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훈 가천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에듀인뉴스=서혜정 기자] 최근 헌법 개정 논의에 교육 관련 조항의 개정도 함께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헌법 개정 논의 시 교육 관련 조항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도 함께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에듀인뉴스는 헌법 개정 시 학부모의 교육권과 교원의 교육권을 어떻게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조석훈 가천대 교육대학원 교수로부터 의견을 구해봤다.

 

1. 학부모 교육권의 등장

1995년 5.31 교육개혁이 발표되기 전만 해도 ‘학부모의 교육권’은 교육계에서 다소 생소한 말이었다. 1949년에 제정된 교육에 관한 최초의 법률이자, 1997년에 교육법 체계의 전면적인 재편에 이르기 전까지 교육에 관한 기본적인 법률이었던 구 『교육법』에서는 학부모의 교육권을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단지,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 취학할 연령에 있는 자녀를 둔 보호자는 그 자녀를 취학시킬 의무를 지고, 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내용이었다.

교육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겨냥한 ‘신교육체제구상’으로 불리는 5.31 교육개혁은 학부모의 위상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공급자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전환’을 천명하면서 교원에게 자녀의 교육을 위탁하는 소극적 존재가 아닌 적극적 교육권의 주체로 학부모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개혁 구상을 이어받아 1997년에 구 『교육법』이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으로 새롭게 구성되면서 교육에 관한 기본적인 원칙을 담은 『교육기본법』은 학부모를 교원, 학습자, 교원단체, 학교의 설립·경영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과 더불어 교육의 당사자로 규정하였다.

부모 등 보호자는 교육당사자 중에서도 조문의 배치상 학습자 다음이자 교원 앞에 위치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자녀에 대한 교육권의 주체임을 규정하였다. 나아가 교육에 관하여 학교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학교는 그 의견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학부모의 교육권이 학교 운영에서 중심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헌법재판소는 학부모의 교육권을 자유롭게 자녀 교육을 ‘형성’할 권리, 교육의 목표와 수단에 관하여 ‘결정’할 권리, 형성하고 결정한 대로 ‘이행’할 권리로 정리하였다.1)

1) 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관하여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인생관·사회관·교육관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자유롭게 형성할 권리를 가지며,··· 따라서 자녀교육권은 부모가 자녀교육에 대한 책임을 어떠한 방법으로 이행할 것인가에 관하여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서 교육의 목표와 수단에 관한 결정권을 뜻한다(헌법재판소 2000.4.27. 98헌가16, 98헌마429 병합, 판례집 12-1, 446-448).

학부모 교육권의 등장은 학교 운영에 새로운 풍경을 낳게 되었다.

예를 들어 교장보다도 대개는 연령이 낮은 학부모가 학교운영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의사봉을 잡고 교장은 위원 중 한 명으로 참여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학부모가 주관하는 교외체험학습은 교육과정에 따라 교원에 의한 교육활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업으로 인정되었다.

학생 포상, 징계, 징계외의 지도방법, 두발·복장 등 용모, 교육목적상 필요한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사용 및 학교 내 교육·연구활동 보호와 질서 유지에 관한 사항 등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학부모의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였다.

학생의 개인정보 관리에 학부모의 동의가 필요하게 되었고, 학교교육과정의 운영방법을 비롯하여 교과용 도서와 교육 자료의 선정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했다.

2. 교원의 교육권과 갈등

공급자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이라는 교육개혁의 기치 속에서 진행된 학부모 교육권의 부각은 사회적 분위기로는 교원의 교육권의 위상 저하를 초래하게 되었다. 다만, 학부모의 교육권을 중시하면서 교원의 교육권을 상대적으로 약화하는 법령상의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학부모 교육권의 강조와 함께 교원의 교육권 역시 이전보다 더 보장하는 정책이 병행되었다.

교직원은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규정이 『교육기본법』에 마련되었고, 교원의 전문성 및 신분 보장의 규정은 변함이 없었다. ‘학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에서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로 변경하여 교사의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앞에서 언급된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에 대해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원의 의견도 반영하도록 하였다.

법령의 관점에서 보면 학부모의 교육권을 강조하면서 제로섬(Zero sum) 게임의 차원에서 교원의 교육권을 위축시키거나 그 위상을 저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학부모나 교원 모두 학습자의 교육이라는 같은 대상에 교육권을 발휘하는 것이므로 서로의 가치나 방법이 충돌할 때에는 양자의 우월 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교육기본법』은 학부모와 교원을 교육당사자의 하나로 병렬적으로 배치하고 각자의 교육권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을 뿐 양자의 갈등관계 상황을 염두에 둔 조정 기제를 적극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수직적 위계 구조에 익숙한 문화 속에서 살아온 교원이나 학부모가 각자의 교육권을 바탕으로 수평적 협력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교총의 조사에 의하면 2015년도 교권 침해 사례의 가장 많은 부분은 학부모와의 갈등·분쟁으로 총 227건이었다. 각종 폭언, 폭행, 모욕, 명예훼손 등은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교원의 관점에서 보면 중앙집권의 권위적인 교육 행정체계 속에서 자율성과 전문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였다고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학부모 교육권의 강조는 교원의 교육권만 약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학부모의 관점에서 보면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사회 전반적인 민주화 운동의 흐름 속에서 ‘전문직=특권’으로 여기는 국민의 정서에 비추어 교원의 교육권은 부정적 이미지와 결합하여 인식될 여지가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여론조사(2016)를 보면, 초·중·고 학부모 중 59.7%가 교사자격증이 없는 초빙교사의 활용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다. 또한 교사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신뢰도에 대해 50.6%가 보통이라고 응답하였고, 신뢰하지 못한다(전혀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을 포함)는 응답은 28.2%에 이르고 있다.

바로 전문직으로서 교직에 대한 ‘무죄 추정’이 아니라 ‘유죄 추정’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3. 학부모의 교육권과 교원의 교육권 관계

헌법재판소는 학부모의 교육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면서 교원의 교육권과의 관계도 밝히고 있다. 교원은 자연법적으로는 학부모의 자녀 교육권을 신탁받은 사람이고, 실정법상으로는 국가 교육권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므로, 교원의 교육권은 학부모 교육권과 상호협력관계에 있다고 본다.2)

2) 교사의 가르치는 권리를 수업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법적으로는 학부모에게 속하는 자녀에 대한 교육권을 신탁받은 것이고, 실정법상으로는 공교육의 책임이 있은 국가의 위임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교사의 지위에서 생기는 학생에 대한 일차적인 교육상의 직무권한(직권)이지만, 학생의 수학권의 실현을 위하여 인정되는 것으로서 양자는 상호협력관계에 있다고 하겠으나…(헌법재판소 1992.11.12. 89헌마88, 판례집 4, 756).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학부모의 교육권과 교원의 교육권은 그 자체가 목적인 권리가 아니라 학습자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도구적 권리라는 점이다. 따라서 양자의 교육권이 서로 갈등을 빚을 때의 조정 기준은 어디까지나 학습자의 교육받을 권리에 있음을 강조한다.

헌법재판소가 교원은 부모의 지시에 단순히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 것도(헌법재판소 1991.7.22. 89헌가106, 판례집 3, 406.) 이 때문이다.

대체로 법원은 교육의 전문적인 사항에 대하여 교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전문적 영역’에서는 교원의 교육권을 상대적으로 우위에 둘 때 학습자의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렸다고 볼 수 있다.

4. 전문성과 학부모의 교육권

전문적 영역에서 교원의 교육권을 우선시한다는 관점을 가지게 되면 결국 학부모의 교육권은 자녀의 교육에 관하여 교원의 교육권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바로 이러한 종속관계를 극복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언급한 대로 상호협력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학부모, 교육의 가치, 전문성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요구된다.

첫째, 학부모는 ‘그릇된 교육관’의 온상으로서 불신의 대상이 아니라 자녀의 대체 불가능성을 누구보다도 굳게 믿고 자녀의 교육적 성장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능동적 주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학부모를 미숙과 불신의 대상으로만 보면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전문가의 판단을 침해하는 방해자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둘째, 교육에서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학습자의 교육적 성장이 교원의 전문성이라는 변수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이다. 교육에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고 가치 선택의 문제도 개입되어 있다. 교육의 오류를 교원의 전문성이 부족한 데에서 오는 ‘기술적 오류’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 학부모의 다양한 가치와 요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교원의 전문성은 배타적 자율성이나 독점적 지배력으로 해석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교원은 학부모를 포함하는 학습의 포괄적인 영역에서 상호 협동하고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지식·정보의 독점적 소유를 전제로 한 ‘전수’능력이 아니라 학부모와 협력에 의해 지식·정보를 효과적으로 연결시켜주는 ‘결합’ 능력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5. 마무리

학부모의 교육권과 교원의 교육권은 학습자의 인간적 성장을 위해 건설적으로 상호협력하는 관계에 있다고 말했지만 그런 협력 관계가 잘 작동하는 데는 우리가 모두 협력하는 방식을 배워나가는 학습의 시간이 필요하다.

협력의 방식이나 상호 교육권의 한계 혹은 행사 방식 등을 기계적으로 세밀하게 규정하는 방법으로 협력 관계를 작동시킬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도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언급했듯이 ‘사상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을 통해 우리 국민이 다양한 생각을 교류하며 부분적으로는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일구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학습을 통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 않고 철인에 의존하여 단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미성숙한 상태에 갇히게 될 것이다. 이때의 교육은 헌법재판소가 말한 헌법상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하는 교육받을 권리의 취지는 사라진 채 학부모와 교원이 서로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 경쟁하는 비교육적 상황만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