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사는 땅, 야딩

중국 샹그릴라에서 다음 목적지인 야딩으로 길을 나섰다. 야딩은 중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곳으로 수려한 풍광이 트레커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야딩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따오청에서 1박을 해야 했다.

따오청은 티베트어로 '넓은 산골짜기'란 뜻이다. 샹그릴라에서 따오청까지는 버스로 10시간을 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해발 4,000m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험난한 여정이기도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막상 버스가 출발하자 걱정이 앞섰다.

<샹그릴라에서 따오청으로 가는 길은 고행 그 자체였다. 기사아저씨가 해발 4,000m 넘는 곳에 차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잠시 버스 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야딩을 나와 따오청으로 가는 길에서도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중국을 자유 여행으로 다니면 버스나 기차를 꼭 타게 된다. 이 중 버스 여행은 이만저만한 고행이 아니다. 버스 자체가 낡은 것은 물론이고, 도심을 벗어나면 길도 대개 비포장이다. 중국에서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장거리 노선을 이용할 계획이라면 식수를 충분히 챙기고, 배 속을 채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게 좋다.

한국처럼 1~2시간 마다 휴게소에 정차하는 안락한 여행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중국에서의 버스 여행은 체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하루종일 타고 따오청에 도착했다. 몸은 녹초였지만 내일이면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새로운 힘이 솟았다.

하얀 설산이 고원을 뒤덮고 있고, 그 아래로 야크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낙원같은 모습이 야딩의 첫인상이었다. 야딩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태곳적 풍경 앞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야크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야딩은 ‘신선이 사는 땅’으로 불린다. 1928년 3월, 영국인 탐험가 루커에 의해 처음 알려진 이곳은 그 압도적인 풍경으로 ‘최후의 샹그릴라’란 별칭을 얻기도 했다. 야딩 주위에는 6,000m급 산이 하나, 5,000m급 산이 10개, 4,500m급 산이 32개 있다.

특히 선내일설산(6,032m), 하랑 다길설산(5,958m), 양만용산(5,958m)은 티베트인들이 각각 관세음보살, 금강보살, 문수보살로 섬기는 신성한 곳이다. 이 세 설산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 모 양 혹은 品자 모양이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티베트 불교에서는 ‘세 주인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산’이란 뜻으로 ‘일송공포(日松貢布)’라고 부른다. 야딩은 세계 불교 24성지 중 하나다.

야딩 트레킹은 흙길을 걷다 초원이 펼쳐지고 오르막이 시작되다 불쑥 호수가 나타나는 등 다이내믹한 코스가 매력이다. 알프스를 닮은 수려한 풍경을 트레킹 내내 맛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야딩이다. 하지만 4,000m가 넘는 고산지대를 장시간 걸어야하므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야딩 트레킹, 롱롱빠~진주해

티엔아이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곧장 롱롱빠로 향했다. 롱롱빠는 야딩 트레킹의 관문 같은 곳이다. 1일 차 야딩 트레킹은 롱롱빠에서 진주해 (3,960m)까지로 잡았다.

본격적인 트레킹은 고소적응을 마친 다음 날로 정했다. 진주해가 야딩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4,000m에 육박하는 높이다.

진주해를 보려면 일단 충고사까지 가야 했다. 롱롱빠에서 충고사까지는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길에 들어서자 소나무 가지에 송라(소나무겨우살이)가 을씨년스럽게 붙어 있다. 누구는 원시림같다고 했지만 내겐 공포 영화에 나오는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괴기스러운 광경이었다.

<야딩에 들어서자 공해가 없는 곳에만 산다는 송라가 눈에 보인다.>

야간 트레킹이었다면 분명히 줄행랑을 쳤을지 모른다. 송라 지대가 끝나자 길옆으로 ‘마니퇴’가 보였다. ‘옴마니반 메훔’과 같은 진언을 조각한 돌을 마니석이라 하고 그 무더기를 마니퇴라고 부른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작은 돌을 주워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그리곤 합장한 뒤 주운 돌을 마니퇴 한쪽에 살며시 올렸다. 걸음을 옮길수록 호흡이 가빠왔다. 숨을 쌕쌕 몰아쉬며 걷다 보니 어느 틈에 하늘이 파랗게 열렸다. 왼쪽으로 선 내일설산(6,032m)이 시야에 들어왔다.

믿기지 않는 비경이었다. 충고사로 방향을 잡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여기서부터는 잘 닦인 길을 살방 살방 걸으면 됐다. 길은 선내일설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자석에 이끌리듯 산의 손짓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충고사에서 진주해까지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잠시 뒤 비취빛 진주해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세계일주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가 연상되는 황홀한 색이었다.

<한 꼬마아이가 숙소에서 고양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야딩에서 아침을 맞았다. 숙소 창문 너머로 아름다운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야딩 트레킹, 낙용목장~오색해

다음 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어제 다녀왔던 길을 다시 걸어 쉼터에 도착했다. 전동차를 타고 낙용목장(4,100m)으로 향했다.

2일차 일정은 낙용목장에서 우유해(4,500m)와 오색해 (4,600m)를 왕복하는 코스였다. 5~6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낙용목장에 도착하자 양만용산 등의 5,000m급 고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관광객들 사이로 티베트 순례자들이 마니차(불교 경전을 넣어 돌릴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통. 마니차는 티베트인들의 신앙도구로, 한 번 돌릴 때마다 경문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오체투지와 함께 대표 수행방식 중 하나다.)를 돌리며 마니퇴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절을 시작했다. 야딩의 풍경만큼이나 관심을 끄는 모습이었다. 순례자들은 종교를 떠나 충분히 존경의 대상이었다. 절을 마친 순례자들을 쫓아 길을 나섰다.

<트레킹의 시작에서 순례자들을 만났다.>

낙용목장부터 펼쳐지는 푸른 초원은 내가 세계 일주에서 보고자 하는 걸 그대로 응축해 놓은 듯했다. 샹그릴라에서 매리 설산을 포기하고 야딩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 사이 순례자들은 점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빨랐고 난 느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내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갈수록 무거워졌다. 순례자들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장족 아저씨 한 명이 성큼성큼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따시델레!” 티베트인들은 ‘따시델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는 생면부지의 날 위 해 고맙게도 행운을 기원해 주고 갔다.

나도 그의 앞길에 행복을 빌어주었다. 평지가 끝나고 오르막이 시작됐다. 오색 타르초(티베트 불교 경전을 적은 색색깔 천)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바 람에 일렁이는 타르초에 소박한 소망을 담아 야딩의 하늘로 날려 보냈다. 먼 발치서 그들은 합장을 한 채 절을 하고 있었다.

<타르초가 바람에 날리는 가운데 트레커가 산을 오르고 있다.>

작은 봇짐 하나, 형편없는 신발 한 켤레가 그들이 가진 전부였다. 값비싼 등산장비가 이 순간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들은 다시 길을 나섰다. 난 숨을 헐떡일 뿐 그들을 따라나서지 못했다. 남루한 신발만도 못한 처지였다. 걷는 게 걷는 게 아니었다.

머릿속은 멍했고, 고통스러웠다. 고산증이었다. ‘휴~’ 긴 한숨을 토해냈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었다. 그러다 도저히 못 가겠다고 생각될 때쯤 불쑥 우유해 위로 햇빛이 부서지며 은빛 옥구슬을 만들어내는 장관을 만났다. 눈이 부셨다. 얼마 못가 얄미운 구름이 해를 가렸다. 꼭 비가 올 것 만 같았다. 검게 그을린 티베트 순례자 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따시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