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영국은 1988년에 교육법을 통해 국가교육과정 체제를 도입하고 1989년에 처음으로 국가교육과정을 고시한 이래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왔다.

1995년, 1999년, 2007년에 전체적인 개정이 있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13년에 개정된 국가교육과정이 2014년 9월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영국의 국가교육과정은 4∼8년 정도의 비교적 짧은 개정 주기를 지닌다는 점뿐만 아니라 정권의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모습을 지닌다.

특히 2013년에 개정된 국가교육과정은 2010년 5월에 들어선 보 수연립 정부가 과거 13여 년에 걸친 노동당 집권기에 시행되었던 국가교육과정이 추구해 온 방향을 강하게 비판한 결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 글에서는 영국의 새 교육과정의 기본 방향과 특징, 그리고 의의와 한계를 살펴본다.

1. 새 국가교육과정의 기본 방향 

영국의 새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낮은 학업 성취도와 이에 기여한 것으로 간주된 이전 정권의 교수법 중심의 과다한 처방이 문제시되면서 제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 정권에서는 국가교육 과정의 주요 개정 방향으로, 학교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교과의 핵심적인 내용 지식을 명료하게 제시하되 과다한 처방을 축소하는 것을 내세웠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영국이 새 교육과정을 통해 하고자 했던 것 중의 하나는 교과의 핵심 내용 지식을 명료하게 규정해 주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개정 의도는 국회에 제출된 백서(Department for Education, 2010)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바, 백서에서는 ‘(새)국가교육과정은 모든 학생들이 그들의 학교교육과정에서 획득하리라 기대되는 핵심 지식과 이해를 명확하게 규정’할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세대가 다음 세대로 넘겨야 하는 문화적·과학적 유산을 구체화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현 정부는 국가교육과 정상의 핵심 교과로서 모든 학생들이 배우게 되어 있는 영어, 수학, 과학 교육의 수준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 교과의 핵심 지식을 좀 더 엄격히 규정하고자 했다.      

영국이 새 교육과정의 개정 방향으로 내세운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국가의 처방을 축소 혹은 완화하는 것이었다.

현 정부는 지난 정권의 국가 교육과정이 중요하지도 않은 너무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가르치는 방법, 즉 교수법에 대한 처방을 너무 많이 제공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개선하고자 했다.

교육부는 앞서도 언급한 바 있는 국회에 제출한 백서 (Department for Education, 2010)를 통해 이같은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바, ‘처방을 줄임으로써 학교가 가르치는 방법을 결정할 수 있도록 국가교육과정을 개정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현 정부에서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국가 교육과정의 과도한 처방이 교사들을 짓누르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교수를 한다거나 심화된 학습이나 탐색을 위한 여지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백서에서는 국가교육과정이 모든 학생들이 획득해야 할 핵심적인 지식과 이해만을 엄선해 주고, 이를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은 교사의 결정에 맡기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는 새 교육과정이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는 처방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학교와 교사가 학생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최상의 교수법을 자율적으로 개발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새 국가교육과정의 특징
 
영국의 새 국가교육과정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총론과 각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새 교육과정의 총론은 그 구조나 내용에 있어서 초등과 중등 간에 큰 차이가 없다.

총론의 분량은 8쪽도 안 되는 양으로, 25쪽 정도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현행 총론에 비해 훨씬 간결하고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과거의 교육과정에 비해서도 분량이 축소된 것이다.

총론에 담겨 있는 내용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국가교육과정의 전반적인 지향점, 편제, 운영상의 중점 등이 제시되어 있다. 총론의 몇 가지 특징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국 국가교육과정의 목표가 역량 발달로부터 핵심 지식에의 입문으로 전환되었다.

2007 개정 교육과정(Department for Children, Schools and Families, 2007)에서는 ‘학습자들이 학교 안과 밖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자질과 기능에 초점을 둔 명확한 목표가 교육과정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며, ‘교육과정은 모든 학생들이 성공적인 학습자, 자신감 있는 개인, 책임감 있 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의 역량 발달을 최우선시하였다.

이에 비해 새 교육과정(Department for Education, 2013)에서는 국가교육과정의 목표가 ‘학생들에게 교육받은 시민이 되는 데에 필요한 핵심 지식에 입문시키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둘째, 국가교육과정은 학교교육과정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국가교육과정은 핵심적인 것만을 제시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예컨대 총론의 2항에서는 ‘학교교육과정은 각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계획하는 모든 학습 및 경험으로 구성된다. 국가교육과정은 이러한 학교교육과정의 일부분만을 차지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총론의 3항에서도 학교는 국가교육과정 지침을 넘어설 시간과 여지를 가질 수 있으며, 국가교육과정은 ‘교사들이… 흥미롭고 활력이 넘치는 수업을 개발하는 데에 토대가 되는 핵심 지식의 개요’만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총론의 방향은 국가교육과정은 가르쳐야 할 핵심 지식만을 제공하고 교수법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개정 취지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전 교과에 걸쳐서 학생들의 수리력/수학 및 언어/문해력의 발달을 강조하고 있다. 새 교육과정의 총론에서는 ‘수리력과 수학’ 및 ‘언어와 문해력’이라는 항목을 별도로 설정하여 모든 교과에 걸쳐 학생들의 수리력과 수학적 추론적, 그리고 구어, 읽기, 쓰기, 어휘 등을 발달시켜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수리력과 언어 등의 기초 학습 능력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좀 더 높은 성취를 올리기 위한 현 정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총론에는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편제에 해당하는 것이 국가교육과 정의 구조라는 이름으로 제시되어 있다. 새 국가교육과정의 구조는 <표>와 같다. 

새 국가교육과정의 구조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몇 가지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핵심 교과와 기초 교과 간의 구분을 명료히 하고, 이들 범주에 들지 않는 것들을 편제표에서 삭제했다.

따라서 국가교육과정은 핵심 교과 3개 (영어, 수학, 과학)와 기초 교과 9개(미술과 디자인, 시민성, 컴퓨팅, 설계와 디자인, 언어, 지리, 역사, 음악, 체육)로만 구성되어 있다. 편제표상에 핵심 교과와 기초 교과를 구분하여 표시한 것은 핵심 교과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key stage 3에서만 필수 교과였던 ‘현대외국어’를 ‘언어’로 그 이름을 변경하면서 초등 3~6학년 단계인 key stage 2에도 필수로 부과함으로써 이전보다 외국어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산업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시도된 것으로, 새 교육과정에서 ‘언어’는 key stage 2에서는 ‘외국어’로, key stage 3에서는 ‘현대외국어’라는 이름으로 제공된다. 

마지막으로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를 ‘컴퓨팅 (Computing)’ 교과로 대체함으로써 정보 교육의 성격을 새롭게 하고 있다.

현 정권에서는 종래의 ICT가 학생들의 컴퓨터 ‘사용’ 능력에만 초점을 맞추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학생들이 최근의 디지털 기술을 ‘생산’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컴퓨팅 교과는 바로 이러한 필요성에서 제기된 것으로, 프로그래밍 연습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정보적 사고와 컴퓨팅 사고력을 습득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게 하는 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김현철, 2015).

한편, 새 교육과정의 각론에서도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각론 지침이 이전에 비해 대폭 삭감되었다는 점이다.

특징적인 점은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축소된 문서 분량에도 불구하고 핵심 교과인 영어, 수학, 과학의 분량이 나머지 9개의 기초 교과에 비해 눈에 띄게 많다는 점이다.

예컨대 영어, 수학, 과학 분량이 초등의 경우는 각론의 85% 정도, 중등의 경우는 각론의 65%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 교과의 경우는 ‘교과 내용’에 해당하는 지침을 다른 교과보다는 물론, 이전의 교육과정에 비해 매우 상세하게 제시한다.

이러한 특징은 새 교육과정이 핵심 교과, 특히 기초 단계에 해당하는 초등의 영어, 수학, 과학 교육의 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 수학, 과학 교과를 제외한 나머지 9개 교과는 교과별로 2~5쪽 정도의 지침만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현행 교과 교육과정의 경우 가장 적은 분량이 제공되고 있는 음악(초3~중3)도 15쪽을 제시하고 있으며, 체육(초3~중3)은 37쪽 정도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짧은 지침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축소된 각론 지침은 ‘교과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컨대 초등 음악의 경우는 2쪽 분량의 지침 가운데 1쪽이, 그리고 초등 체육의 경우는 3쪽 분량의 지침 가운데 2쪽이 교과에서 다 루어야 할 내용을 열거하고 있다.

새 교육과정의 각론이 ‘교과 내용’ 중심으로 진술되고, 그 내용의 분량도 영어, 수학, 과학 교과를 제외하고는 대폭 삭감되었다는 점은 각론 지침이 과의 핵심 지식만으로 엄선되었음을 보여준다.

각론에서 교과별 교수법이나 성취 목표에 대한 세부 지침은 과감하게 삭제되었으며, 이를 통해 국가가 교과별로 핵심 지식만 제공하고 수업 및 평가에 관한 사항은 학교와 교사에게 맡기겠다는 현 정부의 개정 의도를 뚜렷이 구현해 내고 있다.

3. 새 국가교육과정의 의의와 한계

영국의 새 교육과정은 국가교육과정의 성격과 역할에 관한 많은 고민과 논의의 결과로 탄생한 것으로서 나름의 의의가 있는 반면,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당초 국가교육과정의 주요 개정 의도는 국가교육과정의 역할을 모든 학생들이 획득해야 할 핵심 지식을 규정하는 것으로만 제한함으로써 국가 수준의 처방을 완화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도는 개정된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부분적으로는 구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총론뿐만 아니라 초등의 영어, 수학, 과학 교과를 제외한 각론의 지침 분량이 대폭 축소되어 전체적으로 국가 지침이 경량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국가 처방의 축소라는 국가의 의도는 확실히 달성되었으며, 이를 통해 단위학교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등 영어, 수학, 과학 교과의 지침은 국가 처방의 축소라는 당초의 개정 의도와는 상반되게 매우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것은 현 정부가 선언한 기초 학습 능력의 강화라는 취지를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나 영어, 수학, 과학 교과의 지침을 역대 어느 교육과정보다 과도하게 제시함으로써 전체 개정 취지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일 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을 이들 교과 중심으로 유도할 소지가 있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새 교육과정이 추구한 국가 처방의 완화에 대해서도 우려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새 교육과정은 영어, 수학, 과학 교과를 제외한 나머지 교과들에 대해서는 ‘뼈대(skeleton)’만 제공해 줌으로써 이들 교과에 대해서는 각 학교가 창의적으로 살을 붙여서 운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특히 교과 전문가가 아닌 초등학교 교사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행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Martin, 2013).

새 교육과정에 따른 학생들의 학습 경험의 질이 단위 학교의 여건이나 교사의 전문적인 역량에 따라 크게 달라질 소지가 있는 것이다.

한편, 영국의 새 교육과정이 교과별로 핵심 지식을 명료화했다는 점은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 지식이란 그것이 없다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지식(Martin, 2013)을 의미한다.

영어, 수학, 과학을 제외한 나머지 교과들의 각론 지침이 2~5쪽 정도에 불과한 것은 해당 교과의 핵심 지식만이 교과 내용으로 엄선되었음을 나타낸다.

즉 새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초·중등 교과교육을 통해서 반드시 획득해야 할 지식을 명료히 규명함으로써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론에 제시된 핵심 지식에 대해서는 시대적 역행 혹은 과거로의 회귀(Young, 2011)라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새 교육과정의 각론에서는 핵심 지식의 선정을 통해 권위 있고 명료하며 엄격하고 고정된 교육과정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각론에 제시된 핵심 지식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지식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이는 교과 지식의 표준화, 권위화, 고정화라는 지향을 뚜렷이 드러낸 것이다(심승희·권정화, 2013).

또한 이러한 성격의 교과 지식은 주로 지배계급의 문화적 지식 전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변화하는 사회와 무관하게 존중되어야 함을 요구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의 생산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Young, 2011).

요컨대 영국의 새 교육과정의 각론에 제시되어 있는 핵심 지식의 성격은 학교 교육을 학생들의 삶과 유리된 전통적인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 복귀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