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세상을 살다보면 실수나 실패를 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세상사일진데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에는 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

대입제도만 해도 그렇다. 수시전형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실수하지 않고 관리가 잘 된 학생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그래서 학생들은 고1부터 입시에 매달리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내신관리를 위해 고1 중간고사부터 수시로 이뤄지는 수행평가까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시험준비를 해야 한다. 비교과 영역에 대한 준비도 빈틈이 없이 이뤄져야 한다. 혹자는 수능으로 가는 정시전형이 있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수능도 알고 보면 고등학교 내내 준비하고 반복 연습해야 하는 시험일뿐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힘들고 불안해서 학창시절의 행복을 누릴 틈이 없다. 옆에서 지켜보는 학부모도 교사들도 모두가 힘들고 안타까운 입장일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런 입시제도가 최선일까? 고등학교 내신과 학교생활 충실히 하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이 학생의 학습능력과 잠재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교 내신관리가 안 됐더라도, 비교과활동이 부족했더라도, 학습동기화가 늦게 발현되어 기왕의 준비가 없더라도, 나중에 의지를 갖고 진학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이 있다면 이들에게도 공평한 대입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여기에 관대하지 않다. 고교시절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학생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대입제도를 유지하고, 패자부활의 기회를 닫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잘못된 제도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입시제도는 참고할만하다. 독일의 일반 대학의 입학자격이 주어지는 아비투어(Abitur) 시험에 김나지움(Gymnasium 인문학교) 학생들은 13학년 말에 응시한다. 모든 학생들이 아비투어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아니며, 아비투어 시험 없이 1년간의 직업 교육 또는 현장 실습을 통하여 전문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 생활로 나갈 수도 있다. 또한 하웁트슐레(Hauptschule 기본학교)나 레알슐레(Realschule 실업학교)를 졸업한 학생 중에서도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김나지움 상급반에 입학하여 일반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게잠트슐레(Gesamtschule 종합학교) 9학년을 마치면 병설되어 있는 11-13학년을 마친 다음 아비투어 시험을 치를 수도 있다.

이처럼 독일은 초등학교[Grundschule]를 마친 후 성적과 진로에 따라 4군데로 달리 진학했더라도 나중에 학생의 의지와 실력에 따라 불이익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이 독일의 대학도 의학계열처럼 인기 전공은 인원제한 입학제가 적용되고 있는데, 이 때 아비투어의 평균성적, 대기기간, 필기시험 및 면접이 입학허가를 위한 기준이 된다. 예를 들면 의대 같은 경우 7년간 입학 대기학생을 위해 일정비율 인원을 할당하고 있다. 이 밖에 별도로 정상을 참작해주는 경우가 있고 또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몫은 미리 남겨 두고 있다. 비록 초기에 학습능력을 부족했더라도 나중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아비투어 성적이 부족했더라도 의지만 있으면 인기계열 학과도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말하자면 패자부활의 입시제도가 운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독일의 입시제도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선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어려서부터 조기교육으로 내몰릴 일이 없고, 학교내신에서 하나라도 실수할까봐 조바심 때문에 학창시절이 불행할 일이 없다. 무엇보다도 학교내신 또는 학생부 관리라는 사교육 유혹에 넘어가서 고통당하지 않아도 된다. 학생이 어느 때든지 학업에 대한 열망이 있고 노력을 한다면 대학입학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제도가 좋은 제도임에 틀림없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특히 학생들의 실수나 실패는 성인이 돼서 성공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도록 해야 한다. 대입제도가 학생들의 좌절과 불행의 근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실수는 언제든지 만회할 수 있고, 실패도 두렵지 않도록, 새로운 도전을 위한 용기를 북돋우는 대입제도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창의적인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패자부활을 위한 장치들이 대입제도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황영남 성균관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