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화제가 되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 대하여 먼저 갖게 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엄청나게 뛰어난 처리능력과 학습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것, 그래서 많은 수의 직업이 사라지리라는 것, 새로운 산업 구조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 실직자가 생겨나리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막연한 추측에 불과한 것은 아닐 것 같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첨단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으나 우리네 삶의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고 불투명하게 느껴진다. 대졸자는 쏟아져 나오지만 청년 실업률은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취업에 방해가 된다고 염려해서 석박사 학위 취득 사실을 숨기고 취업을 하기도 하고,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지못한 고학력 청년들은 피치 못해 해외로 구직의 눈을 돌리기도 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사회 문제들은 머지않아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혼, 만혼, 비혼, 졸혼 등으로 표현되듯 전통적인 가족 구조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지켜왔고 믿어 왔던 사회적 기대와 가치들이 흔들리고 있다. 무서운 경쟁의 세계가 되었고 온통 불안함과 모호함 투성이의 세상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헤매면서 통과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선행학습과 사교육으로 무장해 소위 ‘인서울’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의 생존전략인 것처럼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 듯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뒤 대학에 진입한 청년들은,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누적된 피로감에 무기력감을 드러낸다.

정신을 차리고 스펙을 쌓으며 취업의 문을 두드려보지만, 좁은 문이라는 현실 앞에서 청년들은 또 한 번 좌절하게 된다. 아직 한창 꿈을 꾸고 도전해야 할 우리의 아름답다고 싱그러운 자녀들이 너무 빨리 삶의 희망을 놓아버리는 것이 아닐까 안타깝기만 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갖추어야 할 경쟁력은 무엇일까? 지금보다 더 많은 스펙을 더 빠른 속도로 쌓아 올려 경쟁력을 지금보다 더 높이면 우리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살 수 있게 될까?

예컨대 지금까지의 스펙이 100이었다면 조금 더 노력해서 150 정도를 만들면 될까? 지금 주 2회 다니는 학원을 주 4회로 늘리면 바라는 만큼의 경쟁력을 갖게 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양과 속도로 획득할 수 있는 스펙, 숫자로 표현되는 스펙은 유한한 경쟁력이며 제한적인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많은 양과 더 빠른 속도의 스펙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언제든지 경쟁에서 탈락할 것이다.

시한부 경쟁력인 셈이다. 따라서 그러한 스펙은 나에게 안정감과 희망을 주지 못한다. 항상 누군가를 이겨야 하고, 어느 지점까지 도달해야 하며, 스펙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한다. 나는 늘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비교하는 삶을 살게 된다. 위태한 삶이다.

이와는 다른 경쟁력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과 같은 유한하고 제한적인 경쟁력이 아닌, 무한한 경쟁력, 진짜 경쟁력이 있다. 결코 타인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없고 언제나 이기는 경쟁력이다.

그것은 존재의 경쟁력이다. 즉 존재 자체가 가진 특징으로부터 생겨나는 그 존재만의 독특한 능력이며, 다른 존재와 구별되게 하는 고유함과 개성을 말한다. 이 경쟁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졌다는 점에서 공평하고, 누구에게나 ‘다르게’ 주어졌다는 점에서 무한한 다양성을 품고 있다.

존재의 경쟁력은 우열을 가릴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다. 어떤 존재이든 그것은 창조의 목적과 영광을 담고 있기에 아름답고 위대하다. 다른 용도를 위해서 이용될 수 없으며 그 자체로서 자유롭고 완성도가 높다. 인간의 모든 능력의 근원은 이 존재의 경쟁력이다.

존재의 경쟁력은 학원에 다닌다거나 점수를 올린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이미 존재의 탄생 순간부터 부여받은 것이기에 그것은 발견될 필요가 있을 뿐이다. 부모와의 부드러운 대화와 따스한 보살핌 속에서, 가족들의 지지와 사랑 속에서 존재의 경쟁력은 북돋워지고 튼튼해진다.

교사의 애정이 어린 관찰과 안목을 통해 존재의 고유한 개성과 능력은 주목을 받게 되고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부모와 교사로부터 존재의 고유함을 인정받게 될 때 우리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감, 자존감,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 타인과 사물에 대한 수용성, 두려움을 맞서는 용기, 잘못된 것을 인정할 줄 겸손,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모험심과 실천할 수 있는 결단력 등을 갖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에서 어쩌면 더 이상의 스펙은 필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인간의 처리속도보다 더 빠르고 더 꼼꼼한 인공지능이 그런 것들을 대신해 줄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삶의 국면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존재의 경쟁력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부모와 교사는 이 일을 위임받은 자들이며, 가정과 학교는 이 일을 담당하는 장소이다. 다른 어떤 외형적 경쟁력보다 존재의 경쟁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

이 샘물이 마르지 말아야 한다. 매일 이 샘에 와서 마시고 새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 존재의 고유함을 인식하는 힘을 매일 새롭게 하며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한다.