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 평가 제도를 평가한다 ⑤

‘일류 학교는 좋은 학교인가?’ 대해서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서를 받아보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내가 읽은 편집인의 의도를 반영해서 제목을 고쳐 쓰면 ‘일류 학교가 과연 좋은 학교인가?’가 될 것이다.

질문의 의도에 맞추어 대답한다면 일류 학교는 그렇게 좋은 학교가 아니라거나, 일류학교는 나쁜 학교라고 답을해야 맞는다. 혼란스러움의 원인은 내가 다녔던 학교 모두 비판의 대상인 소위 일류 학교라는 데 있다.

자신의 모교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과 감정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모교와 같은 부류의 학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인이 아니라 교육학자인 나에게 이런 글을 청탁하는 것이니, 곤혹스러움을 무릅쓰고 일류 학교와 좋은 학교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정리하려고 한다.

진동섭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일류 학교와 좋은 학교

사람들은 흔히 ‘일류 학교’라는 말을 할 때는 바로 앞에 ‘세칭(世稱)’이란 말을 붙인다. 세칭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혹은 ‘세상이 이르기를’을 의미한다. 세칭 일류 학교는 객관적인 분석과 평가를 거쳐 일류로 분류된 학교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평판 때문에 그렇게 분류된다.

일류(一流)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방면에서 첫째가는 지위나 부류’다(Naver 사전). 영어로는 ‘first-class’로 표기한다. 이 의미를 적용하면 일류 학교는 ‘어떤 방면’에서 첫째가는 위치에 있는 학교 혹은 학교군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어떤 방면이라는 것이 무엇이냐이다. 모든 방면에서 첫째가는 학교는 있을 수 없으니, 사람들은 특정 방면이나 측면에 치중해 보면서 일류, 이류니 삼류 학교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일류라고 생각하는 학교는 입학 경쟁이 치열한 학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좋은 상급 학교 진학률이 높은 학교 그리고 출세한 졸업생이 많은 학교를 말한다.

과거의 명문 중학교 고등학교, 요즈음의 특수목적 고등학교(외국어고등학교와 과학고등학교 같은)와 자립(율)형 사립고등학교가 이런 부류에 속한다. 또한 SKY 대학이라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도 그렇다.

이런 학교를 사람들은 ‘좋은 학교’라 부른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즉, ‘세칭 일류 학교=좋은 학교’라는 등식에 대해서는 이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좋은 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좋은 학교, 좋지 않은 학교, 나쁜 학교는 누구에게 좋고, 좋지 않고 혹은 나쁘다는 것인지, 누가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학교의 특성이 다를 수 있다.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행정가, 지역사회, 기업, 혹은 국가에게 좋은 학교는 똑같을 수가 없다.

이들이 교육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심, 수요, 기대가 아주 다양하고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학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학교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신기할 정도로 일치하는데, 그것은 바로 ‘세칭 일류 학교는 좋은 학교’라는 생각이다.

학교 평가의 기준과 세칭 일류 학교관

학교에 대한 평가는 크게 1) 투입 요인, 2) 산출 요인, 3) 과정 요인, 4) 환경요인 각각에 대한 평가와 이들 요인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평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세칭 일류 학교의 분류와 평가는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측면 중에서 한정된 소수의 하위 요인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그래서 타당성이 떨어지고, 왜곡되고, 위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입시 경쟁률과 입학하는 학생의 똑똑함은 학교의 다양한 투입 요인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학생의 특성은 지적인 요인, 정의적인 요인, 신체적 요인 등 매우 다양하다. 학교의 투입 요인으로는 교원 요인, 시설·재정·여건 요인도 있다.

졸업생의 상급 학교 진학률이라든지 성공한 졸업생 수는 산출 요인의 예다. 학교의 산출 요인에는 학생의 제반 특성의 발달, 발전, 성취도 있고, 교원 차원에서의 산출도 있고, 단위학교 차원에서의 산출도 있다.

세칭 일류 학교는 이렇게 많고 다양한 요인 중에서 단지 몇 개의 세부 요인에 대한 평가만으로 분류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학교를 평가하는 데 있어 투입 요인과 산출 요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과정(process) 요인이다.

교육과 학습이 이루어지는 과정 그리고 학급과 학교 경영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질과 수준
이 대단히 중요하다. 어떤 수준의 학생이 들어오든지 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교사가 헌신적으로 가르침으로써 여러 영역에서 학생이 성장 발달하고 학습의 의미를 느끼도록 돌봐주는 제반 활동이 과정 요인에 속한다.

이것이 학교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과정 요인을 소홀하게 다루고 교육의 시작 단계에서 측정한 학생의 지적 능력과 교육의 종료 단계에서 측정한 상급 학교 진학 실적 그리고 졸업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졸업생이 획득한 지위와 권력만을 기준으로 삼아서 첫째가는 학교를 일류 학교라고 말하는 것은 학교를 지나치게 좁은 눈으로 왜곡해서 보는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관점은 국가 교육의 방향과 정책, 학교 교육과 행정 그리고 학생의 성장과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류 학교에 대한 보다 넓고 타당한 관점, 온전한 관점 혹은 바른 관점을 형성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학교를 보는 관점

학교는 대단히 복잡한 조직이다. 학교의 구성원도 복잡하고 구조와 기능도 복잡하고 여건과 환경도 아주 복잡하다. 따라서 이런 학교의 특성을 온전하게 기술하고 설명하고 해석하고 처방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모형이나 관점이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각자 흥미, 관심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나름대로 학교를 파악하는 틀을 가지고 있는데, 필자는 이것을 공장 모형, 시장 모형, 정치판 모형 그리고 삶의 터전 모형으로 정리한 바 있다.

공장 모형은 학교를 공장과 같은 특성을 가진 조직으로 보는 입장이다. 학교는 교사가 학생을 효과적·효율적으로 변화시키는 곳이다. 교육을 제품 생산과 같이 기계적·합리적 활동으로 본다. 시장 모형은 학교를 시장의 특성을 가진 조직으로 보는 입장이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수요에 맞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치판 모형에서는 학교가 정치 마당과 같이 참여자들의 권한과 이해(interest)를 배분 조정하는 곳이라고 본다.

삶의 터전모형에서는 학교는 학생을 중심으로 한 구성원들의 다양한 삶이 이루어지는 마당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의 가치도 소중하게 돌보는 창조적인 공동체라고 본다.

그런데 학교에 대한 기존의 주류적인 모형은 공장 모형이나 시장 모형에 가깝다. 세칭 일류 학교를 좋은 학교라고 보는 관점이 강조하는 가치는 효율성, 효과성, 경제 원리, 경쟁과 평가 등이다.

이러한 학교 관은 1) 좋은 학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칭 일류 학교의 평판을 가지고 있는 학교를 과대평가하고, 2) 세칭 일류 학교에는 속하지 않지만 학교 구성원에게 의미 있는 경험과 삶을 제공하는 학교의 존재를 무시한다.

따라서 일류 학교와 좋은 학교에 대한 기존의 관점은 변해야 한다. 그것은 교육 환경과 여건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해 있다. 학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일류 학교이면서 좋은 학교는 계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삼류 학교이면서 나쁜 학교를 가려내고, 이들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고 격려하고 지원한다.

세칭 삼류지만 좋은 학교로 평가받는 학교 그리고 좋은 학교지만 삼류에 속하는 학교의 존재도 인정하며 특성 있는 학교로 발 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관점이 창조적 공동체적 삶의 마당으로서의 학교 관이다.

창조적 삶의 마당으로서의 학교
학교를 일류, 이류, 삼류로 서열화해서 보는 관점은 교육의 수단적·외재적 가치를 중시한다. 교육은 입신양명의 수단이고 학생 간 학교 간 경쟁을 통해 각각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직접적인 목표를 둔다. 학생과 학교 평가를 통해 학생과 학교의 순위를 정해서 일렬로 세운다.

창조적 삶의 마당으로서의 학교관은 교육의 본질적·내재적 가치를 강조하고, 학교는 그런 가치 함양을 위해서 학생과 교사를 보살피고 지원하고 조성하는 일에 힘쓴다. 학생의 잠재력과 교육적 요구는 다양하기 때문에 이것을 최대한 계발하고 수용한다.

학생을 한정된 기준으로 평가해서 점수와 순위를 매겨서 팔기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특성과 개성을 살리도록(characterization) 수업을 진행하고, 학급과 학교를 경영한다.

교육과 경영의 특성화와 개성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과 경영을 통해 구현하려는 학교는 ‘일류의 좋은 학교’가 아니라 ‘좋은 일류 학교’이다. 은 일류 학교는 일품(逸品) 학교이고 교육과 경영의 품격이 빼어난 학교를 말한다.

이런 학교는 입학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학교가 아니라 각자의 역량을 발굴하고 계발하기 위해서 협력적으로 학습하는 학교다. 공부 잘하는 학생을 뽑기 위해서 경쟁하는 학교,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뽑아들이는 실력, 즉 학생 선발력이 강한 학교가 아니다.

제각기 다른 학생들의 능력과 역량을 입학 시점에 비해 졸업 시점에 크게 향상시키는 힘을 교육력(敎育力)이라 부른다면, 그런 교육력이 아주 강한 학교가 좋은 일류 학교다. 교육력보다 선발력이 강한 학교는 학생들을 시험 성적으로 분류하고 보상을 주고 상급 학교 진학 성적을 높이기 위한 진학 지도에 치중하고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얻는 지위에 관심이 아주 크다.

좋은 일류 학교 디자인

좋은 일류 학교는 1)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과 역량을 발굴하고 표현하고 발휘하고 계발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2) 교육의 산출만큼 과정을 중시하고, 3) 교사가 가르치기 보다는 학생 개인과 집단이 자발적으로 학습하기를 강조한다.

또한 이런 학교는 4) 구성원 전체 즉 학교조직의 활력이 아주 강한데, 이것의 원천은 교원들이 자발적으로 전문성을 계발하고 상호 간에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학교의 조직 활력의 알파와 오메가는 5) 학교구성원들이 학습과 삶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공유하는 공동체 의식과 강한 유대감이다.

극심하게 변하는 세기적 변화에 부응해서 국제 사회는 교육 개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교육 개혁의 요체는 단위 학교의 역량과 변화의 활력을 살리는 데 있다. 단위 학교가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일선 학교는 개혁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이러한 교육 개혁을 추진하려면, 우선 학교를 바라보는 기존의 틀이나 고정관념이 변해야 한다. 전형적인 예가 바로 ‘세칭 일류 학교는 좋은 학교다’라는 관점이다. 이것은 학교를 한정된 기준과 가치로 평가해서 한 줄로 세우는 것으로서 타당성이 떨어지고 온전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

학교의 개혁은 다양하고 좋은 학교를 모두 일품 학교로 만드는 노력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단위 학교와 학교군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조직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요소들이 환경을 이루어 학교조직과 상호작용을 하는 생태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학교를 창조적 삶의 마당으로 만드는 일은 어느 학교 하나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단위 학교 하나하나의 노력이 없이는 개혁 자체가 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교육 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우선적으로 오염된 부분을 정화하고 치유하면서 건강성을 증진시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교육 생태계의 건강성을 해치고 치유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필자는 교육에 대한 학부모와 국민들이 이중적인 사고방식과 태도, 정부와 교육청의 단기 업적 및 성과 중심주의(short-termism) 그리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왜곡과 악용 등을 지적한바 있다(진동섭2014).

학교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틀의 변화 역시 학부모, 교육행정가와 정치가들의 사고 방식과 태도가 아주 중요하다. 이들의 역할을 다시 기대하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