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성 홍대부여고 교장, 철학박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선거가 5월에 치러진다.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각 대선 주자들은 '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에는 교육이 소홀히 다루어지는 경향이 반복됐다. 그동안 당선을 위해 공약을 무리하게 약속한 경우도 있고, 현실적이지 못한 공약을 제시한 사례도 많다. 이에, 에듀인뉴스는 전문가 도움을 받아 긴급기획으로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진단해봤다. 다음은 이상성 홍대부여고 교장이 본지에 보내온 글이다. 독자들의 대선 공약 점검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편집자 주>  

최근 ‘5-5-2’ 학제를 제안한 한 대선 주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육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개혁은 없다”라고 단언했다.

또 다른 대선 주자는 며칠 전 “사교육 철폐를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한다”라고 밝혔다. 연일 발표되고 있는 교육 공약을 접하면서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들 대부분은 상당한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이다.

우선, 대선 주자들이 무엇보다 교육의 미래를 중시하고 개혁적 조치들을 언급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또 우리 교육의 문제점들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 자체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이 득표 전략으로 내놓는 갑작스러운 교육정책들은 현장의 교사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일부 선생님들은 애써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금방 사라지거나 정권 바뀔 때마다 변하는 교육정책이나 공약들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초·중등학교 교육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인성 교육의 필요성은 법으로까지 제정하여야 할 시점에 이르렀고, 암기 위주의 수 업과 복잡한 입시 전형 등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여겨지고 있다.

개선할 것과 개혁할 것이 산덩이처럼 쌓여 있지만, 절차와 방법에서 급작스럽게 접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던 경험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조기 대선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몇몇 정치인들이 제안하는 교육정책 공약 중 단연 시선을 끄는 것은 안철수 의원이 제기한 ‘5-5-2 학기제’로의 학제 개편이다. 며칠 전 남경필 경기도지사 가 제기한 ‘사교육 철폐 국민투표’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우선, 안철수 의원 이 제기한 학제 개편은 현행 초-중-고 6-3-3 학제를 ‘5-5-2’, 즉 초등 5년, 중학교 5년, 진로탐색기간 2년으로 바꾼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기간으로 보면, 현행 12년에서 10년 혹은 12년 학제로 골격이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내용이 많고, 여러 가지 의문점도 생긴다.

1) 현행 중·고 6년을 5년으로 어떻게 단축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언뜻 듣기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통합하여 한 학교에서 5년간을 연속하여 배우는 것으로 들린다. 통합 교육과정의 운영을 중학교 1~5학년[中(高)]까지 연속적으로 할 것인지, 3년(中) 혹은 2년(高)으로 구분하여 진행할 것인지 모호하다.

그런 가정을 하면, 학교 시설의 확충 문제는 무엇보다 급선무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한 교정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이 있는 경우에는 통합하면 가능할 것이지만, 현재 전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상당수 독립 형태로 존재한다.

또한, 교사들의 경우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구분 없이 ‘중등교사’로서 한 학교에 모여 통합적으로 가르치게 되는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2) 5-5-2에서 ‘2’는 고등학교 기간인지 대학교육에 해당하는지가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2’가 선택인지 필수인지도 불분명하다. ‘5’를 마친 학생들이 반드시 ‘2’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아닌지가 확실치 않다.

‘진로탐색학교’, 또는 ‘직업학교’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언뜻 보기에는 필수로 읽힌다. 만약 필수 과정이라면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안 의원은 “고등학교는 없애고 그 기간, 즉 자기 진로를 찾는 진로탐색기간 2년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 2년은 매우 어정쩡한 기간으로 보인다.

‘고등학교는 없앤다’는 말의 의미가 중학교 5년 기간 안에 사실상 고교까지를 포함한 기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으로 읽히는데 확실한지 모르겠다.

더구나 진로탐색기간 2년을 별도 고등학교 기간처럼 현장의 교사들은 인식하고 있다. 또한 전문대학과의 관계 설정이 불분명하다.

직업탐색, 혹은 훈련 기간쯤으로 인식되는데, 그 2년이라는 기간이 고등학교인지, 대학인지가 학제 상으로 불분명하다. 현재 고교 졸업 이후 2~3년간의 전문대학 교육 기간이 별도로 있기에 이 2년은 옥상옥으로 여겨진다.

3) 진로 탐색의 경우 기업과의 협조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기업들이 이윤 창출이 없는 학생 진로지도를 흔쾌히 수락할지 의문이다.

그럴 경우 직업 체험할 기업체를 섭외하기가 학교로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직업 체험할 기업을 구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기에 학교 업무는 막중하게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

또 직업 체험이나 탐방을 하는 학생들이 전문대나 대학으로 진학하고자 할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하게 얽혀 버릴 것이 분명하다.

4) 무엇보다 현행 다양한 고등학교들을 다 폐지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일반고, 자사고, 자공고, 특성화고, 과학고, 영재고, 외국어고, 예체능고 등 많고 많은 학교를 다 어떻게 통합하고 폐지할 것인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현행 고교 교육과정은 사실상 매우 세밀하게 진로가 구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진로선택 과정이 없는 일반고 학생들만이 대학진학 시 진로를 고민하는 추세이고, 상당수 고교생은 고교 진학 과정에서 이미 전공 혹은 진로가 어느 정도 정해진다.

각종 계열별 고교 교육과정이 고교 자체에서 나누어져 있으므로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이른바 충분히 ‘진로탐색기간’을 확보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고교는 각기 교육 과정도 상당히 다르고 진로 탐색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5-5-2’는 이런 모든 종류의 고등학교를 다 없애는 구상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5) 학제 개편의 사유가 정치적 목적이 깔리지 않았는지 의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현행 학제를 줄여야 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선거 연령 조정일 것이라는 느낌을 현장 교사들은 강하게 지니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다각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선거 연령 하향 조정과 맞물려 있는 주장이라는 관점이다.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기 위해서는 학제의 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18세에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면, 우리나라도 학제를 조정할 필요성은 일정 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장 교사들은 우리나라 교육 여건상 고등학생들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투표를 하는 것은 상당히 어색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 교실 문화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인식 때문이다.

6) 대선 주자들의 교육성과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 정확하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안 의원은 기존 60~70년간의 우리 교육은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실패는 ‘학제’ 가 근본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변화’를 통하여 “초중고 교육에서 적성을 찾고 인성교육을 받고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미래적 관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견해 차이가 있겠지만, 현장의 대부분 교사는 우리 교육의 당면 문제점은 학제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이 거의 ‘좋은 대학 가기’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을 꼽는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암기 위주의 성적 쌓기에 집중하고, 좋은 내신 만들기에 과다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도입하여 학생들이 ‘시험으로부터의 압박’에서 다소나마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또다시 학생들은 성적과 내신 관리의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학제, 즉 교육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교실에서, 특히 – 일반고는 물론 특목고조차 – 고등학교 교육에서 ‘창의 교육’은 사실상 시도하기 어렵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거의 불가능하다.

외국어나 과학 중심의 특목고조차도 대학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것을 간과하고 학제만 바꾼다고 하여 실패한 교육이 ‘성공’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의 경우 교육과정이 빡빡하여 ‘토론식 수업’을 하기는 더욱 어렵다.

수업시간에는 진도 나가기에 급급하다. 토론을 통한 창의적 수업 문화는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연구수업이나 특별활동을 통해 겨우 시도해 보는 실정이다.

교육이 학생들 스스로 꿈을 찾아가도록 돕고 이끌어 주어야 하는데 입시 경쟁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서는 그럴 겨를이 없다. 한마디로, 학제의 문제가 아니라 입시 위주로 흐르는 풍토가 더 문제인 것이다.

7) 5-5-2 학제를 주장하면서 초등학교 입학 전 2년간의 유치원 과정에 대해서는 간과한 것 같다. 공립유치원이든 사립유치원이든 유치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학부모들의 인식과 관심이 증폭되고 있어서 정치적 현안으로 주목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은 비켜나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누리과정에 대한 예산 확보와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데 관심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유치원 과정을 감안하면 학제는 ‘2-5-5-2’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8)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여 ‘5-5-2’로의 학제 개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5-5-2 학제라야 미래 직업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전제는 설득력이 없다.

사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것은 교육의 질(質)의 변화, 즉 암기식, 주입식 교육으로부터 교실 수업의 질적 전환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활발한 토론형 수업과 탐구형 수업 등을 통하여 창의적인 미래 인재들을 길러내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진로 교육이나 탐색은 정말 좋은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대입제도의 문제점과 같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고민 없이 학제를 바꾼다거나, ‘보통교육과 대학입시를 구분하여 실시한다’고 해서 우리 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은 거칠다.

먼저 터를 닦고 건물을 세워야지, 건물부터 세우려고 달려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교육 선진국들의 직업 탐색이나 체험 교육은 그 나라들의 사회 분위기가 이미 두텁게 형성되어 있어서 가능하다고 본다.

9)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지원처’로 재편한다는 주장 또한 다소 공허하게 들린다. 정부부처나 조직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하더라도 교육을 담당하는 국가부서가 ‘위원회’나 ‘지원처’ 수준의 직제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위원회나 지원처로 전환하더라도 결국 그것이 교육부와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하는 부서가 될 것이니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위원회와 지원처로 전환할 경우 어떤 기구가 되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10) 사교육 철폐에 관해 ‘국민투표’를 제안한 건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의 병폐, 특히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에 관한 문제는 이미 국가적 고민거리라고 볼 수 있다.

그 심각성은 공교육의 황폐화에도 영향을 줌은 물론 아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사교육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면 얼마나 환영할 일이겠는가! 자연스럽게 공교육 정상화로 이 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많은 고민을 해왔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국민투표로 결정해 일시에 폐지하자는 인식은 매우 투박해 보인다.

마치 전체주의적 발상같이 느껴진다. 국민투표로 사교육을 폐지할지 말지를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공교육을 정상화해 자연스럽게 사교육을 안해도 되는 형식적·절차적 변혁을 모색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하겠다.

일방적으로, 법으로 금지한다고 없어질 것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말하자면 바른 형식을 통한 바른 실천이어야 그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장이야말로 거의 ‘공약(空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조기 대선정국에 즈음하여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몇 가지 교육 정책들에 대해 학교 현장의 입장에서 살펴보았다. 특히 학제 개편은 학교 교육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므로 우리나라 교육의 질과 내용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학제 개편을 통하여 미래 교육의 내용과 질에 상당 부분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인 만큼 큰 안목과 열린 마음으로 미래 교육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입시경쟁과 주입식 혹은 암기식 교육이라는 장벽을 여하히 낮추느냐가 현실적으로 시급한 문제라고 학교 현장에서는 본다.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기식 교육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학교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있어야 한다.

대선 주자들에 의해 제안되고 있는 교육개혁 방안들은 일부 그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절차나 형식, 내용과 분석 등에서 간과한 면들이 많다.

선거철에 맞추어 불쑥 제안하는 방식은 더욱 문제가 있다. 정권마다 바뀌는 입시 제도도 더는 용인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육문제만큼은 명실상부 ‘백년대계’를 도모한다는 마음가짐과 자세로 접근해야 함을 다시 한번 상기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