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유(칼럼리스트, 한국교육연구소 부소장, 교육학 박사)

김대유 경기대 초빙교수
김대유 경기대 초빙교수

금기 욕망 부르는 국정화

소녀의 애틋한 그리움이 담긴 최순애의 오빠생각은 금지곡이었다. 조선총독부가 뜸부기나 기러기가 무서워 노래를 금지시킨 것은 물론 아니다. 조선백성들이 오빠생각을 애창하는 꼴을 못 본 것이다. 유신시대에는 오빠생각의 기러기가 왜 북에서 오느냐고 시비한 사정당국의 반공 노이로제 일화가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요즘 우스개 얘기로 말하자면 기러기는 최초의 종북동물인 셈이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으로 시작하는 아침이슬은 유신정권의 폭정을 풍자한 것으로 규정하여 금지곡이 되었지만 이 노래는 유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 아침이슬은 1970년에 작곡되고 유신은 1972년 10월에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유신이 발표되기도 전에 만들어진 노랫말을 나중에 발표 된 유신을 의미한다는 이유로 금지시킨 것은 시대의 퇴행 현상이다.

금기(taboo)는 독재자의 은밀한 욕망을 실현하는 역사적 나이테에 비유할 수 있다. 독재가 깊어지면 백성이 절망하고 희망을 잃은 백성은 노래밖에 할 것이 없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동학혁명의 노래가사에는 조선 백성들의 절망이 담겨있다. 눈물의 노래다. 당연히 이 노래 역시 금지곡이다. 녹두꽃 노래를 부르다 걸리면 사형을 당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은 사실 논쟁이 아니다. 뭘 해보자고 쟁론을 하는 것이 논쟁인데 일명 국정화 문제는 대통령의 일방통행과 그에 반대하는 지성집단의 반대 목소리만 있다. 수많은 논거를 차치하고 그러므로 이 문제는 통치행위이며 그 통치에 저항하는 지식인 집단의 저항정신(revolution)이 대립하는 시대의 불운이다.

여러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정화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면 딱 하나다. 검정은 무조건 안된다는 것이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쪽은 국정화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양쪽의 속내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본질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논쟁을 접어두고 금지와 탄압의 몽둥이를 들어 반대하는 지식인들을 겁박하기 시작했고, 지식인들은 국정화 행위를 반민주 행위로 단정하기 시작했다. 해묵은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이 형성되었고 끝을 모르는 전쟁의 칼끝은 2016년 국회의원 총선과 2017년 대선의 고지를 향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국정화 강행을 천명하였고,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교수들이 집단 시국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전교조 교사들은 2만 명이 넘는 대규모 국정화 반대 교사 시국선언을 조직하였다.

국정화 문제는 논쟁을 넘어 탄압과 저항의 길목으로 들어섰다. 교육부는 시국선언을 조직한 전교조 집행부를 고발하고 서명한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정화 반대'는 금지곡처럼 금기어가 되었다. 교수들은 정부의 탄압행위를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비유하며 집단 반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치자의 눈에 비친 지식인 집단의 저항은 금기를 어기는 불온한 행위일 뿐이다.

정책은 실종되고 이성은 증발했다. 분노와 탄압이 맞선 자리에 정치가 들어 설 여유는 없다. 선생님들이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학생들이 찬성을 보낼 리 없고 교수들이 시국을 걱정하는데 국민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대통령의 통치와 국회의 정치는 금지곡이 판치고 금기의 깃발이 난무하던 유신시대로 퇴행하고 있다.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소신과 걸맞지 않은 국정화 정책이 나온 배경에 왜곡된 교육부 장관과 그 관료들, 극우세력의 준동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교과서 제도의 독과점

우리나라 초·중등 국가교육과정은 교육부장관이 초·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고시하는 ‘교육부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방의 교육청과 학교현장의 자율성을 일부 보장한다고 하지만 초·중·고 교육과정의 전체 교과목 및 단위 수는 국가교육과정이 정한 규정에서 자유롭게 가감할 수 없음을 감안하면, 실제로 획일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셈이다.

교과서 체제는 중등의 경우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대체로 검인정의 틀을 유지해 왔다. 국정과 검인정의 차이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검인정 교과서 체제는 사회적으로 별 이견이 없는 주제였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검인정체제는 국정과 다를 바가 없다. 모든 내용을 교육부가 심의하고 있고, 교과서 심의제를 통해 출판사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교육과정의 변천은 미군정 시대의 생활교육 위주의 교육과정에서 시작하여 민주주의 공화국 시대에는 교육과정의 가치를 민주주의 교육에 두었고, 이후 군사정권 시기에는 반공과 질서 확립이 교육과정의 목표가 되었으며, 이후 정권의 특성에 따라 글로벌, 녹색성장, 창의인성, 민주시민, 창조교육 등 기본적 가치와 목표로 바뀌어 대두되었다. 이와 같이 검인정이라 해도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위원을 역임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교육과정 심의에 참여한 사람 중에 하나다. 그래서 나는 검인정이라고 해서 국정보다 자유롭거나 다양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므로 정말 좋은 교과서 체제는 말할 것도 없이 자유발행제다. 그러나 국민 의식과 정치적 상황이 자유발행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차선책인 검인정 교과서 체제가 국정과 다른 장점이 있다면 제작 과정에서 다양한 교사 집필진을 통해 학생의 요구와 의견을 반영하고 수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집필 과정조차 관료지배에 놓인 국정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는데 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라

국정화 논쟁에서 빠진 담론이 있다면 학생의 의견에 관한 부분이다. 교과서를 제작할 때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이 국정과 검인정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물론 교육과정 요목에서 정한 집필기준은 국정이나 검인정이 똑같이 적용 받는다. 문제는 집필과정이다. 검인정은 집필진이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여 집필할 때 상당한 독자성을 갖는다. 요목을 따르되 정권의 이데올로기나 정부의 시책보다는 학생의 요구를 반영하게 된다.

직접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집필진이 집필의 과정에서 관료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민간 출판사들이 현장의 실력 있는 유능한 교사들을 집필진으로 영입하는 이유는 그만큼 학생의 의견수렴 방식을 중요시 여긴다는 증거다. 학생들이 싫어하는 교과서가 잘 팔릴 리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관한 논리는 이미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 0%대 사건에서 입증 되었다.

반면 국정교과서는 이런저런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집필과정에 관료를 배치하여 시시콜콜 간섭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춘 내용을 집필하도록 종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체제에서 민주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유능한 교수, 교사 집필진의 확보는 난망한 일이다.

국정화를 꼭 추진해서 성공하고 싶다면 그 교과서를 쓸 학생들에게 물어 볼 일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학생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의견 역시 엄중하게 수렴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용공이니 좌경화니 하면서 빨갱이 타령을 하고 국정화가 마치 대한민국 역사 바로 세우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홍보할 때 우리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의 얼굴은 까맣게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한중일 삼국의 국제경쟁에서 경제와 군사력은 그들에게 못 미쳐도 당당한 민주주의 건설에 모범과 우위를 보였던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으로 인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때 그대들은 역사 앞에서 어떻게 책임을 질수 있을지, 물어보고 싶다.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고 염두에 두지 않는 국정화 시도는 분명 시대의 퇴행이다. 학생이 빠진 국정화 시책에는 미래가 담겨있지 않다. 교육부가 국정화 고시를 강행해도 이제 국정화 반대 여론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역사책을 국정화 해도 역사는 국정화 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