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토론] 울혈사회,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
[정책토론] 울혈사회,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
  • 한치원 기자
  • 승인 2016.08.1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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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간 주차문제로 시비가 생기고, 급기야 폭력을 휘두른다. 교통흐름을 좀 방해했다고 몇 십 Km를 뒤따라가며 보복운전을 한다. 말 안 듣는다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고 유아원 아이를 폭행하는 보모도 있다. 피해자건 가해자건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면 서로 “죄송합니다” 하며 웃고 해결할 일도 폭언과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지금 많이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사소한 일에서도 시비가 붙고,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이런 울혈현상이 우리 교육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교육을 통해 이런 사회적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모색해 봤다.<편집자 주>

◇사회 :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토론 :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ㅣ박성수 서울대 명예교수ㅣ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ㅣ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정리 및 사진 한치원 기자

울혈사회란 무엇인가?

사회 요사이 우리 사회에 지금까지 별로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말이 있습니다. 바로 “울혈사회(鬱血社會)”라는 말이지요. 우리 사회의 소위 ‘울혈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현상, 불안정한 정서로 인한 위험 수위의 상태 등이 어느 정도로 심각하다고 보시나요?

김호기 분노가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일이 많아진 현시대를 두고 ‘분노사회’, ‘분노유발사회’, ‘울혈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명명된 사회에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로 ‘한국인이 정말 분노가 높나?’, 두 번째는 ‘분노가 과거보다 최근에 많아졌나?’, 세 번째는 ‘한국적 분노가 있다면 그 특성은 무언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저는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울혈이나 분노가 더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지난 산업화 시대나 민주화 시대에도 적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울혈이나 분노가 갑자기 폭발하는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굉장히 당황스러운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 사건들이 ‘분노사회’, ‘울혈사회’와 같은 개념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과거와 다르게 굉장히 당황스러운 사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앞 차량 운전자의 운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추월해 차를 세우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와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과거보다 잔인하고 당황스러우며 피해 규모가 크게 나타나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울화병’이라고 하는, 한국적 분노의 특성이 있습니다. 심리학 전공하시는 분들은 이를 우리 사회의 억압된 정서 속에서 발전한 우울장애라고 합니다. 또 다른 한국적 분노의 특성은 ‘욱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욱한다는 것은 사전적으로 ‘앞뒤를 헤아림 없이 격한 마음이 불끈 일어남’을 뜻합니다. 회사 같은 공동체 안에서 쌓여 있던 불편한 마음이 주변인은 잘 모르는 상태에서 폭발하는 것을 욱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울혈사회,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에 참여해 울혈사회의 맥락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한치원 기자>

윤평중 우선 일반대중에게는 상대적으로 생소할 수 있는 울혈사회 개념의 계보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박명림 교수가 최초로 “울혈사회”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대 전상인 교수가 “현대사의 행로는 ‘hungry society’에서 ‘angry society’로의 변화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angry society와 울혈사회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저는 현대 한국사회를 거대한 르상티망(Ressentiment)의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독일 철학자 니체가 기독교 비판의 맥락에서 사용한 단어로 ‘약자가 강자에 대해서, 패자가 승자에 대해서 갖는 원망, 시기심, 질투심, 넓은 의미에서 원한에 가까운 대단히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감정’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사회를 르상티망의 사회로 부를 수 있을까요? 여러 사회과학자들의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사회는 대표적인 저신뢰 사회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현재의 기본 질서에 대한 불만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부 기관, 공공 기관, 법원, 검찰 등 모두 포함해 불신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불신이 모여 거대한 울화, 울분, 불만, 불안 등을 조장하고 있으며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거대한 분노로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면서 직면하는 개인·사회·정치·경제적인 여러 현안들이 정치계나 국회에서의 필터링, 여과과정을 거쳐 합리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신을 통한 불만, 울분, 울화 등이 내재된 ‘울혈사회’, ‘르상티망’의 현상을 한국사회가 조장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과시켜서 걸러내는 장치가 작동하는 사회인지에 주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불신을 이용해 갈등을 조장하고 강화시키고 확대 재생산하는 사회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울혈사회,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에 참여해 평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사진=한치원 기자>

울혈사회를 만드는 원인을 다각도로 검토해보자

사회 우리 민족성 자체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혹시는 한반도 자체의 자연적인 조건, 이를테면 계절마다 겪는 다른 환경들도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름의 장마와 폭우로 인한 홍수와 봄·가을·겨울의 가뭄, 그리고 아주 추운 겨울 등의 기후 변화 같은 것이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보는가요? 더운 지방 사람, 섬 사람, 대국 사람 등으로 표현하듯이 말입니다.

김호기 제가 알고 있는 사회과학에서는 개인의 성격(personality)에 민족이나 직위 같은 조건들이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다고 보지 않습니다. 동아시아의 경우 민족적·지리적 측면에선 한국·중국·일본이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민족이나 지리로부터 개인의 성격을 이끌어내 설명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정말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분노가 많은지 적은지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경험적으로 이끌어내야 할 문제지, 전제해놓고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수 우리나라가 민주화되던 80년대 전국 산업현장의 인사관리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전에는 공장에서 인부를 대할 때 뺨을 때리고 발로차는 등의 행위를 해도 출근을 했는데, 민주화이후에는 “너 왜 늦었어?”라고 하면 사표를 내고 출근을 하지 않는답니다.

당시 저는 이러한 현상이 전국 공사현장에서 나타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국에 있는 공장을 거의 다 다니면서 노조원들을 한 조씩 뽑아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그들은 인터뷰를 하면 말을 막 쏟아 냅니다. 대표적으로 현대중공업 같은 곳을 갔더니 정주영 회장을 ‘그**’라고 했습니다.그런 현상이 70년대까지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각도로 원인을 분석해보니 그 노조원들은 가족계획세대라는 것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가족계획세대가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기 위해 60년대 이전 가정의 대화 내용을 알아봤습니다. 그 결과 ‘부모와 자식이 열 번 대화를 하면 일곱 번이 욕’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모에게 “원수덩어리야 길에 나가 뒈져라”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란 세대입니다.

그런데 60년대 가족계획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자식들에게 원수라는 말이 사라졌답니다.즉, 가정에서 부모에게 인격적으로 상처가 되는 말을 듣지 않으며 자랐습니다. 더욱이 자식 숫자가 적다 보니 애지중지 키워진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이전에는 형제·자매가 많아 갈등을 조절하는 기능을 형제·자매가 갖고 있었습니다.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갈등조절법을 깨우쳤는데 가정마다 아이들을 하나둘만 낳으면서 그러한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키워진 아이들이 입사를 하고 산업현장에 나가면 가끔 실수도 하는 과정이 있을 터인데 상사의 타박 한 마디에 기분이 나빠서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산업현장에서는 이러한 세대들 보고 새로운 인종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근데 무슨 인종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가족계획을 하면서 태어난 그 세대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달라서 나타나는 현상이 우리가 관찰하는 새로운 변화 아닌가 싶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 30명 정도를 데리고 왜 범죄를 하는가에 대한 면접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아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꼰대’, ‘오야지’ 아니면 욕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자랄 때 화가 나면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배웠니?”라고 물으니 그런 교육을 지금까지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이 드는게 우리가 ‘화날 때 어떻게 해야 한다’, 또는 ‘좌절이 될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이런 두 차례에 걸친 면접을 치르며 낸 결론은 우리 사회가 분노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은 되었지만 그 분노를 어떻게 통제하고 표현해야 할지에 대해선 제대로 교육하지 않은 사회라는 겁니다.

윤평중 지금 아주 좋은 경험적 사례를 말씀해주셨는데요, 그 경험을 학문적으로 정리해보면 타인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원적인 인정욕망(認定慾望)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는 60, 70, 80년대를 지나오면서 사람에게 내재된 인정욕구의 사회적 분출이 허용되는 공간이 확장되기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공장이나 회사에서도 ‘정주영’이라고 하는 신화적인 창업자에 대해 막말을 서슴지 않는 일종의 신화파괴 같은 행동을 유감없이 보이는 이면에는 한국사회 진화단계에서 지불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비용의 측면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울혈이라고 하는 증상도 인간이 갖고 있는 사회적인 인정욕구를 한국 사회 전체의 문법이나 질서가 합리적으로 충족시켜 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각 개인들이 갖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의 총합이 아닌가 합니다.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울혈사회,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에 참여해 우리 사회에서 울혈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치원 기자>

엄정식 저는 울혈현상, 울혈사회가 우리한테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사회가 울혈현상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울혈사회의 예로 볼수 있는 사건들을 대중매체가 정제되지 않은 채로 냄으로 현상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디어 자체가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센세이셔널한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는 입장이 있지만 도가지나친 것 같습니다. 층간소음과 같은 것도 상당히 미미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입니다.

단순히 현상적인 사건들만 볼 것이 아니라 ‘무엇이 누적돼 삐져나오는 것일까?’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식민통치 밑에 살았던 구세대와 자유분방한 젊은 세대가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전근대적인 인간과 근대적인 인간, 탈근대적인 인간이 이 좁은 사회에서 뒤엉켜 살고 있다 보니 문화적 혼란과 충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분석합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 등의 사건이 있었던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근현대사를 보면 울혈사회 현상은 오히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 것 같습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성숙도에 따라 표출되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개인적 경험인데 저는 “읍-컬처”(邑-Culture)라는 용어를 가끔 사용합니다. 읍은 ‘농촌의 순박함은 없고 어설픔이 있다’, ‘도시의 세련됨은 없고 사악함이 있다’는 의식 충돌을 뜻합니다. 이러한 의식의 충돌로 인해 읍의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시장 바닥과 같습니다.

외국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급격하게 사회 환경이 변했고 그 충격을 읍이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를 거대한 하나의 읍으로 파악하며 이러한 의식의 갈등이 격돌하는 문화를 읍컬처라고 일컫습니다. 울혈현상도 읍문화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로 생각하며 서둘러 대처하지 않으면 울혈인간이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고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평중 엄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에 더해 한국 사회가 피난민 사회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시민사회에서도 서로 투명하게 공유하고 의사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성숙한 삶의 문법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을 우리가 향유하기에는 아직은 먼 거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가 되었으며. 이러한 삶이 현대 사회 사람들의 형태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에 더해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처우나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오는 현상입니다.

이를 확장해보면 경제적 계층과 관계없이 한국인 다수가 억울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러한 감정들이 모여서 울혈사회, 르상티망의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현상을 교육학적으로 ‘근원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한국사회의 울혈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울혈사회,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에 참여해 과거 자신이 행했던 연구를 바탕으로 울혈사회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사진=한치원 기자>

울혈현상 극복을 위해선 개인 내면의 성숙이 필요하다

김호기 저는 사회학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문화지체(文化遲滯)’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물질문화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데 정신문화가 쫓아가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한국 문화가 전형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사회제도들이 현대화되면 우리들의 의식도 거기에 맞춰 현대화되어야 사회가 잘 돌아갑니다만 한국 사회의 경우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기이한 형태로 공존해 있어 당황스러운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자율성이나 창의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아주 강압적인 공동체주의와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기형적인 결합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관점의 문제를 살펴보면 분노조절장애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에게 내재된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분노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으면 됩니다. 이는 스스로 인내하느냐, 아니면 외부에서 사회적으로 그 분노를 규제해 주느냐 두 가지의 해결책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개인주의적 측면에서 스스로도 인내할 생각이 없습니다. 개인에게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힘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우리 사회에서 분노조절장애 현상이 거침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노가 왜 조절이 안 되느냐, 원인을 개인적 차원과 사회구조적 차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선 ‘불공정에 대한 인식’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교육기회에 대해선 공정하지만 분배에 대해선 상당히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라는 국민대통합위원회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이런 불공정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인정욕구입니다. 정당하게 대우받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으로 인해 억울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공동체에 대한 불만이 쌓여 결국 폭발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울혈의 원인을 불공정한 현실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울혈 폭발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크게 느끼지 못하는 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한 것이라서내가 폭발한 것이라고 인식하며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입니다.

윤평중 정확한 지적 같습니다. 울혈이라는 것에 대한 한국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사회에 나타난 울혈의 구체적인 특수성이라고 하는 것은 ‘왜 억울함을 호소하느냐’, ‘왜 상대적인 박탈감을 강조하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김호기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사회적인 불공정성에 대한 내면 속 깊은 울화를 억울함으 로 호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 탓을 하고 남 탓을 하는 과정에서 개인 자아정체성의 중요성이 망각되거나 과소평가되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한 사회가 르상티망의 방식으로 휩쓸고 가도 자기중심을 유지하면서 평안감, 중심,균형감각을 유지하는 분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즉, 개인 간의 편차가 있다는 뜻입니다. 울혈조절장애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울혈조절장애 증상을 심각하게 앓고 있는 한국사회를 단순히 선정주의적인 접근이나 과정에만 머물러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르상티망의 연장선에서 이런 사람들은 남을 해코지하면서도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고 뒤돌아서 미소 짓는 사악한 모습이 보입니다. 이 부분은 인간의 보편적 그늘에 해당하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언급을 해야 합니다만 그런 것들을 우리가 다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정치, 문화, 교양이라고 하는 사회적 규범과 문화로 인해 스스로 억제하고 조절하고 있습니다.

남 탓, 사회 탓을 하면서 죄의식을 덜 느끼는 사회적인 공간이 커져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불공정성, 사회경제적 양극화, 박탈감 등의 차원으로만 울혈현상을 100%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자기성찰로 들여다봐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엄정식 더욱 심각한 것은 층간소음 등의 울혈현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언제라도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가끔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 위협적인 운전을 하는 차량을 보면 쫓아가서 추돌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러니 충동을 일으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는 열외다’라고 할 수 없는 현실이 심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경험한 근현대사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분석해봐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식민통치가 제대로 회복되기도 전에 분단, 전쟁, 이산가족 등의 경험이 우리민족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고착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이 아니더라도 문화·사회·구조적으로 누적돼서 내재되어있는 것들에 대한 영향을 분석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또한 오그번(William Fielding Ogburne.1886.6~1959.4)이 얘기한 문화지체(CulturalLag) 현상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파악할 때입니다. 우리나라는 불과 50여 년 만에 농경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발전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기에 이러한 현상에 대한 심층적 분석도 필요합니다.

윤평중 울혈이라고 하는 한국사회 특유한 현상은 주체인 개인의 차원에서 조망할 수 있습니다. 즉, 개인의 자기형성과정에 대한 교육이 중요한데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나 스스로를 가꾸어서 성숙한 존재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학교 교육이 됐든 사회 교육이 됐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마음의 능력, 정신적인 훈련을 닦아주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 교육은 이러한 감정을 다스리는 교육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개인의 한계를 넘어 나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 아니고 경쟁자인 내 친구를 꺾고 내가 올라서야 성공하는 사회적 구조의 돌파구만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교육이 이러한 경쟁문화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바로 시정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김호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실제로 울혈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울혈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핵심이고 우리나라에서는 건강하게 해결되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해법은 세 가지입니다. 앞서 제기된 과도한 경쟁이 문제라면 경쟁을 완화시켜야 하고, 사회구조적 양극화가 문제라면 해소해야 할 것이고,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한다면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피난민 사회의 요소에 대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문화에는 이런 피난민 사회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문화적 무의식은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뿐만 아니라 후속 세대들에게도 조금씩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개인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문화적 처방이 필요합니다. 구조나 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주체가 어떻게 마음먹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자기 윤리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통해 피난민 사회에서 정주민 사회로 변모해야 합니다. 정주민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개인의 주체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해 교육의 역할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육이 가져야 할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박성수 세상은 동일한 사회현상, 환경 등이 존재하고 각 개인이 그 현상과 환경을 어떻게 지각하고 해석해 대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해석하는 것은 어떤 훈련을 받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개인의 내면 성숙에 필요한 훈련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관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정과 학교에서 해야 할 기본적인 훈련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좀 극단적인 예시이긴 합니다만,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화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해봤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교육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너희들이 가정 밖에서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부모들은 어떤 벌을 주니?”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부모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합니다. 자기에게 관심이 없어 집에 들어가는지 나가는지, 나가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등 자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가정에서 행해져야 할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반 발달과정에서 보면 화를 내고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은 굉장히 어렸을 때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초등생만 되어도 시기가 많이 늦습니다. 즉, 가정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말을 배우기 이전에 아이들이 지각하고 느끼는 것은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이 과정을 너무 추상적으로 여겨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정에 대한 소중함이 망각되고 있고 가정 해체 속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울혈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가정이 건강히 유지될 수 있도록 사회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울혈사회,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에 참여한 (왼쪽부터)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 박성수 서울대 명예교수,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이다. 사진=한치원 기자>

세대, 성, 경제 수준, 교육 수준이 울혈현상과 관계가 있을까?

사회 울혈현상이라는 것을 세대별로 나눠봤으면 합니다. 60대 이상 노년세대, 30대~50대까지를 중년기성세대 그리고 20대 이하 성장세대로 봤을 때 가장 심각한 층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엄정식 저는 세대별로 울혈현상의 종류는 다르지만 증상은 비슷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사회 보편적 특징입니다. 가령 고부간 갈등 구조를 보면 며느리가 굉장히 화가 나 있으면 시어머니는 행복하고 기분 좋아야 하지만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화가 나 있습니다. 이게 사제지간도 부자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구조적으로 전부 뒤틀려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이유로 모두 기분이 나쁘다는 겁니다. 그래서 울혈에 대한 내용만 다를 뿐이지 현상은 거의 보편적이라고 봅니다.

윤평중 저는 엄 교수님과 의견이 약간 다릅니다. 노년 세대의 경우 일제시대, 6·25전쟁, 군사독재 등 혼란한 사회에서 삶을 영위해 왔습니다. 이런 각종 역경을 이겨낸 노인들을 국가가 잘 보살펴야 하는데 2010년 OECD가 발표한 노인빈곤율을 보면 우리나라가 회원국 중 1위입니다. 선진사회로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노인 세대의 불행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길거리에서 휴지 줍고 다니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분들도 의외로 굉장히 많은 것을 보면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중년층을 보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조기퇴직의 스트레스 등이 엄청납니다.

청년세대들 또한 좌절감이 큽니다. 고등학교 졸업자 중 70~80%가 대학을 갈 정도로 사회가 윤택해졌습니다. 그러나 대학 졸업 이후의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하고 집값은 비싸고… 오죽했으면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를 넘어 7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 희망, 꿈)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이 세대를 저는 한국판 ‘잃어버린 세대’라고 봅니다. 이런 엄청난 불행감과 박탈감에 시달리는 청년세대의 결정이 한국사회에 굉장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호기 저는 2030세대, 4050세대, 6070세대로 나눠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6070세대의 경우 노후에 대한 불안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들이 이제까지 살아왔던 것들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쉬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4050세대는 아이들 교육문제와 회사에서 퇴출의 공포가 있을 것 같고, 2030세대의 경우엔 등록금, 청년실업, 일자리 문제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세대별로 울화를 다 느끼고 있긴 하지만 울화의 구체적 내용은 상이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사회 여성의 울화는 어떻습니까?

윤평중 옛것은 사라졌는데 새것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를 알파걸들의 시대라고 합니다. 입시, 고시 등의 시험 합격률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의 많은 측면에서 젊은 여성들의 능력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는 이러한 여성의 인정욕구를 거의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양성평등지수에 관한 연구를 보면 34개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는 31위에 머물렀습니다. 여성의 평등한 사회진출에 대한 개선점이 없기 때문으로 봅니다. 열심히 공부한 여성들의 사회적 욕구를 실현할 길이 차단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사회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여성은 주부가 되면서 자식 교육을 통해 대리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사회 교육 현장에서 사교육의 문제, 헬리콥터맘의 문제, 치맛바람의 문제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 여성 울화의 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 울혈이 경제 수준과도 관계가 있을까요?

윤평중 경제 수준보다는 정신적 성숙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혜신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성공한 중·장년층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입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우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즉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자기 윤리·자기 형성·자기애 등이 부족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자아 만족을 기본으로 하는 자기 형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찾아봐야 합니다. 저는 해답은 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자기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교육, 자아를 깨우치는 교육을 통해 자기 충족감을 갖는 것이 진정 성공적인 삶이냐 그렇지 않냐라고 하는 변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그렇다면 울혈과 교육 수준(학력)은 관계가 있을까요?

김호기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한국교육의 경우 자기입법을 가르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소중한 가치는 교육 과정속에서 스스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이러한 경험이 없습니다.

때문에 교육을 많이 받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울혈은 차이가 없이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기준만 갖고 자기 자신을 평가하다 보니 자기만족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받은 교육의 양은 울혈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수 대체적으로는 교육 강국이라고 하는 곳에서는 학력이 높아질수록 도덕적·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지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는 학력과 도덕적·정신적 성숙의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아주 특이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식적인 성숙은 갈수록 높아지긴 하지만 도덕적·정신적 수준은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 사회시골의 농부보다 박사의 인격이 나을 것이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사회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울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시민 생활 훈련이 필요하고 지식 교육뿐만 아니라 정서상의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는 데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또한 사회 양극화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사회 지도층이 본인의 의무를 다하는 모습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사회 전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인 것 같습니다.

특히 교육과 관련해 자기 입법, 자기 형성, 자아의식, 인격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용어들을 종합해보면 인성 교육과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 많습니다. 지난 2014년 인성교육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인성 교육에 대한 개념을 교육계나 사회가 제대로 공유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오늘 말씀하신 내용들이 인성 교육의 개념정립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되며 앞으로 울화를 극복하고 울혈사회 현상을 이겨내는데 디딤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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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원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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