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우리 학생들의 경쟁 중심 교육 현실은 정서 함양을 위한 기회를 박탈해 인격 형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에듀인뉴스는 학생들의 발달 단계에 따라 정서발달을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정서발달을 위한 교육담론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편집자 주>

우울, 불안, 주의력결핍, 왕따, 게임중독....

그 원인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에 좋은 방법으로 ‘원인’을 규정하기

한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많은 정서·심리적 문제가 있다고 한다. 자주 손꼽히는 문제에는 우울, 불안,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왕따 시키기, 왕따 당하기, 게임중독, 학업 스트레스, 자해, 자살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Wee 클래스, Wee 센터를 설립하거나, 최근에는 모든 학생들에게 정서심리검사를 실시하고 위험군에 속하는 학생들을 선별하여 Wee 클래스나 Wee 센터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상담 센터로 보내서 상담을 받게 한다.

심한 경우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보내서 정신 치료를 받게 하기도 한다. 각 상담기관이나 병원에서는 개인상담, 집단상담, 교육 프로그램, 약물치료 등의 방법으로 학생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처방을 내리고 개입하여 그들을 돕는다.

그간 여러 가지 처방들이 나왔고, 그러한 처방들은 일정 부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 즉 중·고등학생들의 정서적, 심리적 문제와 처방이라는 주제가 등장할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문제’ 또는 문제의 ‘원인’이라는 말이었다. 이 글에서는 문제를 논의할 때마다 함께 거론되는 ‘원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필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문제’를 해결하기에 좋은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문제’ 또는 문제의 ‘원인’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자주 빠지는 3가지 오류를 검토하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기에 좀 더 좋은 방식으로 ‘문제’나 ‘원인’을 규정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 오류 1: “저 학생이 공부에 집중을 못 하는 이유는 주의력결핍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한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저 학생이 다른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하는 이유는 내향적 성격 때문이다”

- “저 학생이 공부하지 않고 게임만 하는 이유는 게임중독 때문이다”

- “저 학생이 자해를 시도하는 것은 우울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은 문장의 구조상 문제의 원인을 잘 묘사한 것 같지만, 사실은 거의 동어반복(tautology)에 해당한다. 사실 학생이 주의력결핍장애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나 다른 여러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행동과 현상을 요약하여 하나의 용어로 추상화시킨 것이 ‘주의력결핍장애’이다.

이와 유사하게 내향적 성격 때문에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잘 사귀지 않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심리적 에너지가 내면으로 향하는 행동과 현상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묘사한 것이 ‘내향적 성격’이다.

그럼에도 ‘주의력결핍장애 때문에~’, ‘내향적 성격 때문에~’, ‘게임중독 때문에~’, ‘우울 때문에~’라고 다른 문제행동이 발생하는 것처럼 묘사하면 이것은 동어반복에 해당하며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친구를 잘 사귀지 않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심리적 에너지가 내면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런 특성을 내성적이라고 이름 붙이자’라고 이해하고, 실제 개입은 친구를 사귀게 하고 심리적 에너지가 밖으로 향하게끔 돕는 편이 더 낫다 .

그뿐만 아니라 인과관계를 이런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오히려 방해된다. 즉 개입의 초점을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행동,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행동, 게임 행동, 자해 행동을 줄이는 데 두어야 함에도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화된 개념인 주의력결핍장애, 내향적 성격, 게임중독, 우울함에 맞춤으로써 실체가 아닌 추상적 개념과 씨름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처럼 실제적 행동 대신에 추상화된 개념과 씨름하는 것은 선후가 뒤바뀌었을 뿐 아니라 가시적 성과를 얻기 어려운 노력이다. 따라서 다음의 표와 같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인-결과에 대한 묘사>

▶ 오류 2: “저 학생의 문제는 예전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외상 경험 때문이다”

이 문장은 두 가지, 즉 ① 현재 문제는 과거 경험에 기인한다는 점과 ② 문제의 원인은 환경에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현재 문제의 원인은 과거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프로이트 이후 줄기차게 내려오는 것으로서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말하는 ‘원인’은 독특한 특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보자. 의학에서 ‘콜레라 병은 콜레라균이 일으킨다’ 즉 ‘콜레라 병의 원인은 콜레라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러한 사고는 콜레라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콜레라 병의 원인인 콜레라균은 ‘현재’ 환자의 몸속에 있으며, 그 균은 ‘현재’ 항생제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의 원인 규명과 그에 대한 개입은 ‘원인’을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자연스러운 사고방식과 일치하며, ‘현시점’에서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저 학생의 문제는 예전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외상 경험 때문이다’라고 할 때, 학생이 가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과거의 부모 또는 부모의 과거 양육방식은, 이미 과거에 발생한 사건이고, 그 사건은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제거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콜레라균과는 특성이 다르다.

물론 어떤 이는 ‘현재 문제는 과거 경험에 기인한다’라는 말의 원래 취지가 그 경험 자체를 없애자는 말이 아니라 과거 경험(또는 그 경험을 제공한 부모)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자는 의미라고 항변할 수 있다.

즉 자신에게 외상적 경험을 제공한 부모에 대한 생각을 (해석이나 새로운 통찰을 통해) 바꾼다거나 외상적 경험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위의 문장은 ‘저 학생의 문제는 자신에게 외상적 경험을 준 부모(또는 그 외상적 경험)에 대해 아직 바뀌지 않은 생각과 태도 때문이다’라고 수정될 필요가 있다.

즉 문제의 원인은 부모 또는 부모의 외상적 경험이 아니라 부모에 대해 아직 바뀌지 않은 생각, 외상적 경험에 대해 아직 바뀌지 않은 관점과 태도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어떤 방법으로도 개입할 수 없는 과거의 경험 자체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문제행동을 보이는 학생에게 ‘현시점’에서 개입하고 도와줄 방법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을 부모(또는 부모가 제공한 외상 경험)에 대해 아직 바뀌지 않은 이해와 해석으로 간주하면, 원인의 소재가 자연스럽게 외부환경에서부터 학생의 내면세계와 심리적 상태로 옮겨지며, 문제 해결을 위한 개입 역시 학생의 내면세계와 심리적 상태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렇다면 열악한 환경,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는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열악한 환경이나 부모의 잘못된 양육태도도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다만, 이것들이 문제의 원인이 되고, 개입의 초점이 되는 경우는 그러한 열악한 환경이나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가 ‘현시점’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경우이다.

현재도 환경이 열악하고 부모가 공격적이어서 자녀에게 지속적으로 외상경험을 주고 있다면, 그러한 환경은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개입의 초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위의 문장은 ‘저 학생의 문제는 (과거에 있었던 부모 또는 외상 경험이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되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와 외상적 경험 때문이다’라고 재진술 필요가 있다. 이제 지금까지 논의한 점을 고려하여 오류 2의 문장을 다시 작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정리하면, 문제 학생을 돕기 위해서는 필요한 개입의 지점은 ① ‘아직 바뀌지 않은 생각과 태도’와 ② ‘현재에도 지속되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와 외상적 경험’으로 초점이 맞추어질 수 있다.

▶ 오류 3: ~~ 문제를 “제거한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의 원인을 찾아서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다시 콜레라 병의 예로 돌아가 보자. 콜레라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콜레라 병의 원인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그 결과 ‘콜레라균’이 콜레라의 원인임을 밝혔다.

그 후 콜레라균을 제거할 수 있는 약물을 처방하여 콜레라 병을 치료한다. 콜레라균을 제거하면 사람이 회복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정서적, 심리적 문제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선 오류 1에서 보았던 것처럼 ‘원인’과 단순히 여러 증상들을 추상화한 용어를 구별하지 않으면, 게임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학생을 돕기 위해서 ‘게임중독’을 제거하거나, 자살이나 자해를 줄이기 위해서 ‘우울’을 제거하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게임중독’이나 ‘우울’을 제거해서 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어 사용의 오류, 진단의 잘못된 사용, 원인과 추상화된 용어의 혼동으로 인해 그러한 오류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두 번째는 ‘제거한다’라고 함으로써 학생이 문제나 문제의 원인을 ‘보유’하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는 오류이다. 대부분의 심리적, 정서적 문제는 콜레라환자가 콜레라균을 ‘보유’하는 것처럼 어떤 ‘문제’나 문제의 ‘원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 정서적 문제는 우리 몸속에서 흘러서 특정 행동을 유발하거나 정서 상태가 드러나게 하는 정보처리의 패턴화 된 과정이지 어떤 병균이나 혹처럼 제거하거나 떼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제거’보다는 ‘대체’ 또는 ‘패턴화 된 경로를 대안적 경로로 대체’하는 것이다. 필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결 방법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기 좋은 형태로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심리적, 정서적 문제에 대해서 논의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문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려고 하기보다 그동안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심리적, 정서적 문제와 그것들의 ‘원인’을 규정하는 방법에 대해 재고함으로써 조금은 더 해결하기에 좋은 형태로 정의하고자 ‘문제’와 ‘원인’의 규정해보려고 하였다. 위 3가지 오류에 빠지지 않고 ‘원인’에 대한 올바른 규정을 할 때 그 해결책 역시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