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교육재정의 본질

교육재정은 국가 및 공공단체가 교육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단을 조달하고 관리·사용하는 경제활동이다. 즉, 교육재정이란 국가·사회의 공익사업인 교육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가나 공공단체가 필요한 재원을 확보·배분·지출· 평가하는 일련의 경제활동을 말한다.

따라서 교육재정은 국·공립학교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사립학교의 교육활동, 사회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이와 같은 정의는 교육재정의 주체를 국가와 공공단체로 규정하고 있으며, 교육재정의 성격을 교육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성과 공공성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교육재정의 영역을 재원의 확보· 배분·지출·평가로 설정하고 있다. 교육재정이 국가나 공공단체를 주체로 하는 경제활동이라 함은 교육재정이 가계 중심의 사금융이나 사기업체 중심의 회사금융과 구분되는 공금융이라는 것이며, 이는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사경제 활동과 다르다.

첫째, 사경제가 개인이나 사기업체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활동인데 반하여 공경제로서의 재정은 국민 전체의 공공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주안점이 있다. 말하자면 일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둘째, 개인의 기업 활동이 가격화되고 교환관계를 통하여 보상되는 데 반하여 공경제 활동으로서의 재정은 국민으로부터 소득의 일부를 조세정책을 통하여 강제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성립되는 강제경제를 특징으로 한다.

셋째, 사경제에 있어서는 양입제출(量入制出)의 원칙에 따라서 수입과 지출관계를 규제하는 데 반하여, 재정에서는 영리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강제경제의 성격을 띠게 되기 때문에 양출제입(量出制入)의 원칙이 적용된다.

교육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성과 공공성이라 함은 교육재정의 본질이 교육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공경제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육재정은 교육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인적·물적 조건을 정비·확립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배분·관리하는 활동이므로 수단적·조장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공공성이란 교육 자체가 사적인 영리를 위한 활동이 아니라 공적인 비영리 활동이므로 이를 지원하는 교육재정도 공공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와 더불어 국가와 공공단체의 공경제 활동이라는 것이다.

교육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외적 효과와 유출효과가 크기 때문에 사적 부문에 일임하지 않고 국가와 지방 공공단체가 관여하면서 공공투자를 증대시키고 있다. 교육의 공공성은 국·공립학교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립학교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사립학교라고 할지라도 공공성과 자율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사학의 교육비에 있어서도 수익자부담원칙이나 설립자부담원칙보다는 공비부담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교육재정의 영역을 재원의 확보·배분·지출·평가로 한다는 것은 교육재정은 교육비의 수입·지출에 관한 예산, 예산의 집행과 회계, 결산과 감사까지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재정이라고 할 때 흔히 재원의 확보·배분·지출까지를 말하고 회계·지출의 합법성을 밝히는 감사활동을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예산의 감사는 공공 신뢰를 고취하고, 경영관리를 설명하며, 예산 절차를 개선하는 평가 활동이므로 교육재정의 중요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감사는 재정과 재산 및 피고용자를 보호하고, 설정된 표준과 정책 및 절차를 고수하도록 하며, 재산 및 장비의 상태와 활용을 검사하는 등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교육재정을 일반재정으로부터 분리·독립하여 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교육이 특정의 정치이념 혹은 정당정파의 당리당략에 의해서 좌우될 때 교육의 자주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받은 자의 전 생애를 통하여 장기 간을 두고 나타나므로 교육재정은 긴급한 것이 아니고 또 비생산적인 투자로 인식되어 투자 우선순위의 결정 과정에서 일반재정에 비하여 경시되기 쉬운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이유 때문이다.

교육목적 달성을 위한 인적·물적 제조건을 정비·확립하는 일련의 봉사활동을 교육행정이라고 한다면, 교육재정은 이러한 인적·물적 조건을 정비·확립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배분·관리하는 활동이므로 교육행정과 마찬가지로 수단적· 조장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교육행정과 교육재정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즉, 교육행정은 교육활동을 지원·조장하는 수단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교육재정은 교육행정 활동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조장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행정의 질과 양은 교육재정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것은 교육활동을 위한 필요조건을 설정하는 불가결의 요건이 되며,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재정은 교육행정의 가장 중요한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육재정의 기능

정부의 경제인 재정은 자원배분 기능, 소득분배 기능, 경제 안정화 기능의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자원배분 기능이란 어떤 재화와 용역을 얼마만큼 생산할 것인가 혹은 생산자원을 사적 욕구 충족과 공공 욕구 충족 간에 어느 정도로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소득분배 기능이란 개인이나 가계 간에 생산물을 가급적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시장기구에 의한 소득분배가 항상 바람직하고 적정 상태라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자원의 최적 배분을 위해서는 소득 및 부의 분배 상태를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며, 그러한 조정이 재정적 수단이나 정책수단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 안정화 기능이란 높은 고용과 생산수준을 유지하면서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사실상 불안정한 조직이며 적절한 조정이 가하여지지 않는 한, 물가와 고용의 단기적 변동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지출 및 조세정책으로서 고용·산출량·물가 등을 조정·통제하는 것이다.

교육재정도 정부 경제의 한 부분이므로 이 세 가지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소득과 직결된 교육에 대한 투자이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교육재정이 가장 강력한 소득분배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교육재정의 기능을 보 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의 양적 규모와 질적 수준을 결정한다. 교육재정은 교육행정 분류 체계상 분명히 교육행정의 한 영역이다. 그러나 인사 행정·시설행정·장학행정 등 기타의 행정 영역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장학행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행정 영역이면서 다른 행정 영역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교육재정은 독립된 행정 영역이기는 하지만 다른 행정 영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다른 행정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마치 교육행정이

교육의 한 분야이면서 교육의 모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과 동일 하다. 흔히 우리는 교육행정이 교육활동의 범위와 질적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 결정력은 사실은 교육재정에서 연유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적·논리적으로 보면 교육활동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교육행정이 요청되고, 교육행정의 실제가 교육재정의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국가 재정의 특성인 양출제입의 원칙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목적이 교육이고 수단이 행정이며 재정이므로 당연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수단이 목적을 지배하고 있다.

즉, 교육재정이 교육행정을 결정하고, 교육행정이 교육활동을 결정하고 있다. 이는 교육을 위하여 활용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이 크게 부족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제한된 교육재정 때문에 교육행정과 교육활동이 크게 제약받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교육평등을 실현한다. 교육에 있어서 평등은 대부분의 경우에 교육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며, 이는 교육재정 정책을 통해서 실현된다. 교육은 재정정책을 통하여 지역 간, 빈부 간, 사회 계층 간, 남녀 간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고 있다.

교육은 교육제도의 합리적 운용과 교육 기회의 균등 배분을 통하여 모든 국민들이 각자의 능력과 적성에 적합한 사회적 이동이 가능하도록 한다.

교육 기회의 평등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교육에 대한 균등 접근(equal access to education)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적어도 최저 수준의 교육자원을 제공함으로써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즉, 모든 학생들에게 적어도 최소한으로 적절한 교육서비스가 동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동등한 교육적 취급(equal educational treatment)이다.

이 정의는 학습자들이 각기 다른 특성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교육서비스는 개별 학생의 독특한 상황에 적합하도록 제공되어야 한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학교 교육과 관련된 학생 개개인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학습능력에 어떠한 결함이 있다고 판단될 때 이에 대하여 추가적인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교육산출의 평등(equality of educational outcome)이다.

이 개념은 1970년대 초부터 사회학자와 정책분석가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서, 교육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업성취가 동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학생들의 학습, 적어도 최소한의 혹은 기초학습에 있어서 학업성취가 동등해야 하며, 학교는 필요한 자원의 수준과 관계없이 동등한 최소한의 산출을 달성하는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교육활동 안정화와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한다. 흔히 교육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임과 동시에 국가 백년대계라고 말한다. 국가의 먼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교육활동이 정치적 혹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6.25전란 중에도 대학들이 피난지 부산, 대구, 광주, 제주 등지에서 전시연합대학을 구성하여 강의를 계속하고 학위를 수여하였듯이 교육활동은 중단 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력전쟁 속에서도 교육활동이 지속되어야 하듯이, 경제전쟁 하에서도 교육투자는 보장되어야 하는 수준을 넘어서 증액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1957년에 소련의 스푸트니크 (Sputnik)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국가방위교육법을 제정하여 수학, 외국어, 과학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였으며, 1983년에는 미국의 위기(A Nation at Risk)를 극복하기 위하여 교육개혁을 착수하였다.

미국의 경제가 견실하게 성장하고 운용되는 것은 미국의 교육개혁 추진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고 나라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식과 기술은 물론 의식과 태도, 가치관이 바뀌고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교육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선진교육체제를 확립하고 교육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교육재정의 안정적인 확보와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