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에 대한 대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대입제도는 국민적인 관심사이면서 정권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어왔다. 또한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교육적인 관점보다는 여론에 따라 대입제도가 깁고 누비면서 누더기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특히 교육과정과 수능이 적절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에듀인뉴스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체제 개선 방향'에 관해 황규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1. 서론

지난해 9월에 고시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한국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게 하려면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되는 다양한 요인들을 교육과정 개정의 취지에 부합하게 정렬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주요 과제로는 교사 양성·연수교육 체제의 개선, 교사 수급제도의 개선, 수능을 포함한 대입제도의 개선, 학교 시설 및 환경의 개선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수능체제의 개선은 2015 개정 교육과정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는데, 일차적으로는 2015 교육과정 개정 자체가 2013년에 발표된 대입제도 개선 논의, 특히 수능체제 개선 논의를 계기로 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요,

더욱 중요하게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중시하는 고등학교 문·이과 체제의 해체와 진로에 부합하는 다양한 과목의 선택이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능체제를 포함한 대입제도의 변화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개발 과정에서는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실천이 가능한 수능의 유형들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 하여 교육과정 개정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총론 편제를 구안하였다.

수능체제 개선이나 대입제도 개선에서 고려되어야 할 요인은 매우 다양하며 이러한 요인들 중 어느 요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인지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율을 필요로 하는 ‘정치적’ 과제가 된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관점에서 보자면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하고 지원해 주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고 보며 따라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을 확인하고 그러한 비전이 요구하는 수능체제 등의 개선 과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하에서는 먼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을 살펴보고, 수능 개선에 대한 몇 가지 논의의 특징들을 검토해 본 후,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을 고려한 수능 및 대입제도 개선의 일반적 방향을 제언해 보고자 한다. 

2.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과 과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은 ①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과, ② ‘학습경험의 질 개선을 통한 행복한 학습의 구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황규호 외, 2015). 전자가 문·이과 칸막이 해소 등 2015 개정의 핵심과제를 반영한 비전이라면, 후자는 그동안 추진된 교육과정 개정의 연속 선상에서, 학생들이 학습에 몰입하고 학습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과제를 반영한 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창의·융합인재 양성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교육과정 개정의 주안점은 “인문·사회·과학·기술 기초소양을 균형 있게 함양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교육과정 개정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총론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전교육 기간을 통하여 여러 교과 영역의 균형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교과목 편제를 개발하여야 한다.

둘째, 교과 교육과정(각론)에서는 단편지식보다는 핵심원리를 이해시키고, 특히 융합적 사고의 함양을 위해, 세부학습 영역 사이의 상호관련성과 교과 간 학습 내용의 연계성을 통합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도록 학습 내용을 엄선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조직하여야 한다.

셋째, 고등학교의 경우, 교과영역별 기초소양의 균형 있는 계발을 위해 ‘공통과목’ 제도를 재도입하며, 사회과 및 과학과의 공통과목은 ‘통합사회’ 및 ‘통합과학’ 등 융합적인 과목으로 개발한다. 아울러 문·이과 칸막이를 야기하고 있는 수능 체제 개선 방향을 고려하여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제를 개발한다.

그러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기초소양 함양을 이유로 모든 학생에게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부과하는 것은 경계되어야 하며, 기초소양을 바탕으로 학생 개개인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맞춤형 선택학습’이 가능한 교육과정을 개발하여야 한다.

맞춤형 선택학습 지원은 또한 행복한 학습의 구현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교육과정 개정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등학교 교과별 필수이수 단위는 최소수준으로 설정하여 진로에 따른 학생의 과목 선택권과 단위학교의 특성화된 교육과정 편성·운영 자율권을 제한하지 않도록 한다.

둘째, 고등학교에서는 ‘일반선택과목’과 함께 학생들의 진로에 따른 심화·보충학습 및 진로탐색·체험을 지원하는 ‘진로선택과목’을 개발하여 다양하고 풍부한 선택 과목들이 개설될 수 있도록 하며, 학생의 ‘과목선택권 강화 방안’을 모색한다.

셋째, 중학교 학생들의 진로탐색활동을 지원하는 자유학기제의 정착 및 확산을 위한 교육과정 근거와 편성·운영 지침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두 번째 비전인 ‘학습경험의 질 개선을 통한 행복한 학습 구현’을 위한 과제를 살펴보겠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연구에서는, 창의융합형 인재양성을 위한 기초소양의 균형 있는 함양과 함께,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였으며, 그 기본 과제를 행복한 학습의 구현을 위한 ‘학습경험의 질 개선’으로 요약하였다.

학습경험의 질과 관련된 한국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단편지식의 암기 위주 교육과 문제풀이 중심 교육의 문제, 과도한 학습량과 수준 및 과열경쟁교육 등에 의한 학습부담의 문제, 국제 평가에서의 높은 시험 성적에도 불구하고 교과에 대한 흥미도나 자신감 등 정의적 영역의 지표가 낮다는 문제 등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학습경험의 질을 중시하는 교육은 학습의 양과 결과보다 학습의 질과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 학습의 즐거움을 일깨워 주는 교육,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소양과 역량을 실질적으로 길러주는 교육, 자기성장·자기발전의 경험에 기초한 행복감을 증진하는 교육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요컨대 학습경험의 질 개선을 위한 교육과정 개정은 ‘많이 아는 교육’에서 ‘배움을 즐기는 행복교육’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는 특히 교과 교육과정(각론) 개선을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교육과정 개정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과별 학습 내용을 핵심원리 중심으로 엄선하여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분절적 단편지식 중심의 교육과정에 의해 야기되는 학습량 과다의 문제를 근본적이고 실질적으로 개선한다.

둘째, 학습 내용 요소들의 상호 관련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학습내용 조직방식을 개선하며, 특히 세부학습 영역을 아우르는 큰 그림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교과 내·교과 간 학습 내용의 연계성을 강조한다.

셋째, 교과별 탐구역량과 사고역량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지도방법을 안내한다. 이와 같은 비전과 과제의 내용 중 특히 수능체제와 대입제도 개선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첫째, 문·이과 칸막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사회탐구 및 과학탐구 분리 응시 체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과 둘째, 문·이과 해체를 통한 다양한 조합의 선택과목 이수를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하며 특히 일반선택과목은 물론 진로선택 과목들을 적극적으로 이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한편으로는 사회탐구나 과학탐구 영역에서 적어도 한 과목 이상을 응시하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일반선택 및 진로선택 과목을 충실하게 이수하도록 유도하는 수능체제와 대입제도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3. 수능체제 개선 논의의 점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체제의 방향을 논의하기에 앞서서 수능체제 개선에 대한 이제까지의 논의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검토와 분석은 기존 논의들의 제한점을 확인하면서 교육과정 중심의 수능체제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수능 개선 논의의 검토

수능 개선 방안으로 가장 자주 제시되는 것은 수능의 영향력 약화를 통한 수능 부담 완화 방안이다. 이와 같은 수능개선 방안은 특히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요, 모든 정권들이 정권의 명운을 걸 만큼 중점적으로 추진해 왔던 교육개혁의 지상과제라고 볼 수 있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방안으로서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방안에 전제되어 있는 논리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된다. 현실적으로 사교육은 대입전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수능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 점에서 수능이야말로 곧 사교육비의 주범이다. 그러니 수능을 폐지하거나 또는 자격고사화를 통해 수능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면 사교육비는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단순논리에 따라 수능 등급제가 도입되기도 하였고 만점자 비율을 1% 수준으로 유지하는 쉬운 수능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더욱 근본적인 개선안으로서 수능의 폐지나 자격고사화 방안1), 또는 수능의 절대평가화 방안 등도 제안되고 있다.

1) 이 방안의 구체적 의미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예컨대 총점이나 과목별 점수에 의해 합격·불합격을 평가하여 대학입학 지원 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지, 또는 수능을 통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부여하여야 한다는 의미인지가 분명하지 않으며, 어떤 의미로 사용하든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큰 문제점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사교육비 경감을 목적으로 하여 제안되고 있는 이러한 수능체제의 변화는 수능 자체에 대한 경쟁이나 수능을 위한 사교육비 부담을 어느 정도는 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교육비의 근본 원인은 대학의 서열에 대한 고착화된 사회적 인식이나, 또는 능력보다 출신대학의 명성에 따라 재화가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는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한 수능의 변화만으로는 사교육비 감축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수능을 폐지한다고 하더라도 대입 경쟁은 다른 영역(예를 들어, 내신 성적 경쟁, ‘스펙’ 경쟁 등)으로 이전될 뿐 사교육비의 총량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더 나아가 수능의 영향력 완화는 불가피하게 대입전형 제도의 틀에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요, 이에 따라 새로운 쟁점이나 문제점을 야기할 수도 있다.

수능을 내신 성적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정책은 학교별로 관리되는 내신의 사회적 신뢰도에 대한 논쟁(내신 부풀리기 문제, ‘고교등급제’ 논쟁,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찬반논쟁 등)을 야기함은 물론, 경쟁의 양상을 바로 옆에 있는 급우들 사이의 경쟁으로 전환함으로써 협동적 공동학습의 문화를 저해하는 문제를 가져왔다.

수능의 변별력 약화는 또한 대학별 고사의 강화를 초래함으로써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창출하기도 하였으며, 대학별 고사가 대학에 따라 큰 차이를 보여줌에 따라 학교교육보다는 사교육에 더욱 의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수능 위주 전형이 약화됨에 따라 대학별로 전형의 유형이 더욱 다양하게 분화하여 대입전형이 복잡해지기도 하였고, 이러한 복잡성과 전형결과에 대한 예측가능성의 저하는 ‘대입전형 간소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게 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쉬운 수능’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과연 줄여 주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수능 부담’은 응시과목 수에 의한 부담, 시험 범위에 의한 부담, 난이도 수준에 따른 부담 등 여러 측면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특히 난이도 수준을 낮추는 쉬운 수능 정책은 한 문제만 틀리면 등급이 달라지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부담, 그리고 가장 비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실수 안 하기’를 위한 ‘반복적·기계적 학습의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

수능 문항의 EBS 연계 정책 역시 학교 교육을 EBS 문제풀이로 전락시켰으며 새로운 형식의 문항 개발을 제한하고 기출문항의 변형에만 전념하게 함으로써 출제오류의 큰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요컨대 수능의 개선 방향을 수능 부담완화나 이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에 두는 것은 정책의 실효성 측면에서나 또는 교육적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수능의 개선 방안은 대입 제도 전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교육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나.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수능 개선 논의 검토

사교육비 경감과 함께 수능 및 대입 제도 개선의 목적과 방향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이다. 고등학교 교육이 수능 문제풀이 수업으로 전락한 비정상적인 상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방향 설정은 적어도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사교육비 경감보다는 더 바람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학교 교육 정상화의 의미를 무엇으로 규정할지에 따라 변화의 초점은 달라질 수 있다. 첫째로, 학교 교육 정상화는 종종 사교육 경감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사교육이 필요 없도록 하거나 사교육이 예컨대 대입전형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상황을 곧 학교 교육 정상화 상태로 규정하는 것이다.

수능시험을 탈교과적 일반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에서 교과별 지식 중심의 시험으로 전환한 것이나 대학별 고사의 내용을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범위로 제한하는 것 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올바른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수능이나 대학별 고사와 같은 학교 밖의 평가보다 학교 안의 평가에 더 큰 비중을 두고자 하는(그리하여 학교 교육을 외부 평가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내신위주 대입전형 개선 방안 역시 학교 교육을 소홀히 하고 사교육에 전념하는 현상을 극복함으로써 학교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소위 ‘명문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이 유지되는 한,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한 사교육 욕구를 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요, 이 점에서 학교 교육만으로도 대입준비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는 현실성이 그리 높다고 보기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 ‘교사별 평가권’의 강화를 통해 교실 수업에 대한 학생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 역시 평가결과의 신뢰도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둘째로, 학교 교육 정상화는 교육과정에 편성된 과목들을 단지 수능 응시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홀히 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해된다.

예컨대 수능에서 배점이 높은 국어, 수학, 영어 교과에 편중된 학교 교육, 또는 사회나 과학 과목들 중 자신이 선택한 탐구 영역 응시과목에서 제외된 과목의 수업 시간을 자습시간이나 잠자는 시간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 더 나아가 수능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음악, 미술, 체육 교육의 형식적인 운영이나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비교과 활동’의 경시 현상 등등은 학교 교육의 정상적인 운영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현상들이다.

이러한 문제점의 극복을 위해서는 예전의 학력고사와 같이 모든 과목들을 수능 대상 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안되고 있지만, 학생들의 시험 부담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는 절대명제 앞에서 이러한 방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응시과목을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과목 편제와 가급적 일치시켜 주고자 하는 방안은 단순히 사교육 경감만을 목적으로 하는 개선안에 비해서는 학교 교육 정상화의 의미를 좀 더 바람직한 방향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로, 좀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학교 교육 정상화의 의미는 교과별 교육과정이 추구하고 있는 고등사고능력의 함양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단순한 문제풀이보다는 핵심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도록 하고 창의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정상적인 교육’의 요체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수능 개선의 핵심적인 과제는 문항의 형식을 예컨대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국가고사와 같이 서술·논술형 문항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정답 찾기보다 사고의 과정과 사고의 질을 중시하는 평가로 전환함으로써 학습 경험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교육 정상화의 근본적 과제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단기간 안에 이와 같은 방향으로 수능을 개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항 개발은 물론이요, 채점방식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장기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선택형 위주의 현행 수능체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수능 및 대입제도 등 평가의 개선방향과 관련된 학교 교육 정상화의 의미는 근본적으로는 교육과정에 비추어 규정될 필요가 있다. 즉, 수능을 포함한 모든 평가체제는 현행 교육과정을 그 의도에 따라 충실하게 운영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현행 교육과정 자체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더라도 문제의 개선은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추구되어야 하며 평가가 교육과정의 운영방향을 좌우하도록 하는 상황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4.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수능 개선의 방향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으로 불릴 만큼 문과와 이과 사이의 칸막이 문제, 즉 문과 학생들은 과학 교과목을 소홀히 하고 이과 학생들은 사회 교과목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와 같은 칸막이 교육의 문제가 고등학교 교육과정 자체보다는, 다양한 조합의 과목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여러 현실적 요인과 함께, 더욱 중요하게는 사탐과 과탐을 분리하여 응시하게 하는 수능체제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는 점에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수능체제를 포함하는 대입제도의 개선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문·이과 통합형 교육은 문과와 이과를 ‘통합’하여 모든 학생들이 단일의 공통 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그동안 문과와 이과라는 두 개의 패키지로만 제공되었던 문·이과 체제의 ‘해체’를 통해 더욱 다양한 조합의 과목들을 선택하여 이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그 기본 취지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실제적인 과목 선택이 허용될 수 있도록 학교 여건의 개선이 요구되며, 이와 함께 다양한 과목의 선택이수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수능체제 및 대입제도 전반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문·이과 통합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수능 및 대입제도 개선의 기본 방향은 ① 고등학교 수업의 정상화를 가능하게 하는 수능 및 대입제도, ② 문·이과 통합의 취지에 부합하는 수능 및 대입제도, ③ 수험생의 부담을 과도하게 늘리지 않는 수능 및 대입제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방향에 기초하여 수능 체제의 개선 방안으로는 첫째, 수업 정상화를 위해 수능 응시과목과 교육과정 이수과목을 일치시키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으나 이 방안은 응시과목 수 증가에 따른 학생의 시험부담을 가중 시킨다는 점에서 도입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문·이과 통합의 취지에 부합하는 수능체제와 관련해서는 문·이과 칸막이의 문제가 사탐과 과탐을 분리한 수능 응시과목 체제에 의해 야된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여 각 영역에서 적어도 한 과목 이상을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셋째, 수험생의 부담을 과도하게 늘리지 않는 수능체제를 위해서는 수능 대상 교과목 수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선택 수능’(일부 과목을 학생들이 선택하여 응시하는 수능) 대상 과목을 과도하게 확대하는 방안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 방향을 바탕으로 하여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구성 방안 연구에서는 다양한 수능체제 모형을 검토하였다.

첫째 방안은 5개 교과(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에 대한 ‘공통 수능’ 모형으로서 이는 교육부의 ‘문·이과 완전 융합안’과 같은 방안이다. 둘째, 대안으로서는, 5개 교과에 대한 ‘공통 수능’과 함께 일부 교과 영역(예: 수학, 사회, 과학 등)에서 선택과목에 대한 선택 수능을 실시하는 방안과, 셋째, 국어, 수학, 영어 등 3개 교과에 대해서는 공통 수능을 실시하고, 사회와 과학 교과에 대해서는 선택 수능을 실시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었다.

한편, 수능체제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으로는 수능체제를 수능Ⅰ과 수능 Ⅱ로 이원화하여 수능Ⅰ은 공통과목 중심으로 선택형 문항으로 실시하고 수능 Ⅱ는 논술식 형태로 선택과목별로 실시하는 방안, 응시 시기와 응시 횟수를 조정하는 방안, 수능성적의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과목별로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누어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도 논의되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기적 정책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수능체제의 구체적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검토와 논의가 필요할 것이지만, 특히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중 어느 하나의 영역만을 선택하여 응시하도록 하는 현행 수능체제를 개편하여 모든 학생들이 사회와 과학 교과 영역에서 적어도 한 개 과목을 반드시 응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모든 학생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개 영역에 대하여 동일한 수능시험을 실시하는 이른바 ‘공통 수능’ 체제가 제안되기도 하였지만 이 방안은 수학 및 과학 교과 등에서 선택과목(미적분, 물리 등)의 정상적 운영을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감안하면 수능 체제의 개선에서는 사회와 과학을 모두 포함시키되 교과 영역에 따라 일부 과목을 선택적으로 응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수능 체제 개선과 함께 대입제도의 개선도 함께 모색될 필요가 있는데,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관점에서 그 기본방향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능을 통해서든 내신을 통해서든 그 밖의 다른 방안을 통해서든 적어도 기초소양의 균형 있는 함양을 위한 공통과목들에 대해서는 이를 대입제도에서 중요한 전형요소로 반영할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둘째, 학생들의 적성과 진로에 부합하는 선택과목을 바르게 선택하여 이를 충실하게 이수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대학의 전공별(또는 모집단위별) 교육에 필요한 선수과목들을 지원 자격으로 제시해 주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와 관련하여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각자의 진로 및 진학계획에 부합하는 선택과목을 바르게 선택하여 이수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어야 하며, 이들 과목들에 대해서는 학생의 과목 선택·이수를 학교가 책임지고 보장해 주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5. 맺는말

수능 체제의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올바른 교육을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점이 무엇인지에 따라 매우 다양한 관점들이 제시될 수 있으며, 또한 내신평가의 방법,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 등 대입제도의 세부 내용들의 변화 양상에 따라서도 수능체제 개편의 방향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학령인구의 감소와 같은 사회적 상황의 변화 역시 수능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수능 체제를 모색하는 일은 지난한 과제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어떠한 방안을 구상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가가 고시한 교육과정의 충실한 운영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과와 이과로 이원화된 고등학교의 과정 구분을 폐지하였던 7차 교육과정에도 불구하고 수능 체제가 사탐과 과탐을 분리하여 어느 하나만을 응시하도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문·이과의 분리와 그 사이의 장벽을 유지하였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수능 체제 개선 방안 모색에서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수능 체제의 변화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첫째로 수능에 의해 고등학교 교육 전체가 공통과목의 반복학습만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의 5개 영역에서 공통과목만을 수능 대상과목으로 지정한 상황에서 수능의 대입 영향력이 현재와 같이 유지된다면 고등학교 교육 전체가 공통과목의 무한 반복 학습으로 제한될 위험이 크다.

이러한 방안을 추진해야만 한다면 오히려 수능의 상대적 영향력을 줄일 수 있도록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 대상 과목으로 하거나 시험 시기를 고등학교 1학년 말이나 2학년 초로 변경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둘째로, 같은 맥락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 등에 따라 필요한 일반선택 및 진로 선택 과목을 더욱 적극적으로 선택하여 이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수능체제나 대입제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문·이과 통합’의 아이디어를 잘못 이해하여 “앞으로는 문과 이과 구분이 없으니 미적분이나 과학 과목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대학이나 공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고등학교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면 이는 한국의 이공계 대학과 학문 분야의 미래에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재앙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려면 대학의 지원자 수를 늘리는 데에만 집착하여 전공영역에 필요한 고등학교 선수과목들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요구하지 않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능과 교육과정의 관계는 양면성을 갖는다. 한편으로 수능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교과목은 덜 중요한 교과목으로 치부되어 정상적인 수업운영이 어렵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능 대상 교과목의 경우는 오히려 수능문제풀이에 매몰된 피상적인 수업 운영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교육이 제약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들은 선택형 문제이외의 서술식 문제 유형의 도입을 포함한 수능의 전반적인 개선 과제들에 대한 점검과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수능 대상 과목의 범위나 응시 과목의 수 등 세부 사항들에 대한 논의도 합의된 결론을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러한 세부사항에 대한 논의와 함께 ‘교육의 발전’이라는 숲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큰 그림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참고 문헌 ]
교육부 (2015).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김경자 외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시안 개발 연구(총괄). 서울: 교육부·국가교육과정연구위원회.
황규호 (2013). 국가 교육과정 개정과 학교 교육의 질. 교육과정연구, 31(3), 27-52.
황규호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위한 수능 개선 방향. 대학교육, 188, 71-76.
황규호 외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구성 방안 연구. 교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