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 평가 제도를 평가한다 ②

헌법 제31조 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현행 고교 내신 제도는 여러 명의 교사가 한 과목을 몇 개반씩 나누어 가르치는 상황에서도 각 학년 내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학년별 평가(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실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학교 수업 및 교육이 헌법을 위반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선다형 문항 위주의 학년별 평가는 필연적으로 수업 내용의 획일화를 요구하며, 이는 교사가 자신이 맡은 반에서 교육 전문가로서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독창적 수업 진행을 시도하기보다 교과서 분석 및 해설 위주의 강의식 수업을 하도록 만든다.

2) 이때 수업 수준을 넘는 학업 성취도를 갖춘 우수한 학생들은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수업을 따라가기에 낮은 수준의 학업 성취도를 보이는 학생들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3) 결과적으로 해당 수업 수준에 운 좋게 일치하는 정도의 실력을 가진 소수의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4) 즉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헌법상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획일적 수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준별 학급 운영을 통하여 학생의 학습 능력을 반영한 학생 맞춤식 수업을 최대한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수준별 수업이 실시되는 학교일지라도 대입 전형 요소로서의 내신 성적을 산출하기 위하여 같은 학년에 속하는 학생들이라면 모두 동일한 중간고사 및 기말고사를 치러야만 한다. 이렇듯 수업과 평가가 분리된 수준별 학급 운영은 결국 우열반 도입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또한 한 과목에 대하여 상중하 정도로 제한된 수의 수준별 학급을 운영함에 따라서 같은 수준의 학급 내에서도 학생들의 실력에 큰 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교사는 어느 수준에 맞추어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가 여전히 난감하게 된다.

특히 ‘하’ 수준의 학급에 속하는 학생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기 쉽고 학급 내에서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시험이 아니라 (‘상’이나 ‘중’ 수준 학생들과 동일한) 자신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시험을 치르게 됨에 따라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의 성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 학생들은 해당 과목을 포기하거나 학습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되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나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학생)’가 되기 쉽다. 본 글에서는 우선 우리나라 고교 교육평가가 가지는 문제점 및 그 원인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하여 왜 우리나라 학생들이 살벌한 상호 경쟁과 끝없는 학습에 열중하면서도 21세기 지능정보사회에 적합한 역량과 인성 그리고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갖춘 인재로 자라나지 못하는지, 그리고 왜 여타 선진국 학생들에 비하여 학업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낮으며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학창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즉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은 10대 후반의 소중한 시기를 각자의 소질과 재능을 찾고 이를 단련하여 적극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아실현을 추구하기보다는 지필고사 형태의 시험 준비에 몰두하면서 상위 학교에 성공적으로 입학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으로 채우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는, 적극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과 ‘개인적 성취감에서 오는 희열’을 느끼며 행복하게 공부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육은 큰 폭의 체계적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주로 고등학교에서의 교육평가와 관련하여 논의를 전개하기로 한다. 정리하자면, 이하에서는 우선 현행 고교 내신 제도의 문제점과 선행연구들을 토대로 향후 고등학교에서의 새로운 교육평가가 지향해야 할 바를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교육평가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하여 함께 해결하거나 변화되어야 할 여타의 사항들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강태훈 성신여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현행 내신 제도의 문제점

내신에 의한 평가는 개별 학생에 대한 파악 및 이해를 단일한 시험이나 극히 제한된 시간 속의 관찰을 통하여 이루려 하지 않고 고등학교 생활 전반에 걸친 전인적 특성에 대한 기록에 기초하여 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내신 제도의 실질적 중요성 혹은 영향력은 이것이 주요한 대입 전형요소라는 점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의 대입제도가 고등학교 이하 단계의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매우 강력한 동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신 성적의 구성 내용과 산출 방식이 고등학교 교육 실제를 거의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고교 내신 제도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년별 평가로서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주된 비중을 차지한다. 즉 미국, 핀란드 등 여러 선진국에서 당연시되는 학급별(혹은 교사별) 평가 대신 같은 학년 내 같은 과목에 대한 동일 시험이 치러지고 있다.

한 고등학교 2학년의 작문 수업을 세 명의 교사가 몇 반씩 나누어 가르친다면 각 학생들에 대한 평가는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지도한 교사가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직접 가르친 교사만이 학생들의 작문과 독후감 등의 과제 수행 그리고 수업에서의 발표와 같은 학생 참여, 쪽지 시험 등을 통하여 학생들의 장단점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일이 현행 내신 산출 방식 하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둘째, 내신과 수능의 상호 보완적 혹은 협응적 조화가 무시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통하여 평가하는 내용과 방식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별다를 바가 없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유사한 형태의 평가를 반복하는 이러한 행태는 현장 교육을 지필고사 문제풀이 대비 및 연습의 무한반복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내신과 수능 간 상호 보완을 진지하게 추구한다면, ‘내신은 절대평가 위주 그리고 수능은 상대평가 위주’와 같은 역할 분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내신은 질적평가 위주 그리고 수능은 양적평가 위주’, ‘내신은 학교생활 충실도 지표 그리고 수능은 학업성취도 지표 산출 도구’와 같이 교육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주요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현행 내신 제도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교 간 차이를 무시하고 각 학교의 내신 성적을 동일한 기준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진다. 그러나 각종 시험 및 수행평가 등은 각 고등학교별로 다른 문제를 통하여 실시하고 평가 결과에 대한 비교는 소속 고등학교에 관계없이 전체 수험생에 대해서 실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큰 모순이다.

다시 말하여,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고 있는 셈이며, 이는 교육적 목적과는 무관하게 정치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관철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내신이 각 학생이 교과 및 비교과 활동과 관련하여 학교생활을 얼마나 성실하게 했느냐를 나타내는 지표로 작동한다면 이러한 모순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내신 제도는 대입 전형 요소로서 상당한 역할을 함으로써 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필고사 결과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행 내신 제도하에서 이는 사실 신화에 불과하다. 즉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기보다 사실은 ‘무능한 교사의 은밀한 학생 통제권’과 ‘문제풀이 위주의 비교육적 수업의 존재’를 담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유능한 교사의 참신하고 효과적인 수업 운영과 학생에 대한 형성적 평가’를 근본적으로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또한 학교의 독창적인 교육적 노력이나 학생의 사고력 증진을 위한 교사의 열정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학원 교육에 비하여 열등하고 무능한 학교 교육이 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섯째, 내신 제도에서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행평가가 효율적·효과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류성창 외(2012)의 연구에서 실시한 고3 대입지도 경험 교사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수행평가가 본래의 취지에 맞게 시행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리커트(Likert) 5점 척도에서 평균 점수가 2.5점에 불과하였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2010)의 조사에 따르면 그러한 부정적 답변이 나타나는 이유들은 ‘(대입)선발 위주의 평가 문화’, ‘지나친 객관성의 강조로 참여횟수와 같은 피상적 요소 위주의 평가’, ‘학교 교육과 교사에 대한 신뢰 부족’, ‘교사의 업무 과중으로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수행평가가 될 수밖에 없음’ 등임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 교육평가 개선 방향

스스로 학습 및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고교 교육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1) 학생들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며 표현하게 하고, 2) 함께 협력하여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 3) 각자가 지닌 소질과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 문제풀이 위주, 암기 위주의 학습에서 벗어나 폭넓은 대상에 대하여 자유롭게 탐구하고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수업 방식은 ‘지식전달형’에서 ‘협력 학습형’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으며, 학교에서의 학생에 대한 평가는 ‘경쟁’보다는 ‘협력’과 ‘인성’을 강조하면서 서로 도우며 학습하는 과정과 결과를 함께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하에서는 우선 주요 선행연구를 중심으로 향후 고등학교에서의 학생 평가 방식이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해서 정리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의 교육평가 개선에 대한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1. 미래 교육평가에 대한 선행연구 기본적으로, 미래 고등학교에서의 교육평가는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1) 개별 학생의 필요와 흥미를 파악하고 각자의 소질과 잠재력에 맞는 학습 내용과 방향을 제시하며, 2) 학습 과정을 중시하여 각 학생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면서 변화 정도를 측정하며, 3) 학습 목표의 달성을 확인하고 이를 다시 새로운 성장을 위한 피드백으로 활용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4) 이러한 활동에 대한 양적·질적 기록 자체가 내신 제도에 의한 산출물이 될 필요가 있다.

<표 1>에서는 류성창 외(2012), 허경철(2013), 성태제 외(2013), 김태완(2015)의 논의를 중
심으로 향후 교육평가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고교 내신이란 각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진 학생에 대한 평가 활동에 근거하여 산출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미래 교육평가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내신 제도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 학교에서의 교육평가 지향점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교사 평가권 보장을 전제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위주의 학년별 평가에서 교사가 자신이 직접 가르친 학생들을 학급별로 평가할 수 있는 학급별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둘째, 획일적 수업을 전제로 하는 지필고사 위주의 양적 평가를 지양하고 질적 평가 위주의 내신 산출을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현직 교사에 대한 평가 전문성 향상 연수 및 예비 교사를 위한 질적 평가 관련 과목 수강과 실습 기회 확대가 필요하다.

셋째, 점수 및 등수로 학생들을 상호 비교하고 줄 세우는 상대평가 관행에서 탈피하여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 비추어 평가하는 절대평가를 지향해야한다.

넷째, 교수학습 과정이 종료된후 최종 선발 및 분류 목적으로 실시하는 총합평가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교수학습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활발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형성평가를 지향해야 한다.

2. 선진 외국의 교육평가 동향

여러 선진 국가들은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이한 미래 사회에 새로운 교육평가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보고 지속적으로 학교평가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일찍이 Herman, Aschbacher, Winters(1992)는 교육평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다음 [그림 1]과 같이 요약하였다.

이 그림 속의 대안적 방법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평가는 교사가 직접 수행평가와 포트폴리오 방식 등을 활용하여 각 학생의 다원적 측면에 대한 수행 정도를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교육평가의 주된 목적은 선발, 배치, 분류가 아니라 교수 및 학습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정보 수집 및 전문적 판단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교육평가의 지향점은, 글로벌 기업인 시스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후원하는 ATC21S(Assessment & Teaching of 21st Century Skills) 연구 프로젝트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이 프로젝트에서 표방하고 있는 평가 원리(Binkley et al., 2012; 허경철, 2013에서 재인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2009)’에서 내신 개혁을 위하여 실시한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 영국,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일본 등과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교해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우선 학급별 평가를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즉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에서는 해당 과목을 가르친 교사가 직접 학생들을 평가하며 따라서 관찰과 기록 위주의 질적평가를 주로 실시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양적평가 위주의 학년별 평가를 지필평가 형태로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내신평가 방식에 있어서 상대평가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였다. 수업 방식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국가가 토론식 수업과 학생의 수준을 고려한 수업 및 평가를 강조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와 일본만 주로 강의식 수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일방향의 강의 문화 속에서 수시평가와 이를 바탕으로 한 활발한 교사-학생 간 상호 작용 및 송환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내신 제도

앞에서 살펴본 현행 내신 제도의 문제점 및 선행연구에서의 내신 개선 방향 등을 참고해 볼 때 새로운 내신 제도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첫째, 교사의 평가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혁함과 동시에 현행과 같은 학년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폐지한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거의 모든 선진 국가들에서 통용되는 사항이다.

달리 말하여, 고교 교사들에게 대학교수들에게 허용되는 수준의 평가권을 인정하자는 의미이다. 각 교사는 자신이 한 학기 동안 맡은 수업을 진행하면서 미리 계획된 평가 방법을 학생들에게 밝히고 질적 평가를 위주로 학생을 평가하되 필요하다면 쪽지시험이나 수업 중 OX 문제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내신 산출 정보를 확보하고 이러한 내용 전부를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이다.

관련하여 교사의 평가 전문성 제고를 위한 체계적 연수가 실시되어야 하며, 성적 관련 민원 제기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납득할 수 없는 성적을 부여받았을 때 성적 이의 제기 신청을 할 수 있는 합리적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상대평가에 기반을 둔 내신 9등급제를 완전 폐지하고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를 내신 산출 도구로 활용한다. 성취평가제 도입과 관련하여 가장 이슈가 되었던 사항 중의 하나는 성적 부풀리기 현상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이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두 종류의 대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무대책이다. 이는 내신 결과가 양적 점수 형태로 변화되지 않고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이 각 지원자의 내신 결과를 직접 해석하고 평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각 고등학교별 성적 분포 양상은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은 이러한 정보를 함께 고려하여 개별 학생의 내신에 대한 판단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성적 부풀리기에 대한 이러한 수준의 ‘무대책’은 당분간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나, 교사의 평가 전문성이 향상되고 교사별 평가에 대한 신뢰 및 권위가 확보된다면 오래지 않아 성취평가제는 정착 및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대입 전형에 있어서 졸업생 거의 대부분이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은 고등학교의 성적 정보는 무시되거나 오히려 해당 지원자가 불이익을 받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점차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교육 정상화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때, 많은 학생들이 A 학점을 받는 상황에서 학업 성취 수준은 매우 높으나 수업에 불성실하거나 과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는 학생에게 B 혹은 C 학점을 주는 것이 교사의 평가권에 의하여 가능하다면 이는 학교수업 정상화와 교사의 교권 확립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의 대책은, 성취평가제가 실질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성적 분포에 일정한 제한을 두는 것이다. [그림2]는 1940년부터 2008년까지의 미국 전체 대학들에서의 성적 분포 추이를 제시한다(Rampell, 2011).

이를 보면 대략 A 학점은 근래에 올수록 확대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대략 70년대 이후로 30~40%, 그리고 B 학점 이상은 약 70%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성취평가제 운영에 있어서 향후 약 5년 정도는 A 학점 30% 이내 그리고 A와 B 학점을 합하여 70% 이내 정도의 제약을 둘 수도 있다고 본다.

셋째, 새로운 내신 제도는 다른 중요한 대입 전형 요소인 수능과 별개로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내신이 개별 학생의 학교학습 충실도 즉 과제 작성의 완성도와 함께 프로젝트·토론·세미나 등의 다양한 수업 활동에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고 기여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라면 수능과 같은 대규모 검사는 학생의 학업성취 수준에 대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대로 내신은 절대평가 위주 그리고 수능과 같은 대규모 시험은 상대평가 위주로 운영하고, 내신은 수업을 통한 교사의 다양한 판단이 집적된 형성평가로 기능하고 수능은 총합평가 역할을 맡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제반 교육 여건이 함께 변화해야 함

문학작품을 감상하며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개인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해주는 동시에 문제해결력을 높여줄 수 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문학작품 감상을 학교에서 배울 때 각 문장의 의미를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분석 및 분해하고 관련 사항들을 암기하는 방식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데에 찬성할 사람도 역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행 내신 제도하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이러한 최악의 문학작품 감상을 유도하고 있다. 일례로, 학년별 평가 대비의 국어 수업에서 흔히 ‘황순원의 《소나기》에 등장하는 소녀가 보라색을 좋아하는 것은 죽음을 암시한다’고 학생들이 암기하도록 하고 있지만, 정작 황순원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그냥 제가 보라색을 좋아해요” 라고 답했다고 한다(조은비, 2015).

본글에서는 평가 방식 개선을 통하여 이러한 비극적(희극적?) 공부 풍토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내신 제도 개선에 집중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교육 개혁은 교육평가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교육행정, 학교 조직 체계, 교원 근무 여건, 학교 수업에서 교재 선택 및 사용의 자율성 정도, 학생 및 학부모 인식 등이 함께 변화할 때 가능하다.

또한 교육평가 내에서도 내신과 수능과 같은 구성요소들이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치밀한 설계와 고려 하에서 함께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내신 제도의 기본적 목적은 1) 각 고등학교에서 교육의 본질적 목적에 맞는 교수·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고, 2) 이러한 교육 활동 자체가 대입 전형 자료로써 활용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각 대학이 자신의 특성과 철학에 맞는 신입생을 선발하기 위한 자료로 쓸 수 있는 신뢰롭고 타당한 평가결과를 산출하고, 마지막으로 3) 각 학생이 자신의 능력수준과 관심에 부합하는 교육을 통하여 소질과 재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러한 목적들은 1955년에 서울시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들이 대입 관련 좌담회에서 내신의 필요성에 대하여 처음 논의하면서 가졌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내신 제도의 성공적 실행과 정착은 내신 관련 이해 관계자들이 이러한 기본 목적을 함께 공유함과 동시에 개인적 유·불리를 떠나 합리적이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구체적 방안들을 마련하고 꾸준히 실천해 나감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는 내신 제도의 변화와 함께 추가적으로 함께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본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교육과정 측면에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을 핵심 사항을 제외하고는 과감히 삭제하여 1학기 동안 한수업에서 교사가 다루어야 할 내용이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교사의 교재 및 교육내용 선택에서의 자율성을 대폭 증진함으로써 가르쳐야 할 내용을 교사가 스스로의 교육적 판단 하에서 더욱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주어진 많은 교육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진도 맞추기에 급급하고 학생들의 수요 및 이해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의 수업이 사라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교사에게 신뢰롭고 타당한 질적평가, 절대평가 그리고 형성평가를 실시하도록 요구하려면 그에 따라 교사가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근무 여건 확보가 필수적이다. 흔히 잡무라고 불리는 행정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 수업 능력 제고 및 평가 전문성 제고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현행 행정 업무 중심의 학교 조직 체계를 개편하여 교사가 학생 지도와 교육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이기정, 2012).

이를 통하여 1) 양질의 수업을 위하여 성실히 준비하고, 2) 공정한 평가를 실시하기 위하여 다양한 학생들의 수행 정보를 확보하고, 3) 보다 나은 방향으로 수업을 개선하기 위하여 고민·연구하고, 4) 교사 간 활발하게 수업과 교육 개선을 위한 정보 교류를 하는 등의 활동이 교사의 주된 업무가 되어야 한다.

교사가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기보다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하여 끊임없이 연구하고 학생 개개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때, 각 학생의 능력 수준과 소질에 따라 효과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각 학생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수업을 제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향의 개혁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무학년 학점제의 도입으로써 최소한의 필수 교육과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강 교과목 선택에 있어서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여, 고교 3년 동안 한 학생에게 체육, 음악, 미술 등의 과목은 교육 목적상 필요한 만큼 고정적으로 할당하되 이외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등 관련 과목은 계열별로 최소 이수 단위만 설정하고 학생의 졸업 요건은 특정 학점 이상 이수 및 계열별 최소 이수 단위를 모두 이수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되면, 수학을 예로 들 때 높은 능력을 갖춘 학생은 고등학교 재학 중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대학 혹은 대학원 수준의 과목까지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능력이 낮은 학생은 자신의 능력수준에 적합한 기초 수준의 2~3개 수학 과목만 수강하고도 졸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외계어와 같은 수학 수업 현장에 갇혀 엎드려 자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IT기술 및 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교육공학적 기법을 적극 교육 현장에 도입하여 개인 수준에 맞는 온라인 수업 제공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한 형성평가 및 즉각적 피드백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 참고 문헌 ]
김태완 (2015). 미래학교 도입을 위한 기본설계 구상. 교육정책네트워크 이슈페이퍼, 현안보고 CP 2015-01-8. 한국교육개발원.
류성창, 장혜승, 서예원, 강태훈, 정제영 (2012). 역량 중심 대입제도 개편 가능성 탐색 연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보고서 OR
2012-09.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09). 해외 선진국 시험 성적 제도를 배운다. 선진내신 2차 토론회. http://news.noworry.kr/323
성태제 외 (2013). 2020 한국 초·중등교육의 향방과 과제: 교육과정, 교수·학습, 교육평가. 서울: 학지사.
이기정 (2012). 교육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 경기도: 창착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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