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전교육부 장관, 서울대 명예교수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폭발시켜야 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울하고 분하고 그래서 그 충동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분노조절 장애 국가가 되고 있다.

선진국형 범죄라고도 불리는 ‘묻지 마 폭력’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흔히 벌어지고 있다. 원한이 있는 상대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현상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나만 억울하고, 그리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오는 분노는 방화뿐 아니라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르고 폭력, 살인까지로 번져 나가고 있다.

엘리트 가장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가족 살해 시도 및 자살까지 시도하기도 했다. 가족 동반 자살 또한 심각하다. 친족 살해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 30년이 넘도록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를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자녀 학대도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일어난 아동 학대 사건 피해 아동 6,796명 중 80%인 5,454명의 학대행위자가 부모였으며, 그중 5,173명이 학대 아동의 친부모였다. 또한 전국적으로 친부모에 의한 자식 살해 사건이 해마다 30여 건씩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데이트 폭력, 보복 운전, 층간 소음 등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분노로 얼룩지고 있다.

이렇게 분노 국가, 울혈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고 있는 걸까? 그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 발전이 지나치게 급성장한 부작용은 아닐까. 압축 성장으로 인해 그 언젠가부터 지나친 경쟁 사회가 되었다. 경쟁 사회는 상대 비교가 불가피하다. 한국인은 더욱이 상대 비교가 심한 민족이다.

한 심리학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국인 참여자들은 결정할 때에 절대적 소득보다는 상대적 소득으로부터 영향을 더 많이 받고, 미국인 참여자들은 상대적 소득보다는 절대적 소득으로부터 영향을 더 받았다.

나아가, 상호의존적인 문화의 구성원들은 독립적인 문화 구성원들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 즉 사회 비교로부터 영향을 더 받는다. 동양과 서양 사람들의 인지 과정에는 근본적인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문화에 따라 사회 비교를 하는 정도가 다르다. 대인 관계를 강조하는 상호의존적인 동아시아 문화권의 사람들은 내적 느낌이나 생각을 강조하는 개인 문화권의 서양 사람들보다 사회적 비교를 더 많이 한다. 바로 한국이 그 예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크고 나만 억울해서 분노가 치밀어 오는 거다.

그러나 그런 분노 사회로 갈수록 분노는 전염병처럼 퍼질 수 있다. 이제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분노 국가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자.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이타주의(altruism)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기적(selfish)이 되어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때 개인이 행복해지고 분노가 줄어들게 된다.

펜실베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조나단 버맨(Jonathan Berman)연구팀은 언제 사람들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216명의 학부생들을 모집하고 3불씩을 나눠주었다. 몇몇 참여자들에게는 유니세프라는 자선단체에 그 돈을 기부하게 했고, 몇몇 참여자들에게는 그 돈을 가지라고 했다. 또 다른 몇몇 참여자들에게는 그들이 받은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선택하라고 했다.

그 결과, 받은 돈을 가지라는 지시를 받았던 참여자들이 돈을 기부해야 했던 참여자들과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었던 참여들보다 훨씬 더 행복해했다.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행동하게 되면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고 분노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고독’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에게 에너지를 쏟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사람들은 타인과 부딪혀야 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분노하고 에너지를 기울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고독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고독은 다른 사람들의 요구사항에서 해방될 수 있는 상태이다. 고독을 경험하게 되면 사회적 억제가 감소하고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행동들에는 자유가 증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과대자극(overstimulation)을 피할 수 있다. 실제로 사회적 관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혼자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더 개방적이고 공감적이라는 연구도 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가라앉혀야 한다.

자신과 타인에 대해 ‘절대’, ‘항상’과 같은 당위적인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말은 사람들이 분노가 정당한 것이라고 느끼게 하며,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말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무시하게 하거나, 타인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게 할 수 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타인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해 기분이 나쁜 상황이라면,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해야 한다. 논리를 사용해야 한다.

타당하다고 생각되더라도, 분노는 사람들을 비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때, 세상이 나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인생의 힘든 한 부분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실망을 분노로 이어지게 해선 안 된다.

분노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따지기 이전에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이 분노로 이어지게 해선 안 된다.

이런 교육이 어릴 때부터 있어야 하고 습관이 들게 해야 한다. 또한 부모들이 먼저 분노를 가라앉히는 것을 자녀에게 보여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게 마련이다. 부모가 어릴 때 자녀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학교 교육도 필요하다. 분노 조절 방법을 가르치고, 그걸 습관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교육이 우리 사회에 절실한 때이다.

이제 지나친 경쟁은 그만하자.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로 인해 좀 더 융통성을 가져야 할 거 같다. 그래서 천천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겠다. 그런 자기 충만함을 교육해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무얼 원하고 좋아하고 내가 가진 가치를 확인하고 어떤 철학과 가치로 살아가야 하나를 생각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미래 세대의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