본다면요?

조용환 학교는 대중문화의 질을 높이거나 낮추는데 관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관여해서도 안되고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학교의 문화교육은 음악인류학적 또는 비평적으로 접근해 봤을 때 학교가 사회를 따라갈 필요가 없고, 속도가 늦다고 하더라도 한 걸음 뒤에서 이를 통찰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나 학교가 급변하는 것을 따라가는 장치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음악적 취향은 굉장히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의 음악 교육은 이런 음악적 취향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악이 지향할 바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는 전문 음악학교가 필요합니다. K-pop 인력을 양성하는 학교는 전문 양성소 개념인 거죠.

사회 조용환 교수님 말씀대로 장르의 다양성, 취향의 다양성에서 ‘다양성’이라는 것이 허용되었을 때는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다양성에는 급변성이 따릅니다. 변화를 주도하는 건 젊은이들입니다. 학생이 교사보다 변화의 상황에 훨씬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그리고 변화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교사는 변화의 변방에 서있어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변화를 구경만하는 사이에 상황이 흘러가 버립니다. 자연의 상태로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둘 것인지, 교육적인 관점에서 변화를 주도할 것인지는 교육적 딜레마입니다.

실제로, 예컨대 대중문화를 자연상태에 둘 때, 거대자본이 관여하면 상업주의에 의하여 저질화 되거나, 정치적-사회적 세력이 작용하면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작용으로 정치도구화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방치는 교육의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는, 고급문화든 대중문화든 필요한 만큼, 적절한 차원의 교육적 경험을 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최영민 덧붙이자면 안하는 게 아니라 ‘하되’ 학생들이 이성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핵심입니다.

박문영 수업 중 유튜브에 음악을 올리는 것을 했는데 학생들이 좋아합니다. 한 대학교를 가보니 걸그룹, 아이돌그룹 동아리들이 30개나 됐습니다. 대세인 것이죠. 교육현장에서 유튜브와 비슷한 플랫폼을 하나 만들어주면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희열을 느낄 수 있고,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이 경험을 살려 나중에 비즈니스 사업할 때도 유용할 것입니다. 학생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있고, 또 학교별로 경쟁도 될 수 있는 이러한 경험들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조용환 ‘학교교육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저의 답변은 교사가 변화를 앞에서 이끌어 가는 것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아이들의 곁에서 또는 뒤에서 조언을 해주고 음악에 관한다양한 체험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은미 대중문화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산자들이 많은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질적인 것은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일단 보여줘야 하며, 장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나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교과서를 분석해보면 음악의 장르에대한 자세한 소개가 안 되어 있습니다. 교과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순수 클래식 전공자가 많은데 교사들도 다양한 장르를 알아야 소개를 해 줄 수도 있고, 바뀌어 가는 환경에 맞춰 교육할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교사들이 연수 등을 통해서 이러한 환경에 발맞춰 교육을 받고 싶다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대중음악에 대해 교사들의 교육 또한 앞으로 보완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사회 이번 토론으로 학교가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교육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노력하는 계기가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