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

‘수포자’는 수학 포기자를 뜻한다. 영포자(영어 포기자)나 국포자(국어 포기자)도 있는데, 수포자 문제는 유독 심각하게 사회적 문제로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는 수포자의 비율이 워낙 다른 과목 포기 학생 비율보다 높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22일, 교육시민운동 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과 박홍근 국회의원이 전국 7,719명의 초중고 학생을 조사하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 초등학생의 36.5%, 중학생의 46.2%, 고등학생의 59.7%가 수포자로 집계되었다.1)

1) 전국 총 7,719명(전국 초등 6학년 2,229명, 중학 3학년 2,755명, 고등 3학년 2,735명)을 대상으로 2015년 5월 7일부터 21일까지 총 15일간 진행됨.

수포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교육부는 이미 2012년 1월 「제1차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2015년 3월 16일에는 「제2차 수학교육 종합 계획」을 발표하였다.

종합 계획에서는 수요자 참여 중심의 수학교육을 실현하고 범국가적 수학교육 지원 체제를 구축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비전으로 하여 ‘배움을 즐기는 수학교육’이 달성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그 도입 취지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의 정책 효과는 1년 9개월이 지나가지만 거의 느낄 수가 없다. 문제 인식은 했지만, 문제의 원인을 도외시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포자 발생의 원인과 개선안 ① : 수학교육과정의 과다한 양과 높은 난도

우리나라 학생이 초중고 12년간 배워야 하는 수학교육과정의 양과 어려운 정도인 난도에 대해서 다수의 학부모와 수학 전문가 사이에는 인식의 차이가 크다.

수학에 대한 학부모 의식 조사2)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 배워야 할 양이 많아서(59%), △ 수학 내용이 어려워서(57%)라고 가장 많이 응답했다. 

2) 조사자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조사기간 : 2013.7.12.~7.19., 응답자 수 : 1009

그러나 수학 개선운동을 하며 만난 대다수 수학자와 수학교육학자들은 이런 지적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수학을 많이 배우는 인도나 러시아의 예를 들었고, 우리나라 수학교육과정은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계속 줄어왔기 때문에 지금은 예전보다 너무나 많이 줄었다는 반론을 펴곤했다.

그래서 사교육걱정은 직접 6개국(미국(캘리포니아, 뉴욕), 영국, 일본, 독일, 핀란드, 싱가포르)의 원본 수학 교과서를 구하여 현직 교사의 도움을 받아 외국 수학교육과정 분석을 해보았다.3)

3) 사교육걱정이 전국수학교사모임과 좋은교사운동의 협조를 받아 2013년 11월부터 1년 반 동안 초·중·고등학교 현직 교사들을 중심으로
  33명의 연구진을 구성하여 선진 6개국(미국, 일본, 싱가포르, 영국, 독일, 핀란드)의 수학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수집하여 분석

분석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이 배워야 할 수학 내용이 초등학교 26.9%, 중학교 29.2%로 다른나라보다 훨씬 더 많거나 또한 빨리 배워야 하는 것으로 나왔다.

또한, 발견학습, 협력학습, 토론ㆍ토의 학습 등 교수ㆍ학습 방법 면에서 볼 때 국제적인 수준에 많이 뒤지는 것도 확인하였다.

대다수 학생이 수학을 어렵게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상대적으로 많은 양을 다루는 방식에도 있다.

수학이 수능이나 학교 시험에서 변별력을 가져오는 과목으로 사용되면서 하나의 개념에서 다양한 유형의 문제를 만들어 내거나, 여러 가지 개념을 섞어서 복합적인 문제를 내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그렇게 학생을 변별하기 위한 소위 ‘문제를 위한 문제’를 만들다 보니 초등학교 수학 문제에서 9 등분한 시계를 활용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평생 9등분 한 시계를 볼 일이 있을까? 성취기준인 시계의 시각을 읽고 구조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을 변별하려고 작위적인 문제를 내다보니 생긴 어이없는 일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외국의 수학 교과서를 분석해보면 대부분의 활동이 개념을 이해하고 관련 내용을 사고하는 과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수학 개념을 발견하고 이해하게 되면 관련 문제는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었다.

우리처럼 억지로 다양한 유형을 만들어 풀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개념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한 사고를 요구하고, 실생활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고민하기에 학습자는 수학 개념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 유용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수학교육을 하기에 외국의 수학교육과정은 절대로 많을 수가 없다. 우리와 같이 많은 수학 개념, 공식, 다양한 문제 유형을 전부 이런 수업방식으로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학교육과정을 줄여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포자 발생의 원인과 개선안 ② : 정상적으로는 배울 수 없는 고등학교 수능 시험 범위

현재 고등학교 2․3학년 이과 학생의 경우, 2․3학년 4학기 동안 수학 4과목 (미적분Ⅰ, 미적분Ⅱ, 확률과 통계, 기하와 벡터)을 다 이수해야 한다.

수능 시험 범위가 위계상 마지막 세 과목인 미적분Ⅱ, 확률과 통계, 기하와 벡터이기 때문이다. 만약 고등학교가 편법을 쓰지 않고 정상적으로 한 학기에 한 과목씩 운영하면 3학년 2학기에 배정된 과목은 절반까지 배운 상태에서 수능을 봐야 한다.

따라서 고등학교는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과목과 상관없이 진도를 빨리하거나 아니면 한 학기에 수학 2과목을 편성해서 이수시켜야 한다.

그러면 학생은 일주일에 8시간에서 10시간씩 어려운 이과 수학 2과목을 공부해야 하므로 학습 부담이 매우 커지게 된다.

게다가 2012학년도 수능부터 는 EBS-수능 70% 연계 정책이 실시되어 이과 학생들은 고3 때만 5권의 EBS 교재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EBS 교재가 3학년 교육과정이 돼버린 상황에서 교육과정 파행 운영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런 문제가 ‘공교육 정상화와 선행교육 규제를 위한 특별법’(이하 ‘공교육 정상화법’)이 시행되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14년 9월 시행에 들어간 공교육정상화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편성된 교육과정을 지키고, 가르친 범위와 내용에서 평가한다’라고 할 수 있다.

2013년과 2014년 이 법이 논의될 때 가장 문제시된 것이 고등학교 수학교육과정이었다. 그동안 파행으로 운영하였던 교육과정을 지키라고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냐는 반발이 거셌다.

아무도 고등학교 수학교육과정이 지켜지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법이 교육 과정을 지키라고 하니 학교 현장이 반발한 것이다. 수십 년간 잘못된 관행이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우리나라 이과 학생들은 모두 ‘3년의 수학교육과정을 2년에 마치는 영재’로 취급받아 왔다. 

생각해보면 이런 수학시험 범위는 수학 교과에 대한 특혜(?)다. 현재 선택형 수능은 학생들이 필요한 교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사회 탐구나 과학 탐구는 여러 과목 중에 본인이 원하는 두 과목만을 택하여 시험 보고 있다.

영어나 국어는 선택의 의미가 크지 않아 유독 수학만큼만 모든 학생에게 모든 과정을 다 배우고 시험 보도록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수학 교과를 반영하지 않는 대학을 가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는데, 대다수 학생이 선호하는 주요 대학들은 수학이 필수고 가장 중요한 과목이다. 이렇듯 현재 수능 수학 시험 범위는 과도하게 넓다.

이런 영향이 중학생, 초등학생에게까지 미쳐서 학생들이 과도한 선행학습으로 내몰리게 되고 고등학교에서는 교육과정 파행 운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수능 수학 시험 범위 축소는 매우 시급하다. 문과의 경우, 필수 교과를 ‘수학Ⅰ’, ‘수학Ⅱ’ 로 하고 ‘미적분Ⅰ’과 ‘확률과 통계’ 중에서 한 과목을 선택하게 한다.

이과의 경우는 필수 교과를 ‘수학Ⅰ’, ‘수학Ⅱ’, ‘미적분Ⅰ’으로 하고 ‘미적분Ⅱ’, ‘확률과 통계’, ‘기하와 벡터’ 중 한 과목을 선택으로 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문과의 경우는 자신의 희망 계열에 따라 상경계열이라면 ‘미적분Ⅰ’을 택할 수 있고, 그 외 인문사회계열의 경우라면 ‘확률과 통계’를 택할 것이다.

이과의 경우도 의약학이나 생명과학 계열은 ‘확률과 통계’, 공대 계열이라면 ‘미적분Ⅱ’나 ‘기하와 벡터’를 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수학을 강요하였던 기존의 방식을 개선한 것으로 대학의 모집단위별 선택과목 특성화라는 진일보한 대입전형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

시급한 수학 개선책이 나오지 않으면 수포자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

교육부는 2014년 12월 26일,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 영역에 절대평가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영어 영역에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는데, 학교 영어교육의 정상화 및 개혁의 필요성, 사교육 축소, 학생의 과도한 부담 경감이었다.

당시 수능 절대평가로의 전환은 적합한 방향이지만, 영어만 절대평가가 시행되었을 때 부작용이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 지적은 일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018학년도 대입 정시전형에서 몇몇 주요 대학은 영어교과 성적의 반영 비율을 대폭 낮춰 버렸다.

수차례 교육부가 영어 절대평가 전환이 절대 영어 시험의 난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그 대학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그 결과, 영어 교과를 잘하는 학생의 상대적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영어의 반영 비율이 낮아지면서 수학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커졌다는 점이다.

국어와 탐구 영역도 반영 비율이 올라갔지만 이 과목들의 비율이 올라간 것과 수학 비율이 올라간 것은 학생들의 체감이 다르다.

수학은 워낙 어렵고 준비하기가 까다로워 주요 대학의 변별이 여기서 좌우되는데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것은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그 여파가 내려갈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이과 선호 현상과 맞물리면서 그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교육부에 수포자 문제를 풀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