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정책,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①

우리나라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사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우리 사학은 국권을 빼앗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인재양성의 산실로서 그 역할을 담당해 왔다. 또한 해방이후 국가발전을 이루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1974년 고교평준화 정책이 시행되고 정부 간섭이 시작되면서 사학의 자율성이 많이 위축돼 왔고, 일부 비리 사학은 사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에듀인뉴스가 사학 정책, 이대로 괜찮은지 점검해보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Ⅰ. 공교육으로서의 사학의 필요성

인간은 사유과정을 통해 자연과 사회 현상의 이면을 관통하는 법칙을 이해하여 자신과 인류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활동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동물과 차이가 있다.

인류의 선행 성과를 학습하여, 이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는 교육이 이 과정을 이끄는 중추적 수단이다.

교육은 가정과 일상생활에서도 이루어지지만, 법률에 따라 설립되고 교육이수자에게 국가적으로 공인된 증명서를 발급하는 교육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기관을 공교육 기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유치원부터 대학원에 걸쳐 오랜 기간의 공교육을 제도로써 제공하고 있다. 공교육을 받고 있는 수요자는 현재 약 1,800만 명이고, 거기에 정규직으로 종사하는 피용자만 하더라도 약 87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중요한 공교육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만이 제공하여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사학 존립의 출발점이다.

과거 초·중등교육, 고등교육이 교육의 국가독점 사상에 따라 제공되던 시절이 있었다. 독일의 경우 프로이센은 학교와 대학은 국가의 시설물이라고 규정하였고(프로이센 일반란트법 제2부 제12장 제1조), 사설(私設)의 양육시설 및 숙사(이는 공교육이 아님)는 국가의 엄격한 통제 하에 두었다(프로이센 일반 란트법 제2부 제12장 제2조). 2차 세계 대전 전의 일본 역시 교육은 국가의 전 속사업이라고 이해하였다.1)

1) 大 澤勝, 敎育基本法と私立學校法, 季刊 敎育法 제23호 66면 참조.

교육의 국가독점사상이 지배하던 시절의 사학은 국가의 특허에 의해서만 개설될 수 있는 특허사업의 일종이었다.2)

2) 工藤 市兵衛, 私立學校法と私學の自主性と公共性, 愛知工業大學 硏究報告 제28호(平成 5년), 495면.

이런 교육의 국가독점사상은 오늘날 낡은 이데올로기로 평가되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그 잔재와 잔영은 여전히 남아 있다.3)

3) 가령 신현직, 사립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 확보를 위한 국가 감독, 한국공법학회 제86회 학술발표자료, 110면에서는 사립대학의 법적 성격을 ‘공기업의 특허’라고 이해하고 있다.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단체나 사상가들이 이런 사상을 이어가고 있다. 교육의 국가독점사상의 현대적 버전은, 국·공립학교는 다양한 계층, 계급, 그리고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부모의 자녀를 사회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지만, 사립학교는 상대적으로 보면 비통합적 경향성을 가진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국가에서 사립학교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자녀가 다닐 수 있다는 것, 사학 이 공립학교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등이 사회통합 기능을 하는 공립학교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사학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나아간다.4)

4) 이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Avenarius/Füssel, Schulrecht, S. 289 f 참조. 자사고, 특목고 등에 대한 우리나라에서의 비판이 바로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사학비리, 과열 입시경쟁의 폐해를 근거로 교육과정을 국가가 더욱 강력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사학은 학교제도에서의 자유이념의 구현체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공립학교는 국가에 의해 설립·경영되기 때문에 세계관에서의 중립성과 비종교성을 특정으 로 한다.

그러나 종교적 관용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특정 종교사상을 가미하여 교육하는 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으며, 또 그것이 종교적 신념 하에서 자녀를 양육하고자 하는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또한 헌법질서가 보장하는 범위를 일탈하지 않는다면, 특정의 세계관에 입각한 교육을 할 자유 또한 부정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비록다수를 점하지는 않겠지만, 특정의 교육 이념이나 교육 방법 하에 자녀를 교육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줄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도 자유 상태에서, 자유를 지향하기 위해 교육하고자 하는 것이 교육제도라면, 그 제도의 틀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자유가 허용되어야만 할 것이다. 사립학교가 바로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특히 민주국가에서 교육의 국가독점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5)
5) 국공립학교가 다수인 독일에서도 이런 인식은 이미 보편적이다. 가령 Avenarius/Füssel, S 289 f. 참조.

교육은 백년 지대계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교육은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교육과정을 통해 한 인간과 집단, 나아가 사회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법치가 웬만큼 자리 잡고 있는 여러 국가들에서는 법 제도 역시 유사하다. 가령 일본과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법 제도의 면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런데 동일하거나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독특함이 한 국가와 사회의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 이런 특징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사학이란 국·공립과 달리 자기 책임 하에서 교육을 수행하기 때문에 교육 과정에서도 자기 책임성, 창의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학은 공교육이라는 큰 틀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공동체를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교육을 수행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사학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은 자기 책임 하에 자기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면서도,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는 인재들이 육성될 것이다.

사학의 자유가 보장된 환경에서 자란 미래세대와 그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부모, 형제자매의 세대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에서 자율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권리와 인권, 자유를 존중하며, 자기 책임 하에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질 것이다.

다양성의 존중, 개인의 권리와 인권의 존중, 개성(곧 창의성)의 존중, 개인의 자기 책임의 존중은 우리 사회를 보다 다양성 있는 사람들의 총합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는 이런 인재상을 반대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그렇지만 사학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서로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에서는 의견이 일치할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헌법질서인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 사학이 자기 책임 하에 다양하게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사학은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불가결한 제도인 셈이다.

2. 사학의 자유 또는 자율성이란 무엇인가?

헌법재판소는 사학의 자유는 기본권으로서 보장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6)

6) 헌재 2001. 1. 18. 99헌바63, 판례집 13-1, 60, 70; 헌재 2009. 4. 30. 2005헌바101, 판례집 21-1하, 23, 36-37 등 다수의 판결에서 추상적 법명제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사학의 자유란 사학을 설립할 자유만이 아니라 사학 경영에서의 자유를 포함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학의 자유란 ‘사인(私人)의 자유로운 주도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되는 학교로서 그 교육을 자기 책임 하에 형성하고, 학부모와 학생들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학교’라고 정의한다.7)

7) 가령 Avenarius/Füssel, Avenarius Schulrecht, 8. Aufl., 2010, S. 288 f. 참조. 사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동일한 정의를 하고 있음은 Glenn/Groof ed., Finding the Right Balance-Freedom, Autonomy and Accountability in Education, 2002의 여러 나라 비교 부분을 참고.

달리 말하면 사학의 자유란 학교의 학생 선발=학부모의 학교 선택의 자유, 학교의 교직원 선발의 자유, 학교의 교과과정설계의 자유를 의미한다.

무릇 모든 자유는 더 큰 공익의 보호를 위해 제한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학의 자유 역시 더 큰 공익의 보호를 위해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사학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없애는 것은 제한이 아니라 박탈이 된다.

우리나라의 사립학교법 및 교육관계법을 보면, 사학은 국·공립학교의 보충수단으로만 자리매김되고, 사학의 자유의 중핵은 실질적으로는 박탈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초·중등교육법 제12조 제3항이다. 동 규정에서는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초등학교·중학교 및 특수학교에 그 관할 구역의 의무 교육대상자를 모두 취학시키기 곤란하면 인접한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여 합동으로 초등학교·중학교 또는 특수 학교를 설립·경영하거나, 인접한 지방 자치단체가 설립한 초등학교·중학교 또는 특수학교나 국립 또는 사립의 초등학교·중학교 또는 특수학교에 일부 의무교육대상자에 대한 교육을 위탁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지방 자치단체의 위탁에 의해 학생이 사립 학교에 배정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학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부정하는 규정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규정이 사학의 자유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그만큼 사학 경영의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지배력이 강력하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사학 을 설립할 자유는 있지만, 학생 선발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교과과정 설계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으며, 교직원 선발의 자유도 부정한다면 그것을 두고 사학의 자유라 할 수 없다.

3. 사학의 자유를 부정하는 핵심 수단은 무엇인가?

무릇 뱀을 잡을 때는 그 머리를 움켜 쥐어야 하고, 야생마를 길들일 때는 고삐를 꾀어야 하며, 전쟁에서 이기고자 할 때는 적장을 잡아야 한다.

사학을 국·공립의 아류로 전락시키고 앞서 언급한 사학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학을 설립·경영하는 주체인 학교법인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첩경이다.

1963년 제정된 사립 학교법은 학교법인의 상근이사장이라 하더라도 보수를 받을 수 없게 하였고, 1981년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사학의 회계를 학교회계와 법인회계로 구분하였다. 이것이 학교법인 활동의 물질적 기반을 없애는 효과를 가져 왔다.

공법인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익법인, 사법인을 막론하고 그 법인의 전체 수입을 자신이 고유하게 수행하는 활동 관련 회계와 별도의 수익재산회계로 구분하지 않는다.

이들 법인 책임자의 보수를 그 법인이 보유한 별도의 수익재산에서 나온 수익에서 지급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유독 학교법인은 그 고유한 활동인 교육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에서 학교법인 임원의 인건비를 지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 수익재산에서 나온 수익으로 지급하도록 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법인의 상근이사라 하더라도 무보수로 일하거나, 그 업무수행 비용도 자부담으로 해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학교법인을 무력화시키는 또 다른 수단은 사학 운영에 관하여 학교법인의 권한을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것이다. 이사 임면, 교직원 임면, 학교예산의 편성, 교과과정의 수립, 학교 교칙의 제·개정 등에서 학교법인의 권한을 잠식하는 법령을 제·개정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수단을 통해 학교법인을 무력화시키는 데 동원되는 정당화 논리는 ‘사학비리’와 ‘재정결손금의 지원’이다. 윤리성의 측면에서 학교경영을 하기에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설립 인가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8)

8) 오스트리아 사립학교법은 윤리적으로 볼 때 학교경영을 하기에 부적절한 사람에게는 사립학교 설립을 인가하지 않고, 일본 사립학교법은 설립 인가에 사립학교심의회가 심의를 사전적으로 거치도록 한다.

설립 당시의 취지와 달리 사적 이익의 추구를 위해 학교법인 경영권을 남용하는 것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학교법인 경영 권한을 남용하는 이들을 두 번 다시 학교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막는 장치도 있어야만 한다.

이 점에서는 교사와 교수도 마찬가지이며, 국회, 입법부, 사법부 소속 공무원도 다를 바 없어야 한다. 그런데 사학비리라고 세간에 보도되는 것은 사학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각종의 사립학교법 및 교육 관계법의 실정법 규정을 위반한 사례들이 대부분이다.

사립학교 관계법을 위반하는 행위는 국법질서에 의해 처벌받아야 하지만, 현재와 같이 억압적인 사립학교법의 위반 행위가 과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위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학교법인의 이사장 및 이사 역시 학교법인에 의해 임용된 사람인데(설령 설립자가 이사장인 경우에도),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급여와 실비 변상을 학교법인의 별도 수익사업에서 나온 수익 중 행정규칙에 따라 선지급 해야 할 부분을 제외한 잔액이 있을 때 지급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가혹하다.

국가에 의해 임용된 대통령과 관계 장관, 공무원의 급여를 국가가 보유한 별도 수익재산에서 지급해야 한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부정부패는 드물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 급여의 실질화의 배경도 바로 이런 우려였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립학교의 모든 재산은 학교법인이 소유하는데, 그 재산으로 사학 경영을 위해 필요한 지출을 할 때 학교회계와 법인회계를 구분해서 정해진 항목에 따라 사용하지 않으면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도 매우 가혹하다.

이런 법을 두고 있는 나라는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번듯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에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 규정을 위반한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한지, 아니면 이런 법을 유지하는 국가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지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전입금도 없는 학교법인이 무슨 낯으로 사학경영권을 행사하려 하는가?’ 라는 세간의 주장도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모든 학교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기 때문에, 거기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교육서비스의 대가에서 나와야 한다.

공익을 위해 교육서비스의 대가를 국가가 법률로 제한하였다면, 그로 인해 희생되는 만큼의 비용은 국가가 세금으로 보충해야 하는 것도 자명하다.

중등사학의 경우 국·공립학교나 사학 모두 동일한 수업료를 받는데, 그 업무에 소요되는 비용(종사자의 인건비 포함) 지급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등사학에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는 것은 결손금이 아니라, 수업료를 국·공립과 동일하게 억제하였기 때문에 보충해 주어야 할 의무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학의 수업료를 통제하는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사학 경영에 참여하는 모든 임직원의 급여를 포함한 비용을 국·공립학교에 준하여 재정지원을 한다.

수업료를 통제하지 않는 일본은 임직원의 인건비를 포함하여 국가가 재정지원을 한다. 사학의 수업료를 통제하지 않는 영국과 미국은 수업료에서 사학의 임직원 인건비를 비롯한 학교경영비용이 지출된다.

수업료를 통제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이나 일본의 모델을 따르지 않고, 별도의 수익사업을 해서 그 수익에서 인건비를 비롯한 비용을 충당하라는 논리는 그 자체가 폭력이다.

4. 사학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향한 긴 여정

학교법인이 경영하는 사립학교는 우리나라 교육에서 큰 비중을 점하고 있다.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산업의 면에서도 교육서비스산업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교육서비스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어 갈 주체의 기술적 역량만이 아니라 그들의 세계관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사립학교가 학생의 선발을 경제적, 사회적 출신 배경에 의해 판단하지 않는다면, 설령 수학능력의 수월성을 기초로 선발한다고 하더라도, 사회통합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립학교를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외열기를 근거로 사학제도에 대해 비판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소위 좋은 학교가 소수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수월성을 중시하는 학교가 다수 있다면 과외 열기는 그만큼 가라앉을 것이다.

사학의 자유가 보장되는 영국의 중등교육과정 과외 열풍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요컨대 사립학교는 국가 주도 하에 수행되는 교육과 병존하여 존재할 수 있고, 상호 경쟁하여야만 서로에게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사회 또는 국가가 유지·발전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후속세대가 기성세대들의 사회적 역할을 승계·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교육이 바로 사회적 역할의 습득과 발전에서 필수적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후속세대의 교육에 대해 국가가 일정한 책무를 부담하여야 한다. 그러나 교육이 국가독점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후속세대를 어떤 가치관, 어떤 내용으로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해 시민사회 역시 중대한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사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토대이기도 하다.

이념적으로 볼 때 국가의 다수자의 지배이념, 지배적 교육방법, 교육이념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국·공립학교와 달리 사립학교는 학부모로 하여금 국가 또는 특정 집권당의 교육목적과 다른 목적 하에 자녀를 양육할 기회를 보장해 주는 것이고, 스스로 선택한 교육내용을 독자의 교육적 방법과 관점에 따라 교육할 수 있다. 이것은 다양성의 보장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우리 헌법질서와도 부합한다(헌법 전문 및 제10조).

사학의 자유는 교육에 대한 국가의 권한과 의무와 병존할 수 있고, 상호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국가의 교육에 대한 책무는 사립학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하고, 비록 그 자유에 제한을 두더라도 본질적인 침해를 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9)

9) 사적 이니셔티브 하에 학생 교육이라는 공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사학이며, 헌법적으로도 공립학교와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독일의 주장으로는 Vogel, Öffentliche Verantwortung und freie Initiative, Öffentliche Schule in staatlicher und freier Trägerschaft, S. 113 ff. 참조.

이제까지 획일화된 공교육을 해왔던 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끈 원동력임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는 오늘날 더 이상 획일적 사고방식을 양산하는 공교육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

대량생산이 아니라 개별화된 맞춤형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도 국가 주도가 아니라, 국가와 사적 주체인 학교법인이 경쟁하는 체제로 가야만 한다.

사학의 자유와 자율성은 부정할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인 셈이다. 물론 그 길에는 숱한 난관이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먼 길이고, 힘든 길이겠지만 과감히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라고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