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희의 인성교육] 제5강 좋은 경쟁과 나쁜 경쟁
[이돈희의 인성교육] 제5강 좋은 경쟁과 나쁜 경쟁
  • 서혜정 기자
  • 승인 2016.08.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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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경쟁과 나쁜 경쟁, 논쟁식 토론을 중심으로

토론과 경쟁의식

교육의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여러 가지의 경쟁을 경험한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은 대학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누구나 불가피하게 치러야 한다. 적절한 경쟁적 분위기, 흔히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는 것은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거나 참여자의 성장을 촉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스포츠나 게임에서는 참가자들이 경쟁 그 자체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물론 불필요한 경쟁이 아니라면, 좋은 경쟁과 나쁜 경쟁의 평가는 대개 추구하는 목적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경쟁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필요한 경쟁도그 과정이 잘못된 것이면 젊은이들의 성장에 무익할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고, 때로는 치명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학교 상황에서 흔히 있는 직접적인 경쟁은 스포츠 활동이거나 어떤 식의 게임(혹은 놀이) 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정규의 수업이나 과외활동에서 이루어지는 토론활동에서도 일종의 경쟁을 경험하는 좋은 학습의 장을 볼 수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토론’과 ‘토의’라는 두 단어는 의미상 매우유사하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구태여 꼭 구별을 하고자 한다면 이런 정도를 밝혀 볼 수가 있다.

우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토의’라고 한다. 그리고 이야기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의견의 차이가 있고 서로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시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을 때, 이러한 분위기는 ‘토론’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별로 확연한 의견의 대립이 없는 이야기, 대화, 혹은 담론의 수준인 토의를 하다가도 서로가 다소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의견의 대립을 보이는 토론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고, 격렬한 토론을 하다가도 조용한 토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을 ‘토의’라고 하고 어느 순간을 ‘토론’이라고 할 것인가를 구별하기가 때로는 매우 어렵고, 이런 경우에 둘을 반드시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토의는 약간 느슨한 토론이라면, 토론은 약간 긴장된 토의라고 할 수도 있다.

토론은 어떤 의미의 경쟁적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사람들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두고 의견이 대립되었거나 분분할 때도 토론(혹은 통의)을 한다. 토론은 옛날부터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함께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거나, 진실 여부를 엄격히 검토하는 방법으로 사용해 왔다. 토론을 질서 있게 잘 진행하면 문제를 푸는 길을 함께 찾아낼 수가 있다. 그리고 어떤 주장이나 이론의 타당성 혹은 확실성의 여부를 밝히고자 할 때도 토론을 한다.

물론 토론을 통하여 해결하거나 밝혀낼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비록 해답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결을 위한 올바른 가닥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토론은 이와 같이 문제해결의 방법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전개되기만 하면 우리의 일상생활, 사회생활, 학습활동, 연구 활동 등에서 문제해결의 좋은 열쇠가 될 수 있다.

형식적 토론과 비형식적 토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토의’ 혹은 ‘토론’을 하면서 살아간다. 심각한 것이든지 하잘 것 없는 것이든지 간에 이야기하는 주제가 있고,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있으며, 그 주제나 문제를 두고 다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 있다면, 우리는 토의 혹은 토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때로는 조용한 어조로, 때로는 격렬한 어투로, 때로는 서로 협조적인 태도와 자세로, 때로는 서로 공격적인 표현과 몸짓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문제가 잘 해결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행되어 더욱 복잡해지고 해결하기 어려운 경지로 빠지는 사례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싸움판으로 연결되는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연적으로 시작하게 되는 토론에서는 자주 감정대립, 인신공격, 폭력사태 등과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런 일은 왜 생기는가?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즉, 일상적 대화나 언쟁에서는 효율적인 토의나 토론을 하는 데 요구되는 ‘합의된 규칙’이 명확하게 없거나 이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토의나 토론의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올바른 규칙이 없으면, 우기는 사람이나, 목소리 큰 사람이나, 힘센 사람의 주장으로 결론에 도달한다. 아니면 끝없는 언쟁, 때로는 끝없는 비난과 욕설을 하면서 서로 싸움을 하게 될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 말리는 사람이 없으면 싸움은 끝없이 계속된다.

물론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토론에서도 주제에 관한 생산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문제를 진지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 서로가 공유하는 규칙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합리적인 문제해결을 할 수가 있는가? 이 경우는 비록 이야기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 공식적으로 약속하거나 명시적으로 확인된 규칙은 없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그들이 서로 성의를 다하여 노력하면서 지키려는 ‘암묵적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암묵적 규칙으로 우리는 이런 것들을 들 수 있다. 즉, 상대방의 인격, 가치관, 자존심, 지위, 권위 등을 모독하거나 손상하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든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명료하게, 조리 있게, 불쾌하지 않게, 차근차근하게, 겸손하게, 신뢰를 보이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자 한다든가, 상대방의 발언을 방해하지 않고 인내를 다하여 끝까지 듣고자 하는 성의가 있어야 한다든가, 발언을 독점하여 중언부언(重言復言)하면서 장황하게 말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

우리는 수시로 크고 작은 토론을 하면서 살아간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부부 사이에도, 형제나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도, 때로는 모르는 사람과도 우연히 토론을 해야 할 일이 발생한다.

일상적 상황에서 토론을 효율적으로 하는 사람은 다른 상황, 예컨대 공공적 사업이나 학술적 연구에서도 좋은 토론자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토론의 능력과 자질을 학습하여 잘 훈련된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나 세련된 토론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토론을 제대로 할 수 있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되도록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협조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지니는 것은 사회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교양 있는 시민의 중요한 기본적 자질에 속한다.

적어도 사회적인 삶, 조직의 삶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토론에 수시로 임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상대하는 가족, 친구, 친족, 동료, 이웃과의 사이에 불화가생기고, 반목하고, 적대하는 관계가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대개 대화와 토론의 암묵적 규칙의 내면화, 즉 규칙의 가치에 대한 인식과 이를 실천하는 습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데 연유한 것이기도 하다.

거칠고 무례한 표현이나 악의적 언사를 무책임하게 내뱉은 결과는 예상치 않은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대화(토론)를 바르게 하지 못한 결과이다. 물론 이러한 암묵적 규칙의 내면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개 교육이나 경험을 통하여 기회 있는 대로 명시적 규칙들을 체계적으로 학습하여 습관화되면, 일상생활에서의 대화나 토론에서도 그 규칙들이 암묵적 수준에서 작용하여 논쟁이나 토론의 세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교육받은 사람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바로 토론을 제대로 할 줄 안다는 것이다. 비형식적 토론에 비하여 ‘형식적 토론’은 종국적으로 토론의 상대방이나 제3자의 동의, 혹은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내려는 전략으로 진행되며,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토론의 성격에 따라서, (1) 결론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 여러 가지의 의견을 수렴하는 ‘협의식 토론(conference)’, (2) 결론을 유보하면서 온갖 의견들을 수렴하는 ‘뇌뢰식(腦雷式) 토론(brain-storming)’, (3) 결론을 유보하면서 반대 혹은 대립의 의견을 공격하거나 비판하여 이를 물리치려는‘논쟁식 토론(debate)’, (4) 결론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 적대적 관계에 있는 대상을 상정하는 ‘음모식(陰謀式) 토론(conspiracy)’ 등이 있을 수 있다.

위의 네 가지 중에서 교육적으로 중요하게 고려해 볼 수 있는 형태는 협의식 토론과 논쟁식 토론이다. 일상적으로 ‘토론’이라는 말이 다소 느슨하게 사용될 때는, 대체적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보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해결의 방법을 위하여 여러 가지를 함께 검토하면서 의견을 모으는‘협의’ 혹은 ‘논의’를 뜻한다.

그러나 다소 엄격하게 사용될 때, ‘토론’은 어떤 사상, 이론, 정책, 의견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로 양분된 상태에서의 경쟁적, 비판적, 공격적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는 ‘논쟁’을 의미한다.

‘협의식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문제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어떤 발언이나 주장도 허용된다. 예컨대, 어느 학급에서 소풍의 목적지를 협의하는 경우에 누구든지 좋은 곳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의견으로 제시해 볼 수 있고 왜 좋은 곳인지의 이유를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주장 혹은 의견이 다른 누구의 의견과도 반드시 대립하지 않아도 좋으며, 어떤 의견에 대해서 꼭 논박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다른 의견을 반대하고 논박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 대상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반대나 논박도 자신의 주장을 펴는 과정에서 우연적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문제는 긴박하게 해결해야 하지만 의견이 분분할 때, 대개 교사나 사회자는 토론을 인위적으로 종결시키고 다수결로 결정한다든가, 아니면 어떤 권위에 해결을 위임해 버리기도 한다. 협의식 토론은 집단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반영하고자 할 때 흔히 취하는 방식이다. 난상토론(爛商討論)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에 비하여 ‘논쟁식 토론’은 주제와 문제의식과 규칙이 매우 명시적이고 체계적인 토론의 형식이다. 논쟁식 토론에는 ‘안락사는 합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어떤 문제나 의제에 대하여 찬성론과 반대론이 있다. 양론이 서로 상대편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공격하면서 자기 측 주장의 타당성 혹은 정당성을 명확한 증거와 엄격한 논리로써 입증하고 상대를 승복케하려는 전략과 기술을 동원한다.

대립된 주장의 공격과 방어가 본격화되면, 참여자의 사이에는 그 동기나 집념이 강하게 유발되고, 논리의 엄격성과 사실의 확실성을 내세우면서 집요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논쟁식 토론도 아무런 준비가 없이 즉흥적으로 시도하는 것은 학습효과와 관련해서 볼 때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거기에는 합의된 규칙이 없으므로 발언의 기회가 공정하게 관리되지 않으며, 주장의 타당성과확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임의적이어서 성공과 실패를 분별하기 어렵다.

논쟁식 토론을 교육적으로 활용코자 할 때, 대개 (1)하나의 문제를 두고 (2)상반된 의견을 가진 양측이 동등한 의견진술의 기회를 가지게 하는 것을 기본적인 조건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논쟁식 토론에서는 학생을 크게 두 집단으로 나누고 한쪽이 어떤 문제에 대한 의견을 펴면, 다른 쪽이 반론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게 된다.

찬성론이나 반대론은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정연한 논리로 조직하고 설득력 있는 논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여야 한다. 찬성론과 반대론의 지지자들은 이에 참여하여 토론을 활발하고 생산적이게 한다. 발표는 사전에 준비된 내용으로 하게 하여야 학습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논쟁식 토론에 임하는 자세

모든 경기 혹은 시합에는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경기 혹은 시합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토론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그것에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다투어 이겨야 하는 경기 혹은 시합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참여한 사람들은 정해진 규칙을 준수할 것을 전제로 토론에 임하게 된다.

자신에 대하여: 첫째, 토론하고자 하는 제목에 대하여 열심히 연구하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관하여 충분히 알기 위하여 성의 있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토론의 장에서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듣고 적당히 말싸움이나 해서 요행으로 이기겠다는 자세는 올바른 토론자의 자세가 아니다. 상대방은 많은 것을 공부하여 토론의 장에 나왔는데, 나는 별다른 준비 없이 참여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행동이다.

둘째, 토론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과 성의를 가지고 임하여야 한다. 내가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거나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있는 것이 아닌데 토론의 장에 나가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잠깐 관심을 가져보는 것으로서는 좋은 토론을 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내가 시간과 노력을 바쳐 공부해 보고 공부한 것을 나름으로 익히고 소화하면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또한 앞으로 주변이나 사회의 공동체에 무엇인가를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공부하고 생각하고 토론할 가치를 충분히 지닌 분야라는 확신이 있어야 좋은 토론을 할 수 있고 그 결과도 유익할 수가 있다.

셋째, 강압이나 폭력(혹은 폭언)보다는 설득을 통하여 대립된 생각이나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토론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순리로써 해결하면서 살겠다는 사람들의 방법이다. 강압, 폭력, 협박, 사기, 회유 등의 비합리적 방법에 의존하려는 습관을 가진 사람과의 토론은 불가능한 것이다. 토론은 민주적 삶의 방식이며 그 능력은 바로 민주적 시민의 기본적 자질에 속한다.

넷째, 토론에서 이길 때도 무엇인가를 배우지만 질 때도 많은 것을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여야 한다. 이길 때는 자신이 준비하고 생각하고 진행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질 때도 똑같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이기고 지는 것은 상대방과의 논쟁 끝의 결과이다. 토론에는 상대방이 있다. 상대방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고, 상대방이 공부한 바를 보여 주며, 대결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함께 경험하게 한다.

이기고 지고에 관계없이 토론자는 그가 성실히 거기에 임하였다면 이미 많은 것을 공부한 셈이다. 그러므로 이길 때는 너그러운 승자가 되고 질 때에는 명예로운 패자가 된다는 자세로 임하여야 한다.

타인에 대하여: 첫째, 비록 의견을 달리 하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자세는 토론자의 기본적 자질에 속한다. 실제적 토론활동은 참여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하여 시작하고 또한 그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자유와 상대방의 자유는 경우에 따라서 서로 충돌할 수도 있으므로 서로가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상대방에게 욕설을 한다거나 협박한다거나 하여 자유로운 발언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토론의 상황이 아니다.

둘째, 자기 팀에 속한 동료는 말할 것도 없고, 상대 팀에 속한 사람, 토론을 지켜보는 청중, 그리고 심판, 지도교사, 진행자 등 토론의 모든 관계자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비록 토론의 대상은 상대 팀이지만 토론은 단지 토론의 당사자, 즉 서로 대결하고 있는 두 팀의 사이에서만 이루지는 것은 아니다.

청중, 심판, 진행자, 그리고 토론 팀의 관계자 모두가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의 역할을 무시하면 결코 공정하고 합리적인 토론이 진행될 수가 없다.

셋째, 내가 전개하는 논의와 증거, 그리고 상대방의 논의와 증거에 대하여정직하여야 한다. 자신이 전개하는 논의와 제시하는 증거는 비양심적으로 날조된 것이거나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인 양 우기거나 과장하지 말아야하며, 자신이 그렇듯이 상대방의 논의와 증거도 성의를 다하여 정직한 것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물론 실수에 의하여 오류가 있고 잘못된 증거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의도적인 것이 아니어야한다.

넷째, 경험이 부족한 동료나 상대에 대하여는 친절히 도와주려는 자세를 취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내 편에 속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에 속한 토론자가 경험이 부족하여 혹은 실수로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펴지 못하거나 의도와는 달리 잘못된 방향으로 발언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 이기고자 노리는 것은 좋은 토론자의 자세가 아니다. 때로는 기다려 주고, 때로는 친절히 바로 잡아주고, 때로는 표현을 도와주는 것은 서로 경쟁하는 상대방에게 베푸는 미덕일 수가 있다.

토론의 능력과 공민적 자질

토론은 표면상으로 볼 때 ‘말의 잔치’인 것 같지만, 결코 말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말 자체의 논리, 말에 담겨져 있는 진실성, 말의 유창함, 말의 세련됨, 말의 즐거움, 말의 기교와 기지 등이 토론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말의 특성들은 그냥 말로써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지식과 교양과 인격, 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분위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습관, 말을 하는 사람들의 문화에 따라서 달라진다.

경험과 관점이 다르고 신념과 가치관이 다르면, 진실된 말이 오가더라도 생각과 의견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논쟁식 토론에서 한쪽을 승자로 판정하고 다른 쪽을 패자로 판정한다.

토론의 판정은 결과적으로 어느 쪽이 다른 쪽을 굴복시켰기 때문에 승자가 되게 한 것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욱 훌륭한 토론을 했기 때문에 승자가 된 것이어야 한다. 질 수밖에 없는 주장도 최선의 증거와 타당한 논리와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써 설득력 있는 전략으로 효율적으로 펴낸 것이라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론은 바로 그 다른 생각과 의견을 함께 검토하는 집단적 사고의 전략적 연습이다. 이 연습을 제대로 한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규칙에 맞게 잘할 수 있고, 남의 주장을 또한 규칙에 맞게 잘 검토하여 보다 좋은 생각과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서로 도우는 기법을 익히게 된다. 좋은 토론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게 하는 ‘풍요한 학습의 장’이 될 것이다.

‘민주적 사회’란 아마도 이러한 연습을 통하여 익힌 능력과 자질을 바탕으로 하여 실제로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들을 토론의 규칙에 맞게 해결해낼 수 있는 시민들이 주도하는 사회를 일컫는 말이다.

훌륭한 토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의 기교를 익혀 궤변가나 달변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비판(검토) 받으면서 확실한 근거에 기초하여 이치에 맞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구사하는 신념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민주시민의 기본적인 자질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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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정 기자  hjkara@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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