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희의 인성교육] 제6강 배려와 관용이 없으면 어떤 사회가 되는가?
[이돈희의 인성교육] 제6강 배려와 관용이 없으면 어떤 사회가 되는가?
  • 서혜정 기자
  • 승인 2016.08.2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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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려스런 사회적 현상의 하나를 언급하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였다. ‘울혈사회’라는 말이 그것이다. ‘울혈(鬱血)’이라는 단어는 의학용어로서 혈액순환의 장애로 인하여 발생하는 질병 혹은 증상의 일종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종의 사회적 병리현상을 언급하는 말로서 일부의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 사용되기도 하는 것 같다. 심리학적으로는 아마도 공격적 특징을 지닌 정서불안의 상태로 설명될 수도 있겠지만, 개체의 행동적 특징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현상으로 관찰되는 수준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상적인 접촉에서, 혹은 집단 간의 이해관계나 경쟁구도에서 다소 불쾌하거나 적대적 자극이 우발적으로나 의도적으로 다가오면, 거기에 자제력을 잃고 극한적 반응을 하는 사례가 흔하게 관찰되고 있다.

일회적으로 그냥 그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반응에 다시 더 높은 강도로 대응하면서 급기야는 상상을 초월한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사례가 언론에서도 빈번하게 보도되고 있다.

어떤 불쾌한 자극이나 불리한 상황을 접하면 쉽게 충돌하고, 격분하고, 울분을 발하고, 혈기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이고 적의에 찬 싸움판이 쉽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의 층간에 발생하는 충돌, 운전자들 간의 보복적 행동 등과 같이 사소한 수준에서부터, 가족관계, 사업관계, 집단이해관계, 정치노선 간에 발생하는 충돌과 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

막말, 욕설, 폭언, 행패, 파손, 탈법 등에서부터 폭력, 강도, 방화, 살인 등에 이르기까지 국민 정서의 불안정이 위험수위에 있다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참아주고 견디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타협하는 배려와 관용의 마음씨가 사라져 가고, 문제를 순리보다는 욕설과 몸싸움으로 해결하려는 풍조가 만연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배려와 관용은 행복윤리의 개념이다

‘배려’와 ‘관용’ 두 단어는 모두, 나와 어떤 특정한 타인의 사이에 어느 수준의 부담스러운 이해관계가 놓여 있을 때,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거나 참작하여 상대방의 심리적 혹은 물질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마음을 가질 때 사용되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심리적 혹은 물질적 부담은, 가난한 사람이 진 빚이나 곤경에 빠진 사람의 처지처럼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지만, 함부로 버린 오물로 인하여 불특정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불쾌감과 피해와 같이 막연히 누군가가 어떤 수준의 부담을 지거나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추측에 의한 우려일 수도 있다.

금전의 손해를 보는 것과 같이 구체적 손실을 염려해 주는 경우도 있고, 개울의 나무다리처럼 떠내려가면 사람들이 왕래하는 데 불편이 있다고 짐작하듯이 어떤 조처를 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일 수도 있다. 부담은 가벼운 불편일 수도 있지만, 치명적인 손실일 수도 있다.

배려와 관용은 내게 아무런 손해도 없이 베푸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의 이익이나 기회를 희생하면서 베푸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배려와 관용은 인간의 삶에서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이거나 반드시 수행하기를 강제하는 행위의 법칙과 같은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배려와 관용은 기본적 질서와 당위적 규칙으로 준수해야 하는 사회적 요구라 기보다는, 오히려 실천되면 좋은 것, 바람직한 것, 아름다운 것과 같이 적극적 가치를 생산해 내는 ‘미덕(美德)’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베풀어 주는 아름다운 혜택과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려와 관용의 미덕은 일차적으로 생활의 의무와 행위의 법칙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의무론적 윤리학(deontological ethics)’의 관심사라기보다는 인간의 행복과 선행에 관해서논의하기를 좋아하는 ‘목적론적 윤리학(teleological ethics)’의 관심사이다.

나는 후자를 쉽게 ‘행복윤리’라고 표현해 두고 쉽기도 하다. 좀 더 설명하면, 목적론적 윤리학은 ‘좋은(선한) 행위’의 의미와 기준을 밝히는데 일차적 관심을 두고, 주로 인간과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러한 삶에서 요구되는 행위의 특징이 어떤 것이냐를 밝히고자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과 덕의 윤리학, 쾌락주의자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에피큐루스 학파의 윤리학, 그리고 벤담 등의 공리주의 윤리학이 이에 속한다. 행복한(happy) 삶, 좋은(good) 행동, 덕스러운(virtuous) 행위, 쾌락(pleasure)을 가져다주는 행위 등에 관심이 주어진다. 반면에 의무론적 윤리학은 주로 옳은(right) 행동, 의로운(just) 행위, 혹은 바른(righteous) 판단이란 어떤 것이냐

에 관하여 일차적 관심을 두고 논의해 왔다. 도덕적 행위의 보편적 법칙을 세우고자 한 칸트의 윤리학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의무론적 가치는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도덕적 명령과도 같은 것이지만, 목적론적 가치는 실현하면 좋은 것, 덕스러운 것, 바람직한 것, 행복한 삶에 기여하는 것으로 주로 강제보다는 권장하는 성격의 것이다.

의미론적 특징상 배려와 관용은 상대적으로 목적론적 관심에 더욱 가까운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인간사회의 도덕적 삶을 의무론적으로만 치우쳐 규정하면 합리적 질서와 엄격한 정의의 기준이 유지될 수는 있겠지만, 실천자의 자발성과 적극성이 수반되지 않은 불가피한 명령의 수행에 머무를 수가 있다.

반면에 목적론적으로만 규정하면 도덕적 요구를 감정이나 정서의 도움으로 해결하고자 하고 기본적 질서나 합리적 사고의 철저를 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을 바르게 하게 또한 아름답게 되기를 원한다면, 어느 하나의 선택이 정답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두 가지의 도덕론적 관심의 차이는 서양의 윤리학에서만 아니라 동양의 유학사상에서도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공자의 ‘인(仁)’의 개념과 맹자의 ‘의(義)’의 개념이 그러하다. 물론 공맹의 사상을 통합적으로 말할 때 ‘인의(仁義)의 사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인과 의의 어느 쪽에 일차적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서 무게의 비중은 다소 다를 수가 있다.

공자는 ‘인’을 주로 이야기하였고, 맹자는 ‘의’에 많은 관심을 두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 비중으로 보면 공자는 서양철학적 분류에 따라서 목적론자이고 맹자는 의무론자라고 하기는 어렵다. 맹자의 경우에 그의 성선설(性善說)에서 인간의 타고난 성품, 즉 착하고 좋은 성품을 중시하였고, 그것이 만개(滿開)한 상태를 의미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목적론적 개념이다.

공자(孔子)의 충서(忠恕)의 개념을 음미해 본다
― 배려와 관용의 기본 ―

아마도 배려와 관용의 태도와 행동을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는 것으로 말하면 공자의 충서의 개념 이상의 것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배려와 관용은 공자의 사상에서 중심 되는 개념인 ‘인(仁)’의 사상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인(仁)’을 ‘어질 인’이라고 하듯이 ‘어질다’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번역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다. 우리말의 ‘어질다’라는 말은 마음이 너그럽고 정이 두터우며 사려가 깊은 인격의 특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칼날같이 분명하고 사물을 보는 눈이 명석하고 지혜로우며 엄격하기만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를 우리는 일상적 의미의 ‘어진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감싸주고 매사를 따지거나 밝히려고 하지 않으며 아무것이나 용서해 주는 심성의 소유자도 때때로 ‘어진 사람’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어질다’라는 우리말은 일상적인 용어로써 사용되는 것일 뿐,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밝힐 수 있는 이론적 언어는 아니다. 그러므로 유학(儒學)에서, 공자가 말한 ‘인’의 개념을 ‘어질다’의 말이 지니는 의미만으로 이해되기는 어렵다.

물론, 공자가 사용한 인의 개념에는 우리말의 ‘어질다’의 의미를 함께 포함하기도 하고, 또한 그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반드시 표현하도록 강요한다면 ‘어질다’의 말 이외에 또 다른 좋은 표현이 없기도 하다.

공자가 제자인 증자(曾子)와의 대화에서 이런 말이 오갔다고 한다. “삼(參: 증자)아, 내가 말하는 도(道)는 하나의 원리로 회통하는 것이다”(一以貫之)고 말하자, 증자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동료 제자들이 증자에게 그 회통하는 원리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충서(忠恕)일 따름이라”(里仁 15)고 대답하였다.

증자가 ‘충서’를 공자가 말하는 회통의 원리로 이해한다고 언급한 이래 충서의 개념은 유가의 인(仁)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개념이 되었다. 충서에 대한 도덕론적 해석에 의하면, 자기가 바라는 것을 미루어 타인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때 그것을 ‘충(忠)’이라고 하고, 자기가 원치 않은 것을 미루어 타인이 원치 않는 바를 깨달을 때 그것을 ‘서(恕)’라고 한다.

충은 적극적인 개념으로서 인을 실천할 때 남을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신이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면 남도 이루어지도록 해 주는 것’이 충이다.(雍也 28) 이에 비하여 서(恕)는 소극적인 개념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

반드시 일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충’은 대체적으로 배려의 의미를 많이 담고 있고 ‘서’는 관용의 의미를 다소 담고 있다. (위에 줄 친 부분에서 ‘충’이라는 글자의 자리에 ‘배려’라는 말로 대치해 보고, ‘서’라는 글자를 ‘관용’이라는 말로 대치해 보면 별로 어색함이 없이 문맥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충서의 개념에 관해서 이해토록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을 들기도 하고, 반대로 소극적으로 하지 않도록 금지하는 내용을 들기도 하였다. 권고하는 내용으로는 중용(中庸) 에 공자가 군자로서 반드시 실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였다고 겸손하게 반성하는 표현의 네 가지에서 읽을 수 있다.

-자식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지 못하였으며, 아우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형을 섬기지 못하였고, 벗들에게 바라는 그 마음으로 먼저 벗들에게 베풀어 주지 못하였다.(中庸 12)

즉, 내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대로 내가 먼저 어버이를 섬기고 있어야 했고, 내가 신하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대로 내가 임금을 섬기고 있어야 했으며, 내가 아우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대로 내가 형을 섬기고 있어야 했고, 내가 벗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먼저 내가 벗들에게 베풀고 있어야 했다는 말이다.

내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경험했다면 일찍부터 나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주변의 사람을 도우고 있어야 했고, 내가 칭찬을 받고 싶었듯이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했으며, 누군가가 나에게 충고를 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생각한다면 내가 충고해주는 일을 지혜롭게 했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공자가 겸손하게 뉘우친 말이지만, 일찍이 배려와 관용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충서의 개념을 실천하는 것과 관련하여 공자 후대의 유가 학자들이 ‘혈구(潔矩)의 도’라고 일컫는 내용이 대학 (大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여기에는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에 관한 것보다는 소극적으로 자중하고 자제해야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언급하고 있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말 것이며, 아랫사람으로서 있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여 윗사람을 섬길 때 그렇게 하는 법이 아니다. 또한, 앞선 위치에 있다고 하여 자기가 싫어하는 바를 뒤 사람에게 하도록 요구하지 말것이며, 뒤를 잇는 위치에 있다고 하여 자기가 싫어하는 바를 앞선 사람이 해 주도록 요구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다고 하여 왼쪽 사람에게 자기가 싫어하는 바를 두고 거래하지 말 것이며, 왼쪽에 있다고 하여 오른쪽 사람에게 자기가 싫어하는 바를 두고 거래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을 ‘혈구의 도’라고 한다. ( 大學 10)

혈구의 도는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기보다는 서로 자제하거나 자중할 소극적 사항을 언급하고 있다. 배려와 관용에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바도 있지만 다소 조심하고 삼가야 하는 태도와 행동이 있다.

지위와 직분에 있어서 상급자와 하급자, 선배와 후배, 연장자와 연소자의 관계에서, 임무나 직책에서 선임자와 후임자의 사이에, 서로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만 분담된 활동을 하는 팀이나 조직 사이에, 자기 방식의 생각과 행동으로 상대방과의 일을 관철하고자 하거나, 서로 불필요하게 간섭하거나 자기편의 이익이나 편의를 챙기려는 것을 자제하는 것 자체가 적극적으로 도우고 베푸는 것에 못지않게 중요한 처신일 수가 있다.

배려와 관용은 미덕의 전형이다

공자는 자신이 했어야 할 도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주로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형과 아우, 친구의 사이를 든 것은 단지 구체적 인간관계의 예를 든 것일 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와는 멀고 가까운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조직에 대하여 충서의 개념은 유의미한 것이다.

아마도 공자도 그런 폭으로 생각한 것을 구체적 관계로 언급했을 따름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혈구의 도는 그 의미하는 바가 주로 어떤 관직자들의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것 같이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위와 아래, 앞과 뒤, 그리고 좌우의 위치로 말할 수 있는 관계는 무수히 많다. 직장의 상하 관계도 있지만, 상인과 고객, 공직자와 시민, 그리고 연령으로 인한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요구하는 상황, 요사이는 일종의 속칭으로 ‘갑’과 ‘을’의 관계로 표현하는 경우 등이 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장소나 차례를 먼저 사용한 사람들과 뒤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동시에 서로 장소나 기물이나 시설을 사용하거나 서로 거래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인간관계가 단순하고 구별이 쉬우므로 설명의 사례도 구체적이었다.

충서의 개념이나 혈구의 도가 오늘의 복잡하고 급변하는 상황에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함축된 도덕적 원리의 의미와 지혜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다만 인간관계의 구조는 엄청나게 복잡해졌으므로 실천하는 사람은 단순한 습관으로서가 아니라 지혜와 성찰과 판단을 함께하면서 상황 상황에 임해야 한다.

배려와 관용은 나와의 이해관계가 없이도 남에게 베푸는 미덕이다. 일상 생활에서 타인, 이웃, 친구에게 베푸는 배려는 가벼운 것이라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을 돋우고 인간관계를 평화롭고 아름답게 하는 ‘약념’과 같은 것이다.

배려의 강도가 특별히 높은 경우에는 자신의 희생이 따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배려를 고귀한 것으로 여기고 높이 칭송하기도 한다. 관용은 나의 이익이나 주장을 유보하면서 나로 인하여 타인이 불리한 상황에 들지 않도록 마음을 써주는 소극적 배려의 태도를 의미한다.

나에게 혹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잘못을 범하였거나 손해를 끼쳤을 때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 태도를 일컬어 ‘관용’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말은 때때로 ‘다른 생각’, ‘다른 의견’, ‘다른 신념’ 그리고 ‘다른 처지’를 존중해 주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열린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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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정 기자  hjkara@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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