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심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원장

우리가 인성교육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바로 학생들에게 길러주고자 하는 덕목(德目)1)이다.

1) 덕목은 말 그대로 덕(virtue)의 이름이다. 이 글에서는 구체적인 덕목을 말하는 경우에는 ‘덕목’이라고 쓰고, 총칭적으로 ‘덕’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인성교육에서 지향하는 것은 덕목을 내면화하여 유덕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글에서는 인성교육에서 덕목의 의미와 덕목과 공동체와의 관계를 검토해본다. 덕목이란, 말 그대로 개인의 품성에 체화된 바람직한 성향과 태도를 일컫는데, 그것이 단지 개인의 품성에 그치는 문제만은 아니다.

덕목은, 매킨타이어(A. MacIntyre, 1984)에 의하면,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의 유지, 지속,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

그리고 덕목의 정당화는 바로 공동체에서의 삶과 전통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덕교육의 의미와 중요성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1. 인성교육 지향점으로서 핵심 가치·덕목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말한다(「인성교육진흥법」 제2조)’는 인성교육의 개념을 보면,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답다’는 말의 의미는 매우 포괄적이고 다의(多義)적이어서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시대나 사회에 따라 그 실제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성교육의 의미를 규정하고, 실제 추진 방향을 설정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에서 추구하는 핵심 가치·덕목을 거론하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표적인 인격교육단체인 Character.org는 인성교육을 위한 11가지 원리(the 11 principles of Effective Character Education)를 주요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데, 그중 제1의 원리로서 훌륭한 인성의 토대로서 핵심적인 윤리적, 수행적 가치들을 설정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http:// character.org/).

또한, 미국의 인격교육 단체 중의 하나인 Charactercounts. org에서는 인격의 6개 기둥을 가장 중요한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신뢰(trustworthiness), 공정(fairness), 존중(respect), 배려(caring), 책임 (responsibility), 시민정신(citizenship)이 그것이다.2)

2) https://charactercounts.org/program-overview/six-pillars/.

이 6가지 핵심 가치가 이 단체가 추진하는 인격교육의 방향이자 목표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이 단체는 길러야 할 바람직한 인격을 이 6가지 가치로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성교육 관련 정책 연구 등에서 인성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덕목이나 역량을 <표1>과 같이 다양하게 제시한 바 있다.

다음 표를 보면 도덕교육 덕목들, 개인적인 품성,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인간관계 덕목, 시민의식, 핵심역량, 정의적 특성 등을 학교 인성교육 요소로서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위의 선행연구들에서 제시한 바를 살펴보면, 향후 인성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인성 요소를 오늘날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학교 폭력 문제의 극복과 같은 시대적 요구와 학생들이 미래사회에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미래 핵심 역량이라는 차원에서 구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선행 연구들과 관계자 의견 수렴을 통해 「인성교육진흥법」에서는 인성교육의 8대 핵심 가치·덕목과 핵심 역량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교육부의 <인성교육 5개년 계획>에서도 이를 인성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덕목과 인성역량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인성교육이 추구해야 할 방향과 목적을 명확하게 하여 교육관계자들 간에 인성교육의 방향을 공유하고, 인성교육의 효과를 제고시키려는 필요에서 설정하게 된 것이다.

교육부 종합 계획에서는 인성교육의 핵심 가치·덕목으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인성교육진흥법」 제2조 2항)을 제시하고 있다.

‘소통’을 제외하고는 이 덕목들은 이미 우리 교육에서 강조하여 추구하던 것들이다. ‘소통’이란 곧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는 것,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상태, 개방성, 공유성, 피드백, 경청,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능력을 말하는데 이를 추가하여 제시한 점은 오늘날 인성교육에서 추구하는 덕목이 단지 전통적인 도덕규범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바람직한 사회적 능력을 함양하려는 취지로 이해될 수 있다.

곧 오늘날 인성교육의 개념이 전통적인 도덕규범의 내면화를 넘어 사회적 차원과 심미·정서적 차원의 교육까지를 아우르는 좀 더 넓은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덕 교육의 의의

그렇다면, 덕목을 가르치고자 하는 덕교육의 의의는 무엇인가? 1960~70년대 이후 자유주의 철학 및 의무론적 윤리설에 영향을 받은 도덕교육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도덕의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 추구’라는 과제였다.

그래서 도덕 문제에서도 개인의 자율성, 곧 자기가 따라야 할 도덕 규칙을 스스로 정한다는 자기입법(自己立法)으로서의 자율성이 추구되기에 이르렀으며, 집단 혹은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주입하는 것은 이러한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교육적·도덕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곧 자율론자들의 관점에 의하면, 전통적인 덕목의 전수는 교육이 아니라 교화(indoctrination)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도덕 교육에서는 전통적인 덕목이 아니라 도덕적인 판단 능력과 가치 선택의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형식주의적·의무론적 윤리설에 바탕을 둔 자율론적 접근을 비판하는 일군의 윤리학자들은 전통적인 덕목론적 접근을 새롭게 도덕 교육의 논의의 장에 끌어들였다. 신자연주의 혹은 기술주의 (descriptivism) 윤리학의 입장을 취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푸트(P. Foot), 기치(P. Geach), 앤스컴(G. E. M. Anscomb) 등은 인간의 도덕 생활을 이해하기 위한 중심 개념으로서 자율성보다는 덕목에 더 강조를 둔다(Carr, 1983). 이들은 도덕 교육에서 자율성과 개인의 선택을 강조하는 자율론적 접근을 비판하고, 도덕 교육에서는 덕목과 인격의 문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윤리학적 전통을 계승하여 ‘도덕적인 추론의 기술’이 아니라 ‘인격과 행위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특 히, 도덕적 자율성의 추구를 핵심으로 삼는 ‘계몽주의적 기획’이 오늘날과 같은 도덕적으로 파편화된 사회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한 맥킨타이어(1984)는 그 대안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덕목 윤리의 전통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덕목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맥킨타이어는 덕목이라는 이 개념은 오랜 세월 사용되어 오면서 그 자체 내에 역사를 구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이 포함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 중 핵심적인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그가 말하는 ‘역사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덕목의 개념이 정의되고 설명되는 맥락인 사회생활과 도덕 생활의 특징들에 대한 파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입장에서, 덕목의 개념이 논리적으로 발달해 온 역사를 살펴보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단계3)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맥킨타이어에 따르면, 이러한 덕목의 세 가지 의미는 각기 별개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바로 이전의
단계는 이후의 단계에 비추어 수정되고 재해석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후 단계의 본질적 구성 요소를 제공한다. 따라서 ‘사회적 역할과 선한 삶’이라는 맥락에 의해 정의된 앞 두 단계의 의미는 세 번째의 도덕적 전통을 구성하고 다시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것으로서의
덕목의 개념에서 통합된다고 볼 수 있다.

첫 단계는 그가 ‘호머의 시대’라고 부른 것으로, 덕목의 의미가 그것을 갖춘 개인의 사회적 역할에 의해 정의되었다. ‘군인의 덕’, ‘목수의 덕’ 등이 그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적 연구에 의해 체계적으로 제시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맥킨타이어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덕목의 개념은 사회적 역할과 직결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비추어 ‘가장 바람직하고 선한 삶’을 제시하고, 그것을 목적(telos)으로서 추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세 번째 단계는 도덕적 전통 속에서 의미를 갖는 덕목의 개념이다. 맥킨타이어는 우리가 결코 단지 개인의 자격으로 선을 추구하거나 덕목을 실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공동체의 삶에 뿌리를 둔 도덕적 전통은 개인의 삶에 이미 주어진 것이며, 개인의 도덕적 ‘출발점’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고, 실천하고, 추구하는 도덕성은 바로 우리 공동체의 삶과 밀접히 관련된 역사, 곧 문화적 전통의 일부다.

맥킨타이어는 “우리는 과거와 함께 태어났으며, 개인주의적 양식에서 과거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려는 노력은 우리의 현재를 왜곡시 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역사적 정체성의 소유와 사회적 정체성의 소유는 일치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든 않든, 내가 그것을 깨닫든 않든 상관없이 우리는 ‘전통의 담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나의 도덕적 관념, 내가 갖추고 있는 덕목은 나의 의도나 의식을 초월하는 문화적 전통 속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인이 덕목을 실천해야 할 이유는 도덕적 전통을 유지시키고, 강화시키는 것이 바로 적절한 덕목의 실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킨타이어의 덕목의 개념은 덕목론적 접근에서 추구하는 덕목의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다.

덕목의 개념은 단순히 개인의 자연적인 성향이나 선천적인 재능으로 이해되는 것을 배제시킨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 및 역사적 정체성과 긴밀히 관련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덕목의 개념은 또한 덕목을 갖춘 사람, 곧 ‘有德한 人格(유덕한 인격)’의 개념 에 반영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유덕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란, 그가 속한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추구되는 덕목들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일컫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도덕 교육의 관심은 어린이들을 유덕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기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덕목론적 접근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덕 교육의 방법은 유덕한 인격을 가진 사람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덕목의 학습은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대화편 《프로타고라스》에서 제시된 것처럼, 마치 어린이가 모국어를 배우듯이 그렇게 배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부터 ‘정직해라’, ‘친절해야 한다’는 등의 덕목에 관한 가르침을 들으면서 자란다. 어린이들은 그런 말을 배우면서 말과 함께 그러한 덕목이 요구되는 사회적 상황을 알게 되고, 또 공동체 내에서 그러한 덕목이 추구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된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그러한 덕목을 실천하는 어른들의 모범을 보고 따라서 실천해 보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목을 습관과 관련지어 설명하면서, “건축가는 집을 지어봄으로써 건축가가 되듯이, 용기 있는 사람은 용기 있는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용기 있는 사람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덕목에 대한 가르침을 들으면서, 그리고 때로는 그러한 행동을 실천하면서 도덕을 배운다.

3. 덕 교육 맥락으로서의 공동체

앞의 덕목의 개념에서 살펴보았지만, 여기서는 맥킨타이어가 그의 책 (After Virtue, 1984)에서 주장하는 바를 좀 더 살펴보고, 덕목교육에의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는 인성교육에서 강조하는 핵심 가치덕목이 우리의 교육 상황에서 좀 더 의미 있게 지도될 수 있는 방향의 모색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맥킨타이어는 오늘날의 사회의 ‘도덕적 곤경’을 분석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사회의 도덕적 쟁점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입장이 근본적으로 통약불가능(incommensurable)하다는 것이다.

도덕적 쟁점들에 관해 각자는 상대편의 관점이 의거하는 개념들로 환원될 수 없는 자신의 개념에 의거하여 주장을 펼치게 된다. 그리하여 상이한 준거를 가진 사람들 간의 논쟁은 합리적인 결말에 도달할 수 없다.

이러한 도덕적 곤경은 결국 각 개인의 도덕적 정당화는 순전히 ‘개인적 선호(選好)’의 문제가 된다. 이는 이모티비즘(emotivism)이라는 도덕적 회의주의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현대의 도덕 판단 혹은 논의의 양태 뒤에는, 맥킨타이어에 따르면, 독특한 자아관(自我觀)이 자리 잡고 있다.

곧 도덕적 행위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관련된 상황이 어떤 것이든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뒤로 물러서며, 또한 자신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이 순수하게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관점에서 판단될 수 있는 것으로, 즉 어떤 사회적 특수성도 지니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도덕 판단의 원천을 가지며, 도덕 판단을 내리는 일은 아무런 연고도 가지지 않는 자아에게만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의 인간관을 비판할 때에 등장하는 ‘추상적 개인(Abstract Individual)’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맥킨타이어에 따르면 이러한 자아가 취하는 어떤 태도나 입장도 궁극적으로 자의적이며 순전히 개인적인 선호의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런 태도나 입장은 합리적 기준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자아는 그의 인성도 그의 내력도 실제 도덕 판단이나 생활의 부분이 되지 못한다. 사실 그런 개인의 실체는 추상적이고 유령과 같은 특성을 가정한다.

그러므로 합리적 혹은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인간 삶의 한 측면으로서 도덕이 복원되려면 ‘목적(telos)’ 개념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덕은 인간으로 하여금 특별히 ‘인간다움의 목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품성의 탁월함’이다.

그리고 이러한 덕은 정치공동체(폴리스)를 벗어나서는 실행될 수 없다. 완전한 삶에 있어서 덕의 계발과 강화는 폴리스(공동체) 속에서 좋은 삶을 살고자 하는 공동의 과업에 다함께 참여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삶을 요청한다.

용기, 성실, 우애와 같은 덕목은 어떤 공동체이든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이며 또한 그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삶의 양식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룬다.

맥킨타이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관의 재건을 통해 덕이 지니는 핵심적인 역할 그리고 좋은 삶을 위한 공동체적 맥락의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시 과학적 이론에 기반을 둔 인간목적론이나 21세기 사회적 맥락과는 판이하게 다른 폴리스라는 도시국가 공동체의 맥락이 오늘날의 도덕적 문제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맥킨타이어는 중요한 핵심 개념 3가지를 제시하여 도덕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

곧 실행(practice), 삶의 서사적 통일성, 그리고 전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덕의 개념이 핵심적 위치를 갖는 도덕의 합리적인 틀을 제공하려고 한다.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의미 있는 실행, 예를 들어, 바둑 두기, 가사일 등 사회적 실행은 그 자체 내에 구현된 내재적 선(善)이 있다.

실행 속에서의 판단은 전적으로 주관적이거나 자의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합의된 논증 방식 그리고 공유된 규준에 의한 이런 틀은 우리로 하여금 순전히 개인적인 선호의 표출을 넘어 객관적이고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실행의 의미를 이해하게 하는 것은 그 행위를 행위자의 삶 그리고 그 행위가 일어나는 배경의 내력 속에서의 한 장면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등장인물이자 작가인, 공연이 진행 중인 이야기이다.

우리 삶의 서사적 형식은 일정한 목적론적 성격을 부여한다. 우리는 미래 삶에 대한 일정한 표상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이야기 형식은 상이한 실행들의 요구 사항들이 상충함에 있어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맥킨타이어는 덕은 실행을 떠받치며, 우리로 하여금 그 실행의 내적 선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부딪치게 되는 해악, 위험한 유혹, 방심을 극복하게 함으로써 선에 대한 적절한 탐색을 계속할 수 있게 하고, 우리 자신과 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해주는 그런 성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상당히 고답적인 논의로 구성된 맥킨타이어의 덕에 대한 설명과 정당화는 우리가 덕교육을 할 때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 것인가?

예를 들어, 어떤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덕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그것을 낱낱의 덕목들이 우리 사회의 맥락이나 학생들 개인의 삶의 서사와는 무관한 내용으로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본다.

달리 말하여, 가르칠 수 없다기보다 그렇게 덕목을 가르치는 것은 큰 의미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시사해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인성교육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덕목은 우리 사회 공동체의 맥락과 연관되어 지도되어야 하며, 그리고 학생 개인의 삶의 서사에 연결될 수 있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인성교육에서 덕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면,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덕목들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의미를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맥킨타이어는 ‘좋은 삶’에 대한 탐색은 모든 개인에게 똑같지는 않다고 한다. 실행의 역사적 특성들이 다르기 때문에 아테네 장군에게 좋은 삶은, 중세 수녀나 17세기 농부에게 좋은 삶과는 같지 않음을 뜻한다.

사람들의 좋은 삶에 대한 표상은 그들의 삶이 역사적, 사회적으로 확대된 큰 이야기, 곧 전 통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새겨진 ‘좋은 삶’에 대한 표상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요구되는 덕은 무엇인가? 우리가 덕교육을 성공적으로 하고 싶다면 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