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신도림역 현상공모 당선작 이미지 컷>

우리말로는 도야미리, 되미리라고 했던 곳이란다. 이름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정설이 없다. 우선은 마을 일대의 들판에 억새풀 종류인 새나무가 많아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다른 하나의 설은 야산의 모습이 마을 뒤를 성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또 그 마을 형국이 국도에서 돌아앉은 모습과 관련 있다고 하는데, 딱히 이해가 가지 않는 풀이로 보인다.

상도천이라는 하천 한쪽에 있던 도림리가 일제 때인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됐는데, 다른 한쪽에 있던 도림리 일부가 나중에 서울의 행정구역 안으로 들어오면서 ‘새 신(新)’이라는 글자를 달고 신도림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신도림동의 ‘도(道)’라는 글자는 유교적인 영향과는 별반 관련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어쨌거나 이 지역 일대에 자생하던 수풀(林)이 동네 이름의 주요 근거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지금이야 워낙 개발붐이 오래 이어져 그런 수풀이 남아 있지 않다.

과거의 숲은 어딘가 으스스하다. 호랑이가 많았던 조선시대에는 그런 숲이 요즘의 반가운 천연의 숲과는 다른 분위기였을 터. 하여튼 그 숲의 종류는 제법 많다. 우선 나무가 많아 빽빽한 숲을 우리는 삼림(森林)이라고 적는다. 모두 나무(木)이 가득 들어찬 모양의 형용이다. 森(삼)이라는 글자는 木(목)이라는 글자가 셋, 숲을 의미하는 林(림)은 두 개가 있다.

한자의 세계에서 그 숲은 종류가 다양하다. 천연의 숲을 의미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람의 요소가 들어간 숲도 많다. 우선 어떤 나무가 살고 있는가를 따져 적는 단어가 있다. 죽림(竹林)은 대나무 숲이다. 복숭아나무가 많으면 도림(桃林)이라고 적는다. 산에 무성한 숲은 산림(山林)이다. 이 산의 숲에 ‘통행금지’ 팻말 붙여놓고 사람들 출입을 막으며 숲을 키우는 일이 封山育林(봉산육림)이다.

비가 자주 내려 무성한 열대의 숲을 우리는 우림(雨林), 아예 네 글자로는 열대우림(熱帶雨林)으로 적는다. 그런 열대의 숲은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숲 안이 빽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밀림(密林)으로 적고, 영어로는 jungle로 부른다. 그런 숲 전체를 때로는 수림(樹林)으로 표기한다.

그런 숲을 조성하는 일은 바로 조림(造林)이다. ‘만들다’의 새김인 造(조)라는 글자를 썼다.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육림(育林)도 그와 같은 뜻이다. 조림과 육림 모두 국가의 경제적 틀을 세우는 데 필요한 사업이다. 십년을 내다보고 세우는 계획을 우리는 십년지계(十年之計)라고 하는데, 그런 기간을 상정해서 벌이는 사업이 바로 조림과 육림이다.

‘十年樹木, 百年樹人(십년수목, 백년수인)’이라고 자주 쓰는 한자 성어가 있다. 십년을 내다보려면 나무를 심고, 백년을 내다보려면 사람을 심는다는 말이다. 조림과 육림의 중요성, 나아가 그런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람 키우는 일에 치중하자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 키우는 일을 백년대계(百年大計), 혹은 백년지계(百年之計)라고 했다.

사람 또는 사람의 요소로 숲을 채우는 경우도 있다. 선비들이 많은 곳, 또는 그들이 모이는 곳, 그들이 일정한 일을 행하는 곳이 바로 사림(士林)이다. 풍부한 학식을 자랑하는 곳이겠으나, 때로는 저들끼리 벌이는 피 튀기는 정쟁(政爭)이 빈발해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곳이다.

강호(江湖)에 즐비한 무예의 고수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무림(武林)이다. 무협 영화나 무협지 등에 자주 등장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토리로 사람들의 흥미를 바짝 일으켜 세우는 곳이다. 상대를 단 한 방에 눕히는 필살기(必殺技)로 실력을 드러내는 무인들이 모이는 곳과 달리 “공자왈, 맹자왈…” 하는 유학자들이 모여 거창한 담론을 펼치는 장소가 있는데, 우리는 이곳을 유림(儒林)이라고 한다. 서림(書林)은 책자가 많은 곳, 더 나아가 서점(書店)을 일컫는 단어로도 쓰였다.

녹림(綠林)이라는 단어도 있다. 우리 식으로 풀자면 ‘푸른 숲’이다. 그러나 어감은 썩 좋지 않다. 옛 시절의 이런 푸른 숲에는 위험이 도사렸다. 호랑이나 표범, 곰이나 승냥이를 일컫는 게 아니다. 그 푸르다 못해 시커먼 숲에 도사린 존재는 바로 도적(盜賊)이나 산적(山賊)이다. 그 녹림에 있는 좋은 사내라는 뜻의 한자어가 ‘녹림호한(綠林好漢)’이다. 좋을 호(好), 사내 한(漢)이라는 글자가 붙어는 있지만, 실제 가리키는 대상은 ‘숲 속의 도적’이다. 로빈 후드와 같은 의적이면 좋겠으나, 도적은 도적이라서 그 의로움을 기대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우리가 자주 쓰는 한자 성어다. 술(酒)로 연못(池)을 이루고, 짐승 살코기(肉)로 수풀(林)을 이루는 곳이라는 뜻이다. 임금이나 귀족이 극히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모습을 일컫는다. 그 가운데 살코기는 그냥 먹는 살코기의 수준을 넘어, 술자리 접대 여성이 낀 극도의 향락을 가리키기도 한다.

도야미리, 되미리 등에서 번진 한자어 이름을 얻어 우리 서울의 한 축인 도림과 신도림이 어쨌든 도림(道林)이라는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그 道(도)는 조선을 주름잡았던 유교의 道(도)만은 아닐 터, ‘사람이 가는 번듯한 길’의 새김이 원래의 것일 게다. 그 번듯함은 영어로 gentle이리니, 도림과 신도림은 젠틀한 사람으로 숲을 이룬 동네이리라. 그 이름처럼 멋과 품위가 있는 장소로 발전하면 좋겠다.

 

*이 글은 뉴스웍스와 유광종 기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함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